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진실의 방으로-1
폐쇄형 던전에서 브레이크가 일어날 낌새가 보인다는 것.
그 장소는 공략 후순위로 지정된 던전이었다.
안에 있는 몬스터는 지금까지 상대했던 몬스터들 중에 가장 거대한 놈이고.
‘생각보다 빨리 사용하겠는데?’
새롭게 해제된 스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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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 중대에 해당하는 병력들이 문제의 던전 앞으로 집합했다.
그뿐만 아니라, 실전에서 잘 운용되지 않는다는 HK-9 마력포까지 동원될 예정이란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헌터군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묻어 나왔다.
“다들 주목!”
어느새 현장에 도착한 중대장이 가쁜 숨을 뱉으며 던전 입구를 가리켰다.
“저 던전은 지금부터 약 10개월 뒤에 공략 예정인 폐쇄형 던전이다. 그리고, 저 안에 있는 몬스터는 오우거다.”
“오, 오우거 말씀이십니까?”
오우거라는 말에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그럴 것이, 오우거는 헌터군 생활 5년 중 1번 마주칠까 말까 하는 정도인 몬스터였기 때문이다.
오크에 비해 최소 2배.
최대 4배까지 거대한 덩치.
당연히 힘과 체력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강하다.
2개 중대가 마력탄을 미친 듯이 갈겨도 거뜬하게 버텨 내는 몬스터.
그것이 바로 오우거였다.
“다들 정신 차려! 갑작스러운 건 중대장도 이해한다!”
겁먹은 듯한 헌터들의 반응에, 중대장이 성난 듯 언성을 높였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저놈을 안 막으면 어떻게 되겠나? 힘없는 민간인들이 죽어 나간다는 말이야! 특히나 다른 몬스터도 아니고, 오우거다! 저놈을 막지 못하는 순간, 최소 수백 명 이상의 인명 피해가 생긴다고!”
던전, 그리고 몬스터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중대장의 일침.
그 말에, 헌터들이 마음을 다잡으며 신속하게 대열을 만들었다.
“소대장. 마력포는 얼마나 걸린다고 하던가?”
“예! 최소한의 점검을 마친 뒤에 바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30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래. 그 정도면 충분하다. 관측반에서는 아무리 빨라도, 2시간 정도의 여유는 있다고 했으니까.”
마력포.
육군에서 사용하는 모델인 k-9 자주포를 개조해 만든 전차다.
몬스터에게 효과적인 마력 포탄을 사용하기 때문에, 강력한 화력을 자랑하는 것이 장점이다.
헌터들이 애먹는 오크는 마력 포탄 한 방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정도.
오우거 같은 대형 몬스터도, 마력포가 있다면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다.
‘마력포라. 몇 번씩 눈으로 보기는 했었는데.’
김민준은 마력포를 동원한다는 말에, 눈을 빛냈다.
마력포를 실제 상황에서 사용한 적은, 지금껏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고 들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지. 저거 움직이는 게 다 돈인데.’
전차 자체의 대 수는 많지만, 실제로 운용되는 건 한대에서 두 대 정도뿐이다.
마력포의 전용 포탄을 만드는 데, 어마어마한 마력석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최근에 지급받은 무기조차 총이 아닌 검이지.’
마력석이라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헌터군은 그것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최전방인 강원도 철원에서조차 마력탄을 아껴야 하는 수준이라면 말 다 했지.
‘몬스터는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지만, 마력석은 던전 클리어한다고 주는 게 아니거든.’
김철민 중위의 말에 따르면.
저 눈앞에 있는 던전은, 헌터들이 마력검에 능숙하게 적응하고 나서 공략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마력검의 절단력은 확실하니까. 최소한의 비용으로 오우거를 처리할 생각이었겠지.’
10개월에서 12개월 뒤에 있을 일정이, 오늘로 당겨져 버렸으니까 부랴부랴 마력포를 꺼내 오는 거고.
“아… 미치겠네. 뭔 오우거냐. 재수 한번 더럽게 없네.”
“제 말이 말입니다. 헌터군 생활 5년 동안 1번 마주치기도 어렵다는 놈을….”
