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89화 (89/212)

89. 중사

“우와아아아악!”

“김민준 하사님, 아니, 중사님! 진급 축하드립니다!”

생활관에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분대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김민준에게 다가가, 팔다리를 잡고 들어 올렸다.

“어우 씨. 이 자식들이 징그럽게 뭐 하냐? 빨리 꺼져.”

“이렇게 좋은 날을 어떻게 그냥 넘어갑니까?”

“연병장으로 달려!”

“우와아아아!”

김민준은 분대원에게 들린 채, 연병장으로 이송되었다.

“아주 신났구만, 신났어. 소대장이 눈앞에 있는데 이런 짓이나 하고. 그나저나 내일 진급식 하는 거 전해 주는 걸 깜빡했네.”

김철민 중위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보통 같았으면 제제를 가했겠지만, 이런 날만큼은 풀어 주고 싶었다.

놈들은 최근 들어 개발된 마력검인지 뭔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었으니.

“야! 김민준 하사님 진급 확정이라고?”

“미친! 벌써?”

“김민준 하사… 아니, 중사님이라고? 복무한 지 1년도 안 됐잖아!”

“1년은 무슨. 6개월 정도밖에 안 지나셨을걸?”

김민준의 진급 소식은 순식간에 퍼져, 2중대원 전원이 알게 되었다.

병사에서 병사로의 진급 역시 당연히 쉽지는 않다.

헌터군은 실적이 우선이니까.

물론 짬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간부를 달고 진급하는 건 병사보다 배 이상으로 어려웠다.

채워야 하는 실적 점수의 양부터 달랐다.

당연히 의무적으로 복무해야 하는 기간도 명시되어 있었고.

“김민준 중사님은 진짜 전설이다….”

“이거 이러다 내년에는 상사까지 가는 거 아니냐?”

“내가 볼 때 절대 상사에서 안 끝난다. 장교까지 갈 수도 있겠는데.”

“병사에서 특별 진급 미친 듯이 한 것도 개쩌는데, 간부에서 또 특별 진급이야?”

타 중대원들은 연병장에서 헹가래를 하고 있는 분대원들을 보며,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대화를 나눴다.

**

다음 날 아침.

어김없이 마력검 적응 훈련이 진행되어야 했지만, 오늘은 진급식 때문에 오후로 미뤄졌다.

진급 대상은 당연히 김민준.

지금까지는 김철민 중위가 어영부영 계급장만 주고 넘어갔지만, 간부 진급식은 형식을 갖춰서 진행하기로 한 듯했다.

“김민준! 앞으로!”

중대장의 말에, 김민준은 절제된 동작으로 단상 위로 올라갔다.

“그동안 부대에 이런저런 일이 많아서, 각종 행사들을 본의 아니게 미뤘다. 그 점에 대해서는 유감이다.”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해 오는 대대장.

그는 김민준이 달고 있는 하사 계급장을 뗀 뒤, 중사 계급장으로 손수 교체해 주었다.

“중사! 김민준! 감사합니다!”

“그래. 본래 같으면 던전에서도 마력검을 제대로 다루는지 확인해야 하겠지만, 사단장님과 내가 강하게 밀어붙였다. 하루빨리 중사 계급장을 달아 주고 싶어서.”

“감사합니다!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 이상 열심히 할 수 있으면 해 보도록.”

기분 좋은 듯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대대장.

김민준이 단상 위에서 내려오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

“김민준 중사님! 진급 축하드립니다!”

“김민준! 김민준!”

부대가 떠나갈 듯이 울려 퍼지는 목소리들.

남헌터 여헌터 할 것 없이, 마치 본인의 일인 것처럼 축하해 주었다.

“군 생활 잘하고 있구만.”

대대장은 주위를 슥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진급식을 진행하면서, 이같이 뜨거운 반응을 본 건 처음이었기에.

‘중사라. 내 예상보다는 좀 길었다.’

어느새 하나 더 붙은 작대기.

김민준은 진급에 만족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살짝 아쉬움을 느꼈다.

헌터 본부에서 복무 기간을 걸고넘어져, 진급이 지연된 것이었으니.

“김민준 중사님… 마음 같아서는 일과 끝나고 축하 자리를 마련하고 싶은데….”

“요즘 훈련이 워낙 빡세서 당분간은 힘들 것 같습니다.”

