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헌터 KCTC-6
“예. 그렇습니다.”
김민준의 부탁은 이러했다.
2대대가 공격으로 바뀌는 첫날, 지휘소를 공격할 기회를 달라는 것.
“하루 만에 완벽한 승리를 약속드리겠습니다.”
“허….”
대대장은 터무니없는 김민준의 말에 잠시 기가 막혔지만, 곧 시원한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수비 때 네가 한 활약이 얼마나 많은데, 그 정도야 허락해 줄 수 있다. 다만! 네가 한 말인 만큼 책임은 확실하게 질 수 있도록!”
“예!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그래. 내가 그만큼 전력으로 서포트해 주겠다.”
“감사합니다!”
공수가 바뀌는 순간 죽은 병사들이 살아나지만, 살아남은 병사들의 HP 또한 리셋된다.
즉, 김민준의 HP는 6,000으로 시작한다는 말이다.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지. 내가 두 눈으로 직접 봤는데.’
지휘소를 거의 단신으로 막아내다시피 한 녀석이다.
그런 놈이 병력들을 이끌고 지휘소를 친다라….
‘이쪽은 화생방 가스도 사용 안 했고, 몬스터도 안 풀었다. 반면, 4대대는 각종 함정과 화생방 가스, 몬스터까지 풀었다.’
그 말은, 4대대의 화력이 상당히 낮아졌다는 뜻.
‘저쪽이 올인을 해 왔으니, 이쪽도 올인을 보여 줘야 할 때다.’
이준범 중령은 곧바로 간부들을 호출해, 작전 회의를 열었다.
**
훈련 5일차가 지나가고, 양쪽의 공수 역할이 바뀌었다.
2대대는 남은 기간 동안 수비를 완전히 굳혀, 별 피해를 입지 않았다.
반면, 4대대는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보급고 파괴, 병사들이 포로로 잡힌 것, 상당한 화기를 소모한 것 등.
이 격차를 역전하기 위해서는, 4대대가 완벽에 가깝게 방어를 해야 할 정도.
“김민준 하사님! 믿고 있겠습니다!”
“와아아아!”
“그래. 믿어라. 내가 훈련 오늘 안에 끝내 준다.”
“우와아아아!”
이미 승리를 예감한 헌터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져 있었다.
적군을 아슬아슬하게 이기는 것과 압도적으로 이기는 것은 당연히 달랐기에.
“너희들, 뒤에 있는 체력 모조리 땡겨 써라. 알겠냐? 내가 지휘소 파괴하고 적군 지휘관 사살할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소대장님, 그럼 다녀오곘습니다.”
“그래. 전방은 우리가 확실하게 지원해 줄 테니까, 지휘소를 꼭 파괴할 수 있도록 해.”
김민준은 김철민 중위에게 경례한 뒤, 소대원들을 이끌고 공격에 나섰다.
그에게 따라붙은 헌터들은 대략 70여 명.
대대원들 중, 스텟이 우수한 상병장들을 위주로 선발한 병사들이었다.
“김민준 하사님도 그렇지만, 대대장님도 화끈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원래 그런 성격 아니시지 말입니다.”
현재 김민준을 포함한 소대원들은 벌건 대낮에, 적군의 지휘소를 향해 이동하는 중이었다.
밤에 경계가 더 심해질 수 있으니, 역으로 낮에 총공격을 가하겠다는 대대장의 판단이었다.
“나야 할 때는 하는 사람이지. 그렇다고 해서, 너네들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 알지? 퍼펙트 게임?”
김민준은 소대원들에게 단 한 명의 죽음도 허락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지휘소에 공격 가는데, 아무도 안 죽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적군들은 기를 쓰고 방어할 겁니다. 공격 때 그렇게 실패를 했으니.”
“짜식들이. 나만 믿고 따라와라. 알잖아? 나 HP 리셋된 거.”
소대원들에게 의욕을 불어넣으며 한참 이동하길 잠시.
‘여기서부터는 목소리 낮춘다.’
‘알겠습니다.’
김민준은 목표 지역을 확인하고, 자세를 낮췄다.
‘좋아. 공격 개시까지 대략 10분.’
전방으로 화력이 쏟아져 적군들의 시선이 돌아가는 순간, 게임은 끝난다.
쿠구구궁! 쿠궁!
정확히 10분이 지나자, 폭음와 함께 총격 소리가 울려 퍼졌다.
