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퀘스트
“아무리 헌터군 간부셔도 그렇지,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시면 어떻게 해요?”
신장 2m에 달하는 거구의 민간 헌터, 박찬병.
소규모 민간 헌터 기업을 이끄는 대표이기도 하며, 민간 헌터였다.
“저희는 헌터 본부에 정식적으로 서류들을 제출해, 던전 공략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사전 조사도 했고요.”
박찬병은 이건 횡포나 다름없다며, 어떻게 헌터군이 이럴 수 있냐며 항의했다.
그의 반응은 당연했다.
던전 공략은 우선적으로 헌터군에게 있다.
전국에서 존재하는 던전 80% 가까이가 헌터군이 클리어하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 민간 헌터들은 저런 일반 던전 하나 허락 맡는 데에만 서류 수십 장은 필요하다고요. 거기다 3개월에 걸쳐서 겨우 심사가 통과되었단 말입니다!”
나머지 20%.
그중에서도 난이도가 비교적 낮은 던전들은 민간 헌터들이 맡았다.
이렇게 심사 절차가 까다롭고 기간이 오래 걸려도, 그들이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돈이 궁하나 보네.’
돈.
어떻게든 한 번만 던전을 공략한다면, 아무리 못해도 대기업 직장인 월급은 우습게 벌 수 있었으니까.
거기다 운이 좋으면, 기본가만 수억 원 이상인 아이템을 획득할 수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기회의 땅인 셈이었다.
‘내가 악인은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약한 놈들을 괴롭히는 취미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양보해 주겠다는 것도 아니지.’
김민준은 민간 헌터들을 향해, 활짝 웃으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지, 지금 뭘 하시는….”
“자. 다들 이거 확인해 보세요. 얼마나 들어 있는지.”
“8,000만 원… 가까이 있으시네요. 이게 어쨌다는 거죠?”
“저랑 내기 하나 하실래요?”
내기라는 말에 민간 헌터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 던전 구조 정확하게 파악하셨죠? 일반 던전이지만, 길이 두 개 있다는 거요. 나오는 몬스터 종류와 개체 수는 거의 비슷합니다.”
“하고 싶으신 말이 뭡니까?”
김민준은 박찬병의 질문에 입꼬리를 올렸다.
“그쪽들이랑 저랑 스피드 런 한번 가시죠.”
“스, 스피드 런이요?”
“네. 어차피 노리는 건 던전 안쪽에 있는 몬스터 아닌가요? 그러니까 사냥 우선권을 걸고 내기 한번 하자, 이 말입니다.”
“아니, 아무리 헌터군이셔도 그렇지, 저희 숫자가 10명이에요. 민간 헌터라고 너무 우습게 보시는 것 아니에요?”
박찬병은 기가 찰 노릇이었다.
무슨 말을 하냐 했더니, 자신들과 스피드 런을 하자는 내기를 제안할 줄이야.
‘헌터군이 민간 헌터에 비해 강한 건 사실이지.’
그만큼 체계적인 훈련과, 압도적인 숫자의 던전을 클리어해 나가니까.
시간이 지나면 스텟이 안 오를 수도 없다.
‘그래도 이쪽은 10명이다.’
헌터군이 강한 건 개개인의 화력도 있지만, 소대나 중대 단위, 나아가서 대대 단위로 뭉쳤을 때의 화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저놈, 헌터군 간부라고 우리를 너무 우습게 보는군.’
하지만 한 명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번에 공략에 데려온 인원들은 대부분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베테랑들이다.
“우리가 지면 뭘 드리면 됩니까?”
“비밀 엄수. 그게 끝입니다.”
자신들 쪽이 이길 경우, 8천만 원의 거금과 던전 공략까지 할 수 있다.
반면, 지면 아무 페널티가 없다.
이건 안 할 이유가 없었다.
“하시죠.”
“오케이. 콜.”
이렇게 민간 헌터와 김민준의 스피드 런 내기가 성사되었다.
민간 헌터들은 각종 무기들을 정비하며, 던전에 들어갈 준비를 시작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기 헌터군분은 무기도 없으시잖아요?”
“우릴 우습게 보는 거지 뭐. 됐어. 오히려 그럴수록 좋으니까. 우리야 꽁돈 얻고 좋지 뭐.”
그들은 편안한 얼굴로 휘파람을 부는 김민준을 슥 쳐다보고, 불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것은, 대놓고 자신들을 무시하는 태도였으니까.
