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마력검-2
저런 부류의 인간들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기에.
“자. 너희들도 이제 알겠지만, 아무리 뛰어난 헌터라고 해도… 응?”
그럼 그렇지 하고 말을 꺼내려던 김상덕 대위는, 이변을 느끼고 시선을 돌렸다.
“…저, 저게 뭐야!”
눈앞에는,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스스스스스스.
마력검을 둘러싼 오러가, 진하게 일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 뭐야?”
교육관인 김상덕 대위는 두 눈을 치켜떴다.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진한 오러.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군용 마력검은, 검날을 둘러싼 오러의 색이 진할수록 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저렇게 진한 오러를 두른 마력검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6개월 넘게 단련한 내가… 비교조차 안 되는 세기잖아!’
자신은 교육관의 직책 덕분에, 다른 헌터들보다 일찍 마력 무기를 지급받을 수 있었다.
다른 헌터들을 지도해야 하는 입장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김민준 하사는, 마치 숨 쉬는 것처럼 능숙하게 무기를 다뤘다.
방금 무기를 지급받은 참인데 말이다.
‘뭐, 뭐 저런 놈이 다 있냐!’
김민준 하사에 대한 소문이야 진작 알고 있었다.
흠잡을 곳이 1도 없는 우수한 헌터.
그가 단기간에 쌓은 실적이 얼마나 훌륭한지, 사단장님이 개인적으로 신경을 쓸 정도.
‘아니, 저건 우연이다. 저게 금방 될 리가 없지.’
마력검이 반응을 잘하는 체질이라고 했었나.
그런 헌터들이 1,000명 중 1명꼴로 있다고 듣기는 했다.
김민준 하사도 분명 거기에 속할 뿐일 터.
“교육관님. 이다음에 어떻게 하면 됩니까?”
“…어, 어. 김민준 하사. 무기를 다루는 요령을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훌륭하다. 이만 들어가도 좋아.”
“예. 알겠습니다.”
당연한 듯한 표정으로 단상에서 내려가는 김민준.
김상덕 대위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중에 어떻게든 밑바닥을 보게 만들어 주겠다고 다짐했다.
왜냐고?
잘난 척하는 놈을 실력으로 짓밟아 버리고 우월감을 느낀다.
그것이 군 생활의 유일한 낙이었으니까.
“와… 김민준 하사님. 방금 그거 어떻게 하셨습니까?”
“저기 교육관님이랑 비교도 못 할 만큼 강한 오러 아니었습니까?”
“방금 교육관님이 보일락말락 한 하늘색 정도였다면, 김민준 하사님은 그냥 찐한 파란색이었습니다. 멀리서 봐도 보일 정도의 찐한 파란색 말입니다.”
자리로 돌아가자, 헌터들이 호들갑을 떨며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그럴 것이, 아직 훈련을 거치지도 않았는데 교육관보다 더욱 진한 오러를 둘렀으니까.
이번에는 아무리 김민준 하사님이라 해도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을 보기 좋게 깨 버릴 줄이야.
“감이 중요해. 난 검을 딱 잡으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던데.”
“…그걸 어떻게 압니까?”
“저흰 아까부터 계속 손에 쥐고 있는데도,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냥 잡으니까 되던데, 라는 말.
헌터들은 허탈하게 웃었다.
“자. 너희들의 첫 목표는, 방금처럼 마력칼에 마력이라는 오러를 두르는 것이다!”
잠시 후.
교육관의 지도로,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었다.
헌터들은 김상덕 대위의 지시에 따라 동작을 따라 했다.
스으으으.
오러를 두르는 것 자체는 쉽다.
대부분의 헌터들이, 마력칼에 오러를 두르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오!”
“이거 유지하는 거 장난 아니게 어려운데….”
“괜히 최신 무기가 아니네….”
다만.
그 오러를 일정 시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웠다.
처음이야 기세 좋게 오러를 쉭쉭 둘렀지만, 대다수의 헌터들이 1분을 채 유지하지 못했다.
“오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기력과,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지금 겪는 현상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고 오러 유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예!”
“알겠습니다!”
오러를 유지하는 건 헌터 개개인의 감에 달렸다.
