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102화 (102/212)

102. 혹한기-2

“하사 김서현!”

식량 확보를 제대로 못 해 감점을 받았는지, 시무룩한 얼굴이었다.

그녀에게 고기 잔뜩 담아 건네주었다.

“이스가르드에는 눈이 거의 안 내리지.”

“예?”

“나 정도 아니면 적응 못 하는 게 당연한 거야. 앞으로 잘하면 된다.”

어깨를 툭 치고 멀어지는 김민준.

김서현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기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맛있다.”

**

혹한기 훈련 첫날이 무난하게 지나갔다.

“어버버버. 추워 죽겠다.”

“와 씨. 혹한기 훈련 세 번짼데 이번이 진짜 역대급이네.”

군용 텐트와 침낭 하나로 강추위를 버텨 낸 헌터들이 몸을 덜덜 떨며 잠에서 깨어났다.

아무리 두꺼운 텐트와 침낭이라 하더라도, 강원도 철원의 추위는 매섭다.

그래서 헌터 대부분이 군장 안에 핫팩을 미친 듯이 넣었다.

“진짜 핫팩 없었으면 얼어 죽었다.”

“너 몇 개 남았냐? 나 어제만 5개 쓴 거 같은데.”

당연히 핫팩은 허용되지 않는 물품이다.

다만.

이번에는 전례 없는 추위로 인해, 암묵적으로 허용하는 듯했다.

훈련 시작 전, 대대장이 이번 군장 검사는 헌터들의 양심에 맡긴다고 했었으니.

“야. 핫팩 부족한 놈들. 가져가라.”

김민준은 그런 소대원들에게, 챙겨 온 핫팩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

물론 자신은 이 정도 추위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핫팩을 챙긴 이유는 하나.

병사들에게 나눠 주기 위해서였다.

“김민준 중사님은 안 쓰십니까?”

“저희도 양심은 있지 말입니다.”

“내가 추웠으면 너네들한테 핫팩 있다고 했겠냐? 빨랑 가져가.”

“헉! 진짜 주시는 겁니까?”

“감사히 쓰겠습니다!”

현재 상황의 핫팩은, 그야말로 메마른 사막의 물과 같았다.

소대원들은 절까지 하면서 핫팩을 챙겨 갔다.

“훈련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긴장들 해라. 몬스터는 2일 차부터 예고 없이 푸니까.”

“예!”

“만점 받을 각오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훈련 2일 차가 시작되었다.

현재 2중대 2소대와 2중대 3소대의 평가 점수는, 만점이었다.

“김민준 중사… 수색 헌터들보다 더 능숙한 실력을 보여 주었고. 2중대 3소대에 새로 온 부소대장. 김서현이라고 했나?”

감독관은 평가서를 작성하다가, 텐트를 정리하는 김서현을 잠시 바라보았다.

김민준이야 워낙에 우수한 헌터다 보니, 혹한기 훈련도 잘 적응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잘 적응할 줄은 몰랐지만.

“헌터 부사관 출신에, 해외 출신인데. 의외구만.”

예상외로, 3소대 부소대장의 훈련 성과가 괜찮았다.

이곳, 강원도 철원.

무적 헌터 부대의 훈련 강도는 상당히 높다.

경험 없는 하사가 오자마자 혹한기 훈련을 받게 되면, 10명 중 7명 정도는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

오히려 경험 있는 상병이나 병장들이 더 뛰어나다는 말이다.

“김민준 중사의 먼 친척이라고 했나? 아주 그냥 헌터군 족보구만.”

감독관은 2소대의 김민준 중사에게 가산점을 추가했다.

거리낌 없이 3소대에 협력하는 모습을 지켜봤기에.

“2중대 2소대와 2중대 3소대. 첫날처럼만 텐션을 유지하면 훈련 만점 충분히 받겠을 수 있겠는데. 한번 잘들 해 봐.”

“예!”

“알겠습니다!”

감독관의 짧은 평가가 끝났다.

헌터들은 곧바로 2차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훈련 만점이라는 말을 들어서일까.

그들의 얼굴에는 의욕이 충만했다.

“오늘은 2차 목적지로 향하는 도중, 군용 로프를 사용해 건너야 구간이 있다!”

이동 도중.

김철민 중위의 말에, 헌터들이 움찔했다.

군용 로프를 사용해 건넌다.

그 말은, 외줄을 타야 한다는 말이었으니.

“미친. 외줄 타는 거야 그렇다 쳐도, 설치를 어떻게 하냐?”

“내 말이. 훈련 강도 왜 이래? 오늘 2일 차잖아.”

