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92화 (92/212)

92. 계단형 던전-3

“제가 미끼가 되겠습니다.”

미끼가 되겠다는 말.

그건 여기서 죽겠다는 말과 같았다.

샌드 스톰에게 유리한 사막 지형에서 녀석들을 도발했다가 모래 속에 끌려들어 가기라도 하면, 그 순간 그 사람은 죽었다고 봐야 한다.

놈들의 집게와 꼬리의 힘이 상당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한 마리한테 끌려가도, 웬만한 힘 스텟으로는 빠져나오기 힘든 수준.

그만큼, 샌드 스톰은 모래 안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김민준 중사. 허락할 수 없다.”

중대장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가 항상 예상 밖의 성과를 가져다준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은 중대장이다.

이 중대원들을 안전하게 이끌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거기엔 당연히 김민준 중사도 포함되어 있고.

“다른 몬스터도 아니고, 샌드 스톰이다. 아무리 너라도 해도 이곳에서 미끼가 된다는 건, 자살 행위라고.”

“중대장님. 주위를 둘러보십쇼. 제가 볼 때 모래 안에 숨어 있는 샌드 스톰을 하나씩 다 처리하려면, 24시간을 들여도 모자랄 겁니다.”

김민준은 태연한 얼굴로 던전의 상황과 중대원들의 상황에 대해 브리핑을 시작했다.

1층과 2층은 여유롭게 클리어해 병사들의 체력이 꽤 온존된 상황.

그러나 3층에서는 예상보다 더욱 험난한 환경과 어려운 몬스터를 맞닥뜨렸다.

“놈들의 습성을 이용하는 겁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김민준의 제안은 이러했다.

여러 개의 군용 로프로 자신의 몸을 묶은 뒤, 길게 늘어뜨린다.

샌드 스톰에게 끌려갈 때를 대비한 일종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제 몸에 무슨 일이 생기면, 중대원들이 브레이크 역할을 해 주면 될 것 같습니다.”

“음….”

중대장은 고민에 빠졌다.

계단형 던전에서 나타나는 몬스터의 타입은 어느 정도 정형화되어 있다.

그 데이터를 토대로 던전 공략 준비를 했는데, 하필이면 거의 나타나지 않는 샌드 스톰을 마주하게 되었으니.

‘24시간이라… 아니. 이건 30시간을 줘도 불가능하다.’

본래 이 같은 환경에서 샌드 스톰을 처리하려면, 몬스터 탐지기가 있어야 한다.

이 정도로 넓은 던전이면 하나는 무슨.

10개는 필요한 수준일 터.

‘몬스터 탐지기가 없으면 당연히 한 마리씩 끌어들여 처리해야 되겠고….’

1층과 2층에서 그만한 수의 몬스터가 나왔다는 건, 3층에도 상당수의 샌드 웜들이 잠복해 있을 터.

‘쯧. 하필이면 3층에서 이놈들이 나와서.’

계단형 던전은 변화형 던전이다.

때문에, 공략 도중에 던전 밖으로 나가도 상관이 없다.

물론 몬스터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가정하에서지만.

다만.

3층에서 던전 밖으로 나가게 되면, 계단형 던전 자체가 리셋이 된다.

1층부터 공략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끔찍한 물량을 다시 상대하는 것보다, 김민준 중사에게 걸어 보는 게 낫다.’

중대장은 고심 끝에 김민준의 제안을 허락했다.

수백 마리에 해당하는 몬스터들을 다시 처치하는 것이, 훨씬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민준 중사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힘 스텟이 높으신 건 알고 있지만… 저놈들 모래 안에서는 힘 장난 아닙니다.”

김민준이 태연하게 줄을 묶고 있자, 헌터들이 이건 아닌 것 같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병사도 아니고 헌터군 간부를 미끼로 사용하다니.

공략은 안전하게 해야 한다는 기존의 규칙을 무시한 셈이었으니까.

“저놈들 일일이 끌어들여서 처리할 수 있냐? 그전에 안 지칠 자신은 있고?”

“…그렇게 말씀하시니, 할 말이 없긴 합니다.”

던전에서 몬스터만큼 무서운 것이, 체력 고갈이다.

하물며 소대도 아닌, 중대 단위로 움직이는 병력이다.

하나둘씩 쓰러지다 보면 그 현상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말이다.

“알지? 계단형 던전에서 밖으로 나가면, 리셋되는 거.”

