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84화 (84/212)

84. 혼자

“뭐? 혼자 처리했다니, 이 라이칸 슬로프를 말이냐?”

“예, 그렇습니다.”

“방독면은? 유독 가스도 발생했다고 하던데.”

“제가 마침 휴가 중이라, 방독면은 지참하지 못했습니다. 숨을 참은 상태로 놈들을 상대했습니다. 가스는 전혀 마시지 않았습니다.”

“…뭐라고?”

소대장은 김민준의 몸을 위아래로 살폈다.

놈의 전투복에는, 몬스터의 피가 튀었을 뿐.

작은 생채기조차 없었다.

“무기는 무엇을 사용했나?”

“소지한 무기는 있었지만, 방금 생성된 게이트에서는 유독 가스가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무엇보다 신속함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무기를 사용하지도 않고, 몸 멀쩡히 6마리의 라이칸 슬로프를 상대했다라….

그것도 혼자서?

“김민준 하사라고 했나. 지금 장난칠 기분 아니니까 똑바로 보고해!”

소대장은 현실성 없는 보고에, 순간 성이 나 언성을 높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뭐?

맨몸으로 중상급에 해당하는 몬스터를 단신으로 처리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전 사실을 보고했을 뿐입니다. 놈들이 한곳에 모여있는 순간을 노려, 어깨를 이용해 한 번에 처리했습니다.”

진지한 얼굴로 어깨를 툭툭 치며 대답하는 김민준.

그 행동이, 소대장의 화를 더욱 돋웠다.

“이 새끼가 미쳤나. 무적 헌터 부대면 강원도 철원에 위치한 최전방 부대 아니냐? 병사가 그런 발언을 해도 문젠데, 하사라는 놈이….”

“소, 소대장님!”

그사이.

상황을 정리하던 소대원들이 끼어들었다.

김민준의 말이 사실이라면서.

“그게 무슨 말이냐?”

“저기 하사분께서 몬스터들과 싸우는 걸 목격했다는 분이 계십니다!”

“뭐라고?”

병사들의 말에, 소대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스가 새어 나오고 있는데, 이 근처에 민간인이 있었다는 말인가?

“그분 몸 상태는? 이럴 것이 아니라, 빨리 병원에 이송 준비를….”

“전 괜찮아요. 그리고 저분이, 저를 구해 주셨어요.”

병사들에게 다급하게 지시를 내리던 중.

붉은 머리의 외국인 여성이 병사들 사이를 헤치며 걸어왔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것보다 지금 당장 병원에 가셔야 합니다!”

“전 정말 괜찮아요. 저분이 그 전에 안전한 장소로 데려다주셨어요.”

붉은 머리의 외국인 여성은 김서현이었다.

뭔가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낌새를 느껴, 돌아온 것이다.

‘김민준 님께서 몬스터를 단독으로 처치하고 시민들의 안전을 확보. 그런데 그 상황을 군부대 상급자가 믿지 않는 상황이네.’

이것도 김민준 님이 너무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별로 화가 나지는 않았다.

“저 군인분은 저를 포함해, 이 근처를 지나가고 있던 사람들을 먼저 대피시켰어요. 그리고 몬스터가 해당 장소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혼자서 상대하셨고요.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그, 그럼… 정말로 라이칸 슬로프를 혼자서?”

“네. 6마리 모두 맨몸으로 상대하셨습니다.”

“와… 중상급에 해당하는 몬스터를 맨몸으로 처리했다는 말입니까?”

“아니, 그것보다 어깨로 저놈들을 모두 죽였다니, 정말입니까?”

라이칸 슬로프의 사체를 보며 멍한 표정을 짓는 소대장.

소대원들은 김민준에게 다가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질문했다.

본래라면 매뉴얼대로 상황실에 보고해야 했지만, 잠시 잊은 듯했다.

그만큼 현재 상황이 충격적이라는 뜻이리라.

“그래. 내가 거짓말을 왜 하겠냐.”

“아니, 그것보다 어떻게 상처가 하나도 없습니까?”

“저런 짐승형 몬스터는 본능적으로 움직여서, 공격을 피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민간인들을 우선적으로 대피시키고, 지원 병력이 올 때까지 놈들을 잡아 둔다.