로프를 타고 건너는 것이야 전 헌터들이 가능할 것이다.

다만, 군용 로프를 안전하게 설치하는 것은 숙련된 장교라 해도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미친. 50m 넘잖아.”

“이거 설치하는 쪽은 완전 돌아가야 되겠는데.”

생각보다 긴 이동 거리.

아찔한 높이의 절벽을 본 헌터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물론 떨어진다 해도, 다치지 않게 그물망이 다 설치되어 있다.

다만, 그 그물망이 너무 허술해 보여서 문제지.

‘진짜 바람 불면 찢어질 것처럼 만들어 놨네.’

김민준은 아래를 슥 쳐다보고 피식 웃었다.

설치된 안전 그물망을 보자, 조교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물론 겉모습만 저렇게 만들어 놓았을 뿐이다.

그물망의 내구도는 상당하다.

‘의도야 뻔하지 뭐.’

헌터들에게 과도한 긴장감을 심어 주어, 체력을 빨리 고갈시킬 목적이겠지.

“소대장님. 제가 건너편으로 가겠습니다.”

“김민준 중사? 그래. 2소대는 네가 하고. 3소대는 3소대장님께서 하십니까?”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건 한 명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훈련에서 요구하는 건 두 명.

그렇기에, 각 소대당 간부 1명씩을 차출하기로 했다.

“하사 김서현! 제가 해 보고 싶습니다!”

“응? 네가? 뭐 안 될 건 없다만… 이거 생각보다 어려운데.”

소대장은 손을 번쩍 드는 김서현을 보고, 김민준을 슥 쳐다봤다.

2명이 합동해서 건너편으로 가야 하는 만큼, 호흡이 중요하다.

한 명이 도중에 걸림돌이 되면, 남은 한 명에게 고스란히 부담이 가해지기 때문이었다.

“전 괜찮습니다.”

“그래. 김서현 하사도 이번 훈련이 처음일 텐데, 미리 경험해 보는 거야 나쁘지 않지. 3소대장님도 괜찮으십니까?”

“물론입니다.”

그렇게 해서 건너편으로 넘어가는 2명은, 김민준 중사와 김서현 하사가 결정되었다.

병사한테 시키면 안 되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실전 매뉴얼에서도 간부가 우선.

간부가 없을 시 병장이 우선 대상이었다.

그만큼 위험한 작업이라는 뜻이었다.

‘그냥 확 뛰어서 건너가도 되겠지만, 그럼 애들한테 교육이 안 되겠지.’

로프를 타고 이동해야 가는 거리는 대략 50m.

그냥 발에 힘 좀 주고 뛰어 버리면 되는 거리였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는 병사들한테 본보기가 안 되니까.

“가 볼까.”

“예!”

김서현과 함께, 로프를 가지고 반대편으로 출발했다.

아찔한 절벽.

발 디딜 공간도 부족한 면적의 땅.

벽면에 등을 바짝 붙인 채로, 조금씩 움직였다.

“와….”

“뭐냐?”

김민준과 김서현에게 있어서야 조금씩, 천천히였지만 소대원들이 보는 시선은 달랐다.

“뭐 저렇게 빨라?”

“김민준 중사님은 그냥 달리는 것 같으신데?”

“김서현 하사님도 느린 속도는 아닌데, 앞이 워낙 빨라서 거리가 벌어지네.”

“미친. 그냥 5분 컷 하겠는데. 뭐냐 저게?”

건너편으로 넘어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소 30분.

길게는 1시간까지도 걸린다.

로프 설치 작업이 그만큼 험하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훈련 평가 항목에서도, 40분이 만점인 수준.

“이쪽은 끝났다. 그쪽은 됐냐?”

“예! 거의 다 끝났습니다!”

김민준과 김서현은, 로프를 설치하고 안전 확인을 끝내기까지 고작 20분이 걸렸다.

그야말로 경이로운 속도였다.

“하하. 민준이도 민준인데, 새로 온 부소대장도 장난 아닌 것 같습니다.”

“예. 저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것보다, 둘이 호흡이 척척 맞는군요.”

단 한 명의 낙오자 없이, 건너편으로 넘어갔다.

소대장들은 기분 좋게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혹한기 훈련 중.

대부분 이 항목에서 감점이 되는데, 2소대와 3소대는 만점이었으니.

“자. 2차 목적지까지 왔으니, 주위를 탐색하고 안전을 확보한 뒤….”

2차 목적지에 도착해, 소대장이 지시 사항을 전달하는 도중.

“끼에에엑!”

“끄에에엑!”

