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김서현
[힘 스텟이 1 상승합니다.]
[민첩 스텟이 1 상승합니다.]
몬스터를 처리하고, 떠오른 메시지를 확인하기도 전에 발생한 변화.
김민준은 크기가 점점 커지는 포탈을 주시했다.
스스스스-
나이트 워커는 마기가 느껴지지 않지만, 무언가가 이쪽을 향해 건너오고 있다고 보고했다.
“마기는 느껴지지 않는다라.”
몬스터도 아니고.
그럼 뭐지? 사람인가?
“설마… 이스가드르에서 지구 좌표를 알아냈나?”
김민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나조차도 수백 번을 뛰어넘어, 천 번까지 미친 짓을 해서 겨우 찾아낸 좌표다.
당연히 그 정보가 새어 나갈 리는 없었고.
이봉구 같은 또라이가 아닌 이상, 이스가르드인이 이쪽으로 넘어올 확률은 0에 가깝다.
스으으으으-
탁구공 크기에서 점점 몸집을 불리던 포탈이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실을 보는 느낌.
“…허억, 헉….”
잠시 후, 포탈에서 여성 한 명이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김민준은 낯익은 얼굴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넌 또 어떻게 온 거야?”
김서현.
다른 신도들도 아니고, 위험한 일은 절대 나서지 않은 녀석이 무리를 하며 이쪽으로 건너오다니.
“큽! 커헉!”
“이봉구! 얘 당장 눕혀서 지혈부터 해!”
“예, 예! 알겠습니다!”
그녀의 상태는 한눈에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차원 이동의 압력 때문인지, 온몸이 피투성이다.
이대로 두면 무조건 죽는다.
‘후우. 그래. 이렇게 되는 게 정상이지.’
이봉구에게 말도 안 되는 행운이 작용했을 뿐이다.
“기, 김민준님….”
“말하지 마라. 죽지도 말고. 그대로 숨만 쉬고 있어.”
현재 자신의 힘으로는 김서현을 구할 수 없다.
거기다 다른 놈들도 아니고, 김서현이 무리하면서까지 이쪽으로 넘어왔다.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유가 없어도 구하는 건 정해져 있지만.”
과거, 이스가르드에서 신도들에게 받았던 갖가지 도움들.
기회가 된다면, 몇 배로 불려서 갚아 주겠다고 결심했었다.
김민준은 바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 에너지 스톤을 꺼내 삼켰다
“이걸 못 구했으면 큰일 날 뻔했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쉴 새 없이 떠오르는 메시지들.
일시적으로 잠겨진 스킬들이 개방되었다는 신호다.
현재 자신이게 필요한 스킬은 단 하나.
“희생의 서약.”
지정한 대상이 입은 모든 피해를, 다른 대상에게 전이시킬 수 있는 강력한 스킬.
“기, 김민준 님! 아무리 김민준 님이라 하셔도, 이 정도의 부상은!”
“가만히 있어. 충분히 견디고도 남으니까.”
이봉구가 화들짝 놀라며 말렸지만, 김민준은 지체 없이 스킬을 사용했다.
‘에너지 스톤의 효과는 30초다. 최대한 빠르게 끝낸다.’
스스스스-
김서현의 몸 위로,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그 마법진은 천천히 김민준의 몸으로 건너갔다.
“타이밍 한번 귀신 같네.”
희생의 서약은 살아 있는 생명체를 대상으로만 사용이 가능하다.
붉은 도깨비가 죽기 전에 김서현이 튀어나왔다면,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왜 그렇게 무리한 거냐, 너는.”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던 김서현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을 되찾았다.
이봉구가 미친 듯이 지혈해도 뿜어져 나오는 피 역시, 귀신같이 멎었다.
“기, 김민준 님!”
의식을 되찾은 김서현은 화들짝 놀랐다.
시야가 서서히 흐려지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몸 상태가 멀쩡하게 돌아왔다.
“이, 이건! 희생의 서약! 어째서 저 따위한테 그런 스킬을….”
고개를 돌려 보면,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김민준이 보였다.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스킬에 대한 반동이 엄청날 것이다.
“기다려 봐. 지금 회복하는 중이니까.”
김민준은 어쩔 줄 몰라 하는 김서현을 가만히 놔둔 채, 몸 안의 마기를 순환시켰다.
스스스스-
몸 안의 마기들이 다급하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꾸준히 올린 스텟들 덕분에 강인해진 신체는 스킬의 반동을 무난하게 견뎌 내 주었다.
