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붉은 아귀-1
“붉은 아귀 30마리? 그것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예. 그렇습니다.”
단 2마리인 줄 알고 있던 붉은 아귀의 수가, 말도 안 되게 불어나 있다는 보고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뭐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단기간에 28마리가 더 불어났다고?”
김민준 하사가 지금까지 우수한 모습만 보여 줬다 하더라도,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지금 느껴지는 이 열기. 붉은 아귀 2마리가 뿜을 수 있는 열기가 아닙니다.”
자신의 말에, 김민준은 손가락을 들어 던전의 끝부분을 가리켰다.
“지금이야 화염 방호복을 입고 있어 아무런 느낌이 없겠지만, 중간 부분만 가도 다르다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멀리서 느껴지는 열기가 강하다는 김민준의 보고.
안 그래도 화염 방호복을 입고 있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차린 건지.
“그래. 네가 일단 그렇게 말하니, 중간 지점까지 이동 후 어떻게 대처할지 결정하겠다.”
김철민 중위는 헌터들에게 대열을 맞춰, 이동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만약 김민준의 말대로, 이곳에 30마리의 붉은 아귀가 있다면 상당히 난처해진다.
폐쇄형 던전 안에 들어온 병력은 1개의 소대가 끝이다.
붉은 아귀 2마리를 상대한다는 가정하에, 편성된 병력이었으니.
‘이레귤러 몬스터가 출몰하는 거야 요즘 들어 빈번해졌긴 한데, 수가 그렇게 막 불어날 리가 없지.’
붉은 아귀는 식물의 형태를 한 몬스터다.
이족 보행을 하는 식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냥 아귀는 고블린보다도 상대하기 쉽지. 붉은 아귀라 해도, 냉각 수류탄만 잘 사용하면 훨씬 쉬워지고.’
다만.
그것도 놈들의 개체 수가 적을 때의 이야기였다.
30마리의 붉은 아귀를 상대하려면, 특수 제작된 냉각 수류탄을 무더기로 준비해야 한다.
당연히 1개 소대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고.
‘민준이 저놈이 예민해서 그렇겠지. 비상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먼저 알아차리곤 했으니.’
그건 그렇고.
한두 마리 불어난 것도 아니고 30마리라니.
고작 며칠 전에 2마리였던 붉은 아귀가, 30마리가 될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자. 다들 사주 경계 확실히 하면서 갈 수 있도록! 급하게 움직이지 마라!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헌터들은 김철민 중위의 지시에 따라, 전방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무슨 사우나 온 것도 아니고.”
“어우. 찜통이네 찜통.”
중간 지점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소대원의 이마에 땀이 한두 방울씩 맺히기 시작했다.
붉은 아귀가 출현한 던전의 내부 온도는 높다.
붉은 아귀의 몸이 내뿜는 열기 때문이었다.
놈들의 열기는 특수 제작된 화염 방호복을 입어도, 완벽하게 막아내지는 못했다.
“잠깐만.”
“이거… 갑자기 너무 뜨거워지는데?”
김민준이 경고한 지점까지 이동하자, 안쪽에서 상당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지금까지는 찜질방에 들어온 수준이었다면, 안쪽부터는 자칫 잘못하면 화상을 입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다들 조용히 뒤로 물러난다! 큰 소리 내지 않도록 주의하도록!’
‘예, 예!’
‘알겠습니다!’
붉은 아귀 2마리가 뿜어낼 수 있는 열기는 절대 아니다.
김민준의 경고가 사실이었다는 것이 확인되자마자, 김철민 중위는 목소리를 죽인 채 후퇴 신호를 보냈다.
‘이런 망할. 민준이 말대로 정말 30마리라면… 큰일인데.’
던전 안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열기.
거리가 어느 정도 떨어져 있었음에도, 숨이 조금씩 막혀 왔다.
확실히 보통 열기가 아니었다.
‘소대원들이 지참한 냉각 수류탄은 인당 1개가 끝이다.’
