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이중 던전-1
“나이스.”
그 시각.
단련실에 있던 김민준은 예상치 못한 기회에 씨익 웃었다.
이중 던전 공략에 참가할 생각이 없냐는 대대장의 메시지.
당연히 거절할 이유가 없어, 곧바로 가겠다는 답장을 보냈다.
“뭐야? 뭐 좋은 일 있어?”
“김민준 중사님. 기분이 좋아 보이세요.”
그 모습을 보고 손은서와 김서현이 가까이 다가왔다.
현재 단련실을 이용하고 있는 인원은 셋.
개인 지도를 해 달라는 손은서의 부탁에, 겸사겸사 김서현까지 부른 상태였다.
“손은서. 김민준 중사님한테 왜 반말해?”
“병장 손은서. 일과 시간이 끝나면 상관없다고 하셨습니다. 전 괜찮다고 했는데, 김민준 중사님께서 불편하다고 하셔서.”
“그래? 그럼 됐어.”
둘의 관계는 미묘했다.
처음 대면한 것치고 친하네 싶다가도,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했다.
방금 있었던 대화처럼 말이다.
“뭐야. 너네 그사이 친해졌냐?”
태평한 자신의 말에 손은서는 김서현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친한 건 아니다.
다만, 서로의 발전에 있어 도움이 된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수준이 비슷한 사람끼리의 대련이야말로, 실력 발전에 있어 가장 효과가 좋은 방식이었으니까.
‘김서현이라고 했지.’
그녀는 예상보다 뛰어난 김서현의 신체 능력에 감탄했다.
헌터 부사관 학교 출신의 하사라고 했나.
‘실전 경험이 없다고? 저게?
몇 번 부딪혀 보고 느꼈다.
김서현은 하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친척 같은 사이라길래 어느 정도 강하겠거니 하긴 했는데, 상상 이상이었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야?’
자신은 본래, 헌터 부사관 학교까지는 무난하게 들어갈 정도의 실력을 가졌다.
사단장이신 아버지에게서 확실하게 검증받았으니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다.
거기다 병장까지 쌓인 경험과 능력치들까지 감안하면, 웬만한 하사한테 밀리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방금 막 만난 저 하사는, 제대로 붙는다면 자신이 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훈련이라고는 얼마 전 혹한기 훈련을 받은 것뿐일 텐데 말이다.
“하아… 이렇게 박탈감이 드는 것도 오랜만이야….”
“뭐라냐. 최고 스펙을 가진 사단장님의 우수한 유전자를 받았으면서. 그 재능이 부럽다.”
“그게 네가 할 말이야? 어이가 없어가지고….”
“그것보다 이거 봐라.”
김민준은 둘을 향해, 방금 받은 메시지의 내용을 보여 주었다.
“어? 이중 던전 공략에… 너도 간다고?”
“그래. 거기다 이번에 공략할 던전은 난이도가 측정이 안 되는 곳이라더라. 그래서 실적 점수도 엄청나지.”
손은서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중 던전이 어떤 곳인가.
빡세기로 유명한 부대에서, 경험 많고 우수한 장교들을 1명씩 선발해 공략하는 곳이다.
그만큼 공략 난이도가 상상 이상이라는 말이다.
물론 김민준의 실력이 웬만한 장교들을 압살할 정도라는 건 안다.
다만….
‘쟤는 경험이 없잖아.’
이중 던전 클리어 경험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무시할 수 없을 텐데.
그 때문에 장교 중에서도 클리어 경험이 있는 장교들만 선발하는 것이 필수 조건이고.
‘거기다 이번 던전은 난이도 측정이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게 되면, 더더욱 경험 있는 장교를 뽑아야 하는 것 아닌가?
‘대대장님의 생각을 모르겠어. 그만큼 저놈을 신뢰한다는 거야?’
그렇게 의문에 빠져 있던 손은서와는 달리, 김서현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민준 중사님이면 혼자서도 클리어하실 겁니다.”
환하게 미소짓는 저 얼굴에, 무한한 신뢰감.
손은서는 그녀가 무섭다는 헌터들의 말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나야 뭐 최근에 스펙 더 올랐으니까, 혼자서 클리어하라고 하면 충분히 하지. 던전 공략 준비로 먼저 나가 볼 테니까, 나머지는 알아서 해라.”
