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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103화 (103/212)

103. 혹한기-3

익숙한 형태의 돌멩이.

중앙에 새겨진 기하학적인 문양.

룬석이었다.

‘오. 이런 미친!’

누가 볼세라 재빨리 주머니 속으로 넣었다.

이 귀한 걸 넘겨줄 수는 없지.

‘몬스터 사체에서 아이템이 나올 확률도 드문데, 그게 룬석이라니.’

룬석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나중에 확인해 봐야 안다.

다만, 룬석이라는 아이템을 얻은 것만으로도 엄청난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야. 이거 몇 달 전에 손은서 아버지한테 하나 얻었는데. 또 이렇게 득템해 버리네.’

분명히, 손은서 아버지는 페널티를 안고 나한테 룬석을 줬었는데.

고작 걸어 다니는 하얀 도마뱀 패대기쳤다고 나올 줄이야.

‘이런 건 또 훈련 끝나고 단련실에서 먹어 줘야 되거든.’

기다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른 아이템도 아니고, 무려 룬석이니까.

몸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다줄지 절로 기대된다.

룬석은 혹한기 훈련이 끝난 뒤 사용하기로 했다.

**

시간이 지나 혹한기 훈련 10일 차.

훈련 막바지에 이른 만큼, 헌터들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렸다.

“아오… 아직도 1일 남았네.”

“이 미친 부대. 사람을 못 굴려서 안달이라니까.”

2일 차부터 훈련용 몬스터가 투입되어 헌터들을 괴롭히는 것을 시작으로, 떨어지지 않은 기온과 매서운 바람까지.

워낙 열악한 환경에, 소대원들은 헌터 기동 훈련 때가 차라리 났다고 입을 모았다.

“아. 남은 1일 어케 버티냐. 핫팩 다 떨어졌는데.”

“나도.”

“하루에 잠 6시간 이상은 자는 것 같은데도, 피로가 풀리질 않네.”

현재 2중대 2소대원들 중 낙오자는 단 한 명도 없는 상황.

다만, 2중대 3소대는 지금까지 10명 이상이 낙오했다.

“우리 소대원들 실화냐? 어떻게 한 놈도 안 나가떨어졌냐?”

“야. 우리 소대가 보통 소대냐? 험한 일을 얼마나 많이 겪었는데.”

지금까지 다른 소대의 낙오자는 평균 20명 안팎.

그에 비하면 2소대원의 체력은 그야말로 훌륭한 수준.

하지만 그건 김민준의 덕이 컸다.

훌륭한 식량 확보 능력 덕분에 소대원들이 체력을 온존할 수 있었으니.

“그런 것도 있는데, 김민준 중사님 덕분에 우리가 안 굶잖아. 이게 제일 큰 것 같다.”

“그건 맞지.”

무적 헌터 부대는 다른 헌터 부대와는 다르게 조금의 쌀조차 지급하지 않았다.

전투 식량도 말이다.

식량을 구하지 못한 날에는, 그냥 굶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당연히 이런 미친 듯한 추위 속에서 매일 먹을 것을 구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고.

“보통 혹한기 훈련하면 3~4일은 그냥 굶게 되는데. 한 번도 안 굶는 경우는 나도 처음 겪네.”

“김민준 중사님이 어디에서 자꾸 짐승들을 잡아 오는 게 신기하더라.”

소대원들이 신기하다는 듯 대화를 나누는 것도 잠시.

“먹는 것도 먹는 건데, 내가 훈련할 때마다 너네들 빡세게 굴렸는지 이제 알겠냐?”

김민준이 뒤처지는 소대원들을 이끌어 주며 입을 열었다.

몇 달 전부터.

일과가 끝난 후 단련실에서 소대원들을 개인적으로 지도해 준 적이 있었다.

물론 강제적으로 시키지는 않았다.

자신에게 부탁해 온 쪽은, 오히려 소대원들이었다.

마력검의 유지 시간을 늘리기 위해 체력 단련을 부탁해 온 녀석들.

어찌 간부가 그 부탁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내 소대원이기도 하고, 열정도 있고. 거기다가 소대원들이 잘되면 나도 좋지.’

여유 시간이 날 때마다 봐준 체력 단련이, 지금 순간에 빛을 발하는 것이다.

“효과가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건 안 늘 수가 없지 않습니까.”

이승호 병장이 질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의 체력 훈련 강도가 말도 안 되게 높았기 때문이었다.

“전 무슨 특수 부대원들 훈련시키는 건 줄 알았습니다.”