진급식이 끝나고, 생활관 안.

분대원들이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건네왔다.

진급식 덕분에 오전 일과가 여유로워졌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 우선 과제는 어디까지나 마력검에 익숙해지는 것이었기에.

“너희들이 훈련 잘 받고 실적 점수 올려 주는 게 나 도와주는 거다.”

김민준은 이런 일로 절대 아쉬워하지 않으니, 훈련이나 잘하라고 대답해 주었다.

까톡.

“뭐냐.”

그날 저녁.

손은서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번 주말에 시간이 되냐는 메시지였다.

김민준: 마력검은 내 덕을 많이 봤겠지? 그냥 밥 한 끼 사는 거로는 안 넘어간다.

손은서: 나도 알아. 그런데… 아버지가 개인적으로 너 보고 싶다고 하는데… 괜찮아?

의외로 조심스러운 대답이 왔다.

예상치 못한 내용까지.

‘오… 이건.’

김민준의 눈동자가 빛났다.

‘그동안의 농사가 수확을… 아니지.’

친구로서 이것저것 도와줬을 뿐.

결코 손은서의 아버지가 사단장이라서, 다른 분대원들보다 더 잘 챙겨 주고 그러지는 않았지.

그렇고말고.

손은서: 불편하면 말해. 아무리 사적이라고 해도, 아버지가 사단장인 건 사실이라….

김민준: 언제 나가면 되냐? 나 휴가 많다.

평소라면 그녀에게 연락이 와도 읽씹을 하거나, 귀찮아서 답장을 안 했겠지만.

이번만큼은 빛의 속도로 답장을 보냈다.

‘이건… 아이템 각이다.’

**

“야. 귀찮게 옷을 왜 사냐? 그냥 헌터 군복 입으면 되지.”

“아, 뭔 소리야. 아버지도 집에서는 군복 안 입으셔. 내가 사 줄 테니까, 그냥 입어.”

토요일 오후.

휴가를 나온 김민준과 손은서는, 먼저 백화점으로 향했다.

“와… 남자친구분이세요? 여자친구분 복 받으셨다.”

“무슨 모델이셔? 대박… 핏 장난 아니시다….”

깔끔해 보이는 옷을 입고 나오자, 주변의 시선이 김민준에게 쏠렸다.

180은 가뿐하게 넘는 키.

옷 밖으로 선명하게 드러나는 잔근육들.

외모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데도, 상위 1% 안에 들 정도의 외모.

거기에 백화점 표 옷까지 더해지자, 엄청난 시너지가 발생한 것이다.

“뭐… 그냥저냥 봐 줄 만하네.”

아무 관심 없는 듯한 손은서조차, 힐끔거리며 쳐다볼 정도였다.

그가 평소에는 군복만 입고 다녀서 그렇지, 옷차림까지 신경 썼다면 여헌터들이 가만히 놔두질 않았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와 주세요!”

“뭐냐. 너 무리하는 거 아니냐? 이거 다 사 줘도 되냐?”

“헌터군 월급 많은 거 너도 알면서 왜 그래? 중사까지 달았으니까 많이 벌 거 아냐?”

손은서는 김민준의 몸을 슥 훑더니, 사복 좀 사라고 말했다.

“헌터 군복이 얼마나 편하고 좋은데.”

김민준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김서현에게 현금을 다발로 건네주며 백화점으로 보냈다.

이봉구에게도 달마다 충분한 생활비를 보내 주고 있고.

가까이 여기는 사람에게는 아낌없이 나눠 주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씀씀이가 크지 않았다.

“아. 이거 살 돈으로 던파 현질 100만 원은 넘게 했겠네.”

두 가지의 예외가 있다면, 먹는 것과 게임 정도였다.

“뭐래. 그것보다 너, 우리 아버지한테 가서는 제발 예의 좀 지켜 줘. 내가 부탁할게.”

잡담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손은서의 집 앞에 도착했다.

그녀는 평소 김민준의 성격을 잘 알고 있다 보니, 제발 자제 좀 해 달라고 부탁했다.

“걱정 마라. 나도 분위기는 읽을 줄 아니까.”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친 뒤, 안으로 들어갔다.

“충성! 중사 김민준입니다!”

“허허. 편하게 보고 싶어서 부른 건데, 그렇게 예의 지키지 않아도 된다.”

