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80화 (80/212)

80. 악조건 훈련-2

표적지가 올라오는 순간 재빨리 총구를 표적지로 돌리면, 김민준은 이미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그냥 말이 안 나오네.”

“이병 때 사격 만발 받았다고 했었나?”

“악조건 사격을 만발하는 거랑 일반 사격 만발하는 건 천지 차인데. 장난 아니네.”

간부들은 사격이 끝나기 전까지, 방아쇠를 당길 기회조차 없었다.

그만큼 그의 사격 정확도와, 반응 속도가 압도적이었다는 뜻이리라.

“김민준.”

“하사 김민준.”

“체력이 고갈된 상황에서도, 훌륭한 집중력과 순발력을 보여 주었다. 뒤의 훈련도 그렇게만 하도록.”

“감사합니다!”

오죽하면 훈련에 대해 엄격하기로 소문한 교육관이 칭찬을 해 올 정도였다.

‘아. 악조건 사격이라고 했었나. 진짜 체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하면 실력이 늘 텐데.’

정작 김민준은 훈련을 제대로 즐기지 못해, 아쉬운 상태였다.

‘몸 안에 있는 마기를 완전히 빼내 버리면 가능하기는 할 텐데.’

이세계에서 정점에 오른 흑마법사라 한들, 자신은 인간이다.

흑마법사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마기를 완전히 방출해 버리면, 아무리 자신이라 할지라도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게 되더라도 웬만한 몬스터들은 맨몸으로 잡지만.’

그것보다, 몸 안의 마기를 밖으로 빼내 버리게 되면 반경 10㎞ 이내의 생명체들은 다 죽어 나갈 것이다.

자신은 다른 흑마법사와 비교할 수도 없는 진한 마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었다.

“김민준 하사님. 악조건 사격 만발하셔 놓고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뭔가 불만스러우신 표정입니다.”

사격 훈련이 끝나고, 약간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어느새 자신의 곁으로, 김광식 상병과 이동진 상병이 다가왔다.

“나도 이 훈련을 제대로 받고 싶은데, 도무지 지치질 않아서 그래. 나 혼자 치트키 쓴 것 같은 느낌이야.”

“…정말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포복을 그렇게 오랫동안 하셨는데 말입니다.”

“포복으로만 3㎞ 이상은 움직이신 것 같았습니다.”

퉁명스러운 자신의 대답에, 김광식과 이동진은 질렸다는 듯이 웃었다.

그 무거운 파워 슈트와 군장을 메고, 장시간 포복을 했는데도 쌩쌩하다니.

도대체 저 강인한 체력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것보다 너네, 사격 괜찮게 하더라? 우리 분대 중에 70% 이상이 합격선 넘었던데.”

“예. 생각보다 버틸 만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전에 휴가지에서 미친 듯이 전투 수영했던 거랑 별반 다를 바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 눈치챘냐?”

김민준은 이게 다 자신의 설계 덕분이니, 나중에 한턱 쏘라고 대답해 주었다.

물론 그건 너무 나갔다는 분대원들의 대답이 돌아왔지만.

**

“아. 제기랄. 오늘 특식으로 우동 나왔는데, 괜히 많이 먹었다.”

“미친놈아. 게워 내기만 해 봐라. 뒤통수 갈겨 버린다.”

“그러게 훈련 아직 안 끝났다고 했잖아. 적당히 처먹으라니까.”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 1시.

헌터들은 악조건 몬스터 실전 훈련을 위해, 훈련 시설 내부로 집합했다.

오전 훈련의 여파가 남아 있는지, 그들의 얼굴을 보면 피로가 쌓여 있었다.

“자. 다들 훈련하느라 고생이 많다. 이번 훈련을 마지막으로 악조건 훈련은 끝이니까, 다들 힘낼 수 있도록.”

“예….”

“알겠습니다….”

물론 훈련 일정은 하루 만에 끝난다.

다만.

앞서 한 사격과 마찬가지로, 이번 훈련도 일정 기준치를 만족하지 못하면 재훈련 대상이었다.

‘제발. 이것만은 넘겨야 한다.’

‘사격은 하더라도 이건 두 번 하면 진짜 죽는다!’

때문에, 헌터들은 이를 악물며 어떻게든 이 훈련만큼은 통과하겠다고 다짐했다.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2인 1조로 특수 훈련 시설 안으로 들어간다. 이 안에서 다양한 상황이 발생할 텐데, 각 상황에 얼마나 적절히 대처하는지를 보겠다.”

