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새로운 스킬
[영구 기관의 숙련도가 상승하였습니다!]
[영구 기관의 스텟이 1 상승하였습니다!]
[영구 기관의 생산 효율이 약간 증가하였습니다!]
[절망의 세계(D)가 생성되었습니다.]
“이거.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사기였잖아?”
새로운 스텟, 영구 기관 덕분일까.
자신의 주력 스킬 중 하나인 절망의 세계가 해제되었다.
[절망의 세계: 지정한 대상을 절망의 세계로 끌어들입니다. 절망의 세계로 들어간 대상은 모든 행동에 제약을 받습니다. 절망의 세계에서 사망한 대상은, 다시 원래 지점으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시전자와 지정한 대상을 아예 다른 차원으로 데려가 버리는 강력한 스킬, 절망의 세계.
그 차원 안에 머무는 동안 시전자가 데려온 대상은 온갖 악영향을 받게 된다.
숨 쉬는 것부터 시작해서, 움직이는 것까지 말이다.
자신은 그 제약을 조절할 수도 있었고.
“저 스킬 덕을 많이 봤지.”
이세계에서 구르던 시절.
밑바닥부터 올라가야 했기에, 죽을 위기를 수백 번.
아니, 수천 번 가까이 겪었다.
그때 밥값 노릇을 톡톡히 해 준 게 절망의 세계였다.
저 스킬이 없었다면 한국 땅을 밟지도 못하고 죽었을지도 모른다.
“횟수에 제한이 있는 스킬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오히려 좋지.”
저 스킬을 사용하는 것에는, 마기가 소모되지 않으니까.
횟수 제한이 있지만 마기 제한은 없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금과 같은 스킬이라는 말이다.
어디 그뿐이랴.
가는 길마다 CCTV와 자동차의 블랙박스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완전 범죄가 가능한 스킬이기도 했다.
이렇게 말하니 꼭 범죄자 같지만, 그런 짓을 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막 죽이거나 하지는 않지. 몬스터라면 모를까. 내가 한국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스킬 등급이 낮은 지금.
1시간 남짓한 짧은 지속 시간과, 1명의 대상만 지정할 수 있다는 게 단점이긴 했다.
물론 현시점에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마기를 만들어 내는 속도도 빨라졌고.”
김민준은 시선을 배로 옮겼다.
눈을 감아 보면, 영구 기관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금 전에 얻은 마기들을 영구 기관에 쏟아부은 만큼, 충분한 발전이 있었다.
“하여간 신기한 스텟이라니까. 가상의 기관인데 진짜 몸 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물론 여전히 마기를 생산해 내는 속도는 느리다.
생산 효율이 증가해 봐야, 굼벵이에서 거북이가 된 수준.
눈을 감고 집중을 해야 체감이 될 정도였다.
“중사 다는 데까지는 내 예상보다 살짝 더 걸리긴 했는데, 원래 힘을 되찾는 건 내 예상보다 훨씬 빠른데?”
계단형 던전을 클리어하고, 아이템을 얻은 그 시점.
그 순간부터, 자신의 성장에 가속도가 붙었다.
처음 보는 뽑기형 아이템을 사용해, 새로운 스텟을 얻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거기다 흑마법사에게 딱 필요한 스텟이 존재할 줄이야.
“힘 조절만 신경 쓰면 되겠네.”
그렇게 만족감을 만끽하고 등을 돌린 순간, 여러 개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김민준 씨!”
“아무리 생각해도 혼자서 그놈을 상대하시는 건 미친 짓입니다! 그냥 저희가 가담을… 응?”
자신의 지시대로 멀리 대피해 있던, 민간 헌터들이었다.
그들은 커다란 폭음이 울리자마자, 반사적으로 자신을 향해 뛰어온 듯했다.
“리더! 저, 저거 보십쇼!”
“저건….”
“아까 마주친, 그 거미… 맞죠?”
동료 한 명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거미 다리 여덟 개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그나마 단단한 다리 부분은 발견할 수 있었지만, 다리를 제외한 부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
“설마….”
한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이시우는 김민준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김민준 씨? 설마… 방금 그놈을 혼자서 처리하신 겁니까?”
