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91화 (91/212)

91. 계단형 던전-2

“어? 어어… 김민준 중사. 잘했다.”

중대장의 당황스러운 대답.

보통 같으면, ‘훌륭하게 대처했지만, 단독 행동은 위험하다.’라는 식으로 주의를 줬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깔끔했다.

굳이 여기서 한마디 했다가는, 괜한 트집을 잡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

“김민준 중사님. 너무 무리하신 것 아닙니까?”

“포션 하나 드십쇼. 그러다 쓰러지십니다.”

대열로 돌아오자, 이동진 상병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이승호 병장도 조용히 포션을 건네기까지.

그만큼 자신이 했던 행동이 과격했다는 뜻이리라.

“오히려 기운이 너무 넘쳐난다. 아까처럼 10번은 더 하겠는데?”

“무슨 영약이라도 드셨습니까? 마력 무기를 그렇게 오래 사용하셨는데….”

영약이라.

먹긴 했지.

얼마 전에 아주 좋은 놈으로.

“내 걱정은 됐고, 너네들이나 잘해. 1층부터 괴물 토끼가 이 정도로 쏟아져 나온 걸 보면, 2층도 뻔하다.”

“으… 1층에 나온 놈들만 200마리가 넘습니다. 이거, 철수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김광식 상병은 질린다는 듯이 어깨를 떨었다.

1층은 아무리 많아 봐야 50마리 선에서 그치는데, 그 4배에 달하는 몬스터가 나타났으니까.

2층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계단형 던전 공략은 이대로 속행한다!”

잠시 던전 밖으로 나갔다 온 중대장은, 공략 속행 명령을 내렸다.

그 이유는 김민준 때문이었다.

다른 중대 같으면 철수했을 것이다. 다만, 해당 중대에 김민준 중사가 있으니 끝까지 공략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대대장님이 과격해지셨어.’

중대장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대령으로 진급이 확정된 지금, 굳이 김민준 중사를 걸고 무리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저런 모습을 보면, 나 같아도 속행하라고 했을 것 같긴 한데….’

공략 속행 명령이 떨어졌고, 중대원들의 체력은 아직 팔팔하다.

“다들 2층으로 향한다!”

조금이라도 체력이 넘쳐날 때 공략을 끝내야 한다.

그렇게 판단한 중대장은, 헌터들을 이끌고 2층으로 올라갔다.

스으으.

시꺼멓게 일렁이는 계단을 타고 2분 정도 올라갔을까.

[2]

숫자가 바뀌며, 이전과는 다른 환경이 펼쳐졌다.

썩어 문드러져 가는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나무를 잘 주시하도록!”

“예!”

계단형 던전의 특징이 바로 이렇다.

하나의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이지만, 최소 3개.

많게는 5개의 변화하는 환경에서 몬스터와 맞서야 한다.

병사들이 체감하는 바로는, 연달아서 던전을 클리어하는 수준.

그렇기에 체력 배분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중대장님! 붉은 머리 원숭이 1마리 발견했습니다!’

‘서쪽에서도 2마리 발견했습니다!’

헌터들의 보고가 이어진다.

붉은 머리 원숭이를 상대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고블린보다 살짝 버거운 정도?

하지만, 놈들에게 유리한 지형이 갖추어져 있다면 말이 달라진다.

‘머리를 쓰는 놈들이니 그렇지. 자기들이 불리하다 싶으면 시간을 질질 끌거든.’

이미 놈들의 기척을 잡아낸 김민준은, 헌터들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1층에서야 신나서 마력검을 앞뒤 안 가리고 휘둘렀지만, 현재 자신의 위치는 간부다.

병사들에게도 성장할 여지를 줄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

“…….”

몬스터와 병사들 간의 대치가 이어졌다.

“끼에에엑!”

침묵을 먼저 깬 것은 몬스터 쪽이었다.

붉은 머리 원숭이들는 동료의 신호에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능숙하게 나무를 타며 병사들을 향해 쇄도했다.

헌터들이 만만하리라 판단한 것이다.

쉬익! 쉭!

나무라는 구조물 덕분에 놈들의 움직임이 더욱 날렵해졌다.

“마력탄 갈겨! 놈들은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다!”

“예!”

중대장의 신호에 헌터들이 몬스터를 향해 마력탄을 쏟았다.