교육관은 겉은 유리로 이루어진 훈련 시설을 가리켰다.

악조건 훈련을 할 때와, 상황 판단 능력을 기를 때 사용되는 넓은 공간.

통칭 ‘패닉 룸’이었다.

“아… 젠장. 나 작년에 저기서 토했다가 선임들한테 엄청 혼났는데….”

김광식 상병은 패닉 룸을 보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저도 저기서 지옥을 경험했었습니다.”

그건 다른 헌터들도 마찬가지.

헌터들 대다수가, 저 투명한 내부 공간을 보고 마른침을 삼켰다.

“저게 뭐길래 그러냐?”

김민준은 헌터들의 반응에, 저 훈련 시설에 대해 물어보았다.

“저 안에 들어가면, 일정 시간마다 내부 온도가 확확 변합니다. 그뿐이면 다행인데, 토할 것 같은 괴상한 냄새랑 고막이 터질 것 같은 소음도… 으으….”

설명하다 말고 고개를 홱홱 젓는 김광식.

김민준은 그런 녀석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그러니까 저 방은 헌터들의 육체뿐이 아니라, 정신까지 뒤흔들기 위해 만들어진 훈련 시설이라는 말이구나.’

저 방에서 견뎌야 하는 시간은 대략 10분.

그 뒤에 출현하는 몬스터까지 처리해야 훈련을 통과할 수 있었다.

‘상당히 힘든 훈련인가 보네.’

교육관의 이어지는 설명에 따르면, 본래 이 훈련은 혼자서 진행하는 취지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다만.

헌터들 대다수가 나가떨어지는 바람에, 강도를 낮추고 2인 1조로 변경한 게 지금의 훈련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난 도저히 못 하겠다. 이 이상 훈련을 진행했다가는 죽겠다! 할 때는 오른손을 높이 들 수 있도록! 의무 헌터들이 즉시 투입될 거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1조부터 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한다!”

악조건 몬스터 실전 훈련이 시작되었다.

헌터들은 보호 슈트를 착용한 채, 시설 안으로 들어갔다.

삑.

교육관이 버튼을 누르자, 훈련 시설 내부에 붉은 조명이 들어왔다.

훈련이 시작되었다는 신호였다.

“후우. 최대한 버텨 보자고. 절대 안 죽으니까, 웬만하면 손 들지 마라.”

“너나 잘해라. 손 들 기미 보이면 강제로 내려 버릴 거니까.”

1조의 헌터들은 내부의 온도가 서서히 올라가는 것을 느끼고,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이 훈련은 강인한 정신력이 무엇보다 중요했으니.

우우우웅.

내부 온도가 사우나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올라갔다.

그것뿐이면 다행이겠지만, 그들의 코속으로 고약한 냄새까지 흘러들어 왔다.

“우욱!”

“아오! 이게 뭔 썩은 냄새야! 작년보다 더 심해졌잖아!”

재빨리 코를 막아 봤지만, 그럴수록 힘들어질 뿐.

헌터들은 얼굴을 구기며, 다른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는지 살폈다.

“와….”

“보는 우리가 다 힘드네….”

한편.

밖에서 훈련 장면을 보고 있던 헌터들은, 악조건 실전 훈련의 강도에 어깨를 떨었다.

헌터들의 육체와 정신을 좀먹게 하는 상황들이 연달아 발생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마지막에는 몬스터까지 나타난다니.

작년에 저 훈련을 어떻게 버텨 냈는지, 신기할 수준이었다.

“1조. 불합격.”

7분쯤 지났을까.

1조 헌터들 두 명이 칠판을 긁는 소름 끼치는 소리를 못 이겨 내고, 결국 훈련을 포기했다.

“좀 더 강인한 정신력을 기를 수 있도록. 저기 의무 헌터들이 대기하고 있으니까, 가서 몸 상태 한 번씩 체크할 수 있도록 해.”

다른 훈련들과는 달리, 교육관은 훈련을 이수하지 못한 헌터들을 갈구지 않았다.

그만큼 악랄하고 괴로운 훈련이었기 때문이다.

“아….”

“내일 또 받아야 하네… 차라리 날 죽여라….”

1조 헌터들은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의무 헌터들에게 다가가 간단한 검사를 받았다.

