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이거지
“김민준 중사. 오우거 생포 건으로 인해, 상사로 특별진급 확정이다.”
중사를 단 지 얼마나 지났다고, 상사로 특별 진급이라니.
오우거를 생포한 공이 크긴 컸나 보다.
그토록 반대하던 헌터 본부조차 한 번에 찬성을 했다는 말일 테니.
‘이야. 하사에서 중사를 다는 건 10배 이상 어렵고, 중사에서 상사를 다는 건 체감 난이도 100배라던데.’
병사 출신들의 헌터도 어느 정도 재능만 있다면, 하사까지는 간다.
다만, 거기서 전역하거나 5년 이상 진급이 멈춘 채로 남아 있는 하사들이 80% 이상이다.
‘헌터들이 나처럼 강해질 수가 없는 구조니까. 어쩔 수 없긴 하지.’
스킬을 가지고 있는 건 오직 자신뿐이다.
물론 이전에 럭키 룰렛 아이템을 사용하게 되면서, 스텟이 생성되는 효과를 보긴 했다.
의외로, 잘 찾아보면 스킬을 보유한 헌터가 한 자릿수 정도는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해도, 스킬의 강함이 틀린 것도 사실이지.’
자신으로 치자면, 판타지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화려한 스킬들을 팍팍 사용하는 흑마법사다.
다른 헌터들은 기껏해야 전투의 보조로 사용되는 스킬일 터.
그 말은, 이전에 오우거를 단신으로 상대한다든가 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이 나온다.
“중사 김민준. 감사합니다!”
“감사는 오히려 나랑 대대장이 해야겠지. 마력포가 없는 상황에서 오우거를 상대했다면… 무조건 사망자가 나왔을 거다.”
사단장은 그때의 보고를 떠올려 보면,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였다고 말했다.
별의 위치.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책임감이 큰 자리다.
어제와 같은 상황에서 사망자가 단 한 명이라도 나왔다고 한다면, 대대장은 물론이요.
사단장 역시 징계를 피할 수 없을 것이었기에.
“후. 이런 일을 겪어 본 것도 20년이 넘었는데, 익숙해지질 않는다니까. 낭떠러지에서 사는 느낌이야.”
구학철 소장은 이 나이까지 스릴을 느끼게 될 줄을 몰랐다며, 피식 웃었다.
“그런데 김민준 중사.”
“중사 김민준!”
“자네, 정말 인간이 맞긴 한가?”
“잘못 들었습니다?”
“하하. 농담이네. 오우거를 맨손으로 굴복시킬 수 있는 헌터. 내가 직접 보고 있는데도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서 말이지.”
가볍게 웃던 사단장의 웃음이 멎었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와, 자신에게 제안할 것이 있다며 말을 이었다.
“김민준 중사. 이대로 상사로 진급하는 것보다, 나중에 소위를 다는 게 어떻겠나?”
“소위 말입니까?”
“그래.”
사단장의 제안은 이러했다.
자신이 상사로 진급을 하게 되면, 부소대장이라는 자리를 유지할 수가 없단다.
다른 직책으로 배치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대로 중사의 자리를 유지하는 대신, 실적을 더 쌓아 한 번에 소위로 올라가라는 말이었다.
“보통 부소대장은 병사출신의 하사나, 막 배치받은 부사관 출신 하사, 또는 소위가 하지.”
중사가 부소대장을 하는 경우도 드물게 있기는 하지만, 상사부터는 안 된다고 한다.
헌터군 상사가 부소대장 노릇을 하는 건 여러모로 문제가 될 수 있다나.
‘그러니까 그거네. 내가 이 포지션에서 빠지게 되면 전력 손실이 크니까, 이대로 유지해 달라는 거잖아?’
사단장의 뜻을 파악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야 당연히 오케이지.’
사단장의 제안을 거절할 헌터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제안이 나쁜 제안일지라도 말이다.
별 두 개가 까라고 하는데 싫다고 대답하는 헌터가 있기는 할까?
“예. 받아들이겠습니다.”
김민준이 대답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분.
빠른 결단력에, 사단장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특별 진급이 확정 난 것을 보류한다.
