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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72화 (72/212)

72. 처신 잘하라고

서류에 적힌 내용을 쉽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자신이 헌터 특수 임무단 소속이 되는 대신, 1계급 특진으로 중사를 달아 주겠단다.

병사에서 1계급 특진보다 간부의 1계급 특진이 훨씬 좋기는 하지만, 김민준은 별 감흥이 없었다.

‘일단 나랑 협상을 하려면 전자 기기 금지 조항부터 풀었어야지.’

특수 임무단은 신분 노출을 철저하게 막는 것이 원칙이다.

때문에, 자신이 특수 임무단에 들어가는 즉시 사회에서 쉽게 얼굴을 드러낼 수 없게 된다.

‘뭐? 사회에서 활동할 때는 얼굴을 절반 이상 가려야 한다고? 내가 무슨 사우디아라비아 여자냐?’

돈을 많이 주고, 진급이 빠르면 뭐 해?

내 자유를 뺏겠다는데.

그럴 거면 이스가르드에서 떵떵거리면서 살고 말지.

“전자 기기 및 인터넷 금지 조항, 신분 노출 조항을 예외로 해 주신다면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건 아무리 네가 우수한 헌터라도 해도 불가능하다. 특수 임무단의 철저한 원칙이다.”

“죄송합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전 최소한의 자유가 보장되는 곳에서 복무하고 싶습니다.”

“후우….”

단호한 김민준의 대답에, 작전 참모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은 별이다.

별 하나도 아니고 ,별 두 개.

눈앞에 앉아 있는 놈은 고작 하사 나부랭이고.

기껏 생각해 줘서 열심히 판을 만들어 줬는데, 그걸 걷어차 버린다?

고작 인터넷 금지 때문에?

갑자기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다시 한번만 생각해 보게.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아. 네가 가진 능력이 너무나 아까워서 하는 말이다.”

“죄송합니다. 전 여기서 복무하겠습니다.”

“김민준 하사. 내가 이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좋게 설득해 보려고 했지만, 칼 같은 거절이 되돌아왔다.

“군대는 까라면 까야 하는 곳이야. 네 눈앞에 앉아 있는 나는 작전 참모고. 별이란 말이야. 하나도 아니고 두 개. 아직도 뜻을 이해 못 하겠나?”

순간 화가 난 작전 참모는, 김민준을 향해 언성을 높였다.

“네가 이런 식으로 거절을 해 봐야, 아무 의미가 없어. 5대기 때에도 경험해 봐서 알겠지만, 특수 임무단의 힘은 강하다. 너네 부대, 괴롭히려면 얼마든지 괴롭힐 수 있다는 말이다. 잠도 못 자게 괴롭혀 줄까?”

다소 강압적인 말투와, 태도.

김민준이 연속해서 제안을 거절하자, 작전 참모의 태도가 급변했다.

보통 수단을 써서는 답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반협박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꾼 것이다.

‘이야. 협박을 한다고? 네가? 나한테?’

김민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요즘 군대는 많이 좋아졌다니 뭐니 하는 건 다 개소리지. 대놓고 저렇게 협박을 하는데.’

작전 참모가 자신만 괴롭힌다고 했다면 별 느낌이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실적 점수를 얻을 수 있으니까, 바라던 바였다.

‘그래서 우리 부대 애들까지 같이 괴롭히겠다 이거지?’

다만, 자신 때문에 같은 부대의 헌터들이 힘들어지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안 그래도 104사단이 훈련 미흡으로 인해,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특수 임무단까지 개입을 한다면, 헌터들은 정말 죽어날 것이다.

“한 번만 경고하겠습니다. 저한테 이 이상 찝쩍대면 부대가 통째로 날아갈 겁니다.”

김민준은 작전 참모를 향해 위협적인 목소리를 뱉었다.

이 세계에 있던 시절에 비해 많이 순해졌기에, 이 정도에서 그친 것이다.

“뭐, 뭐라고? 김민준 하사! 자네 정신이 나간 건가! 방금 그 발언은 그냥 넘어갈 수 없… 커억!”

작전 참모는 화를 내려다, 갑작스러운 압박감에 목을 부여잡았다.