“다음! 2조! 빨리 들어갈 수 있도록!”

“예!”

1조를 시작으로 진행된 훈련.

2조, 3조… 4조.

대부분의 헌터들이 7분을 넘기지 못하고, 훈련을 포기했다.

“다음! 15조!”

어느새 15조의 차례가 왔다.

15조는 김민준 하사와 이동진 상병이었다.

“이동진.”

“상병 이동진.”

김민준은 몸이 뻣뻣하게 굳은 이동진의 등을 한 번 쳐 주었다.

“왜. 겁나냐?”

“아, 아닙니다. 단지… 김민준 하사님께 폐가 될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도저히 못 버티겠으면 포기해도 된다. 지금까지 통과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건, 그만큼 힘든 훈련이라는 거니까.”

“어떻게든 버텨 보겠습니다.”

뭔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이동진.

김민준은 그런 녀석을 보며, 가볍게 웃어 주었다.

“그래. 기껏 상병 달았는데, 상병의 패기가 뭔지 보여 줘라.”

우우웅.

15조가 훈련 시설 안에 들어가기 무섭게, 내부 온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저번에 붉은 아귀 처치했던 거 기억나냐? 그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수준인데.”

“예. 기억납니다. 확실히 버틸 만합니다.”

평온한 얼굴로 대답하는 이동진.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끼기기기기긱!

“크아악!”

고막을 긁는 듯한 쇳소리가 울려 퍼지자, 귀를 감싸며 주저앉은 것이다.

‘음. 확실히 빡세긴 하네.’

김민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최전방 아니랄까 봐, 훈련 강도가 장난 아니긴 했다.

웬만한 일로 꿈쩍도 안 하는 자신조차, 저 쇳소리는 거슬렸으니까.

“이동진!”

“사… 상병 이동진.”

“내 눈을 똑바로 봐라!”

어느새 바닥에 고꾸라져 있는 이동진.

김민준은 녀석을 일으켜, 흔들리고 있는 초점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저 소름 끼치는 소리에 다들 나가떨어지는 것 같은데, 정신 줄만 부여잡으면 어떻게든 넘길 수 있다.’

“넌 절대 안 죽는다. 죽을 것 같겠지만, 앞으로 3분만 버티면 훈련은 끝난다. 너, 지금까지 군생활 몇 년 했냐!”

“4년… 4년 넘게 했습니다.”

“그래. 헌터군 생활만 4년 넘게 하고 얼마 전에 특별 진급으로 상병도 달았잖아! 네 달라진 모습을 저기 밖에 있는 헌터들에게 보여 주라고!”

“크윽… 예!”

자연스럽게 대화를 유도하며,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김민준.

덕분에, 순간적으로 훈련을 포기하려던 이동진이 마음을 다시 잡게 되었다.

“흠. 좋아. 능숙하다.”

밖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교육관은, 15조의 훈련 자세가 마음에 들었는지 입꼬리를 올렸다.

‘악조건 적응 훈련이 괜히 2인 1조로 진행되는 게 아니지.’

혼자서는 못 버틸 만한 상황을, 옆의 전우와 함께 이겨 내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전우애가 더 깊어지고, 이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서의 적응력이 올라가게 된다.

15조는 자신의 마음에 쏙 들게, 훈련에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와 씨. 저걸 꾸역꾸역 버티네.”

“동진이가 저렇게 정신력이 좋았나?”

“야. 그것보다 김민준 하사님이 옆에서 다독여 주는게 큰 거지. 저게 있고 없고 차이 엄청 심하다더라.”

“김민준 하사님 표정 봐라. 아무렇지도 않네. 그냥 무표정이신데?”

“이거 지금까지 통과한 조는 거의 없었지 않냐?”

“1년에 1조 나올까 말까였지.”

그건 훈련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헌터들도 마찬가지.

그들은 무난하게 다양한 상황을 견뎌 내는 15조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동진.”

“상병 이동진.”

한편.

훈련실 안.

10분의 시간이 지나자, 쇠 긁는 소리가 멎고 천장이 열렸다.

곧 몬스터가 투입된다는 신호.

“잘 버텼다. 저놈은 내가 썰어 버릴 거니까, 몸만 가누고 있어.”

“김민준 하사님. 저도 할 수 있습니다!”

애써 몸을 일으키려는 이동진.

김민준은 그런 녀석을 향해 피식 웃었다.

“훈련 점수는 양보 못 한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