“어우… 그 많은 놈은 다시 상대해야 하는 건 좀 그렇습니다.”

자신의 말에 헌터들이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던전 리셋.

이 말을 들으면, 계단형 던전은 무한으로 경험치를 주는 던전이 아닐까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깝네. 경험치. 아니, 아이템이라도 똑같이 주면 이만한 금광이 없는데.’

대부분의 던전 특성이 그러했다.

리셋이 되는 던전이라고 해도, 전과 같이 스텟 경험치나 아이템을 얻을 수는 없었다.

다시 말해.

리셋이 된 던전에 다시 들어가는 건, 개고생을 하겠다는 말이었다.

물론, 몬스터를 상대로 훈련을 몇 번이고 할 수 있는 건 장점이긴 하다만.

“너네들한테 양보 좀 해 주려 했는데, 이번 건 안 되겠다.”

놈들을 끌어들일 준비가 끝났다.

김민준은 중대원들을 향해 피식 웃은 뒤,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김민준 중사님! 그렇게 중앙으로 막 가시면….”

파앗! 팟!

이동진 상병의 우려스러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날카로운 형태의 물체가 모래를 뚫고 솟아났다.

놈들의 꼬리였다.

그 수는 대충 어림잡아도 8개.

8마리의 샌드 스톰은 김민준의 몸을 마구 휘감았다.

“다들 기를 쓰고 버텨라! 김민준 중사가 끌려가게 두지 마라! 줄을 놓치면 죽겠다는 생각으로 버텨!”

태연한 얼굴의 김민준과는 달리 반대편은 난리였다.

하나의 샌드 스톰도 아니고, 8마리의 샌드 스톰이 기다렸다는 듯 공격해 왔으니까.

“그냥 드러누워! 줄다리기할 때처럼 드러누워라!”

“예!”

“알겠습니다!”

수십 명에 달하는 중대원들이, 김민준과 연결된 로프를 잡고 늘어졌다.

“아니. 괜찮다니까. 이놈들이 왜 이렇게 오버해?”

오히려 그 강력한 힘에 김민준이 뒤로 조금 끌려갈 정도였다.

‘내 힘을 보여 줄 때다.’

놈들의 수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모래 속 깊이 숨어 있어 확실하게 기척이 잡히지 않지만, 대략 50마리 이상은 될 터.

‘이왕이면 한 번에 처리하는 게 최고지.’

김민준은 그 상태에서 샌드 스톰들을 더 끌여들였다.

파앗! 팟!

시간이 지날수록 휘감겨 오는 놈들의 꼬리.

그럴수록, 김민준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지금 타이밍이 딱이지.’

놈들의 집게발을 잡은 뒤 전신에 힘을 넣었다.

“이리 오너라!”

그리고 그대로 잡아당겼다.

“게게겍!”

“게겍!”

그 압도적인 힘에 의해 끌려온 샌드 스톰은, 모래 밖으로 나오자마자 맥없이 늘어졌다.

놈들이 자랑하는 힘이 약해진 것이다.

‘이게 흑마법사라니. 누가 믿을까.’

딱히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다.

마기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오직 순수한 완력으로, 놈들을 모래에서 끌어낸 것이다.

‘이 맛에 헌터군 하지.’

본래의 스텟이 높은 덕도 있다.

다만, 헌터군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78에 해당하는 힘 스텟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10마리.

20마리.

30마리.

김민준의 지칠 줄 모르는 힘과 체력 덕분에, 1시간도 지나지 않아 모두 처리할 수 있었다.

“미쳤네, 진짜….”

“김민준 중사님. 그러다 쓰러지시는 거 아닙니까?”

그 까다로운 몬스터를 이렇게 짧은 시간에 처리할 줄이야.

중대원들은 충격에 빠진 얼굴로, 김민준과 몸에 묶인 로프를 번갈아 보았다.

“뭐. 나도 사람이야. 여기 봐. 땀 흐르는 거.”

“아니… 땀 얼마 나지도 않으셨습니다! 저게 말이 됩니까?”

기껏해야 땀 몇 방울.

저 정도로 힘을 썼으면 쓰러질 만도 한데, 여유롭게 걸어오기까지.

“…김민준 중사. 아주 잘했다. 그래도 회복 포션은 꼭 마셔 두도록.”

“중사 김민준, 감사합니다.”

중대장은 본인 몫의 포션까지 자신에게 나누어 주었다.

딱히 필요는 없지만 성의를 생각해 마셔 두기로 했다.