기분이 좋은지 휘파람을 불며 단련실 밖으로 나가는 김민준.
“나도 이제 가 볼게. 처리해야 할 일이 쌓여 있어서.”
“아, 네. 충성!”
김서현은 그가 나간 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따라 나갔다.
방금 전까지 환하게 웃던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진 상태.
“…뭐야. 대련 한 번 더 부탁하려 했는데.”
어느새 홀로 남게 된 손은서.
그녀는 투덜거리며 대련 상대를 찾으러 나갔다.
**
시간이 지나고, 이중 던전 공략의 날이 다가왔다.
현재 김민준은 군용 차량에 타고, 다른 군부대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공략해야 할 이중 던전이 강원도 고성 쪽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충성!”
위병소 앞에서 근무 중인 헌터들이, 차량 번호를 확인하고 기운찬 목소리로 경례한다.
“그래. 수고해라.”
김민준은 병사에게 적당히 인사를 해 준 뒤, 부대 인근에서 내렸다.
“김민준 중사님. 고생하십쇼.”
“그래.”
그러자 뒷좌석에 대기하던 하사가 앞 좌석에 탔다.
일반 병사가 군용 차량을 운전할 시, 반드시 간부가 선탑해야 한다.
그 규정은 헌터군이라해도 똑같이 적용된다.
‘선탑하려고 하사관을 굴리는 건 좀 그렇네.’
군대란 참 신기한 곳이라고 생각하며, 부대의 연병장으로 향했다.
‘오. 중위랑 대위가 널렸잖아.’
자신과 마찬가지로, 던전 공략을 위해 미리 도착한 장교들.
소위는 없다.
대부분이 중위와 대위들이었다.
“충성!”
절도 있는 동작과 목소리로, 그들을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각자 다른 부대에서 온 간부들이다.
무적 헌터 부대의 인식이 나빠질 만한 행동은 최대한 자제해야 했다.
그래야 좋은 인식도 심어 주고, 실적 점수도 최대로 얻지.
“이야… 네가 104사단의 그 김민준 중사야?”
“이병부터 병장까지 폭풍 진급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새 중사를 달았어?”
“얼마 전에는 오우거도 생포했다면서? 엘리트네, 엘리트.”
장교들은 자신을 보자마자, 악수를 건네왔다.
생각 외로 소문이 퍼진 모양이다.
“중사 김민준! 감사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장교들은 한눈에 봐도, 많은 경험들을 쌓은 베테랑들이었다.
작전 장교, 화학 장교, 의무 장교, 공병 장교 등등….
하나같이 주요 직급을 차지하고 있는 헌터들.
“운이 좋았겠지 뭐.”
대부분이 자신에게 호의적이었지만, 유독 한 명이 신경질적이었다.
‘운이 좋았겠지.’를 시작으로, 아버지가 별이면 충분히 가능하다든지,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졌다든지.
누가 들어도 억지스러운 이야기뿐이었다.
‘이름이… 마석두 대위라. 의무 장교네.’
저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다른 장교들이 침묵하고 있다라.
뻔하지.
이중 던전 공략에 참가할 수 있는 군의 장교가 흔하지도 않고, 짬까지 높아서겠지.
‘의무 장교면 공부도 잘했을 텐데, 뭐 저리 열등감이 심하냐?’
머리를 조금만 굴려 보면 답이 안 나오나?
중사인 내가, 실력 있는 장교들만 공략할 수 있는 던전 공략에 왜 합류하게 됐는지.
‘최근 들어 느끼는 거지만, 관상은 과학이란 말이지.’
무적 헌터 부대에 있는 김상덕 대위도 그렇고, 저 군의관 놈도 그렇고.
딱 봐도 성질 더럽게 생겼거든.
“다들 먼 곳에서 오느라 고생 많았다.”
“충성!”
10분쯤 지났을까.
해당 부대의 대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금일 자네들이 공략할 던전은 미리 들어서 알겠지만, 이중 던전이다.”
간단한 소개와 함께 바로 시작된 던전 브리핑.
“질문 사항이 있으면 말하도록.”
시간이 촉박한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브리핑이 끝났다.
