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82화 (82/212)

82. 예지-1

‘야. 무슨 일이라도 있냐?’

뭔가 싶었더니, 소환수 나이트 워커가 자신의 마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전에 충분한 마기를 나눠 줬는데도 부족하다는 것은, 뭔가 큰일이 생겼다는 뜻이리라.

스스스스.

나이트 워커는 지금부터 3일 뒤, 게이트가 발생할 것이라는 보고를 해 왔다.

‘게이트가 발생하는 지점은 강원도의 시내 한복판. 출현하는 몬스터는 5마리에서 10마리 사이라 이 말이지.’

머릿속으로, 시내의 풍경들이 스치듯 지나간다.

‘이 지점인가. 여긴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인데.’

소환수가 보여 준 장면을 단서 삼아 김민준은 근처의 군부대를 찾아보았다.

강릉 근처에도 헌터군 부대가 있긴 했지만, 거리가 꽤 떨어져 있다.

아무리 빨리 지원을 온다 해도, 10분 이상의 시간이 걸릴 터.

‘10분이면… 인명 피해가 엄청나겠는데.’

게이트에서 10마리의 고블린만 나타나더라도, 최소 3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부상을 입거나, 사망한다.

‘느껴지는 기운을 보면, 최소 중급 이상 몬스터란 말이지.’

나이트 워커의 보고에 따르면, 출현하는 몬스터는 최소 오크 이상.

녀석의 스킬 등급이 올라간 덕분에, 더욱 세밀한 부분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좋아. 잘했다. 지금 바로 휴가 준비를 해야겠는데.’

근래 들어, 뭔가 큰 건이 없나 싶어 몸이 근질거렸는데.

마침 잘됐다.

‘이걸 막아도 중사를 안 달아 준다면, 나중에 두고 보자고.’

**

2일 뒤.

김민준은 휴가를 신청한 뒤, 곧바로 강릉으로 향했다.

“그런데, 굳이 너까지 따라올 필요는 없는데?”

현재 자신의 옆에는 흑마법사 집단의 신도인 김서현이 있는 상황.

아무래도 소환수에게서 해당 사실을 전달받은 듯했다.

“김민준 님. 제가 있는 편이 훨씬 좋은 이득을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냐? 조만간 한번 부르려고는 했으니까, 상관없지.”

“예. 감사합니다.”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는 김서현.

김민준은 그런 그녀를 잠시 응시하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도 그럴 것이….

“너, 내가 보내 주고 있는 돈은?”

헌 옷 수거함에서 주워 입은 듯한 옷을 입고 있었으니까.

물론 김서현이야 외모적으로 나쁘진 않다.

다만, 이세계에서 고생하던 자신의 신도들이 여기서까지 고생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순 없었다.

이제껏 누리고 싶었던 것들을 못 누리던 놈들이다.

최소한 이곳, 한국에서는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들을 모두 누리게 해 주고 싶었다.

“예. 돈은 최소한의 생활을 제외하고, 저금하고 있습니다.”

“너. 내가 처음에 뭐라 했냐?”

“예, 예?”

살짝 화가 난 듯한 언성.

김서현은 화들짝 놀라며, 재차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보내 주신 돈은 저희들에게 마음껏 사용하라고 하셨지만… 어찌 김민준 님이 버신 돈을 쉽게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저희는 몸 멀쩡히 이곳, 지구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선 그런 거 하지 말라니까 그러네.”

김민준은 지갑에서 현금을 다발로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지금 당장 근처 옷가게 가서, 멀쩡하고 좋은 거로 사 와. 아니, 저기 백화점 보이지? 당장 저기 가라. 이거 다 안 쓰고 오면, 나한테 혼날 줄 알아.”

“기, 김민준 님… 감사합니다….”

황송하다는 표정으로 돈을 건네받은 김서현은, 곧장 근처의 옷가게로 향했다.

“습관이라는 게 쉽게 바뀌지는 않지.”

김민준은 가는 길 사이사이, 고개를 뒤로 돌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봉구, 김서현, 그 외 다른 신도들 대부분이 정상적인 삶을 살아오지 못한 놈들이었으니.

‘이봉구는 어릴 때 목숨을 걸고 빵을 훔쳤지. 김서현은 어릴 때 눈이 멀었다는 것이 확인되자마자, 친부모에게 버림받았고.’

