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악조건 훈련-3
천장에서 투입된 몬스터는 발이 지면에 닿기도 전에, 사망했다.
김민준이 날린 주먹 한 대 때문이었다.
“15조! 통과!”
사납게 튕겨 나간 하급 몬스터.
교육관은 그 장면을 보자마자, 훈련 합격 신호를 내렸다.
“이동진.”
“상병 이동진.”
온갖 변화가 일어나던 훈련 시설이 잠잠해졌다.
훈련을 무사히 마친 것이다.
김민준은 이동진의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워 주었다.
“고생했다. 앞으로도 그렇게만 해라.”
“가, 감사합니다….”
녀석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는지,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
적당히 밖으로 끌고 와, 의무 헌터에게 넘겨주었다.
“다들 주목!”
“주목!”
교육관은 15조가 밖으로 나오자, 헌터들의 시선을 모았다.
“다들 알다시피, 이 훈련의 목적은 그 어떤 열악한 상황에서도, 일정 수준의 기량을 발휘하는 것이다. 강인한 정신력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방금 15조처럼 훈련을 진행한다면, 충분히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 저건 김민준 하사님 빨이 크잖아.”
“내 말이. 나도 김민준 하사님이랑 같은 조면 어떻게든 버텼을 것 같은데.”
물론 대다수의 헌터들은 교육관의 설명에 납득하지 못했는지, 작은 목소리로 궁시렁거렸지만.
**
악조건 훈련이 끝나고, 오후 9시.
헌터 본부에서는 사단장들이 모여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요즈음 들어 104사단에 이레귤러 몬스터의 출몰이 잦다. 던전을 공략하기 전에, 조사를 더욱 철저히 진행할 수 있도록.”
“예! 알겠습니다!”
“폐쇄형 던전에 붉은 아귀 30마리라고 했나? 후… 아찔하구만. 사전에 조사는 제대로 한 거 맞아?”
“예! 그렇습니다! 이레귤러가 출현한 던전이었기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 조사했다고 합니다!”
박정호 중장은 보고서를 몇 번 읽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전 104사단의 2중대 2소대가 공략한 던전.
그곳에서 김민준 하사의 활약이 없었다면, 2소대 전원이 사망했을 터였기에.
“내 생각이 짧았어. 유능하다고 무조건 특수 부대로 보내려는 생각을 고쳐먹어야겠구만.”
그는 얼마 전, 김민준 하사를 헌터 특수 임무단으로 차출시키자고 의견을 제시한 사람이었다.
만약 김민준 하사가 차출에 동의해, 타 부대로 넘어갔다면….
헌터 본부는 뒤집혔을 것이다.
자신의 진급 길이 막히는 건 당연했고, 심하면 중징계를 먹을 수도 있었다.
별의 위치란 그만큼 많은 책임감이 필요했으니까.
“거기다 뭐라고 했나? 굉장히 신기한 방법으로 놈들을 처리했다고 하던데?”
“예! 그렇습니다!”
박정호 중장의 말에, PPT를 띄워 주던 대위가 재빨리 설명을 시작했다.
“김민준 하사는 상당수의 붉은 아귀가 있다는 걸 확신하자마자, 여분의 화염 방호복을 모아 일종의 벽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채찍을 이용해 한 마리씩 구멍을 통해 벽을 넘어오도록 유도했습니다! 놈들의 습성을 잘 파악하고, 이를 이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음….”
설명이 진행될수록 박정호 중장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뛰어난 상황 파악 능력과, 임기응변 능력까지.
타 부대에 넘어가지 않았던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 채찍을 그렇게 귀신같이 잘 다룬다 이 말이지. 언제 시간이 되면 내 눈으로 보고 싶구만.”
박정호 중장은 결심을 굳혔다.
김민준 하사는 어떻게든 104사단에 남겨 두어야 한다고.
“좋아. 다른 특이 사항은 나중에 검토하는 거로 하고. 김민준 하사의 특별 진급 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특별 진급 말입니까?”
특별 진급이라는 말에, 대다수의 장성들이 찝찝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김민준 하사가 이병 때부터 말도 안 되는 실적을 달성한 건 사실이다.