“진짜 토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고개를 젓는 소대원들.

“난 억지로 시킨 적 한 번도 없다? 너희가 시켜 달라 해서 내 시간 빼 가면서 시켜 준 거지.”

김민준은 놈들의 어깨를 툭 치며 눈길을 뚫고 앞서 나갔다.

기운찬 걸음걸이를 보면 전혀 지치지 않은 듯했다.

“…그런데 김민준 중사님은 어떻게 하면 지치냐?”

“지금까지 훈련받고 던전 클리어해 온 걸 보면, 어떻게 해도 안 지치실걸.”

소대원들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무사히 훈련을 마치겠다고 의욕을 다졌다.

“저기 4대대 아니냐?”

“맞네. 4대대 4중대네.”

마지막 목적지로 향하는 도중.

2소대원들은 4대대 4중대 여헌터들과, 우연히 이동 경로가 겹쳤다.

평소 같으면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거나 말을 걸었을 것이다.

서로 간에 피로가 누적된 상태라 그럴 엄두도 못 냈지만.

적당히 고개만 까딱인 뒤, 자기 갈 길을 갔다.

“쟤네들은 예상 이상으로 많이 낙오했네.”

“야. 우리가 이상한 거라니까. 저게 정상이다.”

“그래. 혹한기는 날씨가 역대급이라잖아.”

그들은 예상 이상으로 적은 중대원 숫자에 한 번 놀라고, 2소대에 낙오자가 없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랐다.

‘오? 저놈 낙오 안 했네?’

한편.

김민준은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걷는 손은서를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갔다.

‘뭐야. 저 미친 의지는.’

그녀의 컨디션을 확인하자마자 물이 든 수통을 꺼냈다.

진작에 탈수 증상이 일어났어야 한 상태.

그걸 의지력 하나로 견디고 있었다.

‘어떻게든 훈련 마치려는 쟤보다는, 소대원들 컨디션 제대로 체크 안 한 소대장이 잘못했네.’

끼니야 몇 번 걸러도 참을 수 있겠지만 물은 그렇지 않다.

이 훈련에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한 물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

헌터라고 해도 사람이다.

수분을 섭취하지 않게 되면, 몸에 무리가 오는 건 당연했다.

‘잠깐만. 쟤만 그런 게 아니고, 다른 애들도 그러네.’

뻔하지.

무리하게 훈련 시간에 맞추려다 보니, 물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겠지.

이곳에서 물을 확보하려면 눈을 모아서 끓인 다음 정화 작업을 거쳐야 하니까.

‘소대장이란 사람이 소대원들 관리도 제대로 못 해?’

4대대 4중대원들.

이대로 가면 오늘 안으로, 저 중 50% 가까이가 쓰러진다고 장담할 수 있는 상황.

“소대장님. 이대로 가면 저기 4대대원들 절반 가까이가 낙오할 것 같습니다.”

“뭐? 보자…. 쟤들 물 제대로 못 마신 것 같은데?”

“예. 저희 소대원들의 물을 전해 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김철민 중위에게 양해를 구하고, 소대원들에게서 수통을 거뒀다.

“저흰 아직 팔팔합니다.”

“협동심도 중요하다고 들었습니다.”

“이럴 때 도와야 전우 아니겠습니까.”

다들 불만 한마디 없이 김민준에게 수통을 건네주었다.

그만큼 그를 신뢰한다는 뜻이리라.

“야. 손은서.”

“병장… 손은서.”

“이거 마셔라. 다 마셔도 된다. 그리고 다른 애들한테도 다 돌려.”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 손은서에게, 수통을 한가득 전달해 주었다.

“저, 저흰 괜찮습니다!”

“딱 봐도 안 괜찮아 보이는데 무슨. 마지막으로 물 마신 지 얼마나 됐냐?”

“3일… 정도 된 것 같습니다.”

“3일이라. 그 정도면 어느 지점부터 시간이 지체돼서 그런 것 같은데. 물 구할 시간도 없는 거 보면. 너네 로프 설치하는 데서 시간 다 잡아먹었지?”

이어지는 날카로운 말.

그 말에, 손은서가 어떻게 알았냐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시기랑 상황 적당히 추리해서 끼워 맞춰 보면 답 나오지 뭐. 너네 소대장님은 마지막 집결지까지 강행군한 뒤에 쉬려고 한 모양인데, 그 상태로 가면 대부분이 낙오야. 장담하는데.”

김민준은 적당히 손을 흔들며 본래 대열로 돌아갔다.