“저 헌터한테서 얻는 돈은 정확하게 10등분 하겠습니다. 당연히 던전 수당도 10등분 하고요.”
“크! 일당 800만 원 플러스 알파야? 오늘 무슨 날인가?”
“의욕이 팍팍 솟아나는데.”
민간 헌터들은 승리를 확신하며, 던전 입구 앞에 섰다.
“저희가 머릿수가 많으니, 5분 늦게 들어가겠습니다. 이 정도는 양보해 드리는 게 예의 아니겠습니까?”
어쭈.
이놈들 봐라.
나한테 5분이라는 시간을 줘?
김민준은 실실 웃는 박찬병의 콧대를 눌러 주기로 했다.
“좋죠. 그럼 5분 뒤에 들어오세요. 저 먼저 가겠습니다.”
김민준은 그들을 보며, 가소롭다는 듯이 웃고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삑!
스톱워치가 작동되고,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민간 헌터들을 고작 5분으로 되겠냐며 껄껄 웃었다.
“나 같으면 10분은 줬다. 고작 5분이 뭐냐. 크하하하!”
“그냥 더 놀다가 들어가도 되겠는데?”
저 던전 안에 있는 건 기껏해야 하급 몬스터들.
민간 헌터들은 그런 개체들을 10년 가까이 처리한 베테랑들이다.
절대 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 끝났습니다. 가서 확인해 보세요.”
“……예?”
“뭐라고요?”
그가 고작 1분 만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어이고, 헌터군 간부가 농담도 심하십니다. 1분이라니요.”
“잔말 말고, 빨리 가서 확인이나 해요.”
“깐깐하신 분이네. 그러죠.”
민간 헌터들이 던전 안으로 들어간 것도 잠시.
“…마, 말도 안 돼.”
“다 죽었잖아….”
그들은 하나같이 경악한 표정을 한 채 밖으로 나왔다.
김민준이 들어간 경로의 몬스터들은, 하나같이 몸이 썩어들어 가서 죽어 있었다.
분명 무기도 없었을 텐데, 무슨 짓을 한 건지 감도 오지 않았다.
“무슨 화학 무기라도 쓰셨습니까?”
“아뇨. 맨손으로 했는데요? 한번 확인해 보시든가.”
사실은 부패를 사용해서 한 방에 끝내 버렸지만.
‘좋네. 부패가 C등급으로 오르니까 상당히 쓸 만해졌어. 예전만 해도, 배탈 수준이 끝이었는데.’
김민준은 양팔을 벌리며, 어디 한번 살펴보라고 대답했다.
“…잠시 실례 좀 할게요.”
민간 헌터들은 그의 몸을 꼼꼼히 뒤졌지만, 나온 것이라고는 스마트폰과 지갑이 전부였다.
“…분명히 입장 전에 몬스터가 바글거리는 걸 확인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
“거참 말 많으시네. 제가 1분 만에 나왔으니까, 그쪽들도 1분 안에 나오세요. 못할 것 같으면 바로 나가 주시고.”
“크윽….”
1분.
당연히 불가능하다.
‘망할. 증거가 없잖아, 증거가!’
여기서 어떻게든 물고 늘어질 수 있었지만, 그래 봤자 추해지는 건 자신들이었다.
‘헌터군에게 미움받아서 좋을 게 없다. 던전 입장 서류를 검토하는 건 그놈들이니까.’
박찬병은 결국 깔끔히 물러나기로 했다.
“아니, 그래도 이게 말이 됩니까? 저건 특수 부대가 와도 못한다고요!”
“뭘 어떻게 했길래 몬스터 몸이 썩어들어 가요?”
“다들 조용하고 빨리 갑시다.”
“잘 살펴 가세요.”
김민준은 민간 헌터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좋은 일 한 건 했네.’
민간 헌터들의 목숨을 살려 주었으니까.
“좋아. 그럼 퀘스트를 깨러 가 보실까.”
김민준은 이레귤러 몬스터가 있는 장소로 들어갔다.
2개의 통로 중, 한 곳은 막다른 길이고, 다른 한 곳이 이레귤러 몬스터가 서식하고 있는 곳이었다.
“많이 기다렸지? 늦게 와서 미안해. 저 민간 헌터들이 너랑 만나는 걸 방해하더라고.”
“샤아아아!”
이레귤러 몬스터, 바실리스크는 칩입자를 확인하자, 입을 벌리며 위협했다.