‘헌터군에 들어가서 스텟을 올려 두길 잘했네. 이 정도면 금방 회복하겠는데.’
흑마법사들은 몸 안의 마기를 이용해, 어느 정도 부상을 회복할 수 있다.
다만, 그것도 경상 수준에 그치는 정도.
이런 것이 가능한 것도 김민준뿐이라는 말이다.
“오랜만에 살짝 따끔했네. 뭐야? 너 지금 뭐 하냐?”
눈을 뜨자,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는 김서현이 보였다.
“일어나. 나 이런 거 싫어한다.”
“죄송합니다…! 제 실수입니다… 김민준 님. 저는….”
“다 끝났으니까 일어나 봐. 상황 설명부터 해라.”
“예. 추태를 보여 죄송합니다.”
김서현은 바로 몸을 일으켜,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보고했다.
자신이 떠나가고 난 뒤, 교단의 변화.
성녀의 수상한 움직임.
기타 등등.
“교단이야, 뭐. 내가 의도한 거니까 어쩔 수 없지. 넌 아쉬워서 신도들 잡아 두려 한 것 같고.”
“예, 맞습니다. 그래서 저 벌레… 아니, 이봉구가 다른 신도들과 함께 차원 이동을 할 때도, 따로 말리지 않았습니다.”
“버, 벌레? 넌 어떻게 시간이 지나도 그 더러운 성격….”
찌릿.
당장이라도 죽일 것 같은 김서현의 눈빛에 이봉구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다른 건 다 됐고, 성녀. 그 자식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봐. 그리고 네가 눈을 통해 본 것도.”
“알겠습니다, 김민준 님.”
김서현이 지구로 차원 이동을 결심한 이유는 바로, 눈이 보여 준 예지 때문이었다.
그녀가 가진 눈은 변덕쟁이 마안.
원래 맹인이었던 김서현을 위해, 김민준이 따로 구해 준 아이템이었다.
“성녀는 지구의 좌표를 찾는 것 같았습니다. 조사해 본 결과, 김민준 님을 다시 데려와 전쟁을 시작하려는 의도로 보였습니다.”
“하, 그놈의 전쟁. 나한테 얼굴 드러내는 순간 죽여 버려야겠는데?”
깔끔히 포기한다고 해서 한 번 봐줬더니, 기어올라?
“어차피 걔네들 힘으로는 좌표 절대 못 찾으니까 괜찮다. 차원 이동이야, 뭐. 말할 것도 없고. 넌 뭐… 대강 예상은 간다만.”
하얀빛과 검은빛이 섞인 포탈.
성유물을 빼돌려 부족한 마기를 대체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됐다. 그것보다 예지에 대해서 말해 봐.”
“예.”
변덕쟁이 마안의 기능은 예지다.
다만, 그 예지가 맞아떨어지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변덕쟁이 마안은 거짓된 예지도 자주 보여 주기 때문이다.
예지 능력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려운 기능.
“눈을 통해서 본 광경은… 지구가 멸망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구가 멸망한다라… 뭐 때문에?”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마안이 보여 준 것은 앞으로 300년 뒤, 지구가 사라지는 장면뿐이었습니다.”
이거 참 보통 예지가 아니네.
김서현이 무리하면서까지 온 이유가 이거였나.
“그 마안의 정보는 신뢰할 수가 없어. 3번 중에 2번은 틀렸지 않냐?”
“그건… 맞습니다… 하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넘길 수 없었기에….”
“그래. 적중 확률이 낮을 뿐이지, 적중할 확률도 있으니까.”
김민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300년 뒤, 지구가 멸망한다.
변덕쟁이 마안의 예언임을 생각해 보면, 3년 뒤일 수도 있고, 30년 뒤일 수도 있다.
‘김서현은 저 예언을 나한테 알리려고 온 거고.’
힘을 좀 더 빨리 되찾아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힘만 완벽하게 회복한다면, 지구 멸망쯤이야 무난하게 막을 테니.
“예언을 알리려고 온 건 고맙다. 우린 이제부터 저 예언이 진짜라고 생각하고 움직인다. 마안이 예언을 보여 줄 때마다, 나한테 보고해.”
“예, 알겠습니다. 김민준 님.”
이봉구 하나면 모르겠지만, 김서현까지 지구로 넘어왔다.
