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진실의 방으로-2
파앗!
주위가 순식간에 어둠으로 물들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순간.
스킬의 효과로 인해, 오우거와 김민준은 다른 차원으로 이동했다.
“이야. 오랜만이네.”
절망의 세계가 보여 주는 황폐한 땅을 보니 절로 향수가 솟아났다.
수분이 없어 쩍쩍 갈라진 검은 땅.
하늘을 뒤덮은 검은 기운.
이곳에서 처리한 놈들만 몇 놈이던가.
“우, 우워어어억!”
김민준이 편안하게 풍경을 감상하는 것과 반대로, 오우거는 당장이라도 죽을 듯이 괴성을 질렀다.
가만히 숨만 쉬고 있는데도 죽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인간!”
“말이 짧다?”
절망의 세계에 들어온 대상은 모든 행동에 제약을 받게 된다.
김민준은 당연히 그 제약을 조절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고.
놈에게 죽지 않을 정도의 제약을 걸었다.
죽지는 않지만, 죽을 만큼 고통스러울 정도의 제약을.
“끄륵….”
오우거는 손으로 목을 벅벅 긁어 댔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데다가, 온몸이 터질 것만큼 고통스러웠다.
“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오크보다는 똑똑하다고 들었는데, 눈치가 빠르네. 좋아.”
눈앞의 인간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자, 목을 옥죄여 왔던 힘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도대체 저 인간… 아니.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는 자의 정체가 무엇인가.
“내 정체가 뭐냐고? 뭐긴 뭐야. 사람이지.”
“워억!”
이제는 머릿속까지 엿본다는 말인가?
두려움에 몸이 절로 덜덜 떨렸다.
“여기는 내 공간이다. 이 안에서는 내가 왕이라는 말이지.”
김민준은 공포에 사로잡힌 오우거를 보며, 씨익 웃었다.
육체는 강인해도, 정신은 강인하지 못한 개체인 듯했다.
‘겁 좀 더 주면 금방 끝나겠는데?’
한쪽 팔을 들어, 크게 휘저었다.
쿠웅!
그러자 오우거의 코앞으로, 검은 형체의 송곳이 떨어졌다.
조금이라도 움직였으면 꼬챙이가 되었을 정도의 거리였다.
“우, 우워억! 살, 살려 주십시오! 뭐든지 하겠습니다! 워억!”
공포감을 느낀 오우거는 몸을 납작 엎드리며, 목숨만 뺏어 가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해 왔다.
‘끝났네.’
저 거구가 굴복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3분.
그만큼, 절망의 세계의 효과는 강력했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거 잘 외워라. 죽기 싫으면. 알겠냐?”
“워억! 알겠습니다!”
**
한편.
던전 밖은 난리가 났다.
각 중대장은 물론이요, 2대대장까지 해당 던전 앞으로 부리나케 달려왔다.
“상황 보고해!”
“예, 예!”
대대장의 성난 목소리에, 2중대장은 차렷 자세로 보고를 시작했다.
“매뉴얼대로 마력포가 올 때까지 대기한 뒤, 오우거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총공격을 가할 계획이었습니다!”
“마력포가 도착하기도 전에 오우거가 튀어나와, 병사들을 뒤로 물렸다. 그런데 김민준 중사는 저놈과 함께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이차적으로 발생할 피해를 막기 위해서. 내 말이 맞나?”
“그렇습니다!”
“후우….”
이준범 중령은 폐쇄된 던전 입구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앞뒤 상황을 확인한 결과, 중대장은 아무 잘못이 없었다.
그는 병사들이 다치지 않도록 신속하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
그렇다고 해서 김민준 중사에게 잘못이 있나?
그것도 아니다.
병사들을 지키겠다고 단신으로 오우거라는 몬스터에게 맞섰는데, 그럴 리가.
“중대장.”
“대위 박서훈!”
“김민준 중사가 오우거에게 이길 확률은 얼마나 되겠나?”
“…냉정하게 말씀드리자면, 1% 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1% 미만.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항상 예상을 뛰어넘은 결과를 보여 줬던 김민준 중사라면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마력포는 김민준 중사의 생존이 확인될 때까지 절대 발포하지 마라. 알겠나!”
“예!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그 뒤로 40분이 지났다.
간부들과 병사들이 초조한 기색으로 숨만 들이쉬던 와중.