그런 삶을 살았기에, 끝내 제국에 악감정을 품고 흑마법사 같은 어두운 집단을 찾아 몸을 담게 되는 것이다.

‘제국이라. 또 생각하니까 열 받네.’

제국은 쓸모없는 인재들을 칼같이 쳐 냈다.

길거리에서 굶어 죽든지 말든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봐라.’

기초 생활 수급 지원부터 해서, 지원 정책이 얼마나 많아.

‘에이 씨. 이놈의 과거. 떠올리기 싫어도 가끔씩 떠오른다니까.’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떨쳐 냈다.

이스가르드라는 이세계로 떨어졌기에 막강한 힘을 얻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만큼 괴로운 시간들을 견뎌 냈기에 얻은 결과물일 뿐이었다.

“김민준 님.”

30분쯤 지났을까.

김서현이 머뭇거리며 자신에게 다가왔다.

“돈은 다 썼지?”

“예? 예… 말씀하신 대로, 100원도 남김없이 다 사용했습니다.”

백화점에서 구입한 좋은 품질의 옷을 입고 있는 김서현.

안 그래도 외모는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는데, 옷까지 제대로 챙겨입으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 번씩 뒤돌아볼 정도였다.

“그래. 그러게 내가 뭐라 했냐. 너네들이 목숨 걸고 이곳으로 왔는데, 부족함 없이 잘 살아야 된다고 했지?”

“예….”

“먹고 싶은 거, 입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내가 지원해 줄 테니까 다 해. 범죄만 아니면 뭐라도 상관없다.”

“기, 김민준 님….”

무심한 듯한 말이었지만, 그녀를 감동시키기에는 충분했다.

“흐윽….”

김서현이 눈물을 흘렸다.

맹인이었던 자신을 구원해 주신 분이다.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평생 감사하며 살기로 했다.

그런데….

김민준 님은 그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을 세심하게 신경 써 주고 있었다.

그토록 오지 말라던 지구에 억지로 왔는데도 말이다.

“얌마. 울긴 왜 울어. 누가 보면 내가 너 울린 줄 알잖아.”

“죄, 죄송합니다.”

“이왕 너도 따라온 김에, 한번 즐겨 봐. 한국이 어떤 곳인지. 너 하루 종일 방 안에 박혀서 공부만 했다며.”

피식 웃으며 따라오라는 듯 고개를 까딱이는 김민준.

“알겠습니다!”

김서현은 환하게 웃으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이봉구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봤다면, 기절초풍했을 것이다.

평상시에는 항상 무표정에, 김민준을 제외한 신도들에게는 온갖 악담을 퍼붓곤 했으니까.

“그러고 보니까, 이봉구는 지금 뭐 하고 있냐? 보고가 없던데.”

근처 고깃집 안.

김민준은 김서현의 접시에 고기를 덜어 주며, 근황에 대해 물었다.

“이봉구 말입니까? 그 벌레… 아니, 그놈은 마기를 찾는 것에 집중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국에는 마기가 잘 없다 보니, 해외 쪽으로도 활동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 그놈이야 뭐, 알아서 잘하겠지.”

“아. 그리고 전 두 달 뒤, 헌터 부사관 1차 시험에 응시할 생각입니다.”

“뭐야. 벌써?”

김민준의 눈이 의외라는 듯 빛났다.

한국어 공부한 지 얼마나 됐다고, 헌터 부사관 시험을 치르겠다니.

김서현이 머리가 좋은 건 알고 있었는데, 그 정도였던가?

“매일 15시간씩 공부했습니다.”

“15시간? 참나. 빠른 이유가 있었네. 너 하고 싶은 거 하라니까 그러네. 굳이 나 따라서 헌터군 들어올 필요 없어.”

“제가 하고 싶은 건, 김민준 님의 곁을 보조하고 싶은 것뿐입니다.”

이것만은 양보 못 하겠다는 듯이 대답하는 김서현.

“와… 이거 엄청 맛있습니다, 김민준 님!”

그러다가도, 고기가 입에 들어가니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마음껏 먹어라. 내 눈치 보고 덜 먹고 그러면 혼난다.”

“네, 네!”

김민준은 그런 그녀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서, 네 마안. 그렇게 써도 무리는 안 가는 거냐?”

