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꺼억
“이봉구. 타이밍 좋게 잘 찾았네. 기특한 자식.”
김민준은 이봉구의 보고를 듣자마자 휴가를 신청해 부산으로 향했다.
얼마 전 던전 공략도 끝났고, 훈련 일정도 여유롭다.
거기다, 자신은 이제 병사가 아닌 간부의 위치.
복무 지역에서 멀어져도 상관없었다.
해외 같은 경우는 따로 허락을 맡아야 하긴 했지만.
“개좌산이라고 했지.”
녀석이 알려 준 위치에 가까워질수록, 짙은 마향이 느껴졌다.
확실하다.
던전 밖으로 흘러나오는 마향이었다.
“이야. 실한 놈이네.”
지금껏 마기를 품은 몬스터를 수차례 처리해 왔지만, 이만큼 강대한 마기를 품은 놈은 처음이었다.
“이런 놈이 던전 밖으로 나오기라도 하면 그 순간 끝이지.”
지금까지 던전 브레이크가 안 터진 게 다행이었다.
강원도 철원에서 부산까지 단시간에 가는 건, 현재 자신의 스펙으로는 불가능했으니까.
-김민준 님!
던전에 가까워지자, 까마귀로 변한 이봉구가 어깨 위로 날아왔다.
“연락이 뜸하더니, 부산까지 갔었냐? 수고했다.”
-그것보다, 김민준 님! 저놈, 무슨 짓을 한지 아십니까?
녀석은 자신의 근처에서 흐물거리는 나이트 워커를 가리키며, 불만스럽게 말했다.
그동안 개고생해서 던전을 찾았는데, 소환수가 그 공적을 가로채려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스스슥.
그런 적 없다고 시치미를 떼는 나이트 워커.
-뭐, 뭐라고? 네 주인님 앞에서 철판을 까는 거냐?
“그래. 저기 저쪽에 가서 싸워라.”
-기, 김민준 님!
유치하게 싸움을 시작하는 놈들은 뒤로한 채, 김민준은 던전으로 향했다.
그동안 모아 둔 마기를 모조리 사용해 버린 지금, 한시라도 빨리 새로운 마기를 흡수하고 싶었다.
“어? 그쪽은….”
“헌터군이세요?”
던전 앞에는 이미 선객들이 모여 던전에 입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민간 헌터였다.
‘저번에 본 사람들이랑은 다르게, 본격적이네.’
일반인이 보면 군인이라고 착각할 수 있을 정도의 특수 의상.
총기는 보이지 않는다.
민간 헌터에게, 총기의 소지는 허용되지 않았으니까.
그 대신, 그들은 날카로운 날붙이나 석궁 같은 무기를 등에 메고 있었다.
“나라 지키느라 고생이 많습니다. 전 여기 민간 헌터 단체의 리더를 하고 있습니다.”
김민준이 눈으로 민간 헌터들을 훑는 사이.
건장한 체격의 청년이 가까이 다가왔다.
“이시우입니다. 부산 헌터군 부대 소속 간부신가요?”
“아뇨. 저는 강원도 쪽에서 왔습니다. 여기 공략 허가는 받으셨어요?”
강원도에서 왔다는 말에, 민간 헌터들이 수군거렸다.
한 달 동안 던전 공략을 준비했는데, 무슨 문제라도 생겼는가 싶어 불안한 기색이었다.
“예. 확실히 받았죠. 여기 보세요. 관련 서류입니다.”
자신을 이시우라고 소개한 민간 헌터는, 두꺼운 서류 봉투를 김민준에게 넘겨주었다.
“흠….”
말없이 서류 봉투들을 넘기는 김민준.
한 번 훑고, 두 번 홅고.
‘뭐야. 얘네들 뭐 이리 철저하게 준비했냐?’
저번과는 다르게, 잡아낼 건덕지가 아예 없었다.
‘3개월 전부터 이 던전을 발견하고, 준비해 왔다 이건가.’
저 앞에 있는 던전은 폐쇄형 던전이다.
그리고 마기를 품고 있는 몬스터가 존재하고 있고.
민간 헌터 20명 남짓으로는 절대 공략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놈들 그냥 들여보내면 다 죽어 버릴 텐데.’
어떻게 할까.
저번처럼 돈 걸고 내기라도 하자고 해 볼까?
“저 던전, 저한테 양보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지난번과는 다르게, 1억이라는 거액을 제시했다.