스스스스.
“저기! 던전 입구가 열립니다!”
막혔던 던전 입구가 서서히 개방되었다.
쿠웅!
그와 동시에, 던전 밖으로 거대한 발이 빠져나왔다.
오우거의 발이었다.
“어….”
“저건…?”
반사적으로 총구를 겨누던 헌터들은,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것이.
오우거의 뒤로, 김민준이 따라 나왔기 때문이었다.
“…….”
“내가 헛것을 보는 건가?”
간부, 병사들 할 것 없이 모두가 눈을 비볐다.
사람만 보면 못 죽여서 안달 난 것이 몬스터다.
그중에서도, 오우거는 파괴적인 성향이 강한 개체였다.
“얌마! 내가 가르쳐 준 대로 말해!”
“우, 우워어! 인간들! 내가 잘못했다! 난 싸울 생각이 없다!”
그런 오우거가, 무릎을 꿇으며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기 때문이었다.
마치, 초등학생이 부모님에게 벌을 받을 때 하는 그런 포즈였다.
“항복! 항복한다! 인간들의 말을 따르겠다!”
“말이 짧다?”
“따르겠습니다!”
김민준의 말 뒤로, 정적이 10초 정도 흘렀다.
오우거는 그의 눈치를 보며, 해당 자세를 계속 유지했다.
“기, 김민준 중사?”
“중사 김민준!”
침묵을 깬 것은 대대장이었다.
그는 믿기지 않는 듯한 얼굴로, 김민준과 오우거를 번갈아 보았다.
“설마, 저 오우거를 길들인 건가?”
“예. 그렇습니다. 길들였다기보다는, 굴복시켰다는 표현이 정확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건가?”
“저놈은 어린아이 8살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각인시켜 주니, 전투 의지를 잃은 것 같습니다.”
오우거를 생포하려던 시도는 예전에도 있었다.
다만, 지금껏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체력과 맷집을 가진 데다가, 무력화시켰다고 판단되는 순간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는 몬스터였으니까.
“어, 어어. 포획반! 잠깐만. 이놈을 가둘 만한 특수 차량이 있기는 한가? 일단 수송반 쪽에 연락 넣어 봐!”
“예, 예!”
대대장이 헌터 본부 쪽으로 연락을 넣었다.
오우거를 살아 있는 채로 포획했다는 보고.
그 보고에 헌터 본부 측은 그게 진짜냐며 몇 번이고 되물었다.
“예! 제가 지금 두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확실합니다! 특수 차량 지원이 필요합니다!”
-바로 차량 지원을 보내겠다!
정확히 1시간.
던전 밖으로 기어 나온 오우거를 죽인 것도 아니고, 생포하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
그 일 덕분에 헌터군은 완전 뒤집혔다.
얼마나 큰일이었냐면, 해당 일이 일반 군에게까지 퍼진 수준이라나.
“도대체 무슨 수를 쓰신 거지?”
“긁힌 자국도 없다는 게 말이 되냐?”
오우거를 생포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
거기다, 오우거 처리에 동원된 병사들은 단 한 명도 부상을 입지 않았다.
김민준 중사.
단 한 사람이 불러일으킨 결과였다.
“소문으로는 오우거를 피떡이 될 때까지 두들겨 팼다던데? 오우거가 제발 살려만 달라고 빌었다더라.”
“개소리하네. 오우거는 상남자 특성 가진 거 모르냐? 죽거나 죽이거나. 둘 중 하나잖아. 지금까지 생포하려고 했던 오우거들 전부 지 손으로 목숨 끊은 거 모르냐?”
그 덕분에, 어느 생활관을 가던 김민준의 이야기만 들릴 정도였다.
“야. 내가 김민준 중사님한테 살짝 들은 게 있는데.”
다들 열심히 근거 없는 추리를 하던 도중.
김광식 상병이 슬쩍 입을 열었다.
“뭐? 뭔데!”
“빨랑 말해라. 뒤지기 싫으면.”
그 말에, 헌터들이 그의 주위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전투 의지를 상실시키고, 자신에 대한 공포심을 유발하게 하니까 된다더라.”
“에이 시팔.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네.”
“야. 니들은 거기 없어서 모르겠지. 난 코앞에서 봤다니까? 오우거가 김민준 중사님이랑 눈도 못 마주치더라고.”
