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100화 (100/212)

100. 팬

“저… 김민준 헌터님 팬이에요! 괜찮으면 사진 한 장 같이 찍어도 될까요?”

연예인도 아니고, 군인한테 같이 사진을 찍어 달라니.

그런 경우는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팬이요?”

“아, 네! 예전에 그… 고등학교 근처에서 늑대같이 생긴 괴물 혼자서 막 쓰러트리신 거요! 그거 보고 너무 멋있다고 생각해서요….”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성은 스마트폰을 꺼내, 영상을 하나 틀어 주었다.

몇 달 전, 인터넷 뉴스로 보도된 영상.

그곳에는, 자신이 민간인들을 지키고, 단신으로 몬스터에게 맞서는 장면이 생생하게 찍혀 있었다.

-군인 아저씨! 혼자서는 위험해요!

-내가 도망치면 다른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어. 걱정 말고 여기서 멀어져라. 내가 책임지고 처리할 테니까.

순식간에 조용해진 테이블.

여성이 손에 쥔 스마트폰에서, 자신의 음성이 또렷하게 흘러나왔다.

‘어우, 씨. 내가 저 말을 했다고?’

분명 자신의 목소리일 뿐인데, 닭살이 돋는 느낌이었다.

“네. 뭐 사진 정도야 상관없죠. SNS에 퍼트리지는 마세요. 그 조건으로 찍어 드릴게요.”

“정말요? 약속 꼭 지킬게요! 감사합니다!”

부대 근처였으면 절대 허락하지 않았겠지만, 이곳은 시내다.

내 팬이라는데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었고.

“괜찮으면 사인도 받을 수 있을까요?”

“제가 사인은 해 본 적이 없는데. 대충해도 되죠?”

“네! 해 주시기만 하면 감사하죠!”

풋풋한 외모를 자랑하는 여성은 단시간에 사진을 10장 가까이 찍고, 사인까지 받아 낸 뒤에야 본래 자리로 돌아갔다.

“…….”

“…….”

“뭐. 왜.”

고개를 돌리니, 테이블에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소고기를 욱여넣던 김광식 상병은 왠지 모르게 서운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이승호 병장은 질린다는 듯이 고개를 젓고 있었다.

“김민준 중사님. 김민준 중사님은 은근 유명하신데, 모르고 계셨습니까?”

“내가?”

“뉴스는 안 보십니까…. 저 영상, 유튜브에도 올라왔는데 조회 수가 엄청납니다. 벌써 8천만 뷰가 넘었습니다.”

“뉴스를 왜 보냐? 뉴스 볼 시간에 게임 한 판 더 하지.”

“미친… 몬스터 토벌 장면 말입니다. 헌터 본부에서 영상 업로드 허가한 게, 이번이 처음이랍니다.”

“그러냐?”

호들갑을 떠는 분대원들이었지만, 정작 김민준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군인이 유명해져야 뭐 되겠냐면서.

“분하다. 저렇게 완벽한데, 키까지 크고 외모까지……신은 왜 이렇게 불공평한 겁니까.”

“난 내가 잘생겼다고 생각한 적 없다.”

“크윽… 그 부분이 더욱 분합니다.”

분위기가 다시 무르익어 갔다.

다들 웃고 떠들던 와중, 김광식 상병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뭔가 중대 발표라도 있는 것일까.

“너네, 그거 아냐? 내가 어제 옆 소대 소대장님 얘기하는 거 들었는데, 3소대에 부소대장이 새로 온단다.”

“그래?”

“근데 넌 그런 정보를 어디서 귀신같이 알아 오는 거냐? 신기한 놈이네.”

“다 방법이 있지. 그것보다 중요한 건, 그 하사분이 여헌터라는 점이지. 거기다가 꽤 예쁘다던데.”

“뭐? 레알?”

“얼마나 예쁜데? 손은서 병장만큼 예쁘냐?”

여헌터 이야기가 나오자, 분대원들의 목소리가 절로 커졌다.

부사관부터는 성별에 상관없이 근무지에 배치된다.

남자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2중대 2소대 간부들 중에는 여헌터가 없다시피 했으니.

“그건 직접 봐야 알겠지. 신기한 건, 외국 출신이란다.”

“외국? 어디?”

