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이중 던전-2
[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해당 던전은 실시간으로 변하는 미로입니다.]
[해당 던전에는 보스 몬스터가 존재합니다.]
[제한 시간 안에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지 못하면, 유독 가스가 던전 안을 가득 채웁니다.]
[남은 시간: 24시간]
연속으로 떠오르는 메시지들.
“이, 이건 또 뭐야?”
“미로형 던전? 실시간으로 움직인다고?”
이필두 대령을 시작으로, 뒤이어 들어온 모든 장교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미로라니.
경험해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던 형태의 던전이었기 때문이었다.
“보스 몬스터는 또 뭐야?”
그뿐이면 다행이겠지만, 보스 몬스터라는 새로운 종류의 몬스터까지 출현했다.
경험이 많고 우수한 실력을 가진 베테랑들이라 한들, 이런 상황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미로형 던전에 제한 시간이 있는 던전. 거기다가 보스 몬스터까지 있다라.’
반면.
김민준은 새로운 형태의 던전에 기대감을 느끼고 있었다.
눈 앞에 펼쳐진 세 갈래의 통로.
그 길들이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마치 게임 안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보스 몬스터라. 이레귤러 몬스터보다는 세겠지?’
보통 보스 몬스터라고 하면….
다른 몬스터에 비해 압도적인 강함을 자랑하는 놈이지 않을까.
‘보스 몬스터를 잡으면 아이템도 주려나? 혼자 꿀꺽하려면 상황을 잘 만들어야겠는데.’
이런 김민준의 행복한 고민과는 달리, 다른 장교들은 심각한 얼굴로 계획을 짜고 있었다.
처음에 주어진 세 갈래 길.
분대원들을 쪼개서 이동할지, 아니면 안전을 생각해서 모든 분대원이 움직일지.
보스 몬스터에 대해서는 어떠한 방식으로 접근할 건지.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건지.
검토해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거 봐라. 이 던전. 내 기척 감지가 안 먹히는데?’
다들 진지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는 사이.
김민준은 던전의 구조를 파악하려 했다가 의외의 현상에 감탄했다.
기척 감지가 먹히지 않아 나이트 워커를 보내 봤는데, 미로 벽에 튕겨 나간 것이다.
‘꼼수는 허용 안 하겠다 이건가? 재밌네.’
소환수에게는 알아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라고 지시한 뒤, 이필두 대령의 결정을 기다렸다.
“잘 듣도록. 이 던전의 제한 시간은 24시간이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을 세 갈래 길.
던전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한 시간을 생각해 3명씩 나눠서 움직이기로 했다.
던전 내부에서 무전이 통하는 것을 확인한 뒤 내린 결정인 듯했다.
과연.
영관급 장교답게, 처음 마주하게 된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
‘유독 가스라.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저게 나오는 순간 끝이라고 봐야지.’
자신이야 상관없겠지만, 장교들은 방독면이 없으면 저 가스를 대처할 방법이 없다.
있다 하더라도, 정화통을 여유롭게 챙기지 않은 이상 오랜 시간 버틸 수 없을 것이고.
“보스 몬스터는 발견하게 된다면 바로 위치 보고부터 하도록. 불가피하게 전투가 발생하게 되면, 최대한 방어적으로 대처해라.”
“예!”
“알겠습니다!”
브리핑이 끝났다.
이필두 대령의 지시대로, 분대를 3명씩 1조, 2조, 3조로 나누어 세 갈래 길로 향했다.
‘1조는 대대장님이랑 나랑 의무 장교구만. 나쁘지 않은 결정이네.’
김민준은 전투력까지 신경 써서 조를 나눈 대대장의 능력을 보고, 내심 감탄했다.
24시간이라는 제한 시간을 생각해,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고 던전 내부의 탐색을 우선시한 점까지.
헌터 사관학교 출신이 왜 머리가 좋은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다만, 그렇게 될 경우에 이런 식으로 분대원을 선발한 게 의미 없어지긴 하겠네.’
이중 던전 같은 경우.
던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각 분야의 우수한 장교들을 선발해 분대를 만든다.