김민준이 저놈을 어떻게 꺼내 올까 생각하던 찰나.
마침 근처에 있던 김광식 상병이 잔뜩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훈련용 오크를 상대할 때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실전에서 마주치는 오우거라고? 차라리 날 죽여라.”
“오. 그래. 그거다.”
“…예?”
김광식은 환하게 웃는 김민준을 보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저 인간이 또 무슨 짓을 저지르려는 것일까.
“김민준 중사님. 전 김민준 중사님이 괴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인간 중에서 괴물이라는 말입니다.”
오우거는 차원이 다른 몬스터니, 절대 혼자서 상대하면 안 된다.
상식이 박힌 헌터라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설마 혼자서 들어가실 생각을 하시는 건….”
그런데.
김민준 중사님의 저 표정을 보면, 뭔가 꾸미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같은 생활관에서 먹고 잔 지가 몇 개월째인가.
그 정도를 눈치채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았다.
“얌마. 아무리 나라고 해도 무식하게 혼자서 들어가겠냐?”
김광식, 이 눈치 빠른 자식.
반 정도는 정답이다.
‘그리고 반은 틀렸다. 지금부터 내가 이렇게 할 거거든.’
마력포 한 발에 드는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당연히 한 발 가지고 오우거를 처리할 수 있을 리도 없고.
‘오우거라면 마력포 세 발 이상은 먹여야 할 테고, 두 개 중대가 마력탄을 미친 듯이 쏟아부어야 하겠지. 그렇게 해도 쓰러트린다고 장담은 못 하고.’
저거 다 계산하면 나가는 돈이 다 얼마야.
국민들의 세금을 굳이 저렇게 사용할 필요가 없지.
‘오랜만에 힘 좀 써 볼까. 흑마 그랩!’
김민준은 던전 안으로, 마기의 손아귀를 사용했다.
이런 상황에서 단독 행동은 불가능하다.
거기다, 새롭게 얻은 스킬을 사용할 환경도 안 되고.
‘그러면, 단독 행동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면 되지.’
마기의 손아귀를 던전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스킬 등급이 오른 덕분에, 사정거리가 꽤 늘어나 여유롭다.
적당히 몬스터가 있을 만한 부분을 두들기니, 곧바로 반응이 왔다.
쿠웅! 쿵!
던전 안에서 흘러나오는 묵직한 발소리.
덩치가 얼마나 큰지, 던전 입구가 부서지려고 하기까지.
그 낌새를 느낀 중대장은, 재빨리 중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뒤로 물러나! 발포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 절대 발포하지 마라!”
“뭐야! 벌써?”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아직 마력포 도착 안 했는데!”
헌터들이 아연실색하며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아. 다시 생각해도 연출 하나는 예술이라니까.’
한편.
김민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예상대로.
이제 저놈이 밖으로 나오는 순간, 생각했던 대로 움직이면 될 뿐.
“우워어어어어어!”
오우거가 던전 밖으로 빠져나올 때까지 걸린 시간은 10분.
본래 같으면 관측소의 예측대로 2시간.
길게는 3시간까지 걸렸을 터지만, 김민준이 그 시간을 최소한으로 단축시켰다.
“인간들! 나 건드렸다! 화났다!”
오우거는 뭔가에 잔뜩 성이 나 있는지, 던전 밖으로 나오자마자 헌터들을 향해 내달렸다.
“후퇴! 후퇴해라!”
“뭉쳐 있지 말고 흩어져! 빨리!”
예상치 못한 돌발 행동.
땅이 크게 울리는 탓에 헌터들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내 몸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한번 볼까.’
모두가 후퇴하는 상황.
김민준은 오히려, 땅을 박차고 달렸다.
“저건… 김민준 중사!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물러나!”
“저놈을 이대로 두면 큰 피해가 발생합니다! 제가 시간을 끌겠습니다!”
“뭐, 뭐라고? 김민준 중사! 저놈은 오크가 아니다! 오우거라고! 일개 헌터가 감당해 낼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란 말이다!”
저건 자살 행위다.
아무리 김민준이 강한 헌터라고 해도, 저건 안 된다.