던전을 양보해 주기만 하면 1억을 주기로.
“죄송합니다.”
이시우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1억. 큰돈입니다. 하지만, 민간 헌터라는 직업을 업으로 삼아야 하는 저희들에게는 경험 역시 중요합니다.”
민간 헌터는 던전 하나의 공략권을 따 내는 것만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거기다 돈 주고도 못 사는 경험을 얻을뿐더러, 스텟의 성장은 민간 헌터가 약하다는 인식을 바꿀 수 있다나.
당장의 돈보다, 미래를 생각하는 사고방식이었다.
“그럼 안전상 동행만 하는 건 괜찮죠?”
“예. 오히려 그럼 저희가 고맙죠.”
저 던전 안에는 마기가 몬스터가 있다.
기척으로 가늠해 보면 최소 중급 이상.
본래 같으면 어떻게서든 막았을 테지만, 민간 헌터들은 방독면까지 구비를 해 놓은 상태였다.
‘방독면이 있다면 뭐. 굳이 막을 필요는 없지. 새어 나오는 마기를 막아 줄 테니.’
그런데.
헌터군 방독면보다 좋다는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인가.
‘나도 예전에 비하면 강해진 것도 사실이지. 민간 헌터 20명? 충분히 혼자 보호하고도 남는다.’
저 안에 어떤 몬스터가 있더라도, 맨손으로 두드려 팰 자신이 있었다.
“자. 여러분들 긴장 푸시고. 헌터군 간부님께서 안전상 동행까지 한다고 하시니까요. 다들 지시대로 잘 움직여 주세요.”
“예!”
“넵!”
짧은 브리핑이 끝나고, 민간 헌터와 김민준이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민간 헌터들은 사주 경계를 하며, 천천히 앞을 향해 걸어갔다.
한두 번 해 본 듯한 솜씨가 아니다.
제법 그럴듯했다.
“그런데, 민간 헌터를 고집하시는 이유라도 있나요?”
던전의 중간 지점까지 이동하고,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김민준은 이시우에게 질문을 던졌다.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토록 까다로운 심사 과정을 거치면서, 민간 헌터를 왜 할까.
“돈도 돈이지만, 시민들의 안전 때문이죠.”
생수를 힘껏 들이켠 이시우는, 헌터군에 대한 장점과 단점을 나열했다.
“헌터군은 강한 힘을 가진 집단입니다. 그들이 해마다 공략하는 던전의 수나, 비상시 발생한 게이트에 대처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죠. 하지만, 군부대는 주로 외곽 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무슨 일이 발생하고, 헌터군이 도착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피해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말.
“하지만 민간 헌터는 거주지와 행동에 제약이 없죠. 시내에 게이트가 발생한다면, 5분? 아니. 3분 안에 대처할 수 있을 겁니다. 저희는 그 일이 발생했을 때를 위해 힘을 기르고 있는 거고요.”
“괜찮네요.”
김민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단점으로 짚은 저 말은, 헌터군의 확실한 단점이었으니까.
“군 조직의 특성 때문에, 그 부분은 어쩔 수 없습니다. 부대를 외곽 지역으로 배치하는 것도, 주로 그런 지점에 던전과 게이트가 발생하니까요. 인력에 대한 한계점도 있고.”
“어… 비판하려고 말한 건 절대 아닙니다. 헌터군분들이 고생하시는 건 잘 알고 있거든요.”
손을 황급히 저으며 대답하는 이시우.
그를 보며, 피식 웃어 주었다.
“제가 별. 아니, 무궁화 달 때쯤만 되면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겁니다.”
내가 그 취약점을, 어떻게든 극복해 버릴 테니까.
“다시 이동하겠습니다!”
짧은 휴식 시간이 끝나고, 던전 공략이 재개되었다.
“리더님!”
다들 말없이 나아가던 중.
동료들이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정지 신호를 보내 왔다.
“몬스터가… 한 마리도 없습니다.”
“뭔가 이상합니다.”
던전의 중앙을 지나, 끝부분으로 향하고 있다.
그런데, 몬스터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니.
사전에 조사한 내용과 확연히 다른 상황이었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이쯤에서 레드 보어 무리들이 공격해 왔어야 했는데….”
던전 조사 자료를 꺼내며 다시 검토해 가는 한 명의 민간 헌터.
파앗!
김민준은 해당 남성의 어깨를 잡고, 뒤로 밀었다.