전투에 부적합한 의무 장교를 굳이 넣은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던전 클리어에 시간이 얼마나 소요되는지 모르는 이상, 의무 헌터가 있고 없고에 따라 안정감이 달라졌으니.
갈림길에서 가장 왼쪽 길로 들어가 주위를 살피며 천천히 이동했다.
지금까지 공략한 던전들과는 확연히 다른 구조와 환경.
10m가 훌쩍 넘는 검은 벽들이 솟아나 있어 시야 확보가 어려운 상태.
장교들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신경을 잔뜩 곤두세웠다.
‘내가 힘껏 저 벽들을 치면 부서지려나 궁금하네.’
이 던전에 들어온 것이 자신뿐이었다면, 무식한 방법들을 시험해 봤을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한들 자신의 몸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을 테니까.
그러나, 다른 장교들과 미로형 던전에 들어온 이상 위험한 돌발 행동은 자제해야 했다.
“음….”
“또 갈림길입니다.”
아무 말 없이 이동하길 10여 분.
눈앞으로 다시 갈림길이 나타났다.
스윽.
“오른쪽으로 간다.”
“예.”
이필두 대령은 갈림길에 표식을 남긴 뒤, 오른쪽으로 향했다.
“음… 여기선 왼쪽으로 가지.”
“알겠습니다.”
같은 방법으로 이리저리 이동했지만, 몬스터가 나타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 던전에는 보스 몬스터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대대장님! 저쪽에 석상이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의무 장교가 손가락으로 전방을 가리켰다.
가고일의 형태를 한 채로, 굳어져 있는 석상이었다.
“가고일이라… 저게 보스 몬스터인 건가?”
가고일.
얼핏 보면 박쥐를 연상하게 하는 몬스터.
연약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엄청난 힘과 방어력을 자랑한다.
마력탄은 통하지도 않고 군용 검조차 날이 상할 정도.
그뿐만 아니라 체력 또한 상당해, 헌터들이 처리하는 데 애를 먹는 몬스터였다.
‘저게 장식인지 아닌지 분간이 안 가는데.’
김민준은 석상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웬만한 은신 몬스터의 기척도 잡아내는 자신의 감각이다.
다만, 저 석상이 몬스터인지 아닌지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과연. 이중 던전 공략에 우수한 장교들만 선발하는 이유가 있었네.’
처음 마주하는 던전에다 이런 환경이라.
이중 던전의 공략 난도가 괜히 높은 게 아니었구나.
“쯧. 가고일을 상대하려면 둔기류가 있어야 되는데.”
한편.
석상을 관찰하던 이필두 대령은 난감하다는 듯 혀를 찼다.
가고일에게 효과적인 무기는 둔기다.
일반적인 군용검은 날만 상할 뿐, 효과적인 피해를 입힐 수 없었다.
물론 최근 들어 보급되기 시작한 마력검이라면 별 힘들이지 않고 처리할 수 있다.
다만, 이 던전은 미로형 던전이다.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면 23시간 넘게 던전에 머무르게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마력검 사용은 되도록 지양하는 편이 나았다.
위력이 강한 만큼 체력을 몇 배로 소모하게 되니까.
“저 몬스터가 보스 몬스터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단 말이지.”
그렇다면, 일반 몬스터라는 말인데….
저 석상이 앞으로 몇 개나 더 있을지 감이 오질 않았다.
“뭐야. 그냥 석상이었군.”
잔뜩 경계하며 석상 앞으로 다가갔지만,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도 있습니다.”
“여기엔 두 개가 있습니다.”
그 뒤로 던전을 탐색하며 돌아다닐 때마다, 가고일 석상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의무 장교가 단순한 장식품이 이런 곳에 왜 있냐고 투덜거리는 와중.
휘익!
석상이 날렵한 움직임으로 그의 뒷덜미를 노려 왔다.
“허, 허억!”
대처할 새도 없었다.
이대로 놈의 날카로운 이빨에 당하나 싶었던 찰나, 김민준이 한발 빨리 움직였다.
