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퀘스트라고?
‘이게 뭐냐?’
나이트 워커가 가지고 온 것은 검게 물든 쪽지 한 장.
녀석은 자신이 KCTC 훈련에 참가하는 동안, 이 근처 일대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유격 훈련장에서처럼 땅속에 묻힌 아이템을 발견한 것이다.
‘의외로 군부대 근처에 아이템이 숨어 있는 건가.’
나이트 워커는 주로 인간을 대상으로 정보를 빼내 오는 것이 특기였지만, 이런 식으로 땅에 묻혀 있는 아이템을 찾아내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순전히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좋아. 뭔지는 모르지만 잘했다.’
이번에 얻은 아이템도 역시나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아이템.
즉, 히든 피스라는 말이다.
김민준은 시스템이 아이템의 정체를 알려 주지 않을까 싶어, 가만히 기다렸다.
띠링-
‘역시.’
5분도 지나지 않아, 자신의 눈앞으로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나한테만 이러는 것도 귀환의 영향이겠지.’
시스템이 알려 주는 건 어디까지나 상태창을 포함해, 기본적인 알림뿐.
아이템의 정보를 알려 주는 기능은 없었다.
‘…그런데 이건 뭐냐?’
이런 아이템도 있었나?
검은 쪽지의 정체를 확인한 김민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검게 물든 시련]
사용자의 기량에 알맞은 퀘스트를 부여합니다.
퀘스트를 완료할 시, 그에 따른 보상이 지급됩니다.
“…퀘스트?”
이제는 아이템의 정보를 넘어, 퀘스트라니.
이스가르드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건… 퀘스트는 던파 같은 게임에서나 나오는 것 아닌가?”
일단 궁금하니 바로 사용해 볼까.
찌익-
아이템을 사용하자, 자신의 눈앞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검게 물든 시련을 사용하였습니다.]
[사용자에게 알맞은 퀘스트를 부여합니다.]
[…사용자에게 알맞은 퀘스트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연속적으로 떠오르는 메시지들.
“워우….”
김민준은 퀘스트의 내용을 확인하고, 감탄사를 토했다.
“이걸 이렇게 준다고?”
[퀘스트]
(72시간 뒤에 수행할 수 있습니다.)
보상: 마기 스텟5, 추가 마기.
퀘스트 내용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마기 스텟과 마기를 준다.
그것도 자그마치 5다.
현재 자신의 마기 스텟은 30인 것을 생각해 본다면, 그냥 퍼주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수준.
“퀘스트 미쳤네.”
저 정도의 보상이면 뭘 해야 주려나?
“무슨 퀘스트 말입니까? 또 던파 얘기입니까?”
김민준이 만족스럽게 웃던 사이, 훈련 장비를 정리하던 헌터들은 또 게임 얘기냐며 질문해왔다.
“너희들은 시스템이 아이템 정보 가르쳐 준다거나, 퀘스트 준다거나 하냐?”
“…잘못 들었습니다?”
“그건 판타지 소설에서나 가능한 것 아닙니까?”
“시스템은 그냥 알림 기능밖에 없지 말입니다.”
역시.
헌터들의 반응을 보면, 시스템은 자신만을 차별하고 있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차별은 환영이지.’
이대로 마기나 팍팍 퍼주면 좋겠네.
KCTC 훈련도 완벽하게 끝냈고, 기대하지 않았던 아이템까지 얻다니.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
KCTC 훈련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병사들에게 4일의 전투 휴무가 주어졌다.
아무리 큰 훈련이라도, 전투 휴무는 보통 2일에서 끝나는 편이다.
이번 훈련이 얼마나 마음에 들었으면, 대대장이 휴무 기간을 무려 2배나 늘려 주었다.
“어후, 이틀 정도는 퍼질러 자야겠다.”
“나도.”
“생활관 오니까 귀신같이 잠 오네.”
분대원들은 생활관에 돌아오자마자, 간단히 샤워만 마치고 침대 안으로 들어갔다.
“김민준 하사님. 훈련 때 그렇게 뛰어다니셨는데, 안 피곤하십니까?”
“지금 이대로 KCTC 3번 더 뛰라고 해도 뛰겠는데.”
“…솔직히 김민준 하사님이면 될 것 같습니다.”
“잠이나 자라, 짜식들아. 훈련 때 고생 많았다. 밥은 거르지 말고 먹고.”
“알겠습니다.”