“이러면 미리 생각해 둔 방향으로 가야겠다. 일단 공항으로 돌아가서….”
“동작 그만! 움직이지 마라!”
김민준이 말을 마치기 전, 일본군과 민간 헌터들이 던전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를 향해 총구를 겨누려던 일본군들은 한국 헌터군의 마크를 확인하고 화들짝 놀랐다.
처억!
재빨리 차렷 자세로 거수경례를 한 일본군들은 민간 헌터들에게 물러나라는 지시를 했다.
“한국의 헌터군이시군요. 여긴 접근 통제 구역입니다. 무슨 임무를 따로 받기라도… 헉!”
그들은 던전 한쪽에 쓰러져 있는 몬스터를 발견하고 입을 벌렸다.
붉은 도깨비 중에서도, 가장 크고 강해 보이는 개체였다.
“설마… 저 몬스터를… 헌터님께서 죽이신 겁니까?”
순식간에 정중해진 일본군의 태도.
김민준은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했기에 손가락으로 자신을 한 번 가리킨 뒤, 뒤에 쓰러져 있는 몬스터를 가리켰다.
“붉은 도깨비를… 단신으로?”
“마, 말도 안 됩니다. 저 정도의 크기면, 탱크까지 동원해야 할 정도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저 던전 안에 거대한 몬스터가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헌터군 한 명이 저 도깨비를 처리했다는 것은 굉장한 충격이었다.
“성함을 알려 주십시오. 아무리 한국의 헌터군이라도 하셔도, 그냥 넘어갈 순 없습니다. 이건 국제 문제입니다. 무단으로 통제 구역에 접근한 이유와 후지산이 근처에 있음에도 이런 위험한 일을….”
‘에이 씨, 왜 이렇게 말이 길어.’
김민준은 상황이 귀찮아지는 것 같아,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쪽지를 하나 건네주었다.
일본군들의 표정을 보면, 꽤 심각해 보였기에.
“얘들아. 간다!”
“예?”
김민준은 이봉구와 김서현을 옆구리에 낀 뒤, 몸을 날렸다.
일본군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모습은 귀신같이 사라졌다.
“바, 방금 뭐였지?”
“한국 헌터군들은 저런 괴물들밖에 없나? 어쨌든 이런 위험한 일을 벌인 책임을….”
일본군은 김민준이 건네받은 쪽지를 펼쳤다.
[뚱이]
“이거 어떻게 읽냐? 뚜웅… 이? 이런 망할! 빨리 저 헌터군 당장 쫓아가!”
“예, 예!”
“그런데 어디로 간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공항부터 가라고! 공항부터!”
일본군들과 민간 헌터들은 분주하게 그의 뒤를 쫓았다.
**
일본의 공항 안.
이봉구와 김서현은 김민준이 착용한 헌터 군복을 입고 있었다.
이봉구는 스킬을 사용해, 얼굴부터 외양까지 실제 복무하고 있는 헌터군들의 것을 복사해 왔다.
이것도 녀석의 모방 스킬의 등급이 올라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정도면 완벽한 것 같습니다.”
“그래. 너희들은 나 따라오면 된다.”
“저들이 김민준 님의 얼굴을 기억할 텐데, 처리해 두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김서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질문해 왔다.
“내가 그랬다는 증거가 없을 테니, 상관없어. 쟤들이 뭐라 하면, 그냥 안 했다고 배 째면 된다. 너도 나이트 워커한테서 정보를 전달받았으니, 잘 알겠지.”
그 짙은 마기가 넘치는 장소에 맨몸으로 들어가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니까.
일본군들이 위쪽에 보고해 봤자, 듣는 척도 안 하겠지.
“그건… 그렇습니다.”
그녀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심증이 아닌, 확실한 물증이 있어야 한다.
심증만으로 처벌이 가능했던 이스가르드와는 확실히 다른 법체계였다.
“일단 한국으로 건너가서, 너희들 신분이랑 지낼 곳부터 마련한다. 그 이후에 어떻게 움직일지 알려 줄게.”
이봉구야 스킬을 사용해 다양한 동물로 변할 수 있지만, 김서현은 불가능하다.
그녀까지 지구로 넘어온 이상, 신분 마련은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이놈들도 참 대단하네. 그 어려운 차원 이동을 성공할 줄이야.’
띠링.
“뭐야?”
비행기에 탑승하는 것도 잠시.
자신의 눈앞으로 처음 보는 메시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