“김민준 중사! 맨몸으로 그놈의 이빨에 물리면….”
이필두 대령은 한쪽 팔을 들어 방어하려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재빨리 마력검을 꺼냈다.
가고일의 이빨 위력은 상당하다.
심하면 팔이 절단될 수도 있다.
헌터라는 점을 감안해도 말이다.
“크악! 크아악!”
그러나, 그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뭐냐?”
김민준의 팔을 물어뜯으려 한 가고일이 입을 부여잡으며 뒷걸음질 친 것이다.
“어딜 가냐.”
뻐억!
김민준은 고통스럽게 목소리를 내는 놈에게 다가가 주먹을 한 번 휘둘렀다.
“튼튼하긴 하네.”
가고일을 상대해 보는 건 처음이라 적당히 힘 조절을 하긴 했는데.
내 주먹을 견딜 줄이야.
‘이래 보여도 최근에 힘 스텟 좀 오른 편인데. 튼튼한 놈이긴 하네.’
가고일의 처치 난이도는 중급 몬스터 중에서도 상위권에 위치해 있다.
체력과 맷집이 좋아, 좀처럼 죽이기 힘들다는 점 때문에.
빠악!
그래 봤자 자신에게는 두 주먹 거리였다.
진심으로 때렸다면 한 방이었겠지만.
‘이런 놈이 몇 놈이나 더 있다는 거지. 보스 몬스터도 따로 있고.’
이번 던전은 꽤 재밌겠는데.
적당히 손을 털며 대열에 돌아오자, 장교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고일을 맨손으로.
그것도 1분도 걸리지 않은 시간 안에 처치할 수 있는 헌터는 거의 없다고 단언할 수 있었기에.
“이봐! 의무 장교! 뭐 하나! 빨리 상태 안 봐주고!”
“예, 예! 알겠습니다!”
이필두 대령의 호통에, 마석두 대위가 후다닥 달려와 자신의 팔을 잡았다.
순간 기분이 확 나빠졌지만 대대장의 지시 사항이니 가만히 참아 주기로 했다.
“…멀쩡하잖아. 너 뭐 하는 놈이냐?”
가고일에게 물린 팔을 이리저리 돌려 보던 의무 장교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분명히 팔을 물렸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놈의 이빨이 파고드는 걸 본 것 같은데….
물린 자국은커녕 긁힌 자국조차 없었다.
“중사 김민준. 제 몸이 좀 튼튼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가고일의 이빨은 웬만한 방어 장비도 뚫어 버리는데… 일단 알겠다.”
이해가 안 간다는 의무 장교와는 달리, 이필두 대령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104사단 사단장님께서 왜 자네를 적극 추천하셨는지 이해가 되는군.”
이중 던전 공략에 김민준 중사를 넣어 달라고 했을 때는….
순간 정신이 나갔냐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지금까지 우수한 장교들로 구성된 분대를 만들어 공략해 왔는데, 뜬금없이 중사를 넣어 달라니.
단칼에 거절하려 했다.
그러나, 사단장님이 보내온 자료들을 보고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김민준 중사. 단기간에 말도 안 되는 실적들을 올렸지.’
이레귤러 몬스터의 처리를 시작으로, 부대 내의 위급 상황들을 거의 혼자서 처리하다시피 했다.
거기다 최근에는 전 군 최초로 오우거의 생포까지 해냈다.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수준의 실적이었다.
‘저 정도의 인재가 왜 일반 헌터 부대에 남아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군.’
가고일조차 맨손으로 박살 내 버리는 신체 능력.
이필두 대령은 이번 던전 공략에 김민준 중사를 데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사 김민준. 감사합니다.”
사실 저놈을 구해 주는 건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여기는 던전 안이다.
대대장의 눈앞이기도 하고.
‘이미 저놈을 어떤 식으로 이용할지 생각이 다 끝났거든.’
무작정 매운맛을 보여 주기보다, 실적 점수를 뽑아내는 용도로 사용하기로 했다.
“어억!”
그렇게 생각을 하며 이동하던 찰나.
의무 장교가 터무니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자신은 아직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