약 40개의 냉각 수류탄은 붉은 아귀 2마리를 상대하기에는 충분하고도 넘치는 양이었다.
다만.
그 숫자가 10마리 이상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붉은 아귀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처리 난이도가 올라간다.’
놈들은 뭉쳐 있을수록 강력한 열기를 만들어 낸다.
10마리 이상 뭉쳐 있을 경우, 철수 권고를 해야 한다는 매뉴얼까지 있을 정도.
냉각 수류탄의 효과가 크게 반감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고민이 많이 되시겠지.’
한편.
김민준은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는 김철민 중위를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다.
현재 소대의 전력으로는 붉은 아귀 30마리를 처리하는 건, 불가능한 수준이 아니다.
그냥 불가능했다.
‘내가 없었으면 2소대는 전멸했겠지. 요즘 들어 2소대만 유독 이러는 것 같네.’
2일 전.
보고서에 적힌 내용에 따르면, 2마리의 붉은 아귀가 출현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그 2일 사이에 저만큼 불어났다는 건데.’
2일 사이에 28마리의 이레귤러 몬스터가 불어났다라.
그냥 몬스터라면 발생할 수 있는 일이지만, 붉은 아귀는 이레귤러 몬스터.
분명히 무슨 원인이 있겠지.
‘쯧. 마기 스텟만 높았어도 나이트 워커를 안쪽으로 보내는 건데.’
김민준은 속으로 혀를 찼다.
현재 나이트 워커의 스킬 등급으로는, 저런 강렬한 열기를 견딜 수 없다.
몬스터의 수를 추측한 건, 어디까지나 감을 이용했을 뿐이었기에.
놈들의 수는 더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었다.
“김철민 중위님. 잠시 괜찮겠습니까?”
“어? 어어. 말해 봐.”
김민준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철민에게 다가갔다.
“본래 같으면 폐쇄형 던전의 입구가 열릴 가능성을 생각해 대기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던전에 있는 시간을 오래 끌수록 위험해집니다.”
“그건 나도 같은 생각이다. 다만, 놈들의 수가 많으면 1소대 가지고는 어림도 없지. 무슨 생각이라도 있는 거냐?”
심각한 표정을 짓는 김철민 중위.
김민준은 놈들을 한 번에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한 마리씩 상대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놈들은 당연히 무리 행동을 하는 습성이 있기에, 평범한 방법으로는 무리입니다.”
사실 저 안쪽에 있는 몬스터들이야, 그냥 단신으로 돌진해서 휘저어 버리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다.
물론, 그것도 자신에 한해서였지만.
‘붉은 아귀를 마구잡이로 죽여 버리면, 일정 확률로 강한 폭발을 일으킨다.’
자신이 앞서 생각한 방법으로 무식하게 처리해 버리면 소대원들이 폭발에 휘말리게 된다.
당연히 때리고 부수는 것에 특화된 자신에게, 모든 소대원들을 완벽하게 지킬 스킬은 없었고.
“제가 생각한 방법은 이것입니다.”
김민준은 허리춤에 찬 채찍을 꺼낸 뒤, 소대원들이 입고 있는 화염 방호복을 가리켰다.
“소대원들이 지참한 예비 화염 방호복을 이용해, 벽을 만듭니다. 그리고 특정 부분에만 구멍을 뚫습니다. 붉은 아귀가 간신히 넘어올 수준의 구멍 말입니다.”
그리고 물고기를 낚는 시늉을 했다.
“제가 한 마리를 낚아 오면, 소대원들 중 한 명이 놈의 입에 냉각 수류탄을 넣어 주면 됩니다. 나머지 한 명은 놈의 주둥이를 벌려 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방법으로 처리하면, 놈이 폭발할 위험도 없습니다.”
“…그런 방법이 있었나.”
이어지는 설명에, 김철민 중위는 충분히 해 볼 만하다고 판단했다.
지금까지 이런저런 대처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김민준이 생각한 방법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하나 문제가 있다.”
“문제 말입니까?”
