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101화 (101/212)

101. 혹한기-1

2일 뒤에 시행되는 혹한기 훈련.

보통 12월이나 1월 사이에 진행되는 훈련이 앞으로 당겨진 것이다.

“많이 추워야 애들한테 훈련이 되는데. 지금이 몇 월이냐?”

스마트폰을 켜 달력을 확인해 보니, 10월이었다.

다만, 2일 뒤부터는 이상 기온으로 인해 온도가 엄청나게 내려갈 것이라는 경고 문구가 있었다.

역시 악명 높은 무적 헌터 부대.

이걸 노린 거구나.

“2일 뒤부터 폭설과 함께, 강추위가 이어질 것이다…. 예상 기온은 영하 28도에서 30도 사이라.”

확실히, 혹한기 훈련을 하기에 최적의 날씨긴 하네.

요즘 무적 헌터 부대의 성과가 좋아서 그런가.

헌터들 교육에 열을 내는 것 같기는 했지.

“오랜만에 훈련다운 훈련을 하겠는데.”

그 원인이 본인인 줄 모르는 김민준은 생활관으로 향했다.

이 기쁜 소식을 분대원들에게 전해 주기 위해서.

**

2일 뒤.

헌터군 산악 훈련장.

강렬한 바람과 함께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다.

일반 군이라면 훈련이 불가능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

하지만, 헌터군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어우, 미친. 얼겠다, 얼겠어.”

“오늘 영하 몇 도냐? 영하 40도는 되는 거 같은데.”

“영하 32도란다, 32도. 이 미친 강원도 철원.”

“레전드네. 작년에는 영하 22도쯤에서 안 내려갔는데.”

완전 군장으로 대열을 이루고 있는 헌터들.

그들은 처음 맞이하는 강추위에 몸을 덜덜 떨었다.

평소보다 두껍게 입기는 했지만, 지금 기온을 생각해 보면 터무니없이 얇은 전투복이었다.

“아… 제발 살아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세요. 제발!”

“자다가 입 돌아가지만 마라.”

헌터군의 혹한기 훈련 기간은 10박 11일.

일반 군과 비교해 보면 꽤 길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이 기간에, 헌터들은 자연과 사투를 벌여야 한다.

야외 취침은 기본이요, 강추위와 강도 높은 훈련이 그들을 실시간으로 괴롭힌다.

혹한기 훈련은 던전 안에서의 생존 능력을 올려 주는 효과가 있다.

그렇기에, 헌터군 어느 부대에서나 FM으로 실시되는 훈련이기도 했다.

“충!성!”

잠시 후.

2대대장이 당당한 발걸음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중대장의 훈련 보고가 이어졌다.

“현 시간부로, 10박 11일간의 훈련을 명한다!”

그 뒤로 짧은 훈화가 이어졌다.

훌륭한 헌터가 되기 위해, 극한의 상황을 이겨 내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든가.

끊임없는 훈련이 뒷받침되어야, 던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고들을 대처할 수 있다든가.

헌터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한 이야기였다.

“최근 들어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만에 빠지지 않도록 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강추위 속.

헌터들의 힘찬 대답과 함께, 훈련이 실시되었다.

“2중대 2소대! 지금까지 훈련 잘 받아 왔으니까, 이것도 잘할 수 있겠냐!”

“예!”

“목소리가 작다! 잘할 수 있겠냐!”

“예!!”

김철민 중위의 힘찬 구령을 시작으로 헌터들이 훈련장을 향해 출발했다.

다들 완전 군장 상태지만, 그들이 챙긴 건 침낭과 텐트가 전부다.

나머지는 훈련용 특수 물품을 넣어 무게를 맞췄을 뿐.

지금부터 훈련이 끝날 때까지 먹는 것과 마시는 것 등 모든 것을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물론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헌터들의 체력이 떨어질 기미가 보이면, 바로 훈련용 몬스터가 투입된다.

생존 능력과 함께, 상황 대처 능력까지 시험하는 훈련이었다.

“어우….”

험한 산길을 오르던 중, 세찬 눈보라가 병사들의 시야를 가렸다.

그중 몇 명은 넘어질 듯 휘청거리기까지.

“눈 크게 뜨고 정신 바짝 차려. 넘어질 거면 앞으로 넘어지고.”

김민준은 휘청거리는 소대원들의 몸을 지탱해 주었다.

