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포탈
[에너지 스톤에서 신기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에너지 스톤의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신기한 기운? 극대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머니에서 에너지 스톤을 꺼내자, 푸른빛을 띠던 돌멩이가 검게 물들어 있었다.
[변질된 에너지 스톤]
특이한 기운에 의해 기운이 변화된 에너지 스톤입니다.
복용 시, 일정 시간 동안 최대치의 마기를 획득합니다.
30초 뒤, 획득한 마기는 사라집니다.
“시스템이… 아이템의 정보를 알려 준다고?”
지난번, 위장 던전에서 한 번.
이번까지 하면 두 번이다.
“이놈의 시스템. 원리를 전혀 모르겠네.”
이세계나, 지구에서나.
시스템은 상태창을 빼면, 알림이나 다를 바 없는 간단한 기능밖에 수행하지 않았다.
어떨 때는 시스템의 불친절함에 짜증을 느낀 적도 있을 정도.
“이제부터는 잘 알려 줘라. 알겠냐? 그런데, 이거 아이템 성능이….”
김민준은 아이템의 효과를 확인하고 환하게 웃었다.
“미친 수준인데?”
저 말은 결국, 30초 동안 전성기의 힘을 낼 수 있다는 소리잖아?
내심 기대하고 있긴 했는데, 저런 말도 안 되는 효과가 나올 줄은.
“완전 파워 부스터네. 이건 최대한 아꼈다가 중요한 순간에 써야지.”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검게 일렁이는 돌멩이를 한참 동안 감상했다.
**
이스가르드의 흑마법사 교단 앞.
보랏빛 로브를 걸친 흑마법사 한 명이, 텅 빈 교단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저기 쌓여 있는 먼지나 거미줄을 보면, 한동안 방치된 상태인 듯했다.
스윽.
로브를 걷어 올리자, 새빨간 머릿결에 붉은 눈동자를 가진 여성 한 명이 나타났다.
김민준에게 이름을 받은 여성, 김서현이었다.
“이봉구가 차원 이동을 한 지 40일….”
그녀는 주머니 속을 뒤적거려, 수정 구슬 한 개를 꺼냈다.
이봉구 몰래 사용해 둔, 라이프 마블.
이 구슬의 빛이 들어온다는 것은, 아직 그가 살아 있다는 뜻이며.
차원 이동에 성공했다는 말이다.
“후우… 그 멍청한 놈이 무작정 찍은 좌표가 지구였을 줄이야….”
그녀는 김민준이 지구로 돌아간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가 좌표를 찍어 포탈을 시험할 때마다, 옆에서 보조해 주며 좌표를 외워 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얻은 정보를 토대로 좌표를 하나씩 소거해 나가자, 결국 이봉구가 찍은 곳이 지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단은 자연스럽게 와해되고 있습니다. 김민준 님….”
김서현은 그리운 듯이 교단을 둘러보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이 교단에 속한 흑마법사들 모두가 김민준 한 명을 위해 소속된 곳이었으니까.
그가 이스가르드를 떠났기에,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흑마법사들 역시 교단을 떠나갔다.
‘이것도 김민준 님께서 의도하신 것이겠지.’
[나는 원래 살던 고향으로 돌아간다.
지금부터 날 잊고 살아라.
국왕이 흑마법사에 대한 처우와 인식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으니, 마음껏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아라.
추신: 따라오지 마라. 대가리 깨 버린다.]
쪽지에 남겨진 김민준의 마지막 말이었다.
“생각보다 김민준 님의 영향력이 거대했습니다… 예상하고는 있었습니다만.”
어떻게든 그가 만들어 두고 간 교단을 살려 두고 싶었지만, 자연스럽게 무너져 가는 교단을 살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튼튼한 기둥인 김민준이 없으니, 당연했다.
“먼 미래의 일이거나,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내가 가서 알리지 않으면….”
한참 동안 가만히 서 있던 김서현은 결심을 굳히고 품에서 여러 아이템을 꺼냈다.
성녀가 소속된 기사단에서 몰래 빼돌린 성유물들이었다.
“겉으론 고고하고 착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김민준 님의 좌표를 찾고 있는 더러운 년. 제국이 무슨 짓을 하기 전에… 내가 먼저 가야 해.”
김서현은 성유물의 힘을 사용해, 포탈을 생성하기 시작했다.
**
다음 날.
