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69화 (69/212)

69. 5대기-1

“수확의 목걸이잖아?”

수확의 목걸이.

겉보기에는 흔한 양산형 장신구처럼 생긴 액세서리다.

“이거 몸에 지닌 채로 몇 마리 잡아야 한다더라… 헌터마다 다르다고 했었지.”

수확의 목걸이를 가진 채로 몬스터를 처리하다 보면, 목걸이의 형태가 알사탕의 형태로 서서히 변한다.

완전히 사탕의 형태로 굳혀졌을 때 섭취하면, 스텟의 상승으로 이어지는 효과가 있는 아이템이다.

“은근히 구하기 어렵다고 들었는데, 이게 웬 횡재냐.”

단기간에 마기 스텟 5를 얻은 것에다가, 아이템까지 얻다니.

자신의 예상보다 빠른 마기 회복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볼일도 끝났고, 시간도 남았겠다.”

이봉구랑 김서현이 잘 움직이고 있는지 체크나 한번 해 볼까.

**

세월이 상당히 지난 것 같은 원룸 골목.

김민준은 그중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김민준 님. 오셨습니까.”

그러자 김서현이 미리 문을 열고 나와,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그래. 이봉구는 던전 탐색하러 갔나 보네.”

“예, 그렇습니다.”

김민준은 방 내부를 눈으로 슥 훑었다.

자신이 예전에 살았던 원룸보다 못한 수준의 방이었다.

“분명히 돈은 충분히 줬는데. 왜 이런 곳에서 사냐? 신분증 구하는 데 바가지라도 썼냐?”

“절대 아닙니다.”

그의 표정을 확인한 김서현이 차분한 표정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이봉구는 방 안에서 작은 동물의 형태로 지냅니다. 그렇기에 굳이 넓은 공간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은 돈은 필요한 교재를 구입하는 데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봉구는 강제적으로 동물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지만, 김서현은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여기 교재들입니다.”

그녀는 현재 공부하고 있는 교재들을 가져와, 보란 듯이 내밀었다.

[쥐뿔도 없는 한국어]

[빌어먹을 한국어]

“한국어… 라고 하는 언어는 생각보다 익히기 쉬웠습니다. 이제 기본적인 글쓰기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작은 노트북에 떠 있는 화면을 가리켰다.

[속보! 강원도 춘천의 어린이 공원에서 게이트가 대량 발생! 104사단 소속 김민준 병장이(현 하사) 단독으로 진압!]

익명 1: 헌터군들은 국민 세금만 먹고 하는 게 없네. 쯧. 꼭 상황이 터지고 나서 막는다니까. 미리 감지하는 장비들은 개발 안 하고 뭐하냐?

익명 2: 병장 한 명이 전부 진압할 정도면 몬스터들도 기껏 해 봐야 하운드 같은 최하급 몬스터겠지 뭐 ㅋㅋ 겨우 그런 거 가지고 생난리임?

익명3: 진짜 오버 심한 거 맞긴 한 듯. 저런 기사 최근에 자주 보이지 않냐?

“아니! 저 미개한 놈들이 어느새… 김민준 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인터넷 기사의 댓글을 확인한 김서현은, 능숙하게 자판을 두드려 댓글을 작성했다.

한국에 온 지 고작 10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상당한 적응력이었다.

김민준님바라기: 지들은 방에서 글밖에 못 싸지르는 인생 X 망한 놈들 주제에 ㅋㅋㅋ. 니들은 평생 그렇게 열등감만 느끼면서 살아라. 현실은 하운드는커녕 대형 개만 마주쳐도 벌벌 떠는 놈들이.

“…죄송합니다. 이런 건 실시간으로 즉각 대응해줘야 하기 때문에.”

“그러냐? 난 별로 신경 안 쓰는데. 어쨌든 잘 배웠네. 그 책들, 완전 실전용인가 본데?”

여기에 온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한국인이 되어 가고 있었구나.

조금 안 좋은 쪽으로 배운 것 같기는 한데, 저 정도로 발전했으면 별걱정은 없겠네.

“한국어는 이 정도로만 공부하고, 이제부터는 헌터군 시험에 임하려고 합니다.”

“그래. 네가 헌터군에 들어와 주면 나쁠 건 없으니까.”

“예!”

김민준이 열심히 해 보라며 김서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자 그녀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여기 돈 추가로 두고 가니까, 필요하면 사용해.”

