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단체 휴가-1
던전 공략이 끝난 뒤, 4일이 지났다.
“가즈아아아아!”
“단체 휴가다!”
휴가 일정을 맞춘 분대원들은, 간부에게 보고를 마친 뒤 들뜬 표정으로 부대 밖으로 향했다.
“와. 김광식. 전투복 각 날카로운 거 봐라. 종이도 베겠네.”
“너네들은 어제부터 짬 냄새 없애겠다고 화장품이랑 향수 엄청나게 뿌리더니만. 그런다고 짬 냄새가 없어지겠냐?”
“닥쳐.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오겠냐?”
김민준 덕분에, 설마 했던 여헌터들과의 단체 휴가가 성사된 것이다.
각 잡혀 있는 전투복과, 거울로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광나는 전투화.
분대원들은 여느 때보다 겉모습에 신경을 쓴 상태.
“손은서를 포함해, 그쪽 분대원들 전부 온답니다. 거기다 이번에 갈 곳은 간부들만 이용할 수 있다는 속초 특별 휴가지랍니다!”
“어? 레알?”
“거기 갈 수 있냐? 우리도?”
“김민준 하사님이 신청하니까, 10분도 안 지나서 승인 떨어졌답니다.”
특별 휴가지라는 말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럴 것이, 그곳은 일반 병사들은 절대 이용할 수 없다고 알고 있었으니까.
“야. 거기 가려면 대대장님한테 최종 결재받아야 되지 않냐?”
“그럴걸?”
“와. 역시 김민준 하사님 정도면 특별 휴가지도 프리 패슨가 본데?”
속초에 위치한 특별 휴가지.
던전 근처에서 솟아난 뜨거운 물 덕분에, 부랴부랴 세금을 들여 완공한 장소다.
민간인들에게 개방하면, 상당히 짭짤할 것이라는 헌터 본부의 판단이었다.
“하긴. 쉴새 없이 물이 솟아나는데, 그걸 가만히 놔둘 리가 없지.”
“거기다 주변 던전은 다 클리어한 상태고, 완공 후 1년 동안 몬스터가 한 마리도 안 나타났다더라. 안정성 입증은 끝난 거지.”
“캬. 헌터 본부가 한 건 해냈네. 거기가 반은 해수욕장, 반은 온천이었나?”
물을 분석한 결과, 온천수 중에서도 상급 수에 속하는 성분이 다량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특히 피부 미용에 좋다는 성분들이 많아, 여헌터들에게는 진작에 알려진 휴가지였다.
다만, 민간인들에게 개방하려면 몇 가지 절차를 더 걸쳐야 했다.
때문에 현재까지 헌터군 간부에게만 개방하고 있는 장소였다.
“이럴 때는 헌터군인 게 좋다니까.”
“선임 한 명 잘 만나니까 군생활이 술술 풀리네.”
물론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한정되어 있고, 가려는 간부들은 많다.
때문에 간부들 중에서도 일정 계급이나 짬이 안 되면, 신청도 하지 말라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다.
물론 김민준 하사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룰이었지만.
“신났구만, 신났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오는 분대원들.
김민준은 그런 녀석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충서엉!”
“충성!”
“김민준 하사님! 다음 훈련 꼭 만점 받겠습니다아!”
녀석들은 자신을 보자마자,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거수경례를 해 왔다.
“평소에 그렇게 좀 해 봐라. 나처럼 특별 진급 쭉쭉하겠다.”
“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것보다 차 어떠냐? 대대장님이 단체 휴가 나갈 거면, 특수 차량 지원해 주시겠다고 해서 받아 왔다.”
“헐… 대대장님이 차량 지원까지 해 주셨습니까?”
“군 생활 3년 넘게 하면서 대대장님이 그러시는 건 처음 봅니다….”
그렇게 잡담을 나누기도 잠시.
“충성!”
“김민준 하사님!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손은서와, 그녀의 분대원들은 예정된 시간에 딱 맞춰 도착했다.
‘야. 너 도대체 여길 어떻게 허가받은 거야? 저 차는 또 뭐고?’
손은서는 시동을 걸어 둔 특수 차량을 보자마자, 귓속말을 건네왔다.
걱정스러운 말투를 보면, 또 무슨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나 싶어서인 듯했다.
‘그냥 신청하니까 바로 허가 나던데?’