헌터군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막상 저런 상황이 닥친다면… 몇 명이나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10명 중 7명, 아니. 8명은 도망가겠지.’

무기를 소지하지도 않은 채로 중상급 몬스터를 상대하라니.

한 마리도 아니고, 여섯 마리다.

그냥 맨몸으로 탱크에 돌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이라는 말이다.

“대단하십니다….”

어느새 헌터군들 대다수가, 김민준을 존경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너네들, 매뉴얼대로 안 하고 뭐 하냐? 지금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거야?”

“아.”

“죄, 죄송합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김민준에게 호되게 혼났지만.

‘얌마. 내가 알아서 하는데 네가 여기까지 오면 어떻게 하냐? 저 가스 독하다. 잘못 마시면 너라고 해도 쓰러져.’

‘제가 있으면 더 쉬울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그리고 전, 김민준 님에게 걸림돌이 되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김서현은 그와 눈빛으로 짧은 대화를 주고받은 뒤, 곧바로 현장을 벗어났다.

‘좋아. 이 정도면 퍼펙트네, 퍼펙트.’

김민준은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인근 부대의 헌터들이 상황을 마무리하고, 상황실에 보고하고 있다.

다친 민간인은 물론, 근처의 건물이 크게 훼손되지도 않았다.

과연 이보다 더 깔끔하게 게이트를 처리할 수 있을까?

‘이 정도나 했는데. 중사, 달아 주겠지?’

헌터 본부 놈들, 안 달아 주기만 해 봐라.

밤마다 나이트 워커 보내서 잠 못 자게 괴롭힐 거니까.

**

104사단의 무적 부대 소속 간부가, 강릉에서 발생한 최악의 게이트를 막았다.

그것도 휴가 중에 우연히 발견해서.

그 사실은, 김민준 본인이 생각한 것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아니, 미친. 김민준 하사님이 게이트를 단독으로 막았다고? 그것도 휴가 중에?”

“야. 그것도 뭔… 그냥 게이트가 아니고, 가스랑 몬스터랑 같이 나오는 게이트였단다.”

“그건 또 무슨 미친 경우냐? 그럴 확률은 1%도 안 된다며. 그게 그렇게 된다고?”

“그러니까 더럽게 운이 없었지. 근데 그게 다가 아니다. 가스는 붉은색을 띠는 가장 위험한 가스였고,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는 라이칸 슬로프 6마리였단다.”

2소대 2분대원들의 생활관.

분대원들은 해당 소식을 전해 듣고, 경악에 빠졌다.

현재 김민준은 해당 일의 보고를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

“아니, 김민준 하사님이 강한 거야 우리가 제일 잘 알지.”

“그런데, 방독면 없이 맨몸으로 저놈들을 다 죽인 게 말이나 되냐?”

헌터들은 장비 의존도가 매우 높다.

무슨 웹툰이나 판타지 소설처럼, 이 악물고 단련한다고 해서 엄청나게 강해질 수 없다는 말이다.

한데, 김민준 하사님은 중상급에 해당하는 몬스터를 맨몸.

정확히 어깨 빵으로 죽였다고 한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아… 저번에 훈련용 오크 죽인 거. 그때도 개쩐다고 생각했는데….”

“야. 그거랑 이거랑 같냐? 그건 훈련용이라 많이 약화한 거고. 이건 라이칸 슬로프라고! 라이칸 슬로프! 걸어 다니는 근육질 늑대 새끼!”

분대원의 말에, 김광식이 입에 모터를 달고 말했다.

“마력탄은 통하지도 않지, 그 엿 같은 털 때문에 칼도 근력 스텟이 높으면 제대로 박히지도 않지. 특수 무기 사용하려 하면 귀신같이 도망치지. 그놈들 나타나면 지옥이라고, 지옥.”

그는 던전에서 라이칸 슬로프 1마리를 상대한 적이 있는데, 비교적 약한 개체였는데도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런 게 6마리가 모여 있다면… 완전 무장한 1소대 정도는 있어야 할 거 같은데.”

분대원들은 김민준의 빈자리를 슥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설마… 중사로 진급되거나 그러시는 거 아닌가?”