바로 맞은편 눈 안에서, 흰 피부를 띤 몬스터가 나타났다.

도마뱀의 외양을 가진 몬스터에, 흰 피부.

화이트 리자드맨이었다.

“화이트 리자드맨 출현! 다들 대열부터 만들어!”

“예, 예!”

“허둥대지 말고! 시간은 충분하다!”

잠복해 있던 몬스터의 출현.

헌터들이 재빨리 대열을 형성했다.

화이트 리자드맨은 추위에 강한 몬스터다.

그뿐만 아니라, 기존 리자드맨보다 완력이 강하고 체력까지 좋다.

하지만, 마력탄과 날붙이에는 취약한 모습을 보여 주어 처리 난이도는 중하급 정도였다.

물론, 현재 맨몸인 2소대와 3소대에게는 중급 이상으로 난도가 올라가겠지만.

“상대해야 할 화이트 리자드맨은 총 8마리다! 이놈들 첫 공격을 잘 받아 내야 상대하기 수월한 거 알고 있냐!”

“예!”

“알고 있습니다!”

“쫄 필요 없다! 저놈들은 훈련용으로 조정된 몬스터다!”

매섭게 달려오는 몬스터들.

김민준은 대열의 앞에서, 소대원들에게 기운을 불어 넣어 주었다.

“쿠에에엑!”

“으아아아!”

“이 새끼 저쪽으로 밀어내! 이놈부터 다굴 쳐!”

“오케이!”

헌터들과 화이트 리자드맨의 충돌이 일어났다.

팽팽하게 이어지는 힘겨루기.

주어진 장비가 없기에, 그들은 맨몸으로 몬스터와 맞섰다.

“아오! 여기 밀린다!”

“어욱! 이거 훈련용 아니냐? 뭔 몬스터의 힘이….”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몬스터 쪽이 우세했다.

주어진 환경 때문이었다.

‘화이트 리자드맨은 추운 환경에서 사는 놈들이지. 당연히 추위에는 적응되어 있고.’

헌터들은 추위 때문에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눈 때문에 움직임에 제약을 받는 것도 문제였지만, 체력 고갈이 빨랐다.

‘이제 슬슬 나서 볼까.’

소대원들이 기진맥진할 때가 되자, 김민준이 적당히 몸을 풀며 앞에 나섰다.

“야. 못생긴 새끼들아! 덤벼!”

“크엑?”

“쿠에에엑!”

도발에 걸려든 한 놈의 꼬리를 잡아챘다.

“넌 지금부터 내 무기다.”

“크, 크엑?”

“얼마나 성능이 좋은지 한번 볼까!”

꼬리가 잡힌 채 발버둥 치는 몬스터.

그 상태로, 다른 몬스터들을 향해 휘둘렀다.

퍼억!

“2루타!”

빠악!

“3루타!”

맥없이 떨어져 나가는 몬스터들.

적당히 봐주면서 때리고 있는데도, 이 정도다.

자신의 힘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이거 완전 힘 법사네, 힘 법사.’

맨손으로 화이트 리자드맨을 죽이는 건 어렵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

적어도 부사관 수준에서는 말이다.

“허….”

“미친. 저놈들 다 죽었네.”

하지만, 김민준은 8마리의 리자드맨을 맨손으로 처리했다.

그것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이놈들 약물 투여되어 있어서 시간만 지나면 다 죽어 버리는데….”

“역시 김민준이! 남은 놈들 싹 쓸어 버리는구만! 하하하!”

그 모습을 본 감독관은, 넋이 나간 얼굴로 몬스터의 사체들을 살폈다.

김철민 중위는 시원하다는 얼굴로 웃었고.

“뭔 놈의 힘이 이렇게 세냐?”

얼마나 강한 충격이 가해졌으면, 맞은 부위가 움푹 들어가 있었다.

스노우 리자드맨은 마력탄과 날붙이에 약하지만, 타격 같은 충격에는 잘 버티는데도 말이다.

“참나. 몬스터를 무기로 휘두르는 놈은 살면서 처음 본다.”

감독관이 감탄사를 터트리던 사이.

“쓸 만한 놈이네.”

김민준은 무기로 사용하던 리자드맨을 다른 사체들 옆으로 놓아 주었다.

“네가 이놈들 죽인 거야, 네가. 지옥에 가서 벌 받아라.”

제일 고통스러웠던 건 무기로 사용되던 몬스터였겠지만, 김민준이 그걸 신경 쓸 리 없었다.

“응?”

등을 돌리려던 사이.

무기로 사용한 리자드맨의 입에서 뭔가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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