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기대된다
‘룬석이 나를 기다린다!’
김민준은 휘파람을 불며 단련실을 향해 걸어갔다.
방금 막 훈련을 마친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팔팔한 모습이었다.
10박 11일의 혹한기 훈련이라고 해 봐야, 그에게는 별것 아닌 수준이었으니.
“추위 때문에 힘든 훈련인데, 난 추위를 안 타거든.”
그렇다고 해서 수확이 없었던 건 아니다.
룬석을 얻은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고.
자신의 소대원들이 단 한 명도 낙오하지 않았던 게 두 번째 수확이었다.
이것으로 제법 짭짤한 훈련 점수를 받을 수 있을 터.
“음. 애들 고생 좀 시켰어야 했는데. 일부러 며칠 굶길 걸 그랬나.”
오랜만에 야영 생활을 하다 보니 너무 신나 버렸네.
혼자 중얼거리던 사이 어느새 김서현이 옆으로 다가왔다.
“김민준 중사님. 훈련 고생 많으셨습니다.”
“둘이 있을 때는 편하게 불러.”
“네. 김민준 님.”
“훈련받아 보니까 어때? 할 만하냐?”
“네. 다만, 생각보다 훈련 강도가 높았습니다.”
그녀의 얼굴을 보면 피로가 꽤 누적되어 있는 상태였다.
‘신도들 중에서도 체력과 피지컬이 뛰어난 김서현이 저 정도로 지쳤다라.’
훈련 강도는 의심할 여지 없이 높은 수준이 맞았네.
“아까 소대장님한테 들었지? 오늘부터 전투 휴무 3일인 거. 들어가서 쉬어도 된다.”
“감사합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단련실에 같이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러냐? 네 마음대로 해라.”
딱히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단련실로 들어가자마자, 주머니를 뒤적여 돌멩이를 꺼냈다.
“이게 뭐인 거 같냐?”
“그건… 룬석? 김민준 님! 룬석을 획득하셨습니까?”
“그래. 화이트 리자드맨한테서 얻었지.”
그녀는 아이템의 정체를 확인하자마자 물개 박수를 쳤다.
룬석에 대해서야 당연히 알고 있다.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 얼마나 구하기 어려운지.
부사관 후보생 이론 교육에서 지겹도록 공부한 효과였다.
“해당 룬석은… 잠재 능력을 끌어내 주는 효과를 가진 것 같습니다.”
“그래. 나한테는 스킬을 하나 해제시켜 주는 정도겠네.”
효과는 이제 와서 확인했지만, 룬석 중 하급에 해당하는 효과를 가졌을 줄이야.
살짝 아쉬운 감이 들었지만, 이것으로도 만족해야지 뭐.
다른 헌터들 같았으면 스텟을 엄청나게 올려 줬을 테니까.
“이건 몇 번을 먹어도 적응이 안 되네.”
지난번과 같이 룬석을 입안에 넣고 섭취했다.
김서현은 살짝 떨어져, 흥미로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룬석을 완전히 흡수하였습니다!]
[이로운 효과가 적용되었습니다!]
[다크사이더(D)가 생성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떠오르는 메시지들.
“오.”
김민준은 새롭게 해제된 스킬을 보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꽤 쓸만한 스킬이었기에.
“이전부터 아이템 덕을 많이 보네. 템빨이 중요하긴 해.”
“김민준 님. 좋은 결과가 나왔나요?”
“그래. 지금부터 다크사이더랑 계약할 거니까,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어.”
“다, 다크사이더! 알겠습니다!”
다크사이더라는 말에, 김서현이 벽 쪽으로 바짝 붙었다.
다크사이더는 흑마법사들에게 있어 금기시되는 스킬이었기에.
[다크사이더(D): 소환수 다크사이더를 불러냅니다. 다크사이더는 소환할 때마다, 새로운 대가를 요구합니다.]
“다른 흑마법사한테는 그냥 봉인 스킬이지만, 나한테는 그렇지 않거든.”
김서현이 겁에 질린 채 멀어진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다크 사이더는 평범한 소환수가 아니다.
사신을 연상케 하는 외양.