김민준은 부대 밖으로 나오자마자 공항으로 향했다.
‘타이밍 한번 좋네.’
일반 헌터가 해외로 나가는 조건은 꽤나 까다롭다.
대부분은 소대장 선에서 잘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자신은 하사.
간부다.
‘훈련 일정도 다음 주부터고. 가려면 지금이지.’
간부들은 중요 훈련 일정만 없다면, 해외로 나가는 것이 수월했다.
무엇보다 헌터군 간부는 여권이 없어도 된다.
그냥 프리 패스.
헌터군이 해외에서도 얼마나 대우받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봉구, 지금 일본에 도착했다. 현재 상황 보고해.’
-예. 이전과 달라진 것은 별로 없… 김민준 님?
‘왜.’
-어… 던전 안에서 포탈이… 생성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거기서 가만히 기다려. 바로 간다.
던전 안에서 포탈이라니.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어, 곧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후지산 근처로 향했다.
“죄송합니다. 한국 헌터군이시면 뭔가 임무를 맡고 가는 것이실 텐데… 이 이상 들어가면 매우 위험해서요.”
“괜찮습니다. 그런데 한국말 되게 잘하시네요.”
“한국에서 10년 정도 살았거든요. 그것보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접근 제한 구역 앞에서 택시를 멈춘 기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듣자 하니, 이곳은 일본의 정부조차 관리를 포기한 일대라고 한다.
후지산 근처에서 새어 나오는 유해한 연기.
때문에 사람의 발길이 끊긴 지는 오래 되었다고 한다.
“마땅한 대처 방법이 없었기에, 지금까지도 그냥 방치 상태지요. 안 그래도 후지산 근처에 있는데, 잘못 건드렸다가 뭐라도 터질까 봐 쉬쉬하는 분위기입니다.”
“여기까지 태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벌써부터 느껴지는 진한 마기의 향기.
가슴이 설레온다.
-김민준 니임!
“그래, 왔다.”
던전 근처에 도착하자, 이봉구가 자신의 어깨 위로 날아와 앉았다.
-저기 안쪽에 보이십니까? 포탈 말입니다.
녀석이 날개로 가리킨 곳에는,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포탈이 생성되고 있었다.
김민준은 곧바로 던전을 향해 몸을 날렸다.
[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이 정도로 작은 크기면 뭔지 알 수가 없겠는데. 일단 마기부터 흡수하고 보자.”
던전 입구 쪽에서 나타난 포탈 하나.
포탈의 크기는 탁구공 정도로 작았다.
포탈을 잠시 들여다보았지만, 전혀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없었다.
“난 집중 좀 할 테니까, 저 포탈 잘 지켜보고 있어. 뭐가 튀어나오면 말 하고.”
-예! 맡겨 주십시오!
김민준은 바닥에 몸을 눕힌 채로, 눈을 감았다.
이 정도로 많은 마기를 제어하려면, 그만큼 집중이 필요했다.
스스스스스-
시간이 지날수록, 대기 중에 퍼져 있던 마기가 던전 안으로 모였다.
순식간에 진해진 마기는 김민준의 몸을 향해 서서히 흡수되기 시작했다.
[마기 스텟이 1 상승합니다.]
[마기 스텟이 1 상승합니다.]
[마기 스텟이 1 상승합니다.]
끊임없이 출력되는 메시지들.
후지산에 10년 이상 자리 잡고 있었던 마기는 단 10분 만에 깔끔히 사라졌다.
[일정 수준의 마기를 흡수해. 지옥귀 폭발 스킬이 개방되었습니다.]
[부패 스킬이 강화됩니다.]
[충만한 마기가 느껴집니다. 부패의 비가 개방되었습니다.]
[마기의 손아귀가 강화됩니다.]
[마기 채찍이 강화됩니다.]
“후우… 좋은데?”
잠시 후.
눈을 뜨자, 몸 안에 충만히 차오른 마기가 느껴졌다.
[김민준]
‘세리아 누나는 내 최애캐’ 교의 창시자.
힘: 77 민첩: 67 체력: 60 마기: 35
보유 스킬: 부패(C), 나이트 워커(C), 암흑 화살(D),마기의 특이점, 마기의 손아귀(D), 마기 채찍(D) 기본 둔기술(E), 기본 검술(D), 스트렝스(C), 민첩 강화(E), 고통의 채찍질(C), 부패의 비(D), 지옥귀 폭발(D)
곧바로 상태창을 열어 확인해 보니, 마기 스텟이 5나 올라가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강화된 스킬과 개방된 스킬까지.