어디 실적뿐이랴.
그 어떤 훈련도 만점에 가깝게 소화해 냈다.
특히 오늘 진행되었던 악조건 훈련 역시, 만점이었다.
장교들조차 통과하기 힘들다는 훈련 말이다.
“저희들도 김민준 하사의 우수한 능력에 대해서는 공감합니다. 다만….”
준장 한 명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김민준 하사가 중사로 특별 진급하게 될 시, 발생하게 되는 문제 때문이었다.
“박정호 중장님. 김민준 하사의 복무 기간은 1년이 채 안 됩니다. 짧은 기간에 병사 신분에서 간부 신분이 된 것도 이례적인데, 또 특별 진급을 하게 되면….
병사들을 지휘하는 능력이나, 계급에 맞는 사명감 등등.
그런 것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쌓이는 능력이라는 말이었다.
만약 실적만 보고 진급을 시켰다가 사고라도 치는 순간, 그 책임은 고스란히 자신들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부가 설명까지.
“저뿐만 아니라, 헌터 본부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장성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흠….”
박정호 중장은 침음을 삼켰다.
방금 제기된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자신도 동의하는 내용들이었기에.
‘욕심이 너무 앞섰군. 천천히 갈 수밖에 없겠어.’
여기서 김민준 하사가 중사로 진급하기 위해서는, 뭔가 큰 실적이 하나 필요했다.
물론 30마리 가까이 되는 이레귤러 몬스터를, 고작 1개의 소대로 처리한 것도 큰 실적이긴 하다.
다만, 그것만으로 헌터 본부를 움직일 수는 없었다.
‘국민들이 알게 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인데.’
얼마 전.
춘천시에서 발생한 게이트처럼 말이다.
‘그런 상황은 2년. 아니, 3년에 1번 발생할까 말까니까.’
병사 하나가 너무 우수해도 문제다.
박정호 중장은 이 말뜻을, 오늘 처음 깨닫게 되었다.
“우수 헌터 표창이나 준비할 수 있도록 해. 그 정도는 괜찮겠지.”
**
악조건 훈련이 끝나고, 다음 날.
재훈련 대상인 헌터들은 도살장에 끌려 나가는 소처럼 연병장으로 향했다.
그 끔찍했던 훈련을 다시 한번 겪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김민준 하사님? 김민준 하사님은 오늘 휴식 아니십니까?”
침울한 표정으로 환복하던 김광식 상병은, 전투복으로 갈아입는 김민준을 보며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악조건 훈련을 모두 통과한 병사와 간부들은, 재훈련 날에 전투 휴무를 받을 수 있다.
당연히 김민준은 그 훈련을 통과해, 전투 휴무 상태였고.
“단련실 간다.”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김민준.
분대원들은 그런 그의 모습에,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와… 진짜 독하십니다.”
“저 같으면 오늘 하루는 움직이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내 걱정 말고, 너희들이나 오늘 하루 잘 넘겨라.”
김민준은 그들에게 손을 좌우로 흔들어 주며, 단련실로 향했다.
“좋아. 문은 확실히 잠갔고.”
문이 잠긴 걸 확인하자마자,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아이템을 꺼냈다.
작은 크기의 상자.
이전, 나이트 워커가 물어 왔던 몬스터 박스였다.
“오늘은 이놈을 꺼내서 스킬 숙련도나 올려야지.”
딸깍.
몬스터 박스를 열자, 안에서 뿌연 연기가 빠져나왔다.
그리고 순식간에 몬스터의 형태를 갖췄다.
“와….”
넓은 단련실 공간을 반 이상 메운 몬스터.
김민준은 의외의 결과물에, 환하게 웃었다.
중급 수준의 몬스터가 나와야 하는데, 중상급 수준의 몬스터인 오우거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오크보다 힘도 좋고, 피부가 질기고, 트롤만큼은 아니지만 강인한 재생 능력까지 가지고 있는 놈이지.”
스킬을 실험하며 가지고 놀기에 제격인 대상이라는 말.
“넌 오늘 나랑 하루 종일 놀자고.”
곧바로 스킬 등급이 오른 마기의 손아귀부터 사용했다.
“우, 우워억?”