던전 공략 과정은 사전에 전해 들었던 내용과 대부분 일치했다.
처음 입장한 던전은 병사들이 도맡아 처리하고, 이중 던전을 장교들로 이루어진 분대가 공략하는 계획이었다.
“대대장님. 질문 사항 있습니다.”
“말해봐.”
침묵을 깬 것은 마석두 대위였다.
그의 질문 사항은 별것 없었다.
김민준은 중사의 계급인데, 왜 이중 던전 공략에 참가할 수 있냐는 사소한 태클이었다.
“이중 던전은 다른 던전에 비해 엄격한 규정을 가지고 공략 인원들을 선발합니다. 그런데….”
“그걸 꼭 내 입으로 설명해야 하겠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대장이 끼어들었다.
꽤 신경질적인 목소리였다.
“예?”
“104사단 사단장님이 직접 추천하신 건이다. 실력 면에서 의심할 나위가 없다면서. 그것보다, 자네는 이중 던전 공략을 앞두고도 그런 쓸데없는 질문을 한 건가?”
“아, 아닙니다….”
예상 밖의 호통에, 마석두 대위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도 자기가 부끄러운 짓을 한 건 아는 듯했다.
‘마석두라고 했냐? 넌 이중 던전 안에 들어가서 보자.’
김민준은 놈을 보며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한 번은 그냥 넘어가 줬더니, 날 두 번이나 건드려?’
군인이라는 신분을 감안해서 한 번 참아 줬더니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를 줄이야.
‘넌 이중 던전 공략을 끝내고 나오는 순간 징계를 받을 거다.’
저 건방진 놈에게 매운맛을 보여 주기로 했다.
다른 이유는 없다.
자신의 심기를 건드렸으니까.
같은 부대의 김상덕 대위 같은 경우는, 같은 부대원이기 때문에 조금 더 참아 주었을 뿐이었다.
그놈 역시 일정 선을 넘는 순간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 이중 던전 공략을 시작한다! 3중대 2소대 3소대는 1차 지점만 공략하는 것뿐이니, 평소 하던 대로 하면 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이중 던전 공략이 시작되었다.
1차 지점에서 출현하는 몬스터들은 대부분 하급 몬스터.
병사들은 장교들을 보호하며 대열을 형성했다.
그들의 체력을 최대한 온존시키며 2차 지점의 앞까지 도달하는 것.
그것이 병사들에게 주어진 목표였다.
“이야. 이 부대원들은 훈련이 잘되어 있네.”
“그러네요. 움직임도 빠릿빠릿하고. 우리 부대원들보다 더 낫네요.”
장교들이 잡담을 나누던 사이, 병사들이 1차 지점의 모든 몬스터를 처리했다.
“지금부터 2차 지점으로 들어가겠다. 처음은 나. 그다음은 김민준 중사. 그다음은 대위, 중위 순으로 들어오도록.”
검붉은 기운이 일렁거리는 균열 앞.
대대장인 이필두 대령은 한 사람 한 사람 지목하며, 들어올 순서를 정해 주었다.
“예!”
“알겠습니다!”
입장 제한이 걸려 있는 던전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총지휘를 할 대대장을 제외하고 우수한 헌터를 우선 순서로 배정했다.
‘이랬는데 이중 던전 난이도 별것 없으면 김새겠네.’
1분대급 인원에 대령까지 포함되는 경우는 단 하나.
난이도를 측정할 수 없는 이중 던전일 경우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이중 던전을 공략하러 들어갔다가, 하운드만 출현해 장교들의 기운을 빠지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희망적일 뿐이다.
절망적인 경우, 상급 몬스터가 우글거릴 수도 있었다.
거기에 대한 안전장치로 대령 정도 되는 헌터를 투입하는 것이고.
“그럼 지금부터 입장할 테니, 1분 간격으로 들어오도록.”
“예!”
이필두 대령이 앞장서서 이중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다음으로, 김민준이 균열 안으로 들어갔다.
‘아. 상급 몬스터 떼거리로 나왔으면 좋겠네.’
처음 경험하는 이중 던전.
역대급으로 어려운 난도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
[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오?’
그의 바람은 아주 쉽게 이루어졌다.
헌터 본부에서도 알려지지 않은 형태의 던전을 마주하게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