“컹! 커컹!”
“크레에엑!”
몬스터까지 투입시켰는지, 놈들의 울음소리까지 간간히 들려왔다.
‘좋아. 10분 더 지났다. 지금 바로 간다!’
‘알겠습니다!’
김민준은 소대원들에게 전진 신호를 보냈다.
“기, 기습! 12시 방향에 적군… 아악!”
타다당!
1분대로 적군의 보급고를 파괴한 김민준이다.
이번엔 스텟이 뛰어난 헌터들로만 이루어진 1소대.
적군이 당해 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여기서부터 흩어진다. 너희들은 지휘소에 남은 적군들 정리하고 폭발물 설치해. 난 지휘관 사살하러 간다.”
“예!”
“알지? 긁히기라도 해 봐라. 나한테 혼난다.”
“알겠습니다!”
김민준은 곧바로 적군의 지휘관이 있는 장소를 향해 내달렸다.
‘뭐야. 여기엔 없네.’
지휘소 안에는 지휘관이 없었다.
미리 자리를 잡고 있는 장교들만 있었을 뿐.
‘아. 거기에 있으셨구나.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신 걸 보니까 위장이라도 하셨나 본데?’
그런데 이걸 어쩌지.
나한텐 이미 다 보이는데.
김민준은 적군 장교들을 사살한 뒤, 지휘소 뒤쪽을 향해 달려갔다.
‘이야. 기가 막히게 위장하셨네.’
대대장은 특수 슈트에 풀을 자연스럽게 붙여, 풀숲 사이에 납작 엎드려 있는 상태였다.
한참 동안 바라보지 않으면 못 찾아낼 정도로, 그의 위장 실력은 상당했다.
‘그럼 수류탄 하나 굴러갑니다.’
김민준은 적군 지휘관을 향해, 훈련용 수류탄을 조용히 굴렸다.
‘이준범! 이 미친놈!’
한편.
4대대장인 김정호 중령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이를 갈고 있었다.
공수 교대가 이루어진 지 고작 3시간이다.
그런데 놈은, 부대를 천천히 전진시킨다는 선택지를 택하지 않았다.
‘그놈 성격에 이런 미친 짓을 할 리가 없는데….’
전방에 집중되는 화력.
몬스터 투입과 함께, 거의 모든 적군이 기지에 쳐들어온 상황.
전혀 예상 밖이었다.
‘…외통수다.’
수비를 견고히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적군은 그 시간조차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성난 파도처럼 몰아쳐 왔다.
김정호 중령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데구르르르-
‘응?’
그러던 도중.
자신의 머리맡으로 뭔가가 굴러왔다.
“이런 망….”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훈련용 수류탄이 연기를 뿜으며 폭음을 일으켰다.
-훈련 통제실에서 알립니다. 4대대의 지휘관이 김민준 하사에 의해 사살되었습니다. 이로써 KCTC 훈련을 마칩니다. 다시 한번 알립니다. 4대대의….
그와 동시에, 훈련이 종료되었다는 방송이 훈련장 전역에 울려 퍼졌다.
KCTC 훈련이 완전히 끝난 것이다.
쿠와아앙!
“에라이, 이 자식들이. 빨리 좀 하지.”
훈련이 끝나고 나서 지휘소 폭파하면 어쩌자는 거냐.
김민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지휘소를 보며 피식 웃었다.
**
“허… KCTC 훈련이 6일 만에 끝나는 것은 처음 봅니다.”
훈련 통제실 안.
KCTC 훈련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던 간부들은 말도 안 되는 결과에 경악했다.
평균적으로 8일에서 9일은 걸리는 훈련이다.
그걸 고작 6일 만에 끝내다니, 보통 속도가 아니었다.
“공격 1일 차에 4대대 지휘관이 사망이라….”
“지휘소의 병력들 역시, 단시간에 사망했습니다.”
지휘관을 사살한 헌터는 김민준 하사였다.
공수 교대가 이루어진 지 3시간 만에 훈련이 끝날 줄은 몰랐는지, 간부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데이터를 뽑아냈다.
“…이거, 이 정도로 압도적인 결과면… 2대대장님이 진급하실 것 같습니다.”
2대대는 수비에서도 압도적이었다.
보급고 파괴를 단시간에 성공한 것도 모자라, 고지대를 방어해 내면서 포로까지 잡아들였다.
그러면서도 사상자 수는 적었다.