“김민준 님! 괜찮습니다! 이전에 주셨던 돈도 많이 남았습니다!”

“나 생각하느라 아끼는 거 안다. 이스가르드에서는 몰라도, 내 고향에서는 이렇게 사는 거 용납 못 한다.”

이세계에서도 거지처럼 살았던 놈들인데, 한국에서도 똑같이 살게 둘 수는 없지.

“기, 김민준 님….”

김서현은 두툼한 돈 봉투를 받자, 두 손을 모은 채로 눈물을 글썽였다.

“별거 아닌 거 가지고 호들갑 떨기는. 난 이제 가 볼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보고해. 마기도 좀 가져가고.”

김민준은 이봉구에게도 넘겨줄 마기까지 포함해, 김서현에게 소량의 마기를 전달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헌터군 시험은 꼭 합격하겠습니다.”

“그래. 넌 알아서 잘하니까. 이제 간다.”

그는 원룸 밖을 나서며, 녀석들이 구한 신분증을 눈으로 슥 훑었다.

“그런데 이봉구 이놈은 이름도 지 같은 거만 골라서 쓰네.”

도널드가 뭐냐, 도널드가.

촌스럽게.

사실 도널드라는 이름은 신분 중 가장 저렴했기에, 김서현이 임의로 구매한 신분이었다.

**

김민준이 부대로 복귀한 다음 날.

“민준아. 오늘 우리 분대 5대기다.”

“하사 김민준. 저희 분대는 다다음 주 아니었습니까?”

김철민 중위가 분대원들을 5대기 생활관으로 집합시키라고 지시했다.

“그래. 원래는 2주 뒤인데, 위에서 우리보고 교대하라고 그러더라. 이유는 모르겠다.”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뭐 별거 있겠냐. 큰 훈련 연속으로 지나가서, 기껏 해 봐야 상황 하나 걸고 끝나겠지. 내가 지휘조를 맡게 됐다. 넌 수색조를 맡으면 될 거다.”

“예, 그럼 분대원들한테 알리겠습니다.”

5분 전투 대기 부대.

줄여서 5대기.

말 그대로, 초동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 터졌을 때를 대비한 부대다.

5분 이내로 해당 지점까지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5대기 기간 동안은 단독 군장을 항상 착용한 채로 생활해야 한다.

행동이 느린 헌터는 군화까지 신고 취침하는 정도.

“어억! KCTC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5대기입니까? 저희 분대는 2주 뒤잖습니까아!”

“기껏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분대원들은 5대기를 준비하라는 김민준의 말에, 머리를 감싸 쥐고 절규했다.

“위에서 바꾸라고 했다던데 뭐 어쩌겠냐. 꼬우면 알지? 너네가 별 달면 된다.”

“크윽….”

“다들, 지금 바로 장비 점검하고 이상 있는 헌터들은 나한테 보고해.”

“알겠습니다….”

분대원들은 장비 점검을 마친 뒤, 1층에 위치한 5대기 생활관으로 향했다.

“어우, 씨. 5대기 여헌터들이랑 뛰었어도 불만 없었을 듯.”

“내 말이. 하필이면 이럴 때 바로 옆 생활관 애들이 걸리냐?”

“닥쳐. 우리도 여헌터들이랑 뛰고 싶었다고.”

이번에 5대기를 맡게 된 분대는 2소대 2분대와 3분대.

김철민 중위는 잠시 후, 생활관으로 들어와 5대기에 대한 메뉴얼을 다시 한번 설명했다.

“KCTC 훈련 성적 좋았다고 해서, 너무 풀어지지는 말고. 5대기도 중요한 거 잘 알고들 있지?”

“예!”

“그렇습니다.”

“그래. 상황은 웬만하면 한 번 정도만 걸릴 테니까, 다들 힘내고.”

“알겠습니다!”

그 뒤로 5대기 생활관에서 시작된 것은….

대기였다.

상황이 터질 때까지는,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게 일과의 전부다.

“…….”

헌터들은 살짝 간격을 벌린 채로, 양반다리를 하고 가만히 기다렸다.

공간도 좁고 내부도 구식인 시설이라, 거의 딱 붙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제기랄. 하필이면 김철민 중위님이야?’

‘FM이셔서 아무것도 못 하겠네.’

헌터들이 5대기를 버거워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시간이 더럽게 안 가기 때문이었다.