분대원들은 눈을 감은 지 3분도 채 지나지 않아, 곯아떨어졌다.
지난 훈련보다 일찍 끝나긴 했어도, 큰 규모의 훈련인 건 변함이 없었기에.
‘좋아. 그럼 바로 손은서를 놀려 볼까.’
김민준: 야. 우리 대대 전투 휴무 4일 받았다. 후임들 칼잠 자는 중. 너넨 며칠 받았냐?
손은서: …알면서 그러는 거야? 그런 거 없어! 내일 바로 진지 공사 가야 하거든?
김민준: 와우. KCTC 바로 다음 날 진지 공사? 4대대장님도 너무하시네.
손은서: 이게 다 너 때문이라고! 적당히 좀 봐주면서 해 줬으면 어디 덧나? 혼자서 지휘관 사살하는 미친놈이 어디 있어!
김민준: 여기 있는데.
김민준: 너무 상심하지 마라. 상대가 나였는데 어떡하냐?
손은서: (토끼가 욕하는 이모티콘)
김민준: 아, 그리고 조만간 우리 대대 회식함. BOQ 놀러 올래?
손은서: (토끼가 쌍욕하는 이모티콘)
김민준은 그녀와의 카톡을 통해 만족감을 느끼며, 게임방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던파나 실컷 해 볼까.”
**
시간이 지나고, 토요일.
BOQ에서는 2대대의 간부들과 병사들이 모여 있었다.
KCTC 훈련을 압도적인 성적으로 마쳤기에, 이준범 중령이 약속대로 직접 회식 자리를 연 것이다.
“다들 KCTC 훈련 고생 많았다! 오늘은 마음껏 마시고 놀아도 되지만, 음주는 선을 지키도록 해라. 알겠냐!”
“예!”
“앞으로도 좋은 모습을 계속 보여 준다면, 대대장이 가끔씩 이런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겠다!”
“알겠습니다!”
곧 간부들의 차량이 BOQ 안으로 들어온다.
간부들은 헌터들을 위해, 밖에서 대량의 삼겹살과 숯, 그리고 술을 구매해 왔다.
치이이이익-
불판 위로 노릇하게 익어 가는 삼겹살들.
“와… 삼겹살 얼마 만에 먹어 보냐.”
“그러게. 부대에서 삼겹살은 은근 안 나온다니까.”
“어우, 이거 언제 익어. 화력 좀 못 올리나.”
헌터들은 불판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군침을 삼켰다.
“그것보다 대대장님이 이런 회식 자리를 열어 준 적이 있었습니까?”
“없지. 내가 오늘까지 하면 군생활 4년하고 2개월 찬데,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번 KCTC 훈련이 크긴 컸나 봅니다.”
“당연히 크지. 그것도 그냥 이긴 게 아니고 개 발라 버렸잖아. 헌터 기동 훈련 때는 만회하고도 남을걸?”
“김민준 하사님이 저희 대대여서 정말 다행인 것 같습니다.”
대화를 나누던 헌터들은 간부들이 앉아 있는 자리, 정확히 김민준이 앉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현재, 대대장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대대장님이 김민준 하사한테 푹 빠지셨지 말입니다.”
“야. 너 같으면 안 빠지고 배기겠냐? 이병부터 병장까지 초특급 진급에, 비상 상황이란 상황은 혼자서 다 막아. 각종 훈련도 거의 완벽하게 완수해. 도대체 못 하는 게 뭘까?”
“…거기에 성격까지 좋으시지 않습니까? 간부로 진급되고도, 병사들 은근히 잘 챙겨 준다고 알고 있습니다.”
“크. 난 김민준 하사님이 우리 부대에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술자리가 무르익어 갔고, 오후에는 간부들과 병사의 전투 축구 매치가 이루어졌다.
“간부라고 해서 봐줄 필요는 없다, 알겠냐! 막 태클 걸고 해도 된다!”
“예!”
이번에는 무려 이준범 중령까지 껴 있는 전투 축구였기에, 병사들은 적당히 눈치를 보며 공을 굴렸다.
‘좋아. 그럼 나도 사회생활이란 걸 해 볼까.’
김민준은 공을 잡는 족족 대대장을 향해 패스해 주었다.
그의 완벽한 서포팅 덕분에, 이준범 중령은 최적의 위치에서 슛을 노릴 수 있었다.
“어이고. 벌써 9 대 0이야? 이거 너무 재미가 없는데… 그래, 김민준 하사! 자네 축구 좀 하는 것 같은데, 병사들 쪽으로 넘어가도록.”