“네. 민간 헌터분들께서는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서, 제가 처리하게 되었습니다.”
애초에 물어볼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다.
던전 안에 자신들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무기도 없으신데… 어떻게 처리하신 겁니까?”
“방금 본 놈은 평범한 놈이 아니었습니다. 무슨 거미가 오크 쌈 싸 먹을 만큼 커서….”
“이걸로요.”
김민준은 호들갑 떠는 민간 헌터들에게, 주먹을 들어 보였다.
“놈의 배를 온 힘을 다해 두들겼거든요. 그러더니 어느 순간 풍선처럼 터지더라고요.”
“…맨주먹으로요? 그런데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난 겁니까?”
“무궁화 두 개 정도 달면 이 정도는 하죠. 아! 전 간부치고 강한 편이긴 합니다.”
“허….”
“그럼 영관급 장교들이 할 수 있는 걸, 중사분이 하셨다는 겁니까?”
민간 헌터들은 충격에 빠진 얼굴로, 흩어진 거미 다리와 김민준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마력 폭탄이라도 사용한 줄 알았는데 실상은 전혀 아니었다.
상식을 벗어난 힘.
헌터군들 중, 무궁화나 별들은 맨손으로 몬스터를 터트려 죽인다는 소문을 듣긴 했었다.
“소문은 과장된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시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헌터라고 해 봐야 강화 인간이다.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캡틴 아프리카 같은 강화 인간 말이다.
아무리 강한 헌터라고 해도, 무기 의존도가 높다고 알고 있었는데….
맨손으로 규격 외의 몬스터를 때려잡을 줄이야.
‘사실 무궁화 하나라도 방금 같은 놈은 힘들었겠지만.’
김민준은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상당량의 마기를 품고 있는 거대 인면 거미.
맨손이라는 가정이라면, 소령 2명은 달라붙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무기를 소지한 채라면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겠지만.
“저기 남은 다리들은 가지세요. 어쩌다 보니, 던전을 제가 클리어해 버렸네요.”
그는 민간 헌터들에게 손을 흔들며, 유유히 던전 밖으로 나갔다.
“…리더님.”
어느새 민간 헌터들만 남게 된 던전 안.
그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살았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도 있었지만,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었다.
3개월에 걸친 서류 준비.
까다로운 헌터군의 심사.
정기적인 합동 훈련 등등….
많은 준비를 했지만, 돌아온 건 저 거미 다리뿐이었다.
“예, 예?”
“우리가 살아남은 건 좋은데요….”
민간 헌터 한 명이 거미 다리를 가리켰다.
“거대 인면 거미의 다리. 저거 팔아 봐야 돈도 안 됩니다.”
“저 무거운 거 팔아 봐야 치킨 한 마리 값도 안 나올걸요.”
“…….”
“망했네.”
결국.
해당 던전은 김민준에게는 보물 창고였지만, 민간 헌터들에게 있어서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
-아니, 김민준 님?
던전 밖으로 나오자, 이봉구가 후다닥 어깨 위로 날아왔다.
-분명 저 던전에는 마기가 있었는데… 현재 김민준 님의 몸에는 마기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봉구는 초조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분명 던전 안에 들어갈 때는 마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마기가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뭔가 잘못되기라도 한 걸까.
분명 제대로 된 마기를 찾았는데.
“이봉구.”
-예, 옙!
이봉구의 그런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김민준이 기분 좋게 웃으며, 지갑을 꺼냈기 때문.
“이걸로 하고 싶은 거 해라. 그리고 당분간 쉬고. 마기도 바닥나 가는데, 용케 여기까지 왔네.”
김민준은 녀석에게 마기와 돈을 쥐여 준 뒤, 본래 부대로 향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되게 좋아 보이시네. 그런데… 이 느낌은 뭐지?
이전에 김민준 님이 전해 준 마기와… 방금 막 전해 준 마기.
뭔가가 달라졌다.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겠지만… 묘한 기분이 들었다.
김민준 님이 기분 좋으시니 됐지 뭐! 그것보다, 지금 당장 부산 국밥을 먹으러 간다!