무릎까지 닿을 정도로 내리는 눈.

헌터들에게도 적응하기 쉽지 않은 사나운 환경이었다.

‘김서현은 알아서 잘하고 있네.’

뒤를 돌아보면, 2중대 3소대가 2소대의 행렬을 따라오고 있었다.

김서현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뒤처지는 헌터들을 이끌어 주고 있었다.

이 정도의 폭설은 처음 경험하는 것일 텐데, 나쁘지 않은 적응 능력이었다.

“지금부터 2중대 2소대, 2중대 3소대의 적응 능력을 보겠다.”

1차 목적지까지 도착하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감독관이 종이 한 장을 꺼냈다.

훈련 평가지였다.

평가 항목은 어떤 방식으로 식량을 구하는지, 텐트는 얼마나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설치하는지 등등.

모두 생존 능력에 집중되어 있었다.

“김철민 중위님. 3소대는 서쪽 지역을 먼저 탐색하겠습니다.”

“예. 그럼 2소대는 동쪽 지역으로 가겠습니다.”

각 소대장끼리 짧은 대화를 주고받은 뒤,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2개의 소대를 같이 붙여서 훈련하는 이유는, 경쟁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서로 얼마나 협동하는지를 보기 위해서였다.

물론 사이가 나쁜 소대장끼리는 협동은 개뿔, 서로를 엿 먹이려고 했지만.

“어우, 씨. 이거 이래가지고 토끼 한 마리라도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뭔 놈의 눈이 이렇게 많이 내립니까? 무릎까지 파묻혀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겠습니다….”

김광식 상병과 이동진 상병이 수북하게 쌓인 눈을 보고 아찔한 표정을 지었다.

식량 확보까지 주어진 시간은 3시간.

3시간 안에 2소대원이 먹을 식량을 구해야, 감점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폭설 수준으로 내린 눈 때문에 움직이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

과연 이래서야 식량을 확보할 수나 있을지.

“인간은 도구를 사용해야지.”

“도구 말입니까?”

“저흰 완전 맨몸이지 말입니다.”

김민준의 말에 헌터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혹한기 훈련에는, 침낭과 텐트를 제외하고 그 어떠한 도구도 지참할 수 없다.

성냥 하나라도 말이다.

이 미친 듯한 폭설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짐승을 발견하는 것만도 어려운데, 그것을 포획까지 해야 한다.

그것도 3시간 안에.

“오. 저기 한 마리 있네.”

이거 무조건 감점이다.

2소대원 대부분이 그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김민준이 발밑에 떨어진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홱!

그리고 어딘가로 돌멩이를 던졌다.

“미친….”

“와….”

잠시 후.

태연한 표정으로 축 늘어진 토끼를 잡아 온 김민준.

소대원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환호성을 터트렸다.

“김민준 중사님. 그게 보이십니까?”

“전혀 안 보였지 말입니다….”

땅에 떨어진 돌멩이 하나로, 산짐승을 잡아 버렸으니까.

그것도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이 열악한 환경에.

“말했잖아. 인간은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고.”

“…….”

피식 웃으며, 적당히 토끼를 넘겨주었다.

당연히 이 한 마리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입이 몇 갠데.

최소 10마리는 더 잡아야지.

툭.

“뭐야.”

다른 놈이 또 없나 스캔하던 도중.

뭔가가 날아왔다.

방금 자신이 잡은 것보다 크기가 작은 토끼였다.

“뭐지.”

“하늘에서 토끼가 떨어졌는데?”

“그럴 리가 있겠냐. 옆 소대에서 던져 준 거겠지.”

“3소대에서 말입니까? 다들 식량 구하느라 정신없을 텐데….”

다들 어리둥절했지만, 김민준은 누가 던져 주었는지 금방 알아챘다.

‘김서현이네.’

거참.

자기 소대원들이나 신경 쓰지.

소대끼리 협력해도 상관은 없다고 했다만, 굳이 도와줄 필요는 없는데.

“어?”

“김민준 중사님!”

“저기 보십쇼!”

그렇게 생각한 찰나.

소대원들이 뭔가를 발견한 듯했다.

“오….”

“저거 뭐지? 사슴이냐?”

“아니. 제대로 봐 봐.”

약 200m 떨어진 지점에서 먹이가 없나 어슬렁거리는 짐승.

고라니였다.

“고라니도 강원도 고라니가 강하지.”