그렇게 되면, 특별 진급이 없던 일로 되는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허어. 네 특별 진급을 일단 보류한다는 말인데, 그렇게 막 동의해도 되는 거냐?”
“그만큼 실력으로 증명하면 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네 말이 맞다!”
자신감 있는 대답에, 사단장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아직 뒤에 제대로 된 설명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맹목적으로 믿고 따라 주다니.
절대 놓쳐서 안 되는 헌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민준 중사. 이대로 부소대장의 자리를 유지하고, 활약을 더 해 한 번에 소위로 올라가도록. 2계급 특진의 사례는 지금까지 없지만, 너라면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사단장은 만약 자신의 말대로 되지 않는다면, 이름을 걸고서라도 따로 책임을 지겠다며 말해왔다.
별 두 개의 장성이, 작대기 두 개의 중사에게 말이다.
그만큼 김민준이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리라.
“자네한테 미리 말해 주자면, 현재 자네가 부소대장으로 있는 2중대 2소대. 그 소대의 소대장을 맡길 생각이다.”
헌터군 역사상, 2계급 특별 진급의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사단장은 이미 김민준이 소위를 달 것을 확정한 듯이 맡을 뱉었다.
“오우거를 헌터군 최초로 생포했는데, 2계급 특진도 못 하겠나? 내가 팍팍 밀어줄 테니, 어디 한번 마음껏 해 보게.”
“예!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가 해야지. 허허허!”
그 뒤로 간단한 대화가 오갔다.
오우거 생포에 대한 거액의 포상금.
당연한 포상 휴가.
‘오우, 미친. 돈을 그렇게 많이 준다고?’
지금까지 받은 제안과 보상만 해도 제법 마음에 들었다.
한데, 사단장은 개인적으로도 선물을 주고 싶다고 말하며 어딘가로 무전을 넣었다.
“충성!”
잠시 후.
문을 열고 나타난 장교 한 명이, 검은색 케이스를 전달한 뒤 사라졌다.
안간힘을 쓰며 옮긴 걸 보면, 제법 무게가 나가는 물건인 듯했다.
저게 도대체 뭘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찰나, 사단장이 직접 열어 보라고 말해 왔다.
딸깍.
케이스 안에는 익숙한 형태의 검이 들어 있었다.
헌터군이 사용하는 마력검.
다만, 자세히 살펴보면 뭔가가 달랐다.
검은색을 띤 몸체와, 검날.
살짝 들어 올려 보니, 무게감 또한 상당했다.
“2세대 마력검이네. 안전성이 확실하게 입증된 군용 검이지.”
선물의 정체는 마력검이었다.
병사들에게 1세대 마력검이 지급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2세대 마력검이라니.
우리나라가 기술력이 좋다곤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이야. 디자인도 훌륭하고. 어디 다른 대기업이랑 손잡고 개발이라도 했나?’
김민준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자, 사단장이 해당 검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었다.
“안전성과 오러의 강도. 내구력 등은 1세대 것과는 비교할 수 없지. 다만, 큰 단점이 두 개 있는데….”
“무게와 소모되는 체력 말입니까?”
“그렇지. 그게 가장 큰 걸림돌이지. 그래도 자네라면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 가져오라고 했는데, 어떤가?”
그 말에, 검을 들고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확실히.
1세대 마력검에 비하면, 5배 이상 무겁다.
현재 병사들이 사용하고 있는 1세대도 무게가 상당해 적응을 못 하고 있는 상황이다.
2세대 마력검은 쥐여 주어도 들지 못할 것이다.
“확실히 무겁긴 합니다. 다만, 제가 실전에 사용하는 데에는 아무 문제 없습니다.”
“역시. 그렇단 말이지.”
사단장은 김민준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장교들도 제대로 못 드는 2세대 마력검을, 가뿐히 다루고 있다.
‘저놈의 스텟이 궁금하구만.’
순간 호기심이 일어, 스텟의 수치에 대해 물어볼 뻔했다.
‘아니지. 이렇게 좋은 날에 사소한 실수라도 하는 건 안 되지.’
물론 그것도 잠시뿐이었지만.
헌터군에서 스텟에 대해 대답을 요구하는 건, 어디까지나 병사들에 한해서다.
아니면 사관학교 생도 같은 경우라든가.