“큭!”

“너무 빠르잖아!”

평소 같았으면 나가떨어졌을 붉은 머리 원숭이들이, 능숙하게 마력탄을 피하고 있었다.

던전에 있는 나무 형태의 구조물 덕분이었다.

‘이걸 어떻게 대처하는지 볼까.’

김민준은 슬쩍 뒤로 빠져, 헌터들의 대응 능력을 감상하려 했다.

그런데….

“끼엑!”

“이 미친놈이. 돌았나.”

기세 좋은 몬스터 한 마리가 그를 향해 돌멩이를 거세게 던졌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거기서 그치지 않고, 어디 한번 들어와 보라는 듯이 머리를 앞뒤로 흔들었다.

“김민준 중사! 저놈들 도발하는 거니까 홀리지 마라!”

“예. 알고 있습니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그는 이미 마력검을 뽑고 있었다.

“만만해 보이는 놈한테 도발을 해서 유리한 지점까지 끌어들인 뒤, 공격한다.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원숭이한테 도발을 당하고 가만있을 순 없지.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다 이거지?

‘욕망의 마기.’

스킬을 사용하고, 마력검에 오라를 둘렀다.

‘그래도 최신 무기니까, 마음껏 써도 되겠지?’

거기다 훈련 때와는 달리, 100%의 힘을 다 쏟았다.

콰콰콰콰콰.

그러자, 마력검을 둘러싼 오러의 크기가 무서운 기세로 커졌다.

“저, 저건 또 뭐야!”

“무슨 오러의 크기가… 저거 실홥니까?”

오러를 이용해 키운 마력 검의 크기는 언뜻 봐도 10m 이상.

마력검은 당장이라도 터질 듯이 격렬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끼… 끼엑?”

“끼엑!”

그 엄청난 기운에, 붉은 머리 원숭이들이 꼬리를 말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늬들이 도망쳐 봐야 어디까지 가겠냐.’

김민준은 땅을 박차고 앞으로 내달렸다.

쉬익! 쉭!

몬스터를 향해 마력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그의 목표는 썩어 문드러져 가는, 던전의 구조물.

나무들이었다.

“이 정도면 저놈들을 처리하는 데 유리할 것 같습니다.”

나무로 빼곡했던 던전 2층은, 어느새 던전 끝이 보일 정도로 깔끔해졌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몬스터 썰라고 준 검으로, 나무를 써는 헌터는 김민준 중사님밖에 없을 겁니다.”

“그것보다 방금 오러는 도대체 뭡니까?”

“마력검 훈련 때부터, 힘을 숨기고 계셨던 겁니까?”

순식간에 황량해진 던전.

그 덕분에, 헌터들은 계단형 던전 2층을 별로 힘들이지 않고 클리어할 수 있었다.

“숨기긴 뭘 숨겨. 그냥 힘을 이 정도로 쓸 일이 없어서 안 쓴 거지.”

“아니… 너, 체력은? 그 마력검을 그렇게 무식하게 다루면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2층 클리어 메시지가 떠오른 걸 확인하자마자, 간부들이 후다닥 달려왔다.

“중사 김민준. 멀쩡합니다.”

“마력검을 그렇게 무식하게 휘두르고도? 참나….”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괴물 같은 체력.

간부들은 혀를 차며, 계단식 던전이 이렇게 쉬웠냐는 말을 뱉었다.

“계단식 던전에 들어온 지 2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2층을 클리어했다 이건가….”

중대장은 마력검 상태를 살피는 김민준을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중대에 속해 있으니, 던전 공략 시간이 앞당겨지리란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작 2시간 만에 2층까지 공략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계단식 던전은 보통 12시간에서 24시간까지 텀을 두고 공략을 하는데.”

이 정도 속도면, 바로 3층으로 향해도 된다.

부상을 입은 병사들도 없고, 대부분 체력이 팔팔한 상태니까.

“다들 주목!”

“주목!”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잠시 정비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예!”

그럼에도, 중대장은 병사들에게 휴식을 지시했다.

던전 타임 어택 내기하는 것도 아니고, 안전하게 클리어하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뭐지. 전투 식량 하나 먹고 끝나겠는데?”

“오늘 저녁은 병사식당에서 먹을 수 있을 듯.”