뱀과 도마뱀을 반반 섞은 것 같은 외양에, 몸길이만 30m는 되는 몬스터.
거기에 보통 개체와는 다른 몸 색깔을 띠고 있었다.
“이야. 이런 튼실한 놈이 어떻게 일반 던전에 있었냐? 넌 뭐 먹고 살아?”
“샤아아아!”
바실리스크는 입을 풍선처럼 부풀린 뒤, 김민준을 향해 시꺼먼 액체를 뱉었다.
“사람이 말을 하는데, 끝까지 들어야지.”
치이이이-
놈이 뱉은 독액이 다른 곳에 닿자, 급속도로 녹아들어 갔다.
산성 효과가 있는 독이었다.
“워우. 원래 바실리스크는 몸통으로 숨통 조이는 패턴이 끝인데, 역시 이레귤러.”
“샤아아아!”
놈의 공격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놈이 꼬리를 휘두르자, 끝부분에서 날카로운 가시들이 발사되었다.
이것도 이레귤러의 공격 패턴이었다.
“어우, 시원하네. 여기도 독 들었냐? 한의원 갈 필요가 없겠는데?”
김민준은 바실리스크가 발사하는 가시들을 맞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다가갔다.
“샤, 샤아아아아!”
당황한 놈이 육중한 몸체를 이용해 김민준의 전신을 옥죄려 했다.
“거기까지. 좀 놀아 주니까 내가 만만하지?”
스스스스.
김민준의 손바닥에서 검은 구름이 만들어졌다.
“부패의 비.”
순식간에 크기를 키운 구름은, 바실리스크의 머리 위로 날아갔다.
주르르륵.
검은 구름에서 내린 부패의 비.
놈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
[체력 스텟이 1 상승합니다.]
“스텟 오르는 거야 좋은데, 아이템은… 또 없네.”
아이템 좀 주면 어디 덧나냐?
지금까지 이레귤러 몬스터 처리한 것만 몇 갠데, 어떻게 아이템 하나가 안 나와?
“나 때는 말이야. 이스가르드에서 보스 몬스터 처리만 했다 하면 그냥 비싼 아이템이 주르륵… 응?”
김민준은 불평을 뱉다가, 퀘스트 완료 메시지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띠링.
[검게 물든 서약을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마기 스텟이 5 상승합니다.]
[적당량의 마기를 얻습니다.]
[해당 몬스터가 공포를 느꼈습니다.]
[추가 보상이 지급됩니다.]
“공포? 추가 보상? 아까는 이런 말 없었는데?”
몬스터에게 공포감을 느끼게 하면 추가 보상을 준다라.
김민준은 다음에도 퀘스트가 생긴다면,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후우. 신기하네. 그동안 몬스터만 때려잡아서 흡수했던 마기가, 저 메시지 하나에 생성될 줄이야.”
메시지와 함께, 자신의 마기 스텟이 상승한 것을 느꼈다.
그뿐만 아니라, 눈앞으로 반짝이는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졌다.
“워우. 이거 무슨 게임 하는 거 같네. 앞으로도 그렇게만 해 줘라.”
[일정 수준의 마기를 흡수해, 악독한 돌진이 개방되었습니다.]
“오? 생각보다 빨리 나왔는데?”
[악독한 돌진(D): 이 스킬을 사용하는 동안, 방어력과 체력이 낮아집니다. 그만큼, 이동 속도와 적에게 입히는 피해량이 증가합니다.]
악독한 돌진.
무대포인 전사들에게나 어울리는 스킬이다.
쉽게 말하면, 대상을 향해 몸통 박치기를 가하는 스킬.
“이게 또 상당히 강력하거든.”
스킬 위력은 강했지만, 흑마법사 대부분이 몸이 약했기에, 스킬 중에서도 쓰레기라고 평가받는 스킬이었다.
방어력과 체력이 낮아지는 페널티는 흑마법사들에게 독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김민준에게 있어 쓰레기인 스킬은 단 하나도 없었다.
“난 몸이 튼튼하니까. 그건 그렇고, 저 보상이 뭔지나 확인해 볼까.”
김민준은 메시지창을 향해 씨익 웃은 후, 땅에 떨어진 보상을 집어 들었다.
“오? 이건?”
보상을 확인한 김민준의 눈이 빛났다.
‘퀘스트 보상으로 이런 걸 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