태평한 저 모습을 보면, 지치기는커녕 체력이 넘쳐나는 듯했다.

‘귀신이야 뭐야.’

그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던 손은서. 그녀는 재빨리 잡념을 떨쳐 냈다. 소대원들에게 물을 돌리는 게 먼저다.

그의 말대로, 자신을 포함한 소대원들 대다수가 탈수 직전인 상태였다.

소대장이 훈련 일정을 맞추려고 무리하게 강행군을 한 것이 원인이었고.

‘뭐야. 이거 진짜 눈 녹여서 끓인 물 맞아?’

예상 이상으로 좋은 물맛.

도대체 어떤 정화 작업을 거쳤길래 밖에서 사 먹는 생수보다 맛있는 걸까.

정신 차리고 보니, 수통의 물이 바닥나 있었다.

‘거기다… 저쪽 소대는 낙오자가 한 명도 없잖아. 뭐야 도대체.’

이번 혹한기 훈련은, 역대급 추위로 역대급 낙오자가 발생한 거로 알고 있다.

그런데… 김민준의 소대에는 낙오자가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다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힘들어 보이긴 했지만.

‘큭… 물까지 받았는데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놀림당할지 상상도 안 가.’

손은서는 이를 악물며 어떻게든 훈련을 수료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미친.”

“야, 저거 뭐냐?”

마지막 목적지인 11차 지점에 도착하자, 헌터들의 시선이 한곳에 집중되었다.

치이이이이.

불판 위로, 노릇노릇한 삼겹살이 구워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먹고 싶은 사람 앞으로 나와라. 나눠 줄 테니까.”

“식으면 맛없다 이거.”

“어우. 기름 쭉쭉 빠지는 거 봐라.”

실시간으로 삼겹살을 익히고 있는 감독관들이 어서 오라며 손짓했다.

훈련 막바지가 되어, 헌터들의 배고픔과 피로가 극에 달한 상태.

그것을 알기에 일부러 유혹하는 것이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저걸 받아먹는 순간, 훈련 점수가 왕창 까일 것이다.

‘이야. 저번엔 훈련에는 저런 거 없었다고 들었는데.’

김민준은 소대원들에게, 저걸 먹는 순간 끝이라고 말해 주었다.

“먹고 싶은 사람은 가서 먹어라. 그 순간 지금까지 생고생한 거 다 날아가겠지만.”

“저희는 버틸 만합니다!”

“아까워서라도 어떻게든 참을 겁니다!”

비교적 여유로운 2소대와는 달리, 다른 중대의 헌터들은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들 대부분이 3일 이상 식사를 못 한 상태.

풍겨 오는 진한 고기 냄새에, 일부러 코를 부여잡기도 했다.

“하하. 뜨끈한 쌀밥에 삼겹살. 이거거든.”

“너네 많이 지친 것 같은데, 지금 오면 라면도 하나 끓여 준다.”

감독관들은 급기야, 헌터들의 앞에서 식사를 시작했다.

어떻게든 그들의 의지력을 꺾으려는 것이다.

“훈련 끝나자마자 라면 미친 듯이 먹을 거다.”

“나도.”

“훈제 삼겹살 다 뒤졌다.”

하지만, 헌터들의 의지가 어디 보통인가.

감독관들의 유혹에 넘어간 헌터는 단 한 명도 없었다.

**

훈련 11일 차 아침.

헌터들이 부대에 복귀하자마자, 훈련이 종료되었다는 말이 울려 퍼졌다.

길고 긴 혹한기 훈련이 끝난 것이다.

“2소대! 단 한 명도 낙오하지 않아 줘서 정말 고맙다! 긴말은 필요 없고, 당장 가서 쉬어라!”

“예….”

“가, 감사합니다….”

“따뜻한 물… 따뜻한 물을 원한다….”

비틀거리며 생활관으로 향하는 소대원들.

그 모습을 뿌듯한 얼굴로 바라보던 김철민 중위는, 김민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

“민준아. 네가 애들 챙겨 주느라 고생 많았다. 이번 훈련 강도가 장난 아니라서, 절반 가까이 통과 못 할 줄 알았거든.”

“중사 김민준. 부소대장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소대장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말을 마치고, 생활관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는 김민준.

거기다 그 뒤를 김서현 하사가 자연스럽게 따라가고 있다.

“저기 단련실 쪽인데? 설마 훈련 끝나자마자 개인 단련하러 가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겠지.

김민준도 사람인데.

그렇게 생각하며 간부 숙소로 향한 소대장이었지만, 김민준이 가는 곳은 단련실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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