“어억!”
“아니, 지금 갑자기 뭐 하시는….”
“여기 보세요.”
김민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이게 무슨 짓이냐며 항의해 오는 민간 헌터들.
그는 손가락으로 던전 바닥을 가리켰다.
“이건….”
“거미줄인가?”
남성이 서 있던 자리에는 끈적거리는 하얀 실이 달라붙어 있었다.
분명히 아무것도 없었을 터인 위치에 말이다.
쉬이이이익!
그들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사나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레드 보어의 울음소리는 절대 아니다.
“다들. 살고 싶으면 방독면 착용하시고, 뒤로 물러나세요.”
“예?”
“이 던전 안에 있는 놈, 거대 인면 거미입니다.”
“거, 거대 인면 거미요?”
김민준의 말에, 민간 헌터들 대다수가 겁을 먹고 후다닥 물러났다.
방독면을 왜 착용하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헌터군의 지시니 잠자코 따랐다.
촤락! 촥!
시간이 지날수록, 가까워지는 기괴한 소리.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는, 그의 말대로 거대 인면 거미였다.
“되게 크네. 다른 몬스터들은 네가 다 잡아먹었냐?”
거대 인면 거미.
배 쪽에 사람의 형상을 한 무늬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놈은 오크만큼 덩치가 크고, 날렵하다.
그뿐만 아니라, 틈만 나면 강한 접착력을 가진 거미줄까지 뱉는다.
화염 방사기 같은 특수 장비가 없다면 처리하기 까다로운 몬스터다.
마기를 품고 있어서일까.
놈의 덩치는, 기존 몬스터보다 3배 가까이 컸다.
“뭐, 뭐 저렇게 커!”
“우린 이제 다 죽었다!”
민간 헌터들은 던전 출구 쪽으로 도망쳤지만, 곧 희망이 없다는 걸 깨닫고 절망했다.
이 던전은 폐쇄형 던전이다.
저 몬스터를 처리하기 전까지는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김민준 씨! 위험합니다! 당장 이쪽으로 오세요! 쪽수로 밀어붙여야 합니다!”
이시우는 오히려 앞으로 걸어가는 김민준을 향해, 그건 죽으러 가는 짓이라고 소리쳤다.
“방독면 잘 쓰세요. 전 걱정하지 마시고.”
아.
저 엄청난 마기.
이거 제대로 건졌잖아?
타앗!
김민준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몬스터의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배 안으로 손을 박아 넣었다.
“크에에에엑!”
몬스터의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놈은 던전이 울릴 정도로 몸을 이리저리 뒤틀었다.
그 때문에, 내부가 지진이 난 것처럼 사납게 흔들렸다.
“잘 먹었다. 짜식아.”
순식간에 놈의 안에 든 마기를 빨아들였다.
지금껏 흡수한 적 없었던 상당량의 마기.
[마기 스텟이 1 상승하였습니다!]
눈앞에 나타난 시스템 메시지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여기서는 영구 기관의 차례지.’
흡수한 모든 마기를, 영구 기관에 흘려 넣었다.
그동안 천천히.
아주 느린 속도로 마기를 만들어 내고 있던 영구 기관이, 폭발적으로 반응했다.
[영구 기관의 스텟이 1 상승하였습니다!]
[영구 기관의 스텟이 1 상승하였습니다!]
연속으로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들.
동시에, 몸 안의 마기가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했다.
외부에서 흡수한 마기가 아닌, 내부에서 만들어 낸 마기가.
“여기선 화려하게 가야지.”
그동안 흑마법사 스킬을 막 남발하지 않은 이유가 다 있다.
특정 스킬들은 보다 많은 마기를 요구하기 때문이었다.
‘좋아. 민간 헌터들은 입구 쪽에 있네. 화려하게 가자.’
손을 한 번 휘젓자 허공에서 붉은 안광을 가진 지옥귀들이 나타났다.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수가 폭발적으로 많이 불어난 것.
그리고 몸집의 커진 것이다.
따악!
몬스터에게 빈틈없이 달라붙은 지옥귀들.
핑거 스냅을 한 번 튕기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시원하고 좋네. 이게 흑마법사지.’
흔적만 남기고 순식간에 사라진 몬스터.
헌터군 2개 중대가 화력을 퍼부어야 하는 몬스터가, 한순간에 폭사했다.
띠링.
그와 동시에 김민준의 눈앞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