“영국인가 캐나단가.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붉은 머리카락에 신기한 눈동자 색깔을 가졌다더라고.”

“오….”

분대원들의 이야기를 적당히 흘려듣던 김민준은, 붉은 머리카락이라는 말에 눈을 가늘게 떴다.

외국인에, 붉은 머리.

헌터군 부사관.

이 조건에 딱 맞아떨어지는 인물이 있었으니.

‘잠깐만. 그러고 보니, 걔가 헌터군 시험 친다고 했었는데. 그게 몇 달 전이었지 않나?’

요새 마력검이니 던전 공략이니 바빠서 연락을 안 했었는데.

‘시기상으로 보면 딱 맞아떨어지기는 하는데.’

김서현은 이봉구와는 다르게, 마기를 이용해 말을 주고받을 수 없다.

중간에 연락을 해 보니, 전원이 꺼져 있다는 자동 음성이 재생될 뿐이었다.

‘내일 온다니까, 보면 알겠지 뭐.’

**

다음 날.

여느 때와 같은 일과가 끝났다.

“야! 3소대에 부소대장님 오셨단다!”

“레알?”

“나 방금 보고 왔는데. 대박이더라.”

“가자! 빨리!”

헌터들은 소문의 여간부가 왔다는 소식에, 어딘가로 헐레벌떡 달려갔다.

“그러게 스마트폰 좀 진작에 사라니까.”

어젯밤.

미리 소식을 전해 들은 김민준은, 피식 웃으며 소대원들의 뒤를 따라갔다.

연병장의 단상 앞.

마침 부소대장이 소대원들에게 간단한 소개를 하고 있었다.

“2대대 2중대 3소대 부소대장을 맡게 된 김서현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부소대장님!”

3 소대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큰 목소리로, 김서현을 맞이해 주었다.

성격 더러운 부소대장이 가고, 새로 온 부소대장이 미모의 여헌터였으니.

‘와… 카리스마 넘치신다.’

‘내 말이. 뭔가 남자 같은? 날카로운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헌터들이 김서현에 대해 느낀 첫인상이었다.

물론,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았다.

“아! 충성! 김민준 중사님!”

김민준이 멀리서 다가오는 것을 보고,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집 지키는 개가 주인을 맞이할 때의 느낌이었다.

“김서현. 이놈아. 헌터 부사관 합격했다고 말이라도 해 주지 그랬냐.”

“이곳에 배치받고 나서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래. 어쨌든 고생 많았고, 앞으로 잘해 보자고.”

“예! 김민준 님… 아니, 김민준 중사님!”

마치 오래 지낸 사이처럼 대화를 나누는 둘.

특히, 김서현 쪽은 환하게 웃고 있다.

방금 전까지 무거운 분위기를 풍겼던 부소대장이 말이다.

헌터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민준 중사님? 김서현 하사와 아는 사이십니까?”

“당연히 알지. 가족 같은 사인데. 적당히 말하자면, 친척 같은 사이지.”

“친척… 말입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완벽한 타인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보자면 말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있어 신도들은 특별했다.

가족까지는 아니더라도, 친척 정도의 표현은 써도 될 만큼.

“그것보다, 일과 끝났으니까 잠깐 얘기나 하자.”

“네!”

김민준이 등을 돌려 헌터 카페 쪽으로 향했다.

김서현은 그의 옆으로 딱 달라붙었고.

“아니, 미친….”

“방금 김민준 중사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친척 같은 사이라고 하셨습니까?”

“친척이라는 거냐, 아니면 그만큼 친하다는 거냐?”

헌터들은 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호들갑을 떨 뿐이었다.

**

“부사관 훈련 기간이 몇 주였더라. 20주쯤 되지 않냐?”

헌터 카페 안.

적당히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네. 정확히 20주입니다.”

“20주라. 그럼 1차 시험도 한 번에 붙고, 그 뒤에 2차 시험도 한 번에 붙었다는 말이네?”

“네. 그렇습니다.”

“잘했네.”

김서현의 하사 계급장을 보니, 괜히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신도들 중에서도 신체 능력이 발군인 편이라, 무난하게 합격하리라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여기 강원도 철원,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험할 거다.”

“각오하고 왔습니다. 김민준 님이 이곳에서 복무하시는데, 제가 후방으로 가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그러냐? 네 좋은 대로 해. 다른 특이 사항은. 마기가 모자라지는 않냐?”