“네가 말한 방법은, 이론적으로는 완벽해. 그런데… 너야 그렇다 쳐도, 소대원이 실수라도 하는 순간 모두 끝이다.”
김철민 중위는 고개를 돌려, 소대원들을 응시했다.
김민준이야, KCTC 훈련 때 엄청난 채찍 숙련도를 자랑했으니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음. 그나마 할 만한 놈이 이승호랑 김광식 정돈데….’
다만.
소대원들의 체력은 실시간으로 깎여 나가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해야 했고.
여간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망할. 아직 던전 끝부분까지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 열기라니.’
자신조차 숨이 턱 막힐 정도의 열기다.
던전 안에 들어가 있는 것만으로도 체력을 빼앗기는데, 강렬한 열기까지 덮치다니.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이 이상 시간을 끌면 위험하다. 빨리 처리하는 수밖에 없어.’
본래 같으면 던전 밖으로 후퇴하고, 충분한 장비와 병력을 보충해 들어오면 된다.
다만, 폐쇄형 던전은 한번 들어오면 끝이다.
아주 극히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다.
“다들! 지금부터 붉은 아귀를 처리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너희들도 느끼겠지만, 이 던전 안에 있는 붉은 아귀는 2마리가 아니다!”
“그, 그럼… 몇 마리나 더 있습니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 열기면 10마리 이상은 더 있다고 생각해라.”
“이런 미친!”
“10마리나 말입니까? 분명 2마리라고 보고 들었지 말입니다.”
김철민 중위의 말에, 소대원들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최전방은 무슨 저주받은 곳도 아니고. 심심하면 이레귤러가 튀어나와?’
‘거기다 뭐? 붉은 아귀 2마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10마리 이상이라고? 관측반은 뭘 한 건데?’
‘야. 10마리면 냉각 수류탄 40개로 안 되잖아. 이거 조진 거 아니냐?’
다른 이레귤러 몬스터라면 수가 좀 늘었다 해도, 대처가 어느 정도 가능한 편이다.
다만, 붉은 아귀는 개체 수가 늘어날수록 대처하는 것이 까다로워졌다.
“후욱….”
“벌써 목이 탄다….”
놈들이 있는 던전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헌터들이 탈수 증상을 일으키기 때문이었다.
“김민준, 이승호, 김광식! 너희 세 명이 붉은 아귀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한다! 나머지 소대원들은 여분의 화염 방호복을 꺼내, 김민준 하사에게 넘길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이 이상 시간을 끄는 건 위험하다.
그렇게 판단한 김철민 중위는,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병장 이승호. 세 명이서 말입니까?”
“상병 김광식. 놈들의 개체 수가 많은데, 세 명으로 어떻게 대처를….”
그들이 뭐라 말하기도 전, 김민준이 그들의 어깨를 잡고 앞으로 이끌었다.
“시간이 없어. 나만 믿고 잘 따라와. 그리고 저기 앞에 보이지? 세 명 정도밖에 들어갈 공간이 없어.”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지점이, 화염 방호복을 펼쳐 설치할 지점이었다.
“한 번만 설명할 테니까 잘 들어. 내가 붉은 아귀를 한 마리씩 낚아올 거다. 이승호. 네가 놈의 주둥이를 벌려. 김광식. 넌 그놈의 주둥이에 냉각 수류탄을 집어넣고.”
“…잘못 들었습니다?”
이어지는 김민준의 설명에, 이승호와 김광식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붉은 아귀를 앞서 말한 방법으로 처리했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기에.
“너네 두 명이 가장 적합해서 지목한 거야. 그리고 내가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너희들은 무조건 지켜 준다.”
그저 믿고 따라오라는 말.
그 말에, 이승호와 김광식은 자신을 잠시 쳐다보다가 대답했다.
“하겠습니다.”
“맡겨 주십쇼.”
지금까지 김민준 하사님을 믿어서 손해 본 적이 있었던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좋아. 그럼 바로 작업에 들어간다.”
걱정하지 마라.
너희들이 다칠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