식사 시간.

헌터들은 던전 한쪽에서 자리를 잡고, 대화를 나눴다.

던전 안에서 식사를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계단식 던전에 한해서는 식사가 허용되었다.

공략 시간이 오래 걸리는 구조다 보니, 1개 층을 클리어할 때마다 휴식을 취해 줘야 했기 때문이다.

“3층이 좀 문제긴 한데… 김민준 중사님이 또 혼자서 처리해 버릴 것 같지 말입니다.”

계단식 던전은, 올라갈수록 강한 몬스터들이 나타난다.

1층은 괴물 토끼.

2층은 붉은 머리 원숭이.

3층은 탐지가 불가능했지만,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기껏해야 오크 정도가 나오지 않을까.

“암만 강한 놈이 나와 봐야, 오우거 정도겠지 뭐.”

“오우거 정도라니. 미친놈아.”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헌터에게, 김광식 상병이 정신 차리라며 뒤통수를 때렸다.

“아니 미친놈이! 밥 먹는데 왜 때리냐?”

“오우거 1마리를 상대하는 데 1개 중대 화력이 필요한 거 몰라? 2마리만 나와도 우린 조진다고!”

그 말에, 해당 헌터는 손가락을 들어 앞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말없이 전투 식량을 해치우고 있는 김민준이 있었다.

“뭐. 전투 식량 더 달라고? 이건 간부용이다. 절대 안 주지.”

“…주셔도 안 받을 겁니다.”

단호하게 대답하는 그를 보며, 헌터들은 맥없이 웃었다.

방금 전에 그 과격한 행동을 한 헌터가 맞는가 싶어서.

“다들 지금까지 잘해 주고 있다! 이 계단형 던전은 3층이 끝이다!”

식사 시간이 끝났다.

헌터들은 무기와 군장을 점검한 뒤,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3]

1층과 2층의 공략 때와는 달리, 중대원들 대부분이 긴장하고 있었다.

꿀꺽.

사전에 정보를 조사한 1층과 2층과는 달리, 3층은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

어떤 종류의 몬스터를 맞닥뜨릴지, 직접 마주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이건….”

“모래입니다.”

중대원들이 마주한 건 황량한 던전이었다.

끝없는 모래가 펼쳐져 있는 데다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이 푹푹 꺼진다.

어디 사막이라도 온 듯한 느낌이 들 정도.

“몬스터의 기습에 대비하고, 사주 경계를 실시해. 최대한 천천히 움직인다.”

“예!”

헌터들의 기동성을 발휘하기에 불리한 지형이다.

중대장은 주의 깊게 던전을 살피며 병사들을 이끌었다.

툭.

“응?”

10분쯤 이동했을까.

헌터 한 명의 발 위로, 뭔가가 닿았다.

“중대장님! 여기 뭔가 있… 끄아아악!”

얼핏 보면 황토색의 밧줄같이 생긴 물체가 중대원 한 명의 발을 휘감고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그것도 무지막지한 힘으로.

“야!”

“잡아! 저놈 못 끌려가게 잡아!”

사주 경계를 확실히 하고 있던 덕에 헌터들의 대처는 재빨랐다.

그들은 재빨리 해당 헌터를 도와주며 발목에 휘감긴 물체를 끊어 냈다.

“중대장님. 아무래도 샌드 스톰인 것 같습니다.”

“샌드 스톰이라… 골치 아픈 놈이 걸렸구만.”

김민준의 보고에, 중대장이 입술을 굳게 깨물었다.

이 사막과 같은 던전 환경은, 놈들의 홈그라운드나 다름이 없었기에.

샌드 스톰.

모래색을 띤 전갈형 몬스터.

놈들은 집게발 대신 밧줄 형태의 발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이용해, 목표물을 잡아채 모래 안으로 끌어들인다.

방금 일어난 상황을 보면 계단형 던전 3층의 몬스터는 100% 샌드 스톰이었다.

“중대장님. 저에게 생각이 있습니다.”

김민준은 던전을 눈으로 슥 훑더니, 문득 입을 열었다.

뭔가 기발한 생각이 떠오른 듯했다.

“…뭐라고?”

이어지는 그의 대답에, 중대장은 충격에 빠졌다.

정상적인 헌터가 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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