“순식간에 30%의 마기가 차올랐잖아.”
이 정도면, 한국에 마기가 차 있는 던전 15개 이상의 분량이다.
”오오! 김민준 님! 그 많은 마기를 완벽하게 흡수하시더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어느새 인간 모습으로 돌아온 이봉구는 자신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진한 마기를 흡수하고도, 눈 하나 깜빡 안 하는 저 여유로움.
경외심이 절로 들었다.
“이봉구, 잘했다. 마기 나눠 줄 테니까 받….”
김민준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던전이 크게 흔들렸다.
쿠구구궁!
순식간에 입구가 닫혀 버린 던전.
그가 마기를 흡수했기에 일어난 변화였다.
“뭐야. 마기만 줘도 고마워 죽겠는데, 경험치까지 준다고?”
던전은 당장에라도 터질 것처럼 꿀렁거렸지만, 김민준은 오히려 밝게 웃었다.
쿠웅! 쿵!
잠시 후.
던전 안쪽에서 묵직한 발소리를 울리며, 몬스터가 나타났다.
새빨간 도깨비 가면을 쓴 몬스터, 붉은 도깨비였다.
“으워어어어어!”
놈은 묵직한 철퇴를 들고, 힘차게 포효했다.
오크보다 강하고 오우거보다 약한 몬스터였지만, 저놈은 예외였다.
오우거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덩치부터 컸으니까.
“아하. 마기가 저놈을 재우면서 기척까지 지워 주고 있었는데, 내가 흡수해서 깬 거구나?”
결국엔 내가 원인이니까, 책임지고 처리해 줘야 되겠는데?
“이봉구. 물러나 있어.”
“예!”
그와 동시에, 자신의 눈앞으로 거대한 철퇴가 날아왔다.
웬만한 헌터라도 정면에서 맞게 되면, 그대로 부침개가 될 수준의 파괴력.
“뭐가 그렇게 급하냐?”
하지만 자신에게 있어서는 살짝 무거운 공일 뿐이었다.
김민준은 붉은 도깨비가 날린 철퇴를 한 손으로 막은 뒤, 다른 손을 높게 치켜들었다.
“너 맷집 상당히 좋을 것 같은데, 같이 좀 놀아 줘라.”
지옥귀 폭발.
허공에서 붉은 안광을 가진 지옥귀들이 무리를 지어 나타났다.
“가라.”
“끼이이익!”
김민준의 신호에 지옥귀들이 몬스터의 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파이어!”
푸화악! 푸확!
“크워어어억!”
지옥귀들은 그대로 몸을 폭발시켰다.
붉은 도깨비는 얼굴을 움켜쥐며 괴로워했다.
놈의 살점이 툭툭 떨어져 나갔지만, 치명적인 피해는 입히지 못한 듯했다.
“이야. 이거 생각보다 강한 스킬인데, 이걸 버텨 냈네.”
“우워어어어!”
놈은 잔뜩 성이 났는지, 피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일정 이상 피해를 입히면 발생하는 불을 뿜는 패턴.
“군복을 태워 먹을 순 없지.”
부패의 비, 미니 버전.
김민준의 손바닥에서 검은 구름이 피어올랐다.
구름은 붉은 도깨비의 머리 위로 자리를 잡은 뒤, 보라색을 띤 비를 내리기 시작했다.
“끄워어어억!”
놈은 입에서 불을 내뿜었지만, 구름은 뭐가 대수냐는 듯 비를 멈추지 않았다.
쿠웅!
얼굴이 급속도로 썩어들어 가던 몬스터는, 결국 목숨을 잃었다.
상당수의 헌터와 화기를 동원해야 처리할 수 있는 몬스터를, 고작 수 분 만에 처리한 것이다.
“경이롭습니다…. 저희와 비교도 되지 않는 압도적인 강함!”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이봉구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저 정도의 위력을 내려면, 흑마법사 20명 이상이 모여야 했기에.
“어? 으억! 김민준 니임!”
“저건… 야! 당장 이쪽으로 튀어 와!”
“예, 예!”
김민준이 몬스터를 처리하는 것도 잠시.
포탈 쪽에서 이변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