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헌터 KCTC-4
나뭇가지들 사이에 교묘히 설치되어 있는 함정.
크레모아다.
김민준이 먼저 발견하고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면, 분대원들은 벌집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말이 벌집이지, 훈련용이기 때문에 위력은 상당히 약하다.
‘크, 크레모아!’
크레모아를 확인한 분대원들은 예상치 못한 함정에 놀랐다.
보통 크레모아는 수비일 때 사용한다.
적군들이 지나다니는 경로를 예측해 설치하거나, 지휘소가 공격에 노출될 위험이 있을 때 등.
‘이걸 여기에 쓴다고?’
크레모아는 다른 폭발물들 중, 지급되는 숫자가 가장 적은 만큼 위력도 강했다.
그만큼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4대대는 내가 올 걸 예측했나본데.’
김민준은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려 가며, 나머지 함정들을 파악해 나갔다.
보급고치고는 과한 수준의 함정이다.
4대대는 고지대 전투에서 적지 않은 손실을 입었으며, 포로까지 사로잡혔다.
이 기회에 보급고까지 공격하러 온다는 것을 미리 알아차린 듯했다.
‘나뭇가지 사이에 두 개. 낙엽들 모아서 자연스럽게 숨겨 둔 곳도 있고… 저기도 있네. 오? 이놈들 봐라?’
이것들 전부 미끼였잖아?
이놈들의 의도가 뭔지 알겠네.
함정 파악을 끝낸 김민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다들, 작전을 변경한다. 내 말 잘 들어라.’
‘예!’
김민준은 분대원들에게 손짓해, 시선을 모았다.
‘적군들이 설치한 함정은 교묘하게 설치되어 있지만, 단 한 가지의 길에는 함정이 전혀 없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나?’
그의 속삭임에 이승호 병장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유인인 거 같습니다.’
‘그래. 바로 그거다. 저 길목은 한동안 경사가 이어진다. 공격에 노출되기 쉬운 곳이라는 말이지. 그래서 적군들은 저곳에 함정을 설치하지 않은 거지.’
실제로 저 길목 위쪽에서 헌터들의 기척이 잡힌다.
김민준의 예측은 정확했다는 말이다.
‘그럼 지금부터 어떻게 움직입니까?’
‘너희들, 나 믿냐?’
김민준의 의미심장한 말에 분대원들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당연히 믿습니다.’
‘그래. 나만 믿고 움직여라. 지금부터 나 혼자 어그로를 끈다.’
‘…잘못 들었습니다?’
‘일단 들어 봐.’
김민준의 계획은 이러했다.
그가 함정에 걸려 적군들을 끌어들이는 사이, 나머지 인원이 보급고를 폭파하는 것.
당연히 나머지 인원은 비교적 안전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겠지만, 미끼 역할을 담당하는 김민준은 큰 위험에 노출된다.
‘김민준 하사님. 너무 무모합니다.’
‘그렇습니다. 저 크레모아 들어오는 대미지가 장난 아닐 겁니다. 맞는 순간 HP가 500 이상 깎입니다. 아무리 김민준 하사님의 HP가 많아도… 아.’
분대원들이 말하던 도중, 뭔가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짜식들이. 아까 전에도 말했잖아. 나 HP 6,000이라고.’
크레모아를 정면으로 맞는 순간 어떤 헌터든 즉사한다.
아무리 HP가 많은 헌터라도, 그건 지금까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HP를 보유한 김민준 하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적군들은 내 HP가 6,000이라는 정보를 몰라. 이걸 이용할 좋은 기회지. 내가 이렇게까지 판 깔아 주는데, 한 명이라도 긁히기만 해 봐라. 돌아가서 혼난다.’
‘맡겨 주십시오.’
‘반드시 성공하고, 전원 살아서 복귀하겠습니다.’
‘좋아. 작전은 지금부터 30분 뒤에 시행한다.’
이른 바 미끼의 미끼 작전.
김민준은 집결지를 정한 뒤, 바로 적군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몸을 날렸다.
‘좋아. 지금부터 표정 연기 들어갑니다!’
그는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은 채, 발소리를 죽이고 앞으로 나아갔다.
“아, 아니!”
쿠아아앙!
김민준 함정을 지나치는 순간, 강력한 폭음이 들리며 크레모아가 폭발했다.
“크아아악!”