안 마셨다가는 억지로라도 의무실에 데려갈 것 같았기에.

[힘 스텟이 1 상승하였습니다!]

[체력 스텟이 1 상승하였습니다!]

[스트렝스의 스킬 등급이 B로 상승하였습니다!]

잠시 후.

던전 클리어 메시지와 함께 눈앞으로 알림들이 떠올랐다.

간만에 힘을 쓰긴 했는데 이 정도로 스텟이 오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좋아. 다 좋긴 한데….’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마기 스텟이란 말이지.

80을 가뿐하게 넘긴 힘 스텟.

당연히 좋다.

다만, 근본적인 힘을 되찾으려면 마기가 필수였다.

‘오?’

약간의 아쉬움을 품고 던전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눈앞으로,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계단형 던전의 보상 조건을 만족하였습니다.]

[추가 보상이 지급됩니다.]

동시에 허공에서 뭔가가 툭 하고 떨어졌다.

누가 볼 새라 재빨리 집어 주머니 안으로 넣었다.

‘보상 조건을 만족했다라.’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템인 건 확실하다.

‘기분이 좀 좋아졌네.’

지금껏 수많은 종류와 형태의 던전이 생겨나면서 그에 관한 연구 결과도 많이 발표되었다.

그럼에도 방금처럼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이 더 많았다.

특정 던전을 클리어하면 시스템이 보상을 준다든가 하는 것 말이다.

“어우. 죽겠다.”

“계단형 던전 한 번 들어갔다가 나올 때마다 기 빨리는 것 같다니까.”

생활관으로 돌아오자마자, 쓰러지듯이 드러눕는 분대원들.

사실 녀석들이 한 건 그렇게 많진 않았지만, 계단형 던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건 사실이다.

피곤한 것이 당연하겠지.

“이놈들아. 씻고 밥 먹고 자라. 아니면 샤워라도 하고 자. 모래 튀기면 나한테 죽는다.”

“아니, 김민준 중사님?”

“설마, 지금 단련실로 가시는 겁니까?”

대자로 뻗어 있던 분대원들은, 활동복 차림으로 나가는 김민준을 보며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아직 힘이 남아돌아서.”

“허….”

“진짜 병입니다, 병.”

“그러다 과로로 돌아가십니다….”

졌다는 듯이 대답하는 분대원들.

김민준은 그들에게 샤워나 하라고 말해 준 뒤, 단련실로 들어갔다.

“그럼. 이게 뭘까.”

주머니를 뒤적거려 던전 클리어 보상을 꺼냈다.

“뭐지 이게.”

그냥 버튼 같은데.

검은색 버튼.

꾹.

아무 생각 없이 누르자, 눈앞으로 불투명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럭키 룰렛 Mk2]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그곳에서 흔히 구경할 수 있는 룰렛이었다.

띠리링. 띠링.

“이 유치한 BGM은 못 끄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 오는 배경 음악.

인상을 쓰며, 홀로그램에 가까이 다가갔다.

[뽑기 횟수: 1회]

“…뭐야. 진짜 저것들이 다 보상이야?”

100개의 숫자가 적혀 있는 원형 판.

그 안에 들어 있는 보상을 보자, 절로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보상 목록]

현자의 반지

어둠의 자극

엘릭서

어둠을 머금은 투구

이름만 들어도 엄청난 효과를 가진 것 같은 아이템들이 최소 4개는 있었기 때문이다.

“96개는 쓰레기 같은 것밖에 없고. 저 4개가 제대로 된 아이템이네.”

던전 클리어 보상으로 뽑기형 아이템을 얻게 될 줄이야.

“이런 본격적인 아이템은 처음 보네.”

헌터군에서도 확보하지 못한 아이템.

당연히, 넘길 생각은 없다.

“누구 좋으라고 이걸 넘겨줘? 절대 안 주지.”

소령, 아니.

대령쯤 달아 준다 하면 생각해 보긴 하겠네.

“내 운을 시험해 볼까.”

김민준은 버튼을 눌러 아이템을 사용했다.

촤라라락!

원형 룰렛 안으로 황금색의 구슬이 들어갔다.

쉴새 없이 돌아가는 룰렛과 이리저리 번호를 옮겨 다니는 구슬.

띠링.

잠시 후.

메시지와 함께 눈부실 정도의 빛무리가 일어났다.

“운이 좋군.”

당첨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가지고 싶었던 아이템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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