“충분합니다.”

“충분하기는 무슨. 손 내밀어.”

“김민준 님. 전 정말 괜찮….”

“나 팔 아프다. 빨랑.”

김서현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로, 한쪽 팔을 내밀었다.

“이거 봐라. 마기 바닥나 가고 있었잖아.”

손을 잡은 채로, 마기를 전달해 주었다.

그녀가 보유한 변덕쟁이 마안 같은 경우는, 자기 멋대로 발동하곤 했다.

그중에서는 있으나 마나 한 쓸모없는 예언 같은 것도 많이 보여 주었고.

그런 식으로 발동할 때마다, 당연하게도 몸 안의 마기가 빠져나가게 되니 보충해 줄 필요가 있었다.

“이건… 김민준 님?”

마기를 전달받은 김서현이 눈을 크게 떴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듯했다.

“왜. 내 마기. 달라진 것 같냐?”

“뭔가… 이상합니다. 김민준 님의 마기인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맞춰 봐. 내 몸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그 말에, 김서현이 끙끙대며 고민을 시작했다.

정답을 알려 줘도 되겠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놀리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거든.

‘특히 쟤를 놀릴 때가 제일 재밌거든.’

[김서현은 열혈 신도입니다.]

[전달한 마기의 일부를 돌려받습니다.]

거기다 마기까지 돌려주고.

“죄송합니다. 전혀 모르겠습니다….”

10분 가까이 고민하던 김서현은, 고개를 푹 숙였다.

모르는 게 당연할 텐데, 죄지은 듯한 표정은 왜 짓는 건지.

“흑마법사의 가장 큰 단점이 뭐지?”

“마기를 외부로부터 흡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단점을 해결한 유일한 흑마법사가 있다고 치면, 누구일 거 같냐?”

자신의 말에, 커피를 마시던 김서현이 켁켁댔다.

꽤 충격적이었는지, 사레가 들린 듯했다.

“서, 설마….”

“그래. 내부에서 마기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됐다. 아직은 소량이지만.”

마기를 생성해 낼 수 있는 흑마법사.

모든 흑마법사가 가지는 꿈이다.

그 꿈을 이뤄 낸 흑마법사가, 김민준 님이었을 줄이야.

“주위에 보는 눈 있다. 감정이 복받치는 건 알겠는데, 적당히 조절해라.”

“정말… 정말 대단하세요….”

김서현은 눈가를 닦으며, ‘김민준 님이라면 언젠가 해내실 줄 알았습니다.’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다른 사람이 보면 내가 얘 울리는 줄로 오해하겠다만은.

“그래도 아직 완벽한 건 아니다. 외부에서 마기를 수급해야 하는 건 당분간 변하지 않을 거고.”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이봉구를 쥐어짜 내면 어떻게든 될 겁니다.”

“그래. 그것보다, 일과 끝났으니까 당장 부대 밖으로 나가.”

“네?”

지갑을 꺼낸 뒤, 김서현의 손에 현찰을 두둑이 쥐여 주었다.

“스마트폰 최신형으로 사라. 되도 않는 싸구려 폰 사 오기만 해 봐라. 나한테 혼난다.”

“김민준 중사님. 저 훈련 기간에 월급 지급받았습니다. 돈은 충분….”

“헌터 부사관 후보생이 달에 100만 원도 못 받는 거 내가 모를 줄 아냐? 빨랑 나가서 사 와.”

머뭇거리는 녀석을 재빨리 밖으로 보냈다.

그동안 쌓인 포상금도 있고, 최근에 2억이라는 거금의 포상금을 받았다.

돈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지.

까톡!

적당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메시지가 왔다.

김철민 중위였다.

김철민: 김민준이. 뒤에 있던 훈련 일정이 급하게 당겨졌다. 당장 2일 뒤부터 훈련이니까, 애들한테 전달 좀 부탁한다.

김민준: 충성! 예.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무슨 훈련입니까?

소대장은 간단히 훈련 이름만 말한 뒤, 대답이 없었다.

바빠서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야. 아직 3개월이나 4개월은 있어야 할 줄 알았는데, 이걸 벌써 한다고?”

김민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안 그래도 2계급 특진을 위해 실적 점수가 필요한 참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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