다급한 표정을 연기하며, 분대원들과의 거리를 최대한 벌렸다.
“적군들이 보급고에 침입했다! 크레모아가 적군에게 폭발하는 걸 확인!”
타다다당!
적군 한 명에게 쏟아지는 특수 탄환.
쿠와앙!
그 와중에, 도망치는 적군이 매설된 훈련용까지 지뢰를 밟았다.
이 정도면 무조건 죽었을 것이다.
“다들 사격 중지! 적군을 확인한다!”
“예!”
그렇게 판단한 4대대 여헌터들은, 가만히 엎드려 있는 적군을 향해 다가갔다.
‘조금만 더 와라. 그대로 다섯 걸음만 더 와 봐!’
자신들이 김민준에게 역으로 이용당하는지도 모른 채.
“뭐, 뭐야!”
“아악!”
김민준은 여헌터들이 일정 거리 안으로 다가왔을 때, 몸을 일으키며 특수 탄환을 퍼부었다.
갑작스러운 돌발 공격에, 여헌터 5명의 HP가 순식간에 0으로 떨어졌다.
“어, 어떻게 안 죽었죠?”
“크레모아랑 지뢰까지 터지는 걸 확인하고 들어갔는데…? 시스템 오류 난 것 아니에요?”
여헌터들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김민준이, 멀쩡하게 죽은 척을 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
“에이, 아마추어같이 왜 이래요. 통제소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거 아시면서.”
“여기는 골리앗. 보급고 지점에 김민준 하사가 단독으로 침입! 지원이 필요하다!”
“저쪽은 고맙게 지원도 불러 주시네.”
김민준은 길목에 대기하던 헌터들이 자신에게로 향해오는 것을 확인하고, 씨익 웃었다.
**
“마, 말도 안 돼….”
한동안 이어진 전투.
적군 50명 가까이가 김민준에게 공격을 가했지만, 정작 당한 쪽은 적군들 쪽이었다.
고작 1명을 상대하는 데 50명은 과한 느낌이 있겠지만, 상대가 김민준이라는 점을 감안해 보낸 병력이었다.
“HP가 4, 4,000?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렇게 탄을 퍼부어도 안 죽길래 뭔가 했는데… 하아….”
사망 처리된 여헌터들은 김민준의 HP를 확인하고, 입을 떡하니 벌렸다.
4,000도 상당히 줄어든 수치다.
그의 HP 총량이 6,000임을 감안하면, 평범한 헌터 20명분의 HP를 깎은 셈이었으니.
“이건… 너무 불공평하잖아요! 헌터들 대부분의 HP가 100에서 150사인데, 6,000이라뇨!”
“피통은 최첨단 슈트가 정하는 건데, 별수 있나요. 제가 좀 뛰어나서 그런 거죠, 뭐.”
여헌터들은 얼마나 속상했으면,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기까지 했다.
안 그래도 공격 첫날, 고지대를 확보하려다가 김민준 때문에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보급고 근처에서 50명이 넘는 인원이 사망했다.
그것도 고작 한 명에게.
분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뭐, 어쩌겠냐. 기준은 내가 아니라, 이 슈트가 정해 주는데.’
너희들도 이세계 가서 목숨 걸고 구르고 와라.
그럼 나처럼 될 수 있다.
‘그건 그렇고, 이 자식들은 아직도 멀었나?’
적군들의 시선을 끈 지 약 40분.
이제 슬슬 보급고가 파괴되어야 하는데.
쿠구구궁!
‘오, 성공했네.’
때마침 보급고 쪽에서 굉음이 들렸다.
“서, 설마?”
“보급고가… 파괴된 거야?”
“정답! 그럼 잘 먹고 갑니다!”
김민준은 멍한 표정을 짓는 적군들에게 손을 흔들어 준 뒤, 집결지로 향했다.
“보급고 쪽에 몇 명 있었지?”
“10명 정도 있었을 겁니다! 나머지 병력은 이곳을 사수하는 것에 동원되어서….”
결국, 그들은 김민준의 손에 놀아났다는 뜻이다.
“하아….”
“공격 2일 차에 보급고 파괴….”
“이건 너무 크잖아….”
여헌터들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이제 훈련이 3일 차로 넘어가는 중인데, 벌써 적군에게 사살당해 버리다니.