“…지금까지 이런 결과가 나온 적이 있었나? 훈련 기간 동안 2대대의 사상자 수가 겨우 80명 정도라고?”
“없지. 한 번도 없어. KCTC가 그렇게 만만한 훈련도 아니고.”
“난 그것보다, 포로가 그렇게 많이 나온 건 처음 본다.”
“그것보다 이거 한번 보십쇼.”
중위 한 명이, 출력된 데이터를 대위들에게 내밀었다.
“이런… 미친.”
그들은 김민준의 압도적인 데이터를 확인하고 경악했다.
“이 정도면 그냥 저놈 혼자 다 한 수준이잖아.”
그가 상당한 활약을 했다는 것 정도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KCTC 훈련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통제실로 전달되니까.
그런데 직접 통계화된 데이터를 눈으로 확인하니…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보급고 파괴. 포로는 전부 김민준 하사가 단독으로 잡았고. 지휘관 사살에, 그가 이끄는 병력들은 가벼운 경상조차 없다고?”
“후. 이건 특수 부대 헌터 중에서도, 엘리트를 데리고 와야 비벼 볼 수 있을 정돈데? 아니다… 그래도 힘들 수 있겠는데.”
“이 정도면 KCTC 우수 헌터는 정해졌네.”
“그렇지.”
장교들은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나머지 업무를 처리해 나갔다.
**
“우와아아아!”
“김민준 하사님! 만세!”
“2대대가 이겼다!”
한편.
KTCT 훈련이 성공적으로 종료되자, 헌터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김민준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그를 헹가래질하기 시작했다.
“야, 이 자식들아. 내려놔 봐. 난 아직 특수 슈트 입은 상태라고.”
김민준은 한동안 공중으로 붕 떴다가 내려왔다.
겉으로는 불편한 기색이었지만, 딱히 싫지는 않아 보였다.
“하하하. 김민준!”
“하사 김민준!”
“그래. 이놈 자식. 이리 와 봐라.”
그가 내려오자마자, 대대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와 악수를 건넸다.
“네가 2대대의 영웅이야, 영웅! 네가 성공할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빨리 지휘관을 사살할 줄은 몰랐다!”
“하사 김민준! 감사합니다!”
“그래, 그래. 앞으로도 그런 식으로 좋은 모습 보여 주면, 진급도 머지않아 하게 될 거다.”
“예!”
이준범 중령의 입은 귀까지 찢어질 지경이었다.
이번 훈련으로 인해, 자신의 대령 진급은 완전히 확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자, 다들 주목!”
“주목!”
“6일간의 KCTC 훈련, 다들 고생 많았다. 김민준 하사도 그렇지만, 너희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승리한 것이다! 다들 자랑스럽게 생각해라!”
“예!”
“알겠습니다!”
“그래. 열심히 한 병사들에게는 포상이 돌아와야지.”
이준범 중령은 대단히 기뻤는지 이번 주말 BOQ에서 회식 자리를 열 테니, 참가하라는 말까지 했다.
“헉….”
“우와….”
깐깐하다고 알려진 대대장에게서 회식이라는 단어가 나올 줄이야.
잠시 후.
대대장이 먼저 훈련장을 떠난 뒤, 헌터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렇게 좋냐?”
“김민준 하사님. BOQ입니다 BOQ! 대대장님께서 허락하신 정도면, 그날 오전부터 마시고 놀 겁니다!”
“거기다 무려 잔디가 깔려 있는 넓은 운동장이 있지 않습니까! 전 거기서 전투 축구하고 싶었습니다!”
KCTC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쳐서인지, 헌터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았다.
“다들 수고 많았다! 뒷정리만 깔끔하게 하고 복귀할 테니까, 조금만 더 힘내라. 대대장님이 전투 휴무 넉넉하게 주실 거다.”
“예!”
“알겠습니다!”
김철민 중위의 말에, 헌터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훈련이 일찍 끝난 탓인지, 다들 의욕적인 모습이었다.
“김민준. 넌 미리 버스에 가서 쉬고 있어. 네가 제일 고생 많았다.”
“하사 김민준. 감사합니다. 그래도 도와 드리겠습니다.”
“끝까지 성실하네. 무리는 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무리는 무슨.
나한테는 그냥 게임 수준이지.
스스스스-
‘뭐냐?’
정리를 끝내고 버스에 타려던 도중.
나이트 워커가 뭔가를 건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