“이, 이게 갑자기 뭔… 케엑!”

목뿐만이 아니다.

무형의 기운이, 자신의 온몸을 옥죄어 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신 줄을 부여잡지 않으면, 바로 의식이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그냥 넘어가셔야 할 텐데요.”

김민준은 캑캑대는 작전 참모를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그래야 전역하시고 연금 빵빵하게 받으실 수 있을 텐데.”

“…커, 커헉!”

작전 참모는 김민준의 눈빛을 보고, 몸을 덜덜 떨었다.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낀 것이다.

“제가 마음만 먹으면, 대한민국 정도는 쉽게 쓸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안 그러는지 아십니까? 여기가 제 고향이니까. 그리고, 군 복무는 건강한 성인 남자라면 무조건 해야 되니까.”

얼굴이 하얗게 얼어붙은 작전 참모.

김민준은 피식 웃으며 마기의 특이점 스킬을 OFF로 바꿨다.

그러자 공간을 가득 메운 보랏빛 마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이건 무슨! 너, 너! 도대체 정체가 뭐냐…. 우욱!”

작전 참모는 의식이 급속도로 흐려져 가는 것을 느꼈다.

그뿐만 아니라, 심한 구토감까지 올라왔다.

저 괴상한 연기가 나타나자마자 나타난 현상이었다.

“그, 그만! 이 부대에서 손을 떼겠다!”

작전 참모는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재빨리 대답했다.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기까지.

자신이 처한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 이상 시간을 끌면 큰일 나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에이. 말로만 하는 맹세가 맹셉니까?”

김민준이 마기를 몸 안으로 회수했다.

그러자, 숨통을 조여 오던 압박감이 귀신같이 사라졌다.

“오늘 이 자리에서 있었던 일은 발설할 수 없을 겁니다.”

그는 손가락에 피를 내 문예찬 소장의 이마에 떨어트렸다.

“도, 도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 제가 한국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흑마법사가 가진 자잘한 특수 능력 중 하나, 제약.

말 그대로 대상의 행동을 제한할 수 있는 능력이다.

서로 간의 격차가 커야 하며, 대상이 큰 공포감에 빠져야 하는 등.

이것저것 조건이 까다롭지만, 눈앞의 대상에게는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다.

‘저, 저놈은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된다.’

문예찬 소장의 얼굴이 땀에 절었다.

그동안 최악의 상황이란 상황은 모조리 극복해 내며 별까지 달았지만, 눈앞의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차원이 달랐다.

저놈의 정체가 뭔지.

방금 괴상한 연기는 또 뭔지.

묻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냥 어서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게 처음부터 좋게 가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는 비틀거리는 작전 참모를 부축해 주며, 손수 문까지 열어 주었다.

“조심히 들어 가십쇼. 충성!”

김민준이 검지를 입에 가져가 댔다.

알아서 처신 잘하라는 의미로.

“…아, 알겠네.”

문예찬 소장은 고개를 끄덕인 뒤,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김민준 하사! 작전 참모랑 무슨 일이 있었나?”

잠시 후.

작점 참모의 안색을 확인한 이준범 중령이, 황급히 대대장실로 들어왔다.

안 그래도 이전부터, 김민준 하사의 차출을 위해 접촉해 온 놈들이다.

그것도 고작 병사 하나를 데려가겠다고 말이다.

지금은 간부가 되었긴 하지만.

“하사 김민준. 특수 헌터 임무단으로 오지 않겠냐고 제안해 오셨습니다.”

“…대답은?”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작전 참모님께서, 두 번 다시 저희 부대에 관련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가지 않아도 괜찮겠나? 상당한 조건을 내걸었을 텐데.”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인터넷을 못 하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전 이 부대에 남고 싶습니다.”

“…그래?”

가지 않겠다는 김민준의 대답에, 이준범 중령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놈이 가겠다고 했으면 사단장님한테 한동안 시달렸겠지.’

이전부터 김민준을 주시하라고 지시를 내렸는데 허무하게 차출된다면, 그 분노가 자신에게 향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보다 김민준 하사. 5대기 때 오크를 대처한 것. 아주 훌륭했다. 포상 휴가 나왔으니까, 밖에 나가서 바람이라도 씌고 오도록.”