마력검을 완벽에 가깝게 다룰 수 있다곤 하나, 오우거에게 먹힐지 아닐지는 아직 연구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그렇게 판단한 중대장은 강제로라도 그의 행동을 멈추게 하려고 했다.
“우워어어억!”
그 순간.
오우거가 괴상한 움직임을 보였다.
마치 뭔가에 잡혀, 끌려가는 듯한 움직임.
“…뭐, 뭐야?”
오우거는 팔을 휘적거리며, 나왔던 던전으로 끌려들어 가듯이 사라졌다.
“중대장님! 절 믿고 기다려 주십쇼!”
곧이어 김민준이 몬스터를 뒤를 따라 들어가며, 던전의 입구가 폐쇄되었다.
고작 수 초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 이럴 때가 아니다! 당장 보고해야 된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중대장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대대장에게 연락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보통 상황이 아니었다.
-이런 미친 새끼가! 뭐? 김민준 중사가 그 던전에 들어갔다고? 네가 어떻게 해서든지 막았어야지! 넌 중대장이라는 놈이 뭘 한 거야!
“죄, 죄송합니다!”
무전 너머에서 온갖 욕설이 날아온다.
그럴 수밖에.
대대장은 현재 대령으로 진급을 앞두고 있고, 김민준을 앞세워 입지를 다져 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 상황에 김민준이 오우거가 있는 던전으로 혼자 들어가게 되었으니.
‘…워낙 순식간이라서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만.’
자신이 있는 욕 없는 욕 다 먹긴 했지만, 억울하지는 않았다.
자칫하면 큰 인명 피해가 날 뻔한 상황이다.
그 상황을, 김민준이 단독으로 막아 준 것이었으니까.
‘김민준 중사. 제발 살아서만 돌아와라.’
중대장은 폐쇄된 던전 입구를 바라보며, 마력포를 추가로 동원해 달라는 지원 요청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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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완벽했어. 그냥 영화감독이나 해야 하나?”
마기의 손아귀를 이용해 오우거를 자극한 뒤, 놈이 나오면 다시 집어넣는다.
그 뒤.
여기서 저놈을 처리하고 멀쩡하게 살아 돌아오면, 그야말로 완벽한 시나리오.
“다급한 표정 연기도 좋았고. 나중에 헌터 신문에 실리는 거 아닌가?”
인터뷰 같은 거 하면, ‘국민들이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몸부터 움직였습니다.’라고 말해야지.
캬.
다들 좋아 죽겠는데.
“우워어어어! 인간! 죽인다!”
행복한 상상을 펼치고 있던 찰나.
어느새 몸을 일으킨 오우거가, 다짜고짜 주먹을 휘둘러 왔다.
“성질도 급하네.”
탱크도 납작한 전으로 만들어 버리는 위력의 힘.
하지만 그런 오우거라도 김민준의 앞에서는 애교인 수준이었다.
“우, 우워억?”
“내 힘 스텟이 몇인지 아냐? 84야. 84. 오우거의 힘은 아무리 높아 봐야 70 정도지.”
가볍게 놈의 주먹을 막아낸 뒤, 힘껏 밀었다.
쿠우웅!
엄청난 거구를 자랑하는 오우거는 별 저항을 하지도 못한 채 뒤로 넘어갔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오우거를 생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 않았던가?
“겉으로는 멍청해 보여도 어느 정도 지능은 가지고 있는 데다가, 굴복할 바에 죽음을 택하는 남자다운 놈이었지? 오우거가?”
헌터 본부의 공식 기록에 따르면, 지금까지 오우거를 처리한 횟수는 약 21번.
생포하려고 시도한 적이 4번이었다.
그 4번 모두, 오우거가 생포되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고.
“그 말은, 여기서 이놈 데려가면 상사로 진급 확정이라는 거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전례가 없던 일이다.
이놈을 굴복시켜 생포하는 순간, 엄청난 실적 점수를 얻게 될 터.
“진실의 방으로.”
김민준은 다시 몸을 일으키려는 오우거에게, 절망의 세계를 사용했다.
“네가 1시간 안에 굴복한다에 내 손모가지와 던파 아이디를 건다.”
넌 뭘 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