“도대체 그분은 정체가 뭐냐? 초사이아인 같은 거라도 되냐?”
“손에서 레이저라도 나가시나? 어떻게 한 거지?”
당연하지만 김민준의 정체가 흑마법사라는 걸 모르는 헌터들은, 그럴듯한 추측을 하며 대화를 나눌 뿐이었다.
“민준아. 너 진짜 몸 괜찮냐?”
한편.
김민준은 김철민 중위와 함께, 대대장실에서 대기하는 중이었다.
중대장과 대대장은 어제 있었던 일의 보고 때문인지, 자리를 비운 상태.
“중사 김민준. 전 멀쩡합니다.”
김민준은 소대장에게 보라는 듯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였다.
“그래. 어제 병원 가서 따로 정밀 검사도 받았으니까, 괜찮겠지.”
그 모습을 바라보던 소대장이 허탈한 듯이 웃었다.
자신 역시, 두 눈으로 그 광경을 목격하긴 했다.
다만, 그것도 던전 밖에서뿐이다.
던전 안의 상황은 김민준밖에 알 수가 없었다.
“허, 참… 이병 때부터 예사롭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오우거는 선 많이 넘은 거 아니냐?”
“그렇습니까?”
“그렇습니까는 무슨! 세계를 뒤져 봐도 맨손으로 오우거를 두들겨 팬 헌터는 너밖에 없을 거다! 어디 그뿐이냐? 살아 있는 오우거를 샘플로 확보한 건, 우리나라가 최초일 거라고!”
김철민 중위는 특별 진급이 되지 않는다면, 계급장을 걸고서라도 항의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실 필요까지 있습니까. 지금까지 전례가 없던 일을 해낸 거니까, 제 생각에는 충분히 해 줄 것 같습니다.”
“그 전례가 없는 일은 이렇게 무덤덤하게 말하는 놈도 처음이다, 이놈아! 크하하하하!”
그는 이대로 가다간, 자신까지 대위로 진급하는 게 아니냐며 시원하게 웃었다.
“어디 그뿐이겠냐? 지금 제일 기분 좋은 사람이 누구겠냐?”
“대대장님 말씀이십니까?”
“그분도 그렇겠지만, 사단장님이 가장 기분이 좋으시겠지. 이런 큰 건이 터졌는데, 진급 점수에 영향을 안 줄 리가 없거든. 별들이 너한테 눈독을 들이겠는데.”
별들이 나한테 눈독을 들인다라.
사실, 진작에 그런 귀띔은 받은 상태지.
이번 일로 인해 내 가치는 더욱 올라갔을 테고.
‘역시. 그놈을 굴복시킨 건 최고의 한 수였어.’
이것 또한, 새롭게 얻은 스킬 덕분이다.
절망의 세계가 없었더라면, 오우거를 생포하는 건 아무리 자신이라도 불가능했다.
단순히 두들겨 팬다고 해서 말을 들을 놈이 아니었으니까.
‘내 생각대로 일이 착착 풀려 나가는구만.’
이제 여기서 상사를 달고, 충분한 포상금을 받으면 완벽하지.
덜컥!
그렇게 만족감에 젖어 있던 사이, 누군가가 문을 열어젖혔다.
별 두 개가 달린 계급장.
104사단 사단장, 두석용 소장이었다.
“충! 성!!”
“추, 충성!”
그 모습을 보자마자, 김민준과 김철민 중위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거수경례를 했다.
“그래. 어젯밤에 큰일이 있었지. 몸은 괜찮고?”
“예! 그렇습니다.”
“그래. 소대장은 잠시 자리 좀 비워 주겠나. 김민준 중사랑 할 얘기가 있거든.”
“예! 바로 나가겠습니다!”
김철민 중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다닥 대대장실을 나갔다.
“…아주 큰 일을 해 줬어.”
어느새 둘만 남게 된 대대장실.
두석용 소장은 김민준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기분 좋았던 적은, 별을 단 뒤로 처음이었다.
“김민준 중사. 자네와 나눌 얘기가 좀 있는데, 시간 괜찮나?”
“예! 괜찮습니다.”
괜찮고말고.
남는 게 시간인데.
“일단 그 전에, 좋은 일부터 말해 줘야겠지.”
그 뒤로 이어진 사단장의 말.
‘이거지.’
김민준은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