109. 중징계
완전히 썩어 문드러진 보스 몬스터의 거체.
그에 비해, 머리 부분은 아무 손상도 없이 멀쩡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김민준 중사! 다친 곳은 없나! 의무 장교! 빨리 안 봐주고 뭐 하나!”
“예, 예!”
이필두 대령의 호통에 의무 장교가 후다닥 달려와, 몸 이곳저곳을 체크했다.
“…….”
이전과 같이, 멀쩡하다.
긁힌 자국 하나 없다.
“김민준 중사에게는… 부상의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저 말도 안 되는 보스 몬스터와 단독으로 싸웠는데, 그게 말이 되는 건가?”
“워… 가까이서 보니까 이놈 덩치 장난 아닌 것 같습니다.”
장교들은 황금 가고일의 시체와, 자신을 번갈아 보았다.
경악한 표정이 사그라질 기미가 없는 걸 보면, 어지간히 충격을 받은 듯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냐? 아까 놈이 일으킨 그 돌풍만 해도, 감당 안 되는 수준이었는데.”
장교들의 몸을 보면 여기저기 긁힌 자국들이 많았다.
분대원들의 움직임을 묶어 놓은 돌풍 때문인 듯했다.
“중사 김민준. 마력검을 사용해 맞서다가, 놈의 체력을 생각해 맨몸으로 맞서 싸웠습니다.”
“…뭐?”
“마력검으로 저게 상대가 되나?”
“의외로 방어력이 약한 건가?”
“아닙니다. 제 체감상, 일반 가고일보다 5배 이상은 튼튼했습니다. 저는 사단장님의 특혜로 미리 지급받은 2세대의 마력검을 사용해, 좀 더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었습니다.”
“…허. 아무리 2세대라고 해도 그렇지. 혼자서 상대할 만한 몬스터는 아닌 것 같은데.”
단호한 김민준의 대답에, 장교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냥 가고일만 해도 애를 먹는 수준인데, 5배 이상의 방어력을 가졌다니.
‘잠깐만. 그 말도 안 되는 놈을 일대일로 싸워서 이겼다는 거잖아. 말이 되냐?’
‘내 말이. 날아다니는 데다가, 돌풍도 일으키고, 패턴도 모르잖아.’
‘오우거를 생포할 정도의 힘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은데. 그래도 부상 하나 없이 저놈을 잡은 건 미친 수준이긴 하네.’
그들은 마치 귀신이라도 보는 듯한 눈으로, 김민준을 바라보았다.
‘내가 사실대로 말하겠냐.’
‘날아다니는 유령 같은 놈을 소환해서 죽여 버렸습니다.’라고 말해 봤자 믿지 못할 테지만.
“놈은 가장 위협적인 대상을 은신처로 납치하는 특징을 가졌습니다. 저에게만 메시지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놈의 공격 패턴은 주로 긴 팔과 날개를 이용한 공격인데….”
상황 정리가 끝난 뒤.
몬스터에 대한 보고와,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적당히 각색해 보고했다.
이필두 대령은 심각한 표정으로 보스 몬스터의 사체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을 못 믿을 이유가 없지. 실제로 훌륭하게 대처하고, 처리했으니까. 거기다 샘플까지 있고. 저 정도 크기면 어떻게든 가지고 나갈 수 있겠군.”
그것보다, 이 뒤의 일이 걱정이었다.
보스 몬스터라는 새로운 종류의 몬스터가 출현한 것.
그리고, 그 보스 몬스터는 기존의 몬스터에 비해 말도 안 되게 강한 것.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헌터 본부든, 국민이든, 공포심에 휩싸일 수밖에 없을 터였다.
‘김민준 중사의 설명을 들어 보면… 이레귤러 몬스터보다 훨씬 강하다.’
이레귤러 몬스터는 기존의 몬스터가 알 수 없는 변이를 일으켜 강해진 것이다.
이번에 마주한 보스 몬스터는, 아예 새로운 형태의 몬스터였다.
처음 보는 공격 패턴과, 특수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니.
‘이런 몬스터가 던전에 나타나기 시작한다면….’
이필두 대령은 암담한 표정을 지었다.
이중 던전에 한해서만 보스 몬스터가 출현한다면, 어떻게든 대처할 수 있다.
이다음 이중 던전은 아무리 빨리 생성되어 봐야, 2년 이상은 걸릴 터.