김서현이 자신을 따라가겠다고 이유는 하나.

변덕쟁이 마안을 사용해, 발생할 게이트의 종류와 시간대를 정확히 특정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되면 완벽한 대비를 할 수 있고, 자신에게 많은 이득이 돌아온다나.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만. 있어서 나쁠 건 없지.’

발생하는 게이트 중 90% 이상은 몬스터만 나오고 닫힌다.

다만.

나머지 10%는 몬스터만 나오는 것이 아닌, 맹독 가스 같은 유해 물질이 방출되는 경우도 있었다.

당연히 그런 경우에는, 헌터군이 아무리 피해 지역에 빠르게 도착한다고 한들 별다른 수가 없었다.

‘가스 같은 경우야 빠르게 대처하면 회복될 수 있기라도 하지, 다른 경우에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고도 하니까.’

김서현의 마안이 그런 부분까지 정확하게 캐치해 준다면, 시민들을 완벽하게 구해 낼 수 있긴 했다.

“그렇습니다. 김민준 님.”

김서현은 기름진 입가를 한 번 닦은 뒤, 입을 열었다.

“이 마안은 자기 멋대로 예언을 보여 주지만, 일정 조건만 충족시킨다면 제가 원할 때 예언을 볼 수도 있으니까요.”

“그 조건은 10m 이내의 범위 안에 들 것. 그리고 너무 먼 미래는 안 된다는 것. 맞냐?”

“예. 맞습니다.”

나이트 워커가 대략적인 정보를 가져온다고 하면, 김서현의 변덕쟁이 마안은 세세한 정보들까지 파악할 수 있다.

물론, 그 정보가 진짜인지 아닌지는 본인이 판단해야 하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좋아. 그럼 바로 발생 예정 지점에 가 보자고.”

“알겠습니다.”

김서현은 자신감 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83만 원 나왔습니다.”

“예. 여기요.”

“파, 팔십삼만 원… 내가 언제 그렇게 많이 먹었지….”

김민준이 계산하는 고깃값을 듣고, 어쩔 줄 몰라 하긴 했지만.

**

강릉시, 중고등학교가 밀집된 지역.

김서현은 해당 지점에 도착하자마자 마안을 사용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그래.”

붉은빛으로 번뜩이는 변덕쟁이 마안.

한동안 길가를 바라보던 그녀가, 예언 3개를 봤다고 말해 왔다.

“하나는 지금부터 20분 후, 다른 하나는 30분 후, 그다음은 1시간 뒤입니다.”

“좋아. 각각 상황에 대해서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 봐.”

자신의 말에, 김서현은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설명을 시작했다.

“20분 뒤에 발생하는 게이트에서는 늑대 형태를 한 몬스터가 나옵니다. 그 수는 8마리. 놈들은 게이트에서 나오자마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습격해 물어뜯었습니다.”

“늑대 형태의 몬스터… 라이칸 슬로프네. 다음은?”

“30분 뒤에는 게이트에서 유독 가스와 함께, 라이칸 슬로프가 출현했습니다. 그 수는 6마리였습니다.”

“유독 가스와 몬스터가 같이 튀어나온다라. 흔히 있는 상황은 아니지. 다음.”

“1시간 뒤에는 오우거 50마리가 튀어나왔습니다. 그 압도적인 숫자에, 헌터군은 탱크 20여 대와 대대급 인원을 투입해 맞서 싸웠습니다.”

김민준은 잠시 자리에 서서, 생각을 정리했다.

“마지막 건 거짓이네. 나이트 워커가 5마리에서 10마리 사이라고 딱 정했으니까.”

그럼 앞의 두 개 중 하나가 진짜일 확률이 높다는 말인데….

“앞의 것도 사실 별문제는 안 된다. 문제가 되는 건 유독 가스가 같이 새어 나오는 게이트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움직일 필요가 있다.

김민준은 길가에 지나다니고 있는 사람의 수를 파악했다.

게이트가 발생하기에 앞서, 시민들을 미리 대피시키려는 것이다.

만일 유독 가스가 새어 나오기라도 한다면, 피해가 발생할 수 있었으니.

스스스스.

“응? 뭐야.”

“기, 김민준 님!”

김민준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려던 찰나.

등 뒤에서 붉은색의 게이트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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