온몸에 검은 뒤집어쓴 채, 허공 위를 둥둥 떠다니는 귀신같은 형태를 한 놈이다.
“다크사이더는 소환될 때마다 흑마법사한테 대가를 원하거든.”
손톱을 달라든가.
혀를 달라든가.
아니면 손가락을 달라든가.
다른 소환수들과는 다르게, 시전자의 신체 부위를 대가로 바쳐야 다룰 수 있는 놈이다.
그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소환수이기도 했고.
“다른 제국을 무너트릴 때, 이놈을 많이 써먹었지.”
다크사이더는 물리적인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마법 공격에 취약한 것도 아니다.
시전자를 제거한다고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일단 소환되기만 하면, 할 일을 마칠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 게 큰 장점이었다.
“나와라.”
김민준은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낸 뒤, 스킬을 사용했다.
스으으으으.
그러자 주변에 어둠이 깔리며, 다크사이더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를 부른 게 네놈… 허억!]
음산한 목소리와 함께 평소처럼 대가를 요구하려던 소환수.
놈은 김민준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땅에 넙죽 엎드렸다.
[기, 김민준 님이십니까?]
계약 대상이 다른 흑마법사도 아니고, 김민준이었기 때문이다.
어찌 저 얼굴을 잊을 수 있겠는가.
“그래. 넌 몇 호기냐? 44호기냐?”
[그, 그렇습니다!]
“오. 44호기? 오랜만에 보네? 반갑다?”
44호기.
그것이 바로, 방금 소환된 다크사이더에게 붙여진 이름이었다.
“나한테 대가 받을 거냐?”
[그런! 당치도 않습니다! 몇 번이고 당신을 위해 움직이겠습니다!]
“그래. 다른 애들도 너처럼 순종적이면 얼마나 좋아.”
그 말에, 44호기는 몸을 덜덜 떨었다.
앞에 소환된 43체의 다크사이더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소멸했다.
눈앞의 인간에게 대가를 요구했다고 말이다.
다크사이더에게도 죽음이 있다는 걸 처음 안 게, 바로 그때였다.
‘우리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었다….’
그저 기브 앤 테이크를 원했을 뿐이었는데, 수많은 다크사이더들이 죽음을 맞이했다.
흑마법사들에게 있어 다크사이더는 두려움의 대상.
그러나, 김민준에게 다크사이더는 날아다니는 천 쪼가리 수준이었다.
“나중에 필요할 때 부를 테니까, 일단 들어가 있어. 오늘은 인사나 하려고 불러 본 거다.”
[예!]
물론 그 불만을 밖으로 표출할 리가 없었다.
계약 대상이 김민준인 이상, 잠자코 따르는 게 뒤탈이 없었기에.
스으으.
주위를 물들인 어둠과 함께, 다크사이더가 사라졌다.
“다, 다크사이더를 마치 물건처럼 다루시다니….”
멀리서 그 장면을 바라보던 김서현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김민준 님이 다크사이더를 소환한 적은 몇 번이고 있었는데….’
그때마다 소환수가 왜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저런 일방적인 계약이 가능한 것도, 김민준 님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야.’
만약, 다른 흑마법사가 저런 행동을 했다?
다크사이더가 생명력이란 생명력을 모조리 빨아들였을 것이다.
“김서현. 너 개인적으로 확인할 게 있다며? 확인 다 했냐?”
“네? 아, 네!”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사실 따로 확인할 것은 없었다.
단지 김민준 님과 가까이 있고 싶어, 적당히 만들어 낸 명목일 뿐이었다.
소대가 다르기도 하고, 훈련 때문에 좀처럼 마주칠 기회가 없었으니.
“그래. 난 개인적으로 단련 좀 하고 싶으니까, 단련할 거면 다른 곳 써라.”
“네. 알겠습니다.”
아쉬웠지만, 김민준 님의 단련을 방해하는 건 실례다.
김서현은 짧게 머리를 숙인 뒤, 단련실 밖으로 나갔다.
“좋아. 그럼 오랜만에 영구 기관이나 단련해 볼까.”
김민준은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훈련이 끝나자마자 단련실에서 개인 단련이라니.