“예! 감사합니다!”

상황을 잘 마무리 짓고, 2박 3일의 포상 휴가까지 받다니.

김민준은 만족감을 느끼며, 곧바로 부대 밖으로 나갔다.

**

까톡! 까톡!

“응? 뭐야.”

휴가를 나오자마자 PC방에서 힐링을 하고 있던 김민준은, 손은서에게서 온 까톡에 눈길을 돌렸다.

가끔 일과 끝나고 밤에만 몇 번 연락 오던 놈이 웬일일까.

손은서: 야, 지금 시간 됨? 밖에 나올 수 있어?

김민준: 어허, 김민준 하사님이라고 해야지.

손은서: 일과 시간 끝났거든? 그리고 나 지금 휴가 중이야.

김민준: 또 휴가냐? 아주 그냥 꿀단지에 빠져 사는구나.

손은서: 뭐래. 아껴뒀던 휴가 조금씩 쓰는 거거든?

뭔가 싶어 확인해 보니, 지금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올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뭐냐. 난 그렇게 쉬운 남자 아닌데.”

김광식 같았으면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일이었다며, 온 부대를 뛰어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별 감흥이 없었다.

물론 처음 만났을 때보다야, 더 편해지기는 했다만.

“그것보다 굳이 쟤가 있는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멀 텐데.”

그렇게 생각하고 거절하려 했다.

손은서: 나 좀 도와준다 생각하고 한 번만 나와 줘.

김민준: 선제시요.

손은서: 아. 나중에 밥 사 주면 되잖아! 비싼 걸로 사 줄게! 제발 한 번만 나와 줘.

김민준: 나 지금 PC방에 있는데, 1㎞ 이상 떨어져 있으면 안 감.

손은서: 하아… 그놈의 PC방 진짜.

“뭐냐. 의외로 가까운데?”

졌다는 듯이 위치를 찍어 주는 손은서.

김민준은 해당 위치가 PC방 밑 1층 호프집인 것을 알고, 한번 가 주기로 했다.

손은서가 이 정도로 부탁해 온다니, 무슨 이유 때문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야. 뭔데 부르고 그러냐?”

호프집에 들어가 보니, 3명의 여성과 남성 1명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쟤는 또 뭐냐. 헌터군 하사네?’

김민준은 군복을 입고 있는 남성을 슥 쳐다본 뒤, 자리로 향했다.

“나 왔다. 마침 2층이 PC방이라서 와 줬다.”

손은서를 향해 심드렁하게 대답하자, 나머지 여성들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와. 저 사람이 네가 말했던 김민준 씨 맞아?”

“못생겼다면서? 잘생기셨는데, 오버하기는. 키도 되게 크신데?”

“여기 앉으세요!”

“예. 감사합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도와 달라고 하니 하루 정도는 어울려 주기로 했다.

‘쟤네 집에서 마기도 얻고, 사단장님한테 아이템도 받았으니까.’

김민준은 적당히 의자를 가져와, 손은서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부르면 바로 온다더니, 진짜 오네?”

“내, 내가 뭐랬어. 부대에서 김민준이랑 제일 친하다고 했잖아.”

맞장구쳐 달라는 간절한 눈빛.

김민준은 순간 장난기가 돌아, 그녀의 이마를 향해 딱밤을 날렸다.

딱!

“아악! 아프잖아! 갑자기 뭐 하는데!”

“못생기긴 누가 못생겨. 상병 나부랭이가 말이야. 한 대 더 맞아라.”

“악! 아프다고!”

“둘이 사이가 좋긴 한가 보네요.”

티격대는 모습을 보며, 재밌다는 듯이 웃는 여성들.

“저기요. 아무리 장난이라도 강도가 너무 세신 것 같은데요.”

그러나 자리에 앉아 있던 남성만은, 유독 불쾌감을 드러냈다.

‘갑자기 저놈은 왜 날 보고 정색하냐. 아. 설마?’

김민준은 헌터군 하사와 손은서를 번갈아 보았다.

‘이건 확실하네.’

그리고 확신했다.

손은서가, 이 자리에 자신을 부른 이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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