하나, 일반 던전에도 저런 몬스터가 출현한다면 부상자가 속출할 수밖에 없다.
헌터군의 스펙을 생각해 보면 그렇다.
‘저런 몬스터들에게 대항하려면, 병사들의 마력검 적응 속도를 무리해서라도 끌어올리는 수밖에 없다.’
그것보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먼저다.
헌터들은 던전을 한 번 더 탐색한 뒤, 확보 가능한 샘플을 회수하고 밖으로 나갔다.
**
“야. 김민준 중사님 이중 던전 공략 가셨다는 거 알고 있었냐?”
“뭐?”
“이중 던전?”
“그건 또 무슨 소리냐?”
같은 시각.
분대 생활관 안으로, 김광식 상병이 후다닥 들어왔다.
무슨 충격적인 소식이라도 전해 들은 듯한 표정이었다.
“이중 던전 공략? 거긴 장교들만 가잖아. 그냥 장교도 아니고 경험 있고 실력 있는 장교들만 간추린다며.”
“그래. 아무리 김민준 중사님이라도 그렇지, 거길 어떻게 가냐?”
“소대장님도 아무 말씀 없으시던데? 그냥 어디 지원 나갔다고 들었는데 나는.”
다들 믿기 힘들다는 눈치다.
이중 던전이 어떤 곳인가.
일반적으로 병사들이 클리어하는 던전이 아닌, 특수한 형태의 던전이 출현하기도 하는 장소다.
때문에, 클리어 난도가 상당히 높다.
“지난번 이중 던전 공략 때는 대위 3명이 중상 입어서 6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했었다더라. 그중에 1명은 중환자실에 있었다던데.”
“거기서 그런 미친 몬스터가 나올 줄 누가 알았겠냐?”
거기다 사전 조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떤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예측조차 불가능하다.
괜히 우수한 장교들을 선발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 110사단의 대대장님이 공략에 참가했다고 하시더라고. 방금 막 클리어하셨다던데? 내가 소대장님 통화하는 걸 확실히 들었다니까? 김민준 중사가 ‘그걸 혼자 잡았습니까?’ 하시던데.”
“야. 네가 뭘 잘못 들었겠지.”
그 말에, 헌터 한 명이 보라는 듯 손목시계를 툭툭 두드렸다.
“이중 던전 공략 그거, 시작된 지 5시간도 안 지났다. 저번 이중 던전은 3일 걸렸잖아.”
“에이 씨. 김광식 네가 잘못 들은 거 맞네. 이중 던전을 그렇게 빨리 클리어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마력검 적응 훈련하느라 피곤하니 적당히 하라는 분대원들의 말.
김광식은 억울하다는 듯이 가슴을 두드렸다.
“내 정보가 틀린 적 있었냐? 내기할래? 어? 난 내가 말한 내용이 사실이다에 내 월급 3달 치 건다.”
“저 새끼 또 지랄 났네.”
“꺼져.”
“쫄보들 꺼지시고.”
“뭐? 쫄보?”
“한번 해 봐?”
강도 높은 훈련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던 헌터들.
그들은 결국, 김광식 상병의 수준 낮은 도발에 걸려들었다.
‘…내 생각엔 사실인 것 같은데.’
사납게 소리를 질러 대며 돈을 거는 분대원들.
이동진 상병은 그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지 김민준 중사님이 달성해 온 실적을 봐.’
그게 어디 보통 헌터가 해낼 수 있는 일들인지.
**
이중 던전을 클리어하자마자, 김민준을 포함한 장교들은 헌터 본부로 향했다.
새롭게 출현한 보스 몬스터와 그 샘플을 확보했다는 보고에, 헌터 본부는 당장 차량을 보낼 테니 기다리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현재 장교들은 곯아떨어진 상태.
방금 전까지 고생을 하고 와서 그런지, 한눈에 봐도 피곤해 보였다.
‘하긴. 황금 가고일의 돌풍을 40분 넘게 버텨 냈으니 지칠 만하지.’
다른 헌터들이었으면 크게 다쳤을 것이다.
그 정도로, 돌풍의 위력은 강력했다.
‘저놈은 앞으로 일어날 일이 두려워서 잠도 안 오나 보네?’
시선을 돌려 보면, 한쪽 구석에 어깨를 푹 숙이고 있는 의무 장교가 보였다.