“다른 상황이었으면 모르겠는데, 게이트에 유독 가스랑 몬스터가 같이 나온 걸 처리한 거면… 가능성 있을 것 같은데?”

하사를 단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중사 얘기가 나올 줄이야.

분대원들은 김민준이 얼마나 대단한 헌터인지, 다시 깨닫게 되었다.

**

같은 시각, 대대장실.

“후… 김민준.”

2대대 대대장, 이준범 중령은 심각한 얼굴로 뉴스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강릉의 시내 한복판에 게이트가 발생해.]

[해당 지역은 중고등학교가 밀집된 지역이었으나, 다친 사람은 단 1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104사단의 무적 헌터 부대 하사, 김민준이 위험을 무릅쓰고 시민들을 피신시켜.]

“하사 김민준.”

“잘했다! 아주 잘했어!”

그러길 잠시.

몸을 일으킨 뒤, 두 팔로 김민준의 몸을 껴안았다.

평소 감정 기복이 없는 대대장에게 있어, 드문 행동이었다.

“이거 보이냐? 뉴스들 말이야. 너를 칭찬하는 말밖에 없다.”

온갖 매체들에서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김민준을 칭찬하고 있었다.

보통 이런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헌터군을 비난하려 할 텐데 말이다.

그만큼 그의 대처가 완벽했다는 뜻이다.

“아닙니다! 전 헌터군으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크… 대답까지 아주 그냥 마음에 들어.”

대대장은 김민준의 어깨를 힘차게 두드렸다.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헌터 본부에서 부랴부랴 회의에 들어갔을 거다. 이 정도 큰일을 했는데, 아무것도 안 주면 그것도 문제거든.”

“전 실적 점수면 충분합니다.”

“실적 점수로 끝날 리가 없지. 내 생각에는, 이번에 네가 중사로 진급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하사 단지 2달도 지나지 않아, 중사로 진급이라.

‘슬슬 때가 됐긴 했지.’

그동안 각종 훈련과 위급 상황 대처, 이레귤러 몬스터 처치 등등.

상당한 실적을 올렸음에도 진급이 되지 않았다.

‘간부는 병사와는 다르게 진급 기준이 상당히 까다롭다고 했지.’

자신이 단기간에 달성한 수많은 실적들.

저것들은 보통 헌터군 간부라고 치면, 최소 2년은 잡아야 하지 않을까.

‘그만한 실적을 올렸는데도 진급에 대한 말이 없었다라….’

군대에서 짬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느끼는 순간이었다.

물론, 짬이 중요해 봐야 실적보다 중요하겠냐마는.

“보고서야 재차 확인할 것도 없겠지.”

상황 보고서를 적당히 읽던 대대장은, 빠르게 사인을 끝냈다.

맨몸으로 몬스터를 처치.

유독 가스가 나오는 상황은, 그저 숨을 참는 것으로 대처.

말이 안 되는 내용들이었지만, 김민준 하사라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

그동안의 결과가 뒷받침해 주고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목격자들이 동일한 진술을 했다고 하니까. 믿을 수밖에 없겠지.’

“아. 그러고 보니, 이게 있었지.”

그는 뭔가 생각난 듯, 군복 주머니와 서랍을 뒤적거렸다.

“여기 있군. 자, 내가 김민준 하사에게 따로 주는 감사 선물 같은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받게.”

옷장에서 꺼내 온 적당한 크기의 박스 하나.

“하사 김민준! 감사합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왕 주는 거니 감사히 받기로 했다.

“내가 컨디션이 좋을 때 따로 사용하려고 했던 건데, 나보다 젊은 헌터가 쓰는 게 좋겠지. 상당히 귀한 거야.”

대대장은 자신이 중령을 달고 나서야 얻을 수 있었다는 아이템이라고 말했다.

“그렇습니까? 그럼 감사히 쓰겠습니다!”

“그래.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포상금하고 휴가 크게 나갈 테니까, 기대하고 있어도 좋아.”

“예! 그럼 가 보겠습니다! 충성!”

귀한 아이템이라는 말에, 김민준은 재빨리 단련실로 향했다.

“뭐길래 대대장이 그렇게 생색낸 걸까.”

약간의 기대감을 품고, 박스를 개봉했다.

“…이건?”

아이템의 정체를 확인하자, 두 눈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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