그뿐만 아니라 보급고가 파괴되었기 때문에, 지금부터 4대대 헌터들의 식사는 전투 식량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
당연히 전투 식량의 개수는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장기전으로 끌고 갈수록 불리해진다.
4대대는 이미 스노우 볼이 굴러가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벌써 영현소로 갈 줄은 생각도 못 했어.”
“나도….”
KCTC 훈련 중 사망 처리된 병사들은 공수 교대가 이루어 질 때까지 임시 영현소에 들어가 대기해야 한다.
“수비 때 어떻게 해서든 만회하는 수밖에 없어.”
공수 교대가 이루어지는 순간, 모든 것이 초기화된다.
죽었던 병사들이나, 파괴되었던 보급고도 다시 살아난다는 말.
하지만 깎인 훈련 점수는 돌아오지 않는다.
“점수는 이미… 엄청나게 깎였을 겁니다.”
“아….”
2대대장뿐만 아니라, 4대대장 또한 이 훈련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안 그래도 헌터 기동 훈련에서 미흡 평가를 받았는데, KCTC까지 2대대에게 진다면… 그 뒤가 두려웠다.
여헌터들은 영현소로 이동하며, 남은 전우들이 힘내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
‘천천히 이동한다. 적군들을 마주칠 수도 있다.’
‘오케이.’
한편.
이승호 병장을 포함한 다른 헌터들은 김민준이 지정한 집결지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보급고를 성공적으로 폭파시킨 뒤, 김민준이 적군들의 시선을 끄는 동안 안전하게 기지에서 빠져나왔다.
‘사상자 0명에, 부상자조차도 없다니. 실화냐?’
‘그러니까. 난 우리 중 2명 정도는 죽을 줄 알았다. 보급고 뒤쪽에 숨어 있을 때 봤냐? 최소 40명은 김민준 하사님 쪽으로 갔다.’
‘아무리 피통이 많아도, 다굴에는 장사 없을 텐데.’
그들은 김민준 덕분에, 수월하게 보급고를 파괴할 수 있었다.
그들이 한 일은 보급고에 폭발물을 설치 한 뒤, 남아 있던 적군 6명 정도를 사살한 것뿐.
대부분의 일은 김민준이 다 한 수준이었다.
‘아니, 그것보다 아까 폭발 소리 들린 거 봤냐? 뭔가 연속으로 터지던데.’
‘내가 장담하는데 그거 김민준 하사님이 일부러 터트린 거다.’
‘하긴, 그런 쪽으론 화끈하시니까.’
‘제발 살아만 있으시면 좋겠다. 그럼 KCTC 이기는 건 확정인데.’
그들이 김민준이 살아 있기만을 바라며 걷던 도중.
“이제 왔냐?”
“헉! 김민준 하사님!”
“버, 벌써 도착하셨습니까?”
“그래. 이 근처에 적군은 없으니까, 적당히 소리만 낮춰서 말해라.”
집결지에 먼저 도착해 있던 김민준을 보고 경악했다.
그는 편한 자세로 바위 뒤에서 몸을 누운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KCTC 훈련 중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저 여유로움.
“HP는 괜찮으십니까? 몸 상태는 어떠십니까!”
“많이 까였다. 아무리 나라도 그건 위험했지.”
“허, 헉! 그럼 중상 아닙니까? 중상이면….”
“아니, 그냥 경상이지. 그런데 HP가 2,000이나 까였다.”
“…2,000 말입니까?”
분대원들은 김민준의 장난스러운 표정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6,000 중에서 2,000 정도면, 경상 수준에도 못 미치는 수준일 터.
“도대체 혼자서 몇 명이나 상대하신 겁니까?”
“한 50명 정도? 물론 전원 사살했지. 함정을 일부러 밟다 보니까, HP가 쭉쭉 까이긴 하더라.”
“…그냥 말도 안 나옵니다.”
자신들이 폭발물을 설치하는 동안, 김민준은 엄폐물을 이용해 시간을 끌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적군들을 향해 돌진하며 특수 탄환을 퍼부었다.
“적군들 입장에서는 악몽일 겁니다.”
“아무리 쏴도 죽지 않는 헌터라니… 끔찍합니다.”
“그러게 뭐랬냐. 나만 믿고 따라오라고 했지.”
김민준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보급고 파괴에 성공했다고 중대장에게 보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