그조차도, 요즘은 인권 침핸지 뭔지 때문에 되도록 하지 말라는 권고가 내려올 정도.
“좋아. 내 눈으로 확실하게 확인했으니, 최종 결재를 받고 지급하도록 하지.”
사단장은 다음 던전 공략부터 2세대 마력검을 사용하게 해 주겠다고 말했다.
“아. 그리고 이번 주말. 2대대 헌터들 전원, 축하 자리를 마련할까 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떻나?”
“저야 당연히 좋습니다.”
오우거를 생포한 게 크긴 컸나 보다.
대대원 전원이 회식하게 되는 일은 웬만해서는 잘 없다고 들었는데.
‘자. 그럼 생활관으로 돌아가서 자랑 한번 해 볼까.’
이 자식들.
내가 포상금 얼마 받았는지 들으면, 놀라서 기절할 거다.
**
“김민준 중사님 오셨다!”
“김민준 중사님! 사단장이 따로 부르셨다고 들었는데, 정말입니까?”
“이번에도 특별 진급하는 겁니까?”
김민준이 생활관으로 돌아오자마자, 헌터들이 기다렸다는 듯 우르르 들이닥쳤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지간히 궁금한 듯했다.
“숨 막힌다. 좀 떨어져 봐. 다 말해 줄 테니까.”
“아! 포상금! 포상금은 얼마나 받으셨습니까?”
다른 궁금한 것도 많지만, 헌터들이 가장 궁금한 것은 포상금이었다.
몬스터를 생포하게 되면 상당한 포상금이 지급된다.
당연히 포획이 어려운 몬스터일수록, 포상금의 금액도 커졌고.
그런 의미에서 오우거는, 포상금의 끝판왕이나 마찬가지였다.
“김광식 저 자식은 김민준 중사님이 포상금 1억을 받는 데 월급 2달 치 걸었습니다. 저 미친놈한테 한 소리 해 주십쇼.”
“전 5천만 원에 월급 1달 치 걸었습니다.”
“이놈들이 간부 앞에서 돈 내기를 하냐?”
점점 왁자지껄해지는 분위기.
김민준은 헌터들을 진정시킨 뒤, 자신이 겨우 그 정도밖에 안 되냐고 반문했다.
“그럼….”
“설마?”
순식간에 조용해진 분위기.
김민준은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였다.
“2… 억입니까?”
“그래.”
1억도 아니고, 2억.
그 말에, 헌터들이 입을 떡 벌렸다.
헌터 본부에서 포상금을 주는 기준은 상당히 까다롭다.
‘그만큼 개고생을 했는데 이 정도밖에 안 줘?’라는 말이 나올 수준으로 말이다.
“미친….”
“실화냐? 2억이란다. 2억.”
그 구두쇠 같은 헌터 본부조차, 이번 일에 대해서는 후한 포상금을 지급했단다.
보통 2달.
길게는 3달 가까이 걸리는 기간이, 하루로 단축된 것이다.
“김민준 중사님. 2억이면 거하게 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중에 시간 나면 쏜다. 그것보다, 이번 주 주말 2대대 단체 회식이다. 사단장님에게 허락받았다.”
“우왁!”
“정말입니까?”
“사단장님이 허락하셨습니까? 미친!”
단체 회식이라는 말에, 생활관에 떠나갈 듯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요즘 들어 몬스터의 출현이 잦아, 대대 회식은 무슨.
분대 회식조차 불가능할 정도였으니.
“김민준 중사님?”
“어디 가십니까?”
헌터들이 ‘술이다! 술!’ 하며 노래를 부르던 와중.
김민준이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단련실 간다.”
“와….”
“미친….”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그 모습에, 헌터들이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포상금 2억을 지급받은 날조차 단련을 거르지 않다니.
“진짜 독하십니다.”
“오늘 같은 날은 그냥 푹 쉬셔도 되지 않습니까?”
“나한텐 이게 쉬는 거야. 좀 지나가게 비켜 봐.”
김민준은 바글바글한 헌터들 사이를 밀치고, 단련실로 향했다.
원래는 적당히 쉴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 당장 확인하고 싶은 변화가 생겼다.
띠링.
마침 메시지도 딱 나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