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헌터 KCTC-5
“이런 망할!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이냐!”
4대대의 임시 지휘소 안.
김정호 중령은 보급고가 파괴되었다는 무전에, 테이블을 거칠게 내리쳤다.
“공격 2일 차에서 3일 차로 넘어가는 시기에, 보급고가 파괴당해?”
혹시나 이준범 중령이 김민준의 뛰어난 능력을 활용해, 보급고를 노리진 않을까 싶어 많은 병력을 배치해 둔 상태였다.
“50명이 넘게 있었다고! 50명이! 그런데 그놈 한 명을 못 막아?”
움찔.
그의 격한 반응에 다른 장교들을 조용히 눈만 깜빡거렸다.
“대, 대대장님.”
“뭐야.”
“그게… 무전에서 김민준 하사의 HP가 터무니없다는 말이 들렸습니다.”
“무슨 말이냐. 터무니없어 봐야 300이나 400쯤 되겠지.”
“그게 아니라….”
김정호 중령은 이어지는 장교의 대답에, 눈을 크게 떴다.
“유, 육천?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훈련 통제실에 확인 안 하고 뭐 했나!”
“이미 확인 끝냈습니다. 김민준 하사의 슈트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허어… 뭐 그런 놈이 다 있지?”
그는 4대대원들이 왜 그렇게 무력하게 당했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말이 1명일 뿐이지, 김민준의 HP 정도면 1개 소대나 다름없었으니.
“김민준 하사는 거기다… 보급고 쪽에 설치한 함정을 보란 듯이 작동시켰다고 합니다.”
“그 정도의 피통이면 그럴 만하지.”
김정호 중령은 허탈하게 웃으며 작전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이준범… 그렇게 나오겠냐 이거냐?’
서로 간의 진급 길이 걸려 있으니 필사적으로 훈련에 임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고작 훈련 3일 차로 넘어가는 날에 저런 과격한 일을 벌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후우. HP 6,000인 병사가 있는 걸 우리보고 어떻게 알아차리라는 거냐. 그것보다, 그런 병사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한테는 악몽이다.’
이렇게 된 이상, 이쪽도 과감하게 나갈 수밖에 없다.
‘이미 보급고는 파괴당했고, 적군한테 밀리고 있다. 시간을 끄는 것은 불리하다.’
이대로 방어적인 행동을 취한다면 병사들의 사기까지 저하될 터.
김정호 중령은 결연한 표정으로 통제실에 연락했다.
“몬스터 지원 부탁드립니다.”
**
“충성. 보급고 파괴 임무 완벽하게 마치고 복귀했습니다.”
김민준이 분대원들을 이끌고 무난히 기지에 도착했을 때, 비상 상황이 발생했다.
“김민준! 아주 훌륭….”
“중대장님! 2시 방향에 몬스터입니다!”
“뭐? 벌써 몬스터를 푼다고?”
적군 측에서 몬스터를 투입시킨 것이다.
박서훈 대위는 야간 투시경을 사용해, 해당 지점을 확인했다.
“비상! 적군 쪽에서 몬스터를 투입시켰다! 육안으로 확인되는 종류는 고블린, 놀, 하운드다!”
‘와우… 4대대장님 너무 화끈하신데?’
그뿐만이 아니라, 4대대의 모든 병력이 기지를 향해 접근하는 중이었다.
보급고를 파괴당했으니, 한 번의 공격으로 승부를 볼 셈이다.
“다들 준비해!”
“예!”
“알겠습니다!”
“상당수의 적군들도 몰려올 거다! 대열 잘 잡아라!”
중대장은 황급히 무전을 돌리며, 지휘소로 달려갔다.
현재 상황에서 우선적으로 지켜야 할 장소가 지휘소였기에.
“얘들아. 너희들은 여기서 몬스터 잘 막고 있어라!”
“김민준 하사님은 어디 가십니까?”
“중대장님 도와 드리러 간다! 여기 탄 부족하면 마음껏 쓰고!”
중대장에게서 훈련 점수의 냄새가 난다!
김민준은 헌터들에게 여분의 탄창을 건네준 뒤, 중대장의 뒤를 따랐다.
“중대장님! 저도 같이 합류하겠습니다!”
“김민준, 너는… 그래. 대대장님 옆에만 붙어 있어라. 알겠냐?”