이봉구는 김민준이 마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
“김민준 중사님?”
“왜.”
휴가를 즐기고 오니, 분대원들이 이상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뭔가 불만이라도 있는 것일까.
“중사 다신 지 좀 지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간부 숙소로 안 가십니까?”
아.
뭔가 했더니, 그 얘기였나.
그건 당연히 이유가 있지.
“거기 인터넷 느리다더라. 거기 가면 던파 못 하니까, 그냥 여기서 지내려고.”
“…….”
“왜. 내가 여기 있으면 너네들 잡아먹기라도 하냐?”
“그게 아니라, 보통은 간부 숙소로 가지 않습니까?”
이승호 병장이 어이가 없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이곳, 생활관은 기본적으로 단체 생활이다.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간부의 장점 중 하나라고 하면, 간부 전용 숙소.
1인 1실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인데, 그걸 마다하는 헌터가 있다니.
“내가 처음에 말했잖아. 거긴 인터넷 느려서 던파가 안 된다니까. 그리고 난 여기가 좋아.”
“정말 유별나십니다.”
“특별하다고 해야지. 그것보다, 어떠냐. 마력검 적응은 잘돼 가냐?”
그 말에 분대원들이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이제 4개월 차로 접어드는데, 말도 안 되게 어렵습니다.”
“이거 실전에서 쓰려면 6개월은 무슨, 1년도 넘게 걸릴 것 같습니다.”
진급에 많은 영향을 미치다 보니 노력을 쏟고는 있는데, 좀처럼 발전이 없단다.
“손은서 병장쯤은 되어야 6개월 안에 실전에서 써 볼까 말까일 것 같습니다.”
“힘들 만하지.”
김민준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평범한 군용 검을 쓰다가, 오러를 두를 수 있는 판타지틱한 검을 쓰게 됐으니.
물론 실전에서 사용한다고 해 봐야, 던전 안에서는 10분 남짓 사용할 뿐일 것이다.
마력검은 위력은 강하지만, 그만큼 체력 소모가 심한 무기였다.
“손은서처럼 재능 있는 애들이 부럽다니까.”
“김민준 중사님께서 하실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김민준 중사님 같은 헌터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분대원들은 그건 아닌 것 같다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군부대라는 특성 때문에 소문이 안 났을 뿐.
이곳이 군대라는 집단이 아니었다면, 김민준은 분명 유명해졌을 것이다.
그가 단기간에 이룬 일이 그만큼 엄청났으니까.
“와… 생각해 보니까, 김민준 중사님 맞후임으로 들어오는 애는 불쌍하겠는데.”
“아….”
“미친. 그렇네. 맞선임이 간부에다가, 중사잖아. 저런 경우가 세상에 어디 있냐.”
김광식 상병의 말에, 다른 분대원들이 소름 끼친다는 표정을 지었다.
헌터군도 다른 군대와 마찬가지로 기본은 기수제였기에.
“난 맞후임 들어오면 잘해 줄 거다. 그리고 강하게 키워야지.”
맞후임이 언제 들어오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내가 여기 온 지 6개월쯤 지났나? 강원도 최전방은 군번줄 가끔씩 꼬인다던데 내가 딱 그 상황이네.”
강원도.
특히 최전방이 그러했다.
철원 같은 경우는, 군번줄이 꼬이면 6개월에서 7개월까지 맞후임이 안 들어온다고 한다.
그만큼 막내 생활을 오래 해야 한다는 말이다.
김민준 역시 군번줄이 꼬인 케이스였지만, 압도적인 실적으로 진급을 빨리했을 뿐이다.
육군 같은 곳이었다면 여전히 막내였을 것이다.
툭툭.
분대원들과 잡담을 나누던 도중, 스피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직 사관이었다.
-당직 사관이 알린다! 비상 상황이 발생했다! 현재 상황은 훈련 상황이 아니다!
오후 8시.
전 병력 전투 준비를 하라는 말과, 포병 헌터의 호출.
‘오? 그렇단 말이지?’
이게 무슨 일인가 싶던 찰나.
나이트 워커가 해당 상황에 대해 보고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