다른 던전도 아닌 이중 던전이니 만큼 더욱 세세한 보고를 할 터.
그가 일으킨 행동을 헌터 본부가 알게 된다면, 무조건 중징계를 내리겠지.
‘내가 아니었으면 모조리 전멸이었으니까.’
이중 던전의 트랩이 얼마나 무서운지.
왜 그렇게 주의에 주의를 기하는지 직접 보고 알 수 있었다.
그래 봐야 자신에게는 경험치 덩어리일 뿐이었지만.
“김민준 중사. 그만한 일을 하고서도 팔팔하다니. 엄청난 체력이구만.”
적당히 풍경을 감상하고 있던 사이.
이필두 대령이 근처로 다가왔다.
‘역시 대령인가. 별로 지쳐 보이진 않네.’
40이 훌쩍 넘어간 나이임에도, 20대의 장교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체력.
처음 보는 형태의 던전에서도, 빠른 상황 판단 능력과 지휘 능력.
분대원의 기량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 주는 실력까지.
역시 무궁화.
아무나 다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사 김민준. 대대장이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기 전부터, 보조해 주신 덕분입니다.”
“내가 보조해 주긴 무슨. 네가 혼자 다 때려잡았지.”
이필두 대령은 기분 좋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미로형 던전을 마주하게 되고, 보스 몬스터를 마주했다.
그런 상황에서 몬스터의 샘플을 확보하고, 공략에 참가한 분대원 전원이 멀쩡하게 돌아왔다.
모두 김민준 덕분이었다.
‘사단장님에게 비싼 술이라도 선물해 드려야겠군. 저놈 덕을 크게 봤는데.’
중사라고는 믿기지 않는 실력이다.
장교를 달아 줘도 모자랄 판에, 왜 중사의 위치에 머물러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분명 위에서 오고 간 말이 있겠지. 거기까진 내가 관여할 게 아니다.’
시간이 지나고, 헌터 본부에 도착했다.
헌터들은 복장을 철저하게 점검하고, 군기가 바짝 든 이병처럼 행동했다.
…그럴 것이.
‘워. 별이 그냥 지나다니네.’
별을 단 장군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별 두 개에게 굽신거리는 별 하나의 장군이라.’
이것 참 재밌는 광경이네 하며 감상하던 사이, 어느새 회의실에 도착했다.
똑똑.
“충! 성!”
이필두 대령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우렁찬 목소리로 거수경례를 했다.
“대령! 이필두 및 8명의 헌터들은 이중 던전 공략을 무사히 마치고, 보고를 위해 회의실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어어. 그래. 안 그래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회의실에는 104사단 사단장, 두석용 소장만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본래는 나 말고 별 세 개짜리 중장님이 보고를 들어야 하는데, 골프 치러 간다고 나한테 짬을 때리더군. 요즘 대세는 스크린 골픈데 말이야.”
호탕하게 웃으며, 헌터들의 몸을 살피는 사단장.
그 힘든 던전을 별 부상 없이 클리어하고 돌아와 주니, 이토록 기쁠 수가 없었다.
“야. 거기 너.”
그런 분위기도 얼마 가지 않았다.
사단장의 시선이, 한 지점에서 멈췄기 때문이다.
“대위! 마! 석! 두!”
“의무 장교. 던전에서의 보고는 다 전해 들었다. 이필두 대령의 말이 사실이냐?”
“그, 그건….”
“맞다, 아니다로만 대답해. 시간 끌 생각하지 말고.”
“그, 그렇습니다!”
의무 장교의 힘찬 대답에, 사단장의 말이 뚝 끊겼다.
그리고, 말없이 그의 얼굴을 응시했다.
“…….”
마석두 대위는 죽을 지경이었다.
별 하나도 아니고 별 두 개의 사단장이다.
거기다 104사단 사단장이라 하면, 김민준 중사가 소속된 사단의 사단장.
얼핏 봐도 화가 단단히 난 것처럼 보였다.
‘크윽….’
사형 선고를 기다리는 죄수가 이런 느낌일까.
1시간과도 같은 1분이 지나가고, 사단장이 입을 열었다.
‘와. 징계 세게 받긴 하네.’
의무 장교는 지금껏 거의 없다시피 한 중징계를 받게 되었다.
김민준은 크게 충격받은 듯한 그의 얼굴을 보며, 마음껏 비웃어 주었다.
‘그러게 네 주제를 알고 움직였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