‘일반 병사를 데리고 간다고 했는데도?’
‘어. 거기다 차량까지 지원해 주시던데.’
‘와… 뭐지. 예전에 아빠한테 넌지시 말해 봤는데, 권력 남용했다가는 큰일 난다고 하시던데.’
김민준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한 그녀를 향해, 거만한 표정을 지어 주었다.
“이게 나다.”
“…이번엔 인정합니다. 그것보다 특수 차량 운전병은 어디 있습니까?”
“여기 있잖아.”
“…잘못 들었습니다?”
“내가 너네들 휴가지까지 데려다주고, 부대까지 데리고 온다.”
그의 말에, 시끌벅적하던 분위기가 일순간 잠잠해졌다.
“…김민준 하사님?”
“왜.”
“운전면허 없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질문해 오는 이승호 병장.
김민준은 헌터들을 향해,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했다.
“어제 땄지. 따끈따끈한 1종 대형 면허. 남자는 1종이지. 거기다 실전에 대비해, 유로 트럭까지 열심히 했다.”
“…어제 말입니까?”
“대형 면허 자격 취득 기준이 바뀐 게 이렇게 위험한… 아니, 근데 유로 트럭은 또 뭡니까?”
“운전 게임이라고 있다. 요즘 게임도 되게 잘 나오더라고.”
헌터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민준 하사님이 면허를 땄다?
그것도 바로 어제?
“야. 여기 버스 몰아 본 사람 없냐?”
“버스 아니더라도 SUV 운전해 본 적 있는 놈 나와 봐! 빨랑!”
“저 운전 경력 3년 있습니다. 그냥 제가 하게 해 주십쇼! 김민준 하사님!”
김민준 하사님이 운전대를 잡게 하면 절대 안 된다.
그렇게 판단한 분대원들은, 호들갑을 떨었다.
“얌마. 내가 내 경력에 흠집 나는 짓을 하겠냐? 정 못 믿겠으면 타지 말고 걸어오든가.”
“크윽….”
“제발 살아서 돌아가게 해 주십쇼….”
두 번 다시 없는 기회.
결국, 헌터들은 눈을 질끈 감고 특수 차량에 올라탔다.
“안전 운전할 테니까 걱정 마라.”
나 어제부로 유로 트럭 플레이 시간 200시간 찍었다.
**
“봤냐. 이게 바로 유로 트럭의 힘이다.”
“…정말 면허 어제 따신 거 맞습니까?”
“발급 날짜 봐라. 내가 괜히 하루 일찍 나갔겠냐?”
“김민준 하사님은 운전까지 타고나신 것 같습니다.”
휴가지까지 별 탈 없이 도착했다.
헌터들은 그의 운전 실력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것이, 눈만 감으면 숙달된 운전병이 운전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
“그것보다, 이 휴가지는 안정성이 입증되긴 했지만,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해 혼자서 다니지는 않도록 한다. 무기는 시야에 들어오는 곳에 두도록 하고. 온천은 밤에 이용할 수 있으니까, 우선 저기부터 즐기자고.”
김민준은 분대원들에게 주의 사항을 전달한 뒤, 바다를 가리켰다.
솨아아아.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파도 소리.
고운 모래가 깔려 있는 넓은 모래사장.
거기다, 사람들로 북적거리지도 않는다.
“예!”
“알겠습니다!”
분대원들은 조금이라도 휴가지에 오래 머물고 싶어, 탈의실을 향해 전력 질주했다.
“단체로 왔는데, 그냥 즐겨서야 재미가 없지.”
김민준은 멀어지는 분대원들의 뒷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이 뒤에 있을 훈련에 대비해, 육체 단련을 제대로 시켜 놔야겠어.”
**
헌터들은 군용 전투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뒤, 모래사장 앞으로 모였다.
디자인이라고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데다가, 눈살이 찌푸려지는 국방색이 들어간 수영복.
헌터들은 평소 같았으면 ‘휴가 중인데, 왜 군용 수영복을 입어야 하는 거냐.’라고 불만을 뱉었을 것이다.
“이런 곳 올 수 있으면 군용 수영복쯤이야 얼마든지 입지.”
“그건 인정.”
다만.
휴가지가 휴가지다 보니, 불만을 품은 헌터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헌터님들. 몸 좋으시네요.”