지나가는 간부들이 그 모습을 보고 혀를 내둘렀지만, 김민준에게는 별것 아닌 일이었다.
**
2대대 대대장실.
“병사들 상태가 왜 이러나?”
혹한기 훈련 성적표를 확인하던 대대장은 인상을 구겼다.
작년 혹한기 훈련보다, 낙오자들이 40% 이상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날이 추웠다 해도 그렇지. 한 소대에 낙오자가 10명 이상 나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아닙니다!”
날카롭게 쏘아지는 시선에 중대장은 차렷 자세를 취했다.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서 행해진 훈련이라 해도, 40%의 낙오자는 과했기 때문이었다.
“낙오자들은 따로 모아서 특별 체력 단련을 실시할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
대대장의 시선이 한곳에서 멈췄다.
2중대 2소대에는 낙오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50명 전원이 훈련을 무사히 수료했다는 말이다.
“낙오자가 단 한 명도 없는 소대는 오랜만에 보는군. 듣자 하니, 김민준 중사가 활약을 많이 했다면서?”
김민준의 말이 나오자, 목소리가 부드러워진 대대장.
“예! 그렇습니다!”
중대장은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2소대에는 감점 요소가 전혀 없었다고 보고했다.
“김민준 중사는 화이트 리자드맨을 맨손으로 도맡아 처리한 것뿐만 아니라, 식량과 물의 확보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래. 거기다 뒤처지는 다른 소대원들을 챙겨 주기까지 했고… 가산점을 이렇게 받았으면 말 다 했지.”
대대장은 말을 마치고, 한동안 탁자를 두드렸다.
뭔가 중대한 결정이 있는 듯했다.
“중대장. 7일 뒤에 이중 던전 공략 잡혀 있는 거 알고 있지?”
“예! 그렇습니다!”
이중 던전.
알다마다.
던전 안에 던전이 하나 더 있는 특수한 형태의 던전.
총 두 개의 던전을 클리어해야 하기 때문에, 헌터들 입장에서는 꽤 까다로운 던전이다.
그래서 병사들이 아닌, 간부들만을 추려 공략을 하는 던전이기도 했다.
“이 던전 공략에 어떻게든 김민준 중사를 끼워 놓고 싶거든. 자네 생각은 어떤가?”
대대장이 저 말을 꺼냈다는 건, 이미 확정을 했다는 말이다.
굳이 중대장인 자신에게 물어본다는 건, 경미하더라도 불안 요소가 있는지 대답해 달라는 뜻.
“전 당연히 찬성입니다! 하나… 이번에 공략 예정인 이중 던전은 난이도를 측정할 수가 없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중 던전의 난해한 점이 바로 이것이다.
난이도가 측정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난이도 측정이 안 되는 곳도 있다.
공략 예정인 던전은 후자였고.
그뿐이면 다행이겠지만, 이중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수까지 제한되어 있다.
최소 5명에서 최대 10명까지.
대략 1분대 수준이다.
“그래. 그 때문에 경험 있는 소위부터 대위까지 분대를 구성하라는 지시가 있었지. 다만, 김민준 중사는 예외로 집어넣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저도 김민준 중사의 힘은 의심하지 않습니다. 다만,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면….”
이중 던전 공략은 타 부대와 합동으로 이루어진다.
만일 무적 헌터 부대에서 선발된 간부가 걸림돌이 되기라도 한다면….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없을 터.
걱정스러운 중대장의 대답에 대대장이 별것 아니라는 듯 웃었다.
“김민준을 포함해서 만들어진 분대가 이중 던전을 공략할 수 없다면, 무궁화로 이루어진 분대를 만들어야겠지.”
무적 헌터 부대가 이중 던전 공략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이 기회를 이용해, 최대한의 이득을 얻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사단장님에게 몇 번이고 머리를 숙였고.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지.’
대령을 다는 것으로 만족하려 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더 나아가, 별이란 것을 달아 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김민준. 자네의 활약이 필요하다.’
대대장은 김민준에게 적당히 여유 시간을 두고 결정해 달라는 문자를 보냈다.
띠딩.
“역시 김민준. 화끈하군.”
10초도 지나지 않아 도착한 답장.
대대장은 한동안 유쾌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