아직 정신을 차리지도 못한 오우거는,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에 의해 앞으로 끌려갔다.
“C등급이 되니까 오우거도 가뿐하구만. 이거지. 이제 좀 쓸 만해졌네.”
오우거는 덩치가 큰 만큼, 상당한 무게를 자랑하는 몬스터다.
놈을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처리했다 해도, 운반이 힘들어 포기할 정도.
그런 몬스터가, 김민준이 가진 스킬 하나에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우, 우워어어어억!”
오우거는 근육을 부풀리며, 어떻게든 속박을 벗어나 보려고 애썼다.
“여기 방음 완벽하거든. 마음껏 소리 질러도 된다.”
물론 의미 없는 발버둥일 뿐이었지만.
“그어어어어!”
몬스터는 보는 사람이 불쌍할 정도로, 김민준에게 이리저리 휘둘렸다.
마기의 손아귀에 잡힌 채로 빙빙 돌려지거나, 훈련용 둔기나 검으로 두들겨 맞거나.
“뭐야. 벌써 죽었냐? 몬스터 박스에서 나온 몬스터들은 약한 편이라고 듣긴 했는데. 너무 약하네.”
몬스터 박스에서 출현한 오우거는, 2시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연기로 화했다.
아이템은 흐물거리며 녹아 없어졌고.
“아. 오늘 하루 종일 스킬 숙련도만 올렸으면 등급 쭉쭉 올릴 수 있었을 텐데.”
감민준은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고,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기분 둔기술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기본 둔기술의 스킬 등급이 D로 상승하였습니다.]
[기본 검술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기본 검술의 스킬 등급이 C로 상승하였습니다!]
오우거의 맷집이 좋았더라면, 더욱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었을 것이기에.
“군인들은 개별 행동이 금지되어 있거든. 이런 기회가 자주 오는 게 아닌데.”
힘 조절을 좀 할 걸 그랬나.
너무 신나서 막 패 버렸네.
“어. 김민준이.”
“하사 김민준.”
단련실 밖으로 나오자, 김철민 중위가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뭔가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걸까.
“생활관에 없어서 설마 싶었는데, 또 단련실에 있었냐? 쉴 때는 좀 쉬지 그러냐.”
“가만히 있기엔 몸이 근질거려서 그랬습니다. 그것보다 소대장님.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그래 보이냐? 악조건 재훈련을 무난하게 통과… 이건 아무것도 아니고.”
목소리를 몇 번 가다듬던 그는, 들고 있던 종이를 자신에게 건넸다.
뭔가 싶었더니, 표창장이었다.
병사 때 한 번 받았던, 우수 헌터 표창장.
“네 거다. 단기간에 그만큼 실적을 쌓았으니, 원래 2개는 받아야 하는데… 윗분들이 고지식하거든.”
김철민 중위는 아쉽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네가 짬만 많았더라도, 중사로 진급할 수 있었을 거다.”
복무 기간이 짧은 탓에, 표창장 하나에 그쳤다는 설명.
다른 헌터 같았으면 불만감을 품었겠지만, 김민준은 그게 뭐 어떻냐는 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그 이상으로 실적을 채워 버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당당한 듯한 김민준의 표정과, 태도.
김철민 중위는 그 얼굴을 보고, 졌다는 듯이 웃었다.
“그래. 너라면 실망하지 않을 것 같았다. 네 말대로, 압도적인 실적으로 증명해 버리면 위쪽에서도 어쩔 도리가 없을 거다.”
이례적인 경우를 잘 허용하지 않는 군대에서, 단기간에 상당한 변화를 일으킨 녀석이다.
‘저 기세라면 6개월 안에 중사 달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쌓인 업무를 처리하러 소대장실로 향했다.
이런 일은 부소대장한테 짬을 때려 버리면 되겠지만, 자신은 김민준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상황.
오히려 녀석이 임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잡다한 업무는 자신이 처리해 주기로 했다.
“고생하십쇼. 충성!”
“그래.”
좋아.
그럼 난 단련실에서 단련이나 더 해 볼까.
그렇게 생각하고 움직이려던 찰나.
‘응?’
몸 안에서 마기가 급속도로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