“하사, 김민준! 알겠습니다!”
오.
마침 슬슬 질려 가고 있었는데, 잘됐네.
‘내가 또 강약 조절은 기가 막히거든.’
김민준은 간부들 상대로는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 주며, 골을 넣었다.
반면 대대장이 다가와 공을 뺏으려 할 때는, 한 끗 차로 겨우 제치거나 뺏기는 세심한 컨트롤을 보여 주었다.
‘나보다 위에 있는 간부들한테 잘 보여서 나쁠 게 전혀 없지.’
이런 것들이 쌓이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헌터군은 위로 올라갈수록, 인맥 또한 중요해지니까.
물론 그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별까지 갈 자신은 있었다.
‘LTE 정도로는 안 되지. 난 5G를 원한다.’
병사와 간부의 진급 기준은 다르다.
당연히 간부의 진급이 훨씬 어려운 수준.
‘최대한 빠른 진급을 위해서라면, 이런 세심한 것까지 신경 쓰는 게 S급이지.’
대략 1시간 동안 진행된 전투 축구.
대대장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축구장을 빠져나갔다.
“하하하! 김민준이가 훈련도 잘하고 전투 축구도 장난 아닌데! 여기 간부들 축구 좀 한다는 애들인데, 그걸 홱홱 제쳐 버리네.”
“하사 김민준. 대대장님이 더 잘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 내가 딱 20년만 더 젊었으면, 너 정도 피지컬이 나왔을 거다!”
헌터들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대대장과 김민준을 번갈아 보며,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거 일부러 봐준 거네.’
‘김민준 하사님이 웬일로?’
‘왜긴. 이제 간부시잖아. 윗사람한테 잘 보이겠다, 이거지.’
‘와우… 빈틈이 없으시네.’
그의 전투 축구 실력이 얼마나 장난 아닌지는 잘 알고 있었기에.
**
다음 날, 일요일.
“좋아. 드디어 나오는구나, 퀘스트.”
김민준은 퀘스트 내용이 나타나는 시간에 맞춰, 부대 밖으로 나왔다.
퀘스트 보상은 무려 마기 스텟 5와 추가 마기.
“얼마나 어려우려나 모르겠네.”
보통 게임이나 소설에서 나오는 퀘스트는, 보상이 좋을수록 난이도가 높았으니까.
“어려워 봤자 나한테 되겠냐마는.”
띠링-
그가 코웃음을 치던 사이, 퀘스트 내용이 떠올랐다.
[퀘스트-던전 클리어]
설악산에 있는 던전의 이레귤러 몬스터를 처치.
보상: 마기 스텟5, 추가 마기.
“이게 다야?”
그냥 설악산의 던전 안에 있는 몬스터 하나만 죽이면 된다고?
“설악산에 있는 던전이라… 나이트 워커.”
스스스스-
자신의 말에, 나이트 워커가 머릿속으로 던전 정보를 전달해 주었다.
104사단의 던전 정보를 상당 부분 획득한 녀석이었기에, 이런 일도 가능했다.
“이런 미친.”
김민준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냥 일반 던전이잖아?”
이건 그냥 나한테 퍼주는 거네.
“다른 부대에서 클리어하기 전에, 후딱 해치워 줘야지.”
김민준은 바로 설악산으로 향했다.
‘뭐야. 벌써 누가 와 있었네. 헌터군은 아닌 거 같은데?’
던전 앞에 도착하자, 사복에 각종 장비들을 착용한 일행들이 먼저 와 있었다.
그들의 정체는 민간 헌터였다.
“어? 저기 헌터군 아니야?”
“맞네. 무슨 일이시지?”
김민준을 발견한 민간 헌터들은 그에게 다가갔다.
“헌터군 맞으시죠? 설악산의 던전은 저희가 예약했는데, 무슨 문제 있으신가요?”
“전 이곳에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는 말을 듣고, 조사하러 왔습니다.”
김민준은 자연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저 던전이 정상이 아닌 것은 사실이었기에.
“죄송하지만 다들 여기서 물러나 주세요. 들어가지 마시고요.”
내가 볼 때, 너희들 저기 들어가면 다 죽어.
김민준은 민간 헌터들에게, 던전에서 떨어지라며 눈짓했다.
“갑자기 대뜸 무슨 짓입니까?”
그러자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민간 헌터 한 명이 인상을 쓰며 그에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