이 추운 날씨에도 먹이를 찾아 헤매는 놈이라.

“좋아. 오늘은 저놈이다.”

몸도 풀 겸, 놈을 향해 힘껏 내달렸다.

“워어우! 워어억!”

고라니 아니랄까 봐, 울음소리 한번 기괴했다.

놈은 얼마 도망가지도 못한 채, 그대로 삶을 마감했다.

“소대장님. 이 정도면 충분하겠습니까? 꽤 큰놈 같은데.”

“어어… 발이 미끄러울 텐데 한 번에 잡아 버리네. 잘했다.”

“미친. 고라니 저놈을 한 번에 잡으신 겁니까? 그것도 그냥 달려가서?”

“기가 찹니다….”

토끼 2마리와 고라니 1마리.

2소대가 식량을 확보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20분 남짓이었다.

“뭐야. 그렇게 빨리 구해 왔어?”

1차 목적지로 돌아오자 감독관이 짧은 시간에 한 번 놀라고, 김민준이 잡은 고라니의 크기에 두 번 놀랐다.

2소대원이 충분히 먹고도 남을 만한 덩치였다.

“이걸 어떻게 잡은 거냐?”

“고라니에게 달려가서, 헤드록으로 한 번에 보내 줬습니다.”

“…허. 강원도 고라니는 굉장히 날렵한데.”

김민준의 대답에 기가 찬 듯 웃기만 하는 감독관이었다.

“그것보다, 이거 손질은 어떻게 합니까?”

식량을 확보한 건 좋은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토끼 같은 경우야 어떻게든 가죽을 벗겨 내고 손질하면 된다.

하지만, 고라니를 손질할 줄 아는 헌터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럴 수밖에.

아무리 헌터라고 해도, 혹한기 훈련 중 고라니를 잡은 헌터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비켜 봐. 이런 건 내 전문이지.”

“김민준 중사님?”

“고라니 손질도 할 줄 아십니까?”

“고라니는 처음인데. 짐승들이야 거기서 거기지. 잘 보고 있어.”

손으로 가죽을 벗겨 내며, 손질을 시작하는 김민준.

그 능숙한 손놀림은, 감독관의 시선까지 빼앗았다.

‘이스가르드에서 이런 생활을 몇 번이나 했는데. 껌이지, 껌. 거기 짐승들은 독도 많았거든.’

손질을 마치기까지 걸린 시간은 30분 남짓.

거기다, 마기를 사용해 고라니 특유의 누린내까지 제거했다.

그야말로 완벽한 마기 제어와 손질이었다.

“김민준 중사님! 여기 나무들 구해 왔습니다!”

“좋아. 굵기 적당하네.”

짐승의 손질을 시작으로 불을 피우는 것까지.

김민준의 익숙한 지시와 손놀림 덕분에, 2소대원들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하루를 보낼 준비를 끝냈다.

“민준아.”

“중사 김민준.”

“너, 어디 무인도에서 갇혀 살았냐? 뭐 이렇게 잘하냐?”

김철민 중위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껄껄대며 웃었다.

깔끔하게 설치된 텐트.

활활 피어오르는 불.

즉석으로 만든 도구들까지.

이 정도면 외국의 생존 전문가, 베어구릴스까지 혀를 내두를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와. 2소대가 잡은 고라니. 크기가 어마어마합니다.”

“모자라면 여기 와서 좀 가져가라. 남을 것 같다.”

“그래도 됩니까?”

“그래.”

노릇노릇하게 익어 가는 고라니.

토끼만 몇 마리 잡은 3소대원들은, 군침을 흘리며 줄을 섰다.

“우와… 누린내가 하나도 안 납니다.”

“이 시기 고라니 고기는 냄새가 심해서 못 먹는다고 들었는데… 너무 맛있습니다.”

이맘때 고라니는 잡는다 해도, 특유의 냄새 때문에 도저히 먹는 게 불가능할 정도다.

하지만, 김민준이 잡은 고라니는 잡혀 잡내가 없었다.

소금 없이도 술술 넘어갈 정도였다.

“첫날에 고라니 고기 먹는 소대는 우리밖에 없을걸.”

“인정. 이 정도 날씨면 다른 애들은 그냥 굶어야 되겠는데?”

다들 만족스러운 얼굴로 식사를 이어가던 도중.

“얌마.”

김민준은 풀이 죽어 있는 간부 한 명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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