“예. 맡겨 주십쇼.”
그들이 지휘소로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타다당! 타당!
사방에 빗발치는 특수 탄환들.
장교들은 어떻게든 시간을 끌려고 대응 사격을 가했다.
“전 먼저 가 있겠습니다! 중대장님은 천천히 오십쇼!”
김민준은 대대장이 엄폐하고 있는 바위 쪽으로 몸을 날렸다.
“충성! 하사 김민준입니다! 대대장님을 지켜 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그래! 잘 왔다! 길게 설명할 시간은 없다. 지휘소 쪽에 1개 중대, 우리가 사수하고 있는 고지대에서 나머지 병력의 움직임이 관찰되었다.”
이준범 중령은 이대로 시간만 끈다면 승리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에이. 그럼 재미없잖아.’
이길 때는 화끈하고 완벽하게.
질 때도 화끈하게지.
물론 질 일은 절대 없겠지만.
“대대장님. 제가 지휘소 근처의 병력을 전부 상대할 수 있습니다.”
“김민준 하사. 보급고에서의 임무와 같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저쪽은 사용할 수 있는 건 다 사용할 거다. 올인했다는 말이야.”
“여기서 적군들을 모조리 몰살시키면, 훈련 점수를 높게 받을 수 있지 않습니까? 전 이번에도 성공할 자신이 있습니다.”
“음….”
김민준의 자신만만한 표정에 대대장이 고민에 빠졌다.
‘저놈 말대로만 되면 당연히 내 진급은 확실하게 굳혀진다. 보급고에서 혼자 활약한 것을 생각해보면… 한번 걸어 볼 만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 고민도 오래가지 않았다.
지금까지 김민준 하사가 실패한 적이 있기는 했었나?
“좋다. 널 한번 믿어 보겠다.”
“감사합니다. 대대장님은 여기에서 움직이지 마십쇼. 적군들은 제가 완벽하게 무력화시키겠습니다.”
이준범 중령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김민준은 엄폐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야! 다 덤벼!”
“……?”
그사이 지휘소를 사수하는 장교들을 처리한 적군들은, 두 팔을 벌리고 도발하는 김민준을 보자마자 일제히 사격했다.
적군들은 그의 HP가 상당하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기에, 훈련용 수류탄까지 아낌없이 사용했다.
“아나바다 전략이 뭔지 보여 주지.”
우리 것은 아껴 쓰고, 적군 것은 나눠 쓰고, 바꿔 쓰진 않고, 다 내 거다.
김민준은 날아오는 수류탄을 공중에서 홱 낚아챈 뒤, 그대로 적군들을 향해 던졌다.
“뭐….”
“흐, 흩어져! 빨리!”
그의 행동에 경악한 적군들은 이리저리 몸을 날렸지만, 수류탄에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아악!”
“저놈한테는 특수 탄환만 퍼부어! 다른 무기는 사용하지 마!”
적군들은 김민준을 향해 일제히 탄환을 퍼부었다.
한 사람에게 쏟아지는 1중대의 화력.
다른 헌터였으면 진작 HP가 0이 되고도 남았지만, 김민준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휘익! 휙!
“어우… 스릴 넘치네.”
그는 교묘하게 엄폐물 사이를 이동하면서, 총탄을 완벽에 가깝게 회피했다.
“어허! 반칙!”
“꺄아악!”
그러면서도 대대장을 향해 접근하는 병력들은 사전에 차단하기까지.
김민준의 활약 덕분에, 다른 대대원들은 주요 지점을 수월하게 방어해 내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그렇게 많은 탄을 퍼부었는데, 어떻게 맞지를 않냐고!”
“적군의 지휘관에게 접근할 수도 없습니다! 가는 종종 모두 당하고 있습니다!”
적군들은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당황했다.
물론 김민준에 대한 정보는 사전에 들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가 지휘소를 방어하러 올 확률이 높다는 것도 생각해, 상당수의 화기를 이쪽 병력에 집중시키기까지 했다.
“저건 너무… 수준이 다르잖아….”
그렇게 많은 탄환을 쏟아부었는 데도, 오히려 이쪽이 밀리고 있다니.
이 정도면 승패는 정해진 거나 다름이 없었기에, 여헌터들의 사기가 저하되기 시작했다.