마침 소파에서 신문을 읽고 있던 그녀의 아버지가 악수를 청해 왔다.

“감사합니다!”

사단장쯤 되니까, 평범한 옷을 입고 있어도 특유의 분위기가 풍겼다.

“쇼핑백은 다 뭐냐? 둘이서 데이트라도 했냐?”

“아빠! 아니… 아버지! 들어 봐요! 이 자식이 휴가 나와서도 헌터 군복을 고집하더라고요!”

“그래. 우리 딸내미가 남자에 관심이 별로 없는데, 너에 대해서는 자주 얘기해 주더구나.”

“아니, 그걸 왜 말하는데요!”

“둘이 사이도 좋아 보이는데 뭐 어떠냐. 하하하.”

둘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 보면, 사이 좋은 부녀지간이었다.

“제가 평소에 잘 챙겨 주긴 했습니다.”

당연한 듯이 대답하는 김민준.

손은서가 재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손태호는 껄껄 웃으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우리 딸내미가 그동안 너한테 신세 진 게 많아서, 내가 개인적으로 선물을 주고 싶거든.”

신문지에 돌돌 말려 있는 무언가.

손태호가 조심스럽게 신문지를 한 장씩 걷어 내자, 기이한 형태의 돌조각이 나왔다.

‘오… 저건?’

김민준은 아이템의 정체를 확인하고, 순간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룬석이잖아!’

A등급에 속하는 아이템인, 룬석이었기 때문이다.

‘이야… 역시 별을 달면 저런 아이템까지 구할 수 있나 보네.’

그동안 자신의 소환수가 이리저리 아이템을 탐색해 물어 왔지만, 룬석을 발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상급 몬스터에게서만 아주 드문 확률로 드랍된다고 했지.’

그 확률은 대략 10만 분의 1.

들리는 소문으로, 헌터 본부에서 소유하고 있는 룬석은 100개가 채 안 된다고 한다.

그만큼 구경하기 힘든 아이템이라는 말이다.

‘문양은… 좀 자세히 봐야겠는데.’

괴상한 형태의 돌에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져 있는 룬석은, 문양에 따라 다양한 효과를 불러온다.

힘 스텟이 증가한다거나, 새로운 스텟이 생성된다거나 하는 효과 말이다.

당연히 영약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

“마음에 드나? 내가 힘을 많이 썼지. 이 뒤로 3년 동안 아이템 지급을 못 받는 대신 받아 온 거지.”

손태호는 자신의 얼굴을 슥 훑더니, 얼른 가져가라며 룬석을 건네주었다.

“그 룬석은, 사용하면 체력 스텟이 영구적으로 10 정도 올라갈 거다. 높은 스텟을 가지고 있으면, 효과는 반감되겠다만.”

“시, 십이요?”

그 말에, 손은서가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룬석을 거리낌 없이 준다는 것도 충격적인데, 그중에서도 상당히 가치 있는 룬석을 골라 왔을 줄이야.

도대체 얼마나 김민준을 마음에 들어 하는 걸까.

“사단장님. 전 대가를 바라고 은서를 도와준 적이 없습니다. 전 현재 간부지만, 은서를 친구로 생각합니다.”

김민준은 룬석을 냅다 받지 않고,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여기서 넙죽 룬석을 받으면 삼류지.’

손은서에게 잘 대해 주면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좋은 아이템을 건네줄 줄이야.

‘여기선 철저한 이미지 메이킹을 해 둬야겠어.’

그럴수록 나에게 이득이 많이 돌아올 테니.

“하하하하! 다른 헌터들 같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을 텐데, 자제력이 대단하구만!”

손태호는 김민준의 행동이 마음에 들었는지, 거실이 떠나가도록 웃었다.

“물론 내가 주는 아이템에는 개인적인 사심도 들어가 있다.”

“사심 말입니까?”

헌터군의 별이 뭐가 아까워서 나에게 사심을 품는 걸까.

“개인적으로 알려 주는 거지만, 현재 헌터 본부의 10%에 달하는 장성들이 너에게 관심을 두고 있다.”

“잘 못 들었습니다?”

자신의 대답에, 손태호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장성들이 김민준 중사라는 헌터를 눈여겨보고 있다 이 말이야. 다름 아닌, 장성들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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