다른 소대장이었으면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것 정도는 허용했겠지만, 김철민 중위는 어림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소대장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흘러나왔다.

“담소 정도는 허용하겠다.”

조용히만 한다면, 대화 정도는 허락해 주겠다고 한 것.

분대원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의아해했지만, 곧 소대장의 뜻을 알아차렸다.

“민준아. KCTC 1일 차 때 말이다. 그 고지대에서….”

“그건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3시 방향에서 한동안 투시경을 고정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냐? 그런데 보급고 파괴할 때, 훈련용 트랩 같은 것은….”

김철민 중위 본인이 김민준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김민준 하사님이 상당히 마음에 드신 것 같습니다.’

‘훈련 상황인데 이러시는 적은 처음 아니냐?’

‘야. 생각해 봐라. 김민준 하사님 정도로 훈련이든 뭐든 다 휩쓸고 다니면, 그 영향이 소대장님한테 안 가겠냐? 이대로 가면, 대위 다는 것도 꿈은 아니시겠는데?’

‘다음 주까지 어떻게 버티나 싶었는데, 그나마 다행이지 말입니다.’

조용했던 5대기 생활관이 조금씩 떠들썩해진다.

오늘이 5대기 첫날이기도 하고, 다들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니었기에.

‘후, 그것보다 난 벌써 콜라 마렵다. 진작에 마시고 올걸.’

‘저도 그렇습니다. 이럴 때만 유독 그런 것 같습니다.’

5대기 중에는 FX는 물론이요, 샤워까지 할 수 없다.

샤워할 때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5분 대기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

실제로 몇 년 전.

상황이 터졌을 때 5분 대기조가 샤워를 하는 중이라,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결과는 당연히 얻어터졌고.

그 뒤로부터는 샤워까지 금지되었다.

물론 사람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오랜 기간 씻지 못한다면 몸에서 냄새가 나는 건 당연할 터.

헌터들이 할 수 있는 건 5대기 생활관에 비치된 물티슈를 사용하는 게 최선이었다.

‘나야 뭐 마기를 이용하면 별문제 없긴 하지.’

그런데 이런 일로 마기를 쓰는 건 아깝지.

나도 적당히 물티슈나 쓰지 뭐.

‘…기러기.’

‘기사.’

‘사마륨.’

‘이런 미친.’

계속 이어지는 5대기 중.

얼마나 심심했으면, 분대원들이 조용한 목소리로 끝말잇기를 시작했다.

물론 저것도 오래가지 않아 흥미를 잃을 것이다.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으니까 또 옛날 생각나네.’

현재 간부인 김민준이나 김철민이라고 해도, 병사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병사들에 비해 약간 더 넓은 공간을 보장받을 뿐이었으니까.

‘언제였더라. 엄청 센 놈 잡기 전에, 마기 숙련도 올리는 폐관 수련 비슷한 걸 했었지.’

그때는 빛도 안 들어오는 공간에서 미친 듯이 마기 컨트롤하는 훈련만 했었는데.

그때와 비하면야 지금은 그냥 애들 장난이지.

김민준이 잠시 과거 회상에 젖어 있을 때, 사이렌이 울렸다.

왜에에에에엥!

-비상, 비상! 당직 사관이 알린다. 작전 지역으로 넘어가는 구간에 몬스터가 출현했다! 5분 전투 대기 부대는 지금 당장! 신속하게 출동하길 바란다!

“다들 빠르게 준비해라! 운전병부터 빨리 나가서 준비해!”

“알겠습니다!”

“저도 운전병 선탑하러 출발하겠습니다.”

“그래.”

김철민 중위의 지시에, 운전병과 김민준이 먼저 생활관 밖으로 나갔다.

그 뒤, 헌터들이 장비를 챙겨 생활관 밖으로 우르르 빠져나갔다.

전투복을 포함해, 군화까지 미리 신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대처는 빠를 수밖에 없었다.

“좋아. 1분도 안 돼서 빠져나갔네.”

분대원들이 다 빠져나가자, 김철민 중위의 다급한 표정이 사라졌다.

“훈련 첫날은 애들 긴장 좀 하라고 상황 한 번 거는데, 이 정도 속도면 나쁘지 않네.”

그가 혼자 중얼거리며 밖으로 나가는 도중.

소대장님! 하사 김민준입니다!

뜻밖의 상황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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