“야! 정신 차려! 명령받은 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예! 죄송합니다!”
“한수민 병장님!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탄환도 다 떨어졌습니다!”
“후퇴! 후퇴한다!”
그때, 여헌터 한 명이 대대원들에게 기운을 불어넣으며 후퇴 사인을 보냈다.
적군들은 그 신호에 맞춰, 일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아니? 이 익숙한 목소리는?’
김민준이 시선을 돌린 곳에는, 손은서 상병이 있었다.
‘이야. 네가 여기 있었네? 어디 갔나 했더니, 근처에 함정 설치하러 간 거야?’
친구의 정이란 게 있으니, 넌 특별히 포로로 잡아 주마.
“이 정도면 포로 점수는 다 채울 테니까… 나머지는 필요 없겠네.”
나머지는 다 몰살이다.
“누구 마음대로 후퇴하냐?”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알지?
김민준은 사살된 적군의 총을 집어 든 뒤, 도망치는 병력을 향해 특수 탄환을 발사했다.
탕! 타다당!
“연막 터트려! 연막!”
그의 귀신같은 헤드샷에, 적군들은 연막까지 터트리며 도망쳤지만, 80% 가까이가 사망했다.
“에이. 연막 때문에 살짝 비껴갔네. 아까워라. 대대장님 지켜야 하니까, 일단 여기까지만 하면 되겠네. 나머지는 다른 애들이 처리해 주겠지, 뭐.”
김민준은 총을 바닥에 내려 둔 뒤, 훈련용 채찍을 꺼내 빙빙 돌렸다.
휘릭!
“아악!”
그리고 적군들 사이에 섞여 도망치던 손은서를 쏙 빼내 왔다.
“야, 반갑다?”
“뭐, 뭔데! 방금 뭐였는데!”
그녀는 밧줄처럼 몸에 묶여진 채찍을 확인하고,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제 너네 애들 포로로 많이 잡힌 거 알지? 그거 다 내가 한 거야.”
“채, 채찍으로 한 거였다고?”
“어. 방금 이렇게.”
“…하아.”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수준의 채찍 숙련도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졌네.”
“에이. 공격 때야 졌지만, 수비 때 잘 막으면 역전할 수도 있잖아. 보급고도 살아나고 리셋 되는데, 왜 그렇게 기운이 없냐?”
“너 때문이잖아! 너 때문! 네가 혼자서 다 해 먹어라, 그냥!”
손은서는 장난스럽게 말하는 김민준을 보고, 와락 소리쳤다.
그렇게 혼신을 다해 공격을 가했는데, 오히려 즐기면서 막아낼 줄이야.
“다는 무리고, 한 99% 정도만 해 먹으려고.”
“너 잘났어.”
“칭찬 고맙고.”
김민준은 분해하는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 준 뒤, 대대장에게 향했다.
**
2대대의 수비는 성공적이었다.
4대대는 몬스터의 지원을 받으며, 각종 화기와 화생방 공격까지 퍼부었지만, 100여 명을 사살한 것이 전부였다.
반면, 4대대 쪽은 5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아니, 김민준 하사님이 단독으로 지휘소를 방어해 냈다고?”
“어제 몬스터들 투입되었을 때, 그때 적군들이 지휘소를 기습했다더라.”
“이런 미친. 4대대장님이 모든 걸 쏟아부으셨다는 말이네?”
“그것보다 지휘소 쪽에 공격 온 인원이 100명이 넘는다던데, 김민준 하사님은 오히려 역으로 사살하고 포로까지 잡으셨다더라.”
“그게 사람이냐? 괴물이지.”
그런 결과가 나온 것도 김민준 덕분이었다.
덕분에 2대대원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져 있었다.
“김민준, 어제는 고생 많았다.”
그것은 이준범 중령도 마찬가지.
그는 승리를 확신했다.
이대로 공수가 바뀌고, 무난히 공격만 한다면 승리는 떼 놓은 당상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긴장은 풀지 말도록. 아직 훈련은 끝나지 않았다.”
“하사 김민준! 예! 알겠습니다!”
“그래. 어제는 아주 훌륭했다. 공격 시에도 그 기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감사합니다. 그런데 대대장님. 공격 시에, 한 가지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부탁? 말해 봐.”
이준범 중령은 김민준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 순간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귀를 의심했다.
“…그거,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