여헌터들은 2분대원들의 몸을 보고, 의외라는 듯 눈을 빛냈다.
그럴 것이, 2분대원 전원이 선명한 복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헌터군 훈련 강도가 높다 해도, 복근은 잘 안 생기는 걸로 알고 있는데, 헌터군 생활 열심히 하셨나 봐요.”
“아. 감사합니다. 여헌터님들도 마찬가지십니다.”
“저희가 최근 들어, 열심히 단련을 하긴 했죠.”
그런 대화는 얼마 이어지지 않았다.
“우와….”
“김민준 하사님 몸 봐.”
김민준이 상의를 탈의하고 모습을 드러내자, 여헌터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쏠렸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열심히 단련하셨을까.”
“저건 10년 이상 단련해야 나오는 몸 아니야?”
다른 헌터들과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의 압축된 근육들.
거기에 군데군데 있는 흉터들은, 보기 흉하다기보다는 근육들의 멋을 한층 더 부각시켜 주었다.
‘아. 이런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운동 좀 열심히 해 둘걸.’
손은서 병장을 포함한 여헌터 전원의 시선이, 김민준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분대원들은 속으로 허탈감과, 웬지 모를 패배감을 느꼈다.
“자. 다들 주목.”
“주목!”
“지금부터 저녁까지 해수욕을 즐길 건데, 내가 계획한 일정에 참가하기 싫은 사람은 따로 시간을 보내도 된다. 부담 갖지 말고 말해.”
헌터들에게 간단히 일정을 설명하는 김민준.
‘전투 족구, 이다음 전투 수영, 그다음 왕복 오래달리기?’
그들은 체력 단련으로만 이루어진 계획표를 보고, 한 방 먹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냥 하는 것도 재미가 없지. 1등 하는 팀에게는, 내가 개인적으로 상금을 지급하겠다.”
“헉!”
“그만큼이나 주십니까?”
그것도 잠시.
엄청난 액수의 상금을 듣게 되자, 헌터들의 의욕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1등은 299만 원. 2등은 만 원이다. 참고로 나와 같은 팀 되는 팀원들은, 내 몫까지 가져갈 수 있을 거다.”
“우와아아아아!”
그렇게 해서 4인 1조로 팀이 편성되었고, 전투 족구를 시작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김민준 하사님!”
“상금은 우리 거네.”
김민준과 같은 팀이 된 헌터들은 활짝 웃으며, 포지션을 잡았다.
“아니, 생각해 보니까 좀 그런데.”
“김민준 하사님! 아무리 상금 거셔도 그렇지, 저희가 김민준 하사님을 어떻게 이깁니까!”
반면 김민준과 적 팀이 된 헌터들은, 그에게 페널티를 부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페널티라. 그거 좋지.”
김민준은 피식 웃으며, 마음대로 하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편이 더 재밌을 것 같았기에.
“그럼 저희 먼저 가겠습니다!”
자리 배치가 끝났다.
반대편에 위치한 이승호 병장의 서브로 게임이 시작되었다.
1팀은 김민준을 포함해, 손은서와 여헌터 2명.
2팀은 이승호와 이동진을 포함해 여헌터 2명.
“나이스 속공!”
“그렇게만 해라!”
“제발 1팀을 떨어트려 주십쇼!”
2팀은 거침없는 공격으로 인해, 순식간에 점수를 득점해 나갔다.
김민준은 상대 팀이 8점 득점할 때까지 참가할 수 없는 페널티가 부과되어, 경기장 밖으로 빠져 있는 상황.
“아….”
“저분 누구야. 이승호 병장?”
“뭐 저렇게 잘해….”
단시간에 8점을 내주자, 1팀을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이렇게 무력하게 당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부담가지지 말고 해. 괜찮으니까. 내가 책임지고 이겨 줄게.”
“기, 김민준 하사님….”
“감사합니다!”
그것도 잠시.
어깨를 돌리며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는 김민준을 보자, 여헌터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승호. 지금까지 재밌었냐?”
“병장 이승호. 김민준 하사님이라고 해도, 족구는 저한테 안될 겁니다.”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이승호.
확실히.
저놈의 강약 조절은 기가 막히긴 했지.
“어디 한번 들어와 봐.”
김민준은 이승호를 향해,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내가 이세계에 있을 때, 신도들이랑 족구를 몇 시간 한 줄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