이 부분은 교육관이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럼 그렇지. 최전방 부대라고 해 봐야 특별한 놈들이겠냐?’
김상덕 대위는 오러 유지에 쩔쩔매는 헌터들을 보며, 속으로 마음껏 비웃었다.
자신은 30분 가까이 유지할 수 있는 오러를, 1분조차 유지하지 못하다니.
그 많은 던전과, 이레귤러 몬스터를 처리한 놈들이 맞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
‘쯧….’
그런 우월감은, 얼마 가지 못했다.
김민준 하사가 진한 오러를 장시간 유지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김민준 하사. 마력검의 오러를 유지하는 건 상당히 훌륭하지만, 그 오러가 효과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는지는 별개다. 거기다 오러를 유지하는 방식이 너무 무식하다. 몬스터들과 대면을 하고 있지 않을 때도, 그런 식으로 오러를 유지할 셈이냐?”
“전 그래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뭐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한 김상덕 대위는, 저 진한 오러가 겉모습만 그럴듯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겉으로는 진한 오러를 발현할 수 있지만, 몬스터에게 대미지를 주지 못하는 경우가 드물게 있었으니.
“그럼 저기 앞에 있는 훈련용 철구를 베어 봐도 됩니까?”
어떻게든 트집을 잡으려고 하는 교육관.
김민준은 저 교육관에게 한 방 먹이고 싶어, 태연한 얼굴로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30m 떨어진 지점에는, 훈련용 철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어차피 흠집도 못 낼 테니, 해 봐도 좋다.”
김상덕 대위는 어디 한번 해 보라는 듯이 고개를 까딱거렸다.
“예. 알겠습니다.”
나한테 왜 시비를 거는지 모르겠지만, 두 눈으로 직접 보게 해 줘야겠네.
내가 만만한 놈이 아니라는 것을.
‘아직 손에 익지는 않았는데, 저거 이등분하는 정도는 그냥 하지.’
김민준은 마력검의 오러를 유지한 채로, 철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오러를 완벽하게 제어하는 건 아직 불가능하다.
자신이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고 해도, 그저 흑마법사일 뿐이다.
단시간에 처음 보는 구조의 무기를 완벽하게 다루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 봤자, 이 칼도 2일 정도만 빡세게 단련하면 마스터할 수 있지만.’
군용 마력검.
두 손으로 잡고 정자세를 취할 필요도 없다.
자신에게 있어, 그건 사치였다.
‘아. 간만에 스킬 시험이나 한번 해 볼까.’
한 손으로 검을 치켜든 뒤.
얼마 전 새로 개방된 스킬, 욕망의 마기를 사용했다.
스스스스스.
스킬을 사용하자, 몸 안의 마기가 폭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든 능력이 일시적으로 증가하는 강화형 스킬.
그 영향은, 김민준이 쥐고 있던 마력검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허, 헉….”
“야, 야! 저건 또 뭔데!”
마력칼을 감싼 오러가, 더욱 진해지며 크기를 키웠다.
‘온몸에 힘이 남아도는구만.’
크기를 키운 오러는, 군용 마력검의 3배의 크기에 달하는 형태를 만들었다.
이것도 어느 정도 절제한 편이다.
굳이 훈련용 도구를 베는 데, 온 힘을 다할 필요가 있을까.
슥.
무심하게 내려치는 듯한 일격.
스치듯이 지나간 일격에, 훈련용 철구가 쩍 하며 반으로 갈라졌다.
헌터들이 짧게는 3개월.
길게는 8개월까지 단련해야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을 이미 넘어선 것이다.
“어? 저거 두부처럼 부드럽게 잘리는데?”
“와… 실화냐? 저걸 훈련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잘라 버린다고?”
헌터들은 기가 막힌 듯이 김민준과, 두 동강 난 철구를 번갈아 보았다.
‘…저게 말이 되나?’
그건 김상덕 대위 역시 마찬가지.
그를 어떻게 골려 먹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 장면을 보니 싹 날아갔다.
‘라이칸 슬로프 6마리를 맨몸으로 상대했다는 게 정말이었다는 건가?’
말도 안 되게 부풀려진 소문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리고, 섣불리 저놈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김민준 하사. 당연히 못 할 줄 알고 해 본 말이었는데, 보란 듯이 해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김상덕 대위는 이 일을 실적에 반영하겠다고 말한 뒤, 잠시 자리를 비웠다.
알아서들 훈련하고 있으라고 말하면서.
“오늘 온 교육관이 뭐 저래?”
“대충 가르쳐 주다가, 홀랑 가 버리네.”
그 행동이, 헌터들에게는 나쁜 인상을 심어 주게 되었다.
“그것보다 느꼈습니까? 아까부터 김민준 하사님한테 무리한 일 시키는 거.”
“그래. 유독 그러는 거 같기는 했지.”
불친절한 교육.
헌터들을 깔보는 듯한 태도.
거기다 훈련 도중인데, 자기 멋대로 자리를 비우기까지.
“제가 볼 때, 저런 식으로 하면 금방 다른 곳으로 전출되지 않겠습니까?”
“이놈의 헌터군 부대. 장교라고 특별 대우해 주는 거 봐라. 일반 헌터였으면 강등에 강등인데.”
“그러게 말입니다.”
헌터들은 어느새, 김상덕 대위에게 험담을 퍼붓고 있었다.
“얌마. 아무리 그래도 교육관님인데 그렇게 대놓고 까면 되나. 소리 좀 줄이면서 까라.”
“예.”
“알겠습니다.”
대위를 달고 유치한 짓을 연속으로 할 줄이야.
그런 놈을 상관으로 대우해 줄 필요가 없지.
“그것보다, 너네 전혀 감을 못 잡고 있는 것 같은데?”
김민준은 여전히 쩔쩔매는 헌터들에게, 이런 건 요령이 중요하다고 알려 주었다.
“마력석을 가공해 만든 이 무기는, 너네들의 기력을 연료로 사용한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강약 조절을 잘해 봐. 처음에는 세게 시동을 건다고 생각해. 그다음 강도를 낮추면서 오러를 유지하는 거지.”
“…말이 쉽지 말입니다.”
“그게 가능했으면, 저도 진작에 오러를 유지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을 보며 졌다는 듯이 대답하는 이동진과 김광식.
김민준은 그들에게 다가가, 일대일로 지도를 해 주었다.
물론 오러를 내기 쉽도록 자세를 교정해 주는 것이 전부였지만.
“오? 넌 좀 가능성이 보인다?”
교육관이 자리를 비운 지 어느덧 1시간이 지났다.
여헌터들의 대열 쪽에서, 오러를 괜찮게 유지하는 헌터가 나왔다.
그 인물은 바로 손은서 병장이었다.
“병장 손은서! 감사합니다….”
인상을 쓰며 대답하는 손은서.
상당히 지쳐 있는지, 숨을 거칠게 내쉬고 있었다.
“이야. 병장 괜히 단 게 아니네. 얘 이거 몇 분 정도 유지했냐?”
“지금까지 4분째 유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물음에, 근처에 있던 여헌터가 대답해 주었다.
“손은서. 힘 너무 들어갔다. 그 상태로 몬스터를 어떻게 상대하려고.”
그녀가 쥐고 있는 마력칼에, 손을 뻗었다.
“김민준 하사님?”
손은서는 흠칫 놀라며 뭐 하냐는 표정을 지었지만, 김민준의 진지한 얼굴을 보고 정면을 응시했다.
“괜찮으니까 힘 빼라. 나 믿고 쭉 빼.”
“예, 예!”
이런 방법으로 도움이 되기는 하는 걸까.
강한 의구심이 들었지만, 일단 하라는 대로 해 보기로 했다.
“그냥 힘을 막 빼지 말고. 이미지로 그려 봐. 몸 안에 있는 네 연료를, 마력검한테 조금씩 전해 준다는 느낌으로.”
“알겠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일대일 지도.
‘설마. 나한테 조금 가르쳐 준다고 뭔가 달라지겠어?’
10분 정도가 지나자, 손은서는 이제 그만 충분하다고 대답하려 했다.
아무리 김민준이 미친 재능을 가졌다 해도, 다른 사람의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일은 그와는 별개의 자질이 필요한 분야였기에.
‘…뭐야?’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변화가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