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에너지스톤
마기를 찾기 위해 해외로 떠난, 이봉구였다.
현재 녀석이 있는 나라는 일본.
땅덩어리가 넓은 나라부터 가는 것이 효율이 높겠지만, 이봉구 역시 힘을 소진한 상태다.
가급적 가까운 곳부터 탐색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말.
‘뭐라도 찾았냐? 보고해 봐.’
-예! 전 현재 후지산 근처의 나무에 앉아 있습니다! 제대로 된 던전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마향이 콧속까지 진하게 들어옵니다!
이봉구는 지금 막 마기가 풍부한 던전을 찾았다며, 들뜬 기색으로 대답했다.
-이 정도면 김민준 님이 잃어버리신 마기를 상당 부분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거기다 저 던전은 예전부터 방치 상태였는지, 주위에 아무도 없습니다!
‘잘했다. 내가 갈 때까지 그 근처를 한 번 더 돌아봐.’
-예! 맡겨만 주십쇼!
이봉구, 이 자식.
드디어 한 건 해내는구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는데.
‘놈이 혼자서 해외로 간다길래 살짝 불안한 느낌이 있었는데, 내 예상보다 잘 움직여 주네.’
김민준은 바로 다음 날, 일본에 가기로 하고 휴가를 신청했다.
“자, 다들 주목!”
“주목!”
일과 시작을 앞두고 있을 때, 김철민 중위가 소대원들의 시선을 모았다.
“김민준, 이쪽으로 나와.”
“하사, 김민준. 알겠습니다.”
“자. 너희들도 알다시피, 김민준은 이제 일반 병사가 아니라 간부다. 그리고 지금부터, 부소대장이다.”
부소대장이라는 말에, 소대원들은 의외라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하사가 부소대장이라고?’
‘완전 초짜 소위가 보통 부소대장 달지 않냐?’
‘그러니까. 하사가 다는 건 처음 보네.’
그럴 것이, 헌터군 부대에서 하사가 부소대장을 맡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었다.
“대대장님께서 네가 일반 헌터 쪽을 선택한 걸 보고, 신경 써 주신 것 같다. 당연히 할 거지?”
“예! 하겠습니다!”
이게 웬 떡이냐.
당연히 해야지.
현재 자신의 병과는 일반 병사일 때와 같이 일반 헌터.
실적 점수가 우수했기에 선택의 기회가 있었지만, 진급이 빠른 일반 헌터 쪽을 골랐다.
‘부소대장이 실적 점수가 빵빵하다고 했지.’
그만큼 궂은일을 도맡아 해야 하고, 이리저리 불려 다니고 책임질 일도 많은 자리였지만, 그게 뭐 어떤가.
진급만 빠르면 장땡이었다.
“자, 그럼 다들 민준이 말 잘 듣고 작업할 수 있도록 해. 알겠냐?”
“알겠습니다!”
김철민 중위는 다른 업무가 있다고 말한 뒤, 자리를 비웠다.
‘부소대장 달고 첫 일이네. 열정적인 게 뭔지 보여 주지.’
오늘 할 작업은 제초.
김민준의 입에서 제초라는 말이 나오자, 헌터들이 탄식했다.
“아, 미친!”
“눈 내린 지 얼마 지났다고 벌써 제초입니까?”
잡초 뽑기와 제초 작업 때문이었는데, 이게 보통 힘든 게 아니라고 한다.
“1번이면 몰라도, 같은 짓을 두 번 해야 하는 게 너무….”
“으아… 풀 냄새 몸에 다 배겠다.”
헌터군에서의 제초는 먼저 1차 작업을 거친 뒤.
작업한 장소에 특수 소독 약품을 뿌려야 한다.
최전방이다 보니, 그냥 몬스터가 없어도 형식상 거쳐야 하는 작업이다.
“특수 소독약을 왜 제초할 때만 뿌려야 하냐?”
“일반군은 이제 민간 인력 사용하는 거 검토한다던데, 우리는 왜!”
“우린 헌터군이잖아.”
“일반 군인은 헌터 군부대 잡초 절대 못 뽑을걸.”
툴툴대며 작업복으로 환복하는 소대원들.
김민준은 자신도 거들어 줄 테니, 열심히 하라고 말해 주었다.
“작업하다가 부상에 주의하고, 특히 올해는 잡초가 많이 자랐다고 한다! 그러니까 열심히 움직여라. 알겠냐!”
“예!”
“작업 도중에 예초기 날이 상하거나 하면 바로 나한테 오고.”
“알겠습니다!”
김민준의 지시에 헌터들은 배정받은 구역으로 이동해, 작업을 시작했다.
손으로 잡초를 직접 뽑는 헌터와, 예초기를 돌리며 깎아 나가는 헌터까지.
104사단의 제초 구역은 상당히 넓다.
때문에 3개 소대의 헌터들이 작업에 동원되었다.
위이잉- 위이이잉-
“어우, 씨. 이놈들의 풀은 왜 이렇게 억세?”
던전의 영향 때문인지, 예초기의 날에도 잘 깎여 나가지 않는 풀들이 존재했다.
“아. 내가 풀을 뽑고 있는 거 맞냐.”
잡초도 마찬가지.
헌터들은 안간힘을 써가며 작업을 진행했다.
‘강원도는 벌레부터 풀까지 장난 아니네.’
김민준은 헌터들을 도와, 압도적인 속도로 잡초를 뽑아 나갔다.
그래 봤자 그에겐 간단한 일이었으며, 헌터들을 관리 감독만 하기에는 몸이 근질거렸으니까.
“뭐야. 저쪽은 잡초가 뭐 저리 쑥쑥 뽑혀?”
“김민준 하사님. 진짜 힘 장난 아니십니다.”
“사실 저기가 꿀 자리 아닐까?”
그 모습을 본 헌터들은 김민준의 근처로 갔지만, 별로 달라진 점은 없었다.
“그냥 불도저가 밀고 지나가는 것 같은데.”
“김민준 하사님이 10명만 있어도 금방 끝날 것 같습니다.”
“이놈들아. 말할 힘 아껴서 풀이나 더 뽑아.”
“알겠습니다….”
김민준은 순식간에 지정받은 구역 한 곳의 풀을 다 뽑았다.
‘여긴 이 정도면 충분하고… 응? 뭐냐?’
풀뿌리에 푸른빛을 띤 돌조각이 하나 매달려 있다.
뭔가 싶어 확인해 보니, 드물게 발견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이전 유격 훈련장에서 발견한 것과 같은 종류의 영약형 아이템.
이번에는 순전히 운으로 발견한 것이다.
‘이게… 이름이 뭐였더라. 에너지 스톤이었나.’
섭취한 자의 잠재 능력에 따라,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영약.
상당히 귀하다고 알려진 아이템이었다.
‘워우… 심 봤다!’
김민준은 에너지 스톤을 집은 뒤, 재빨리 주머니 속으로 넣었다.
이 돌멩이가 어떤 효과를 가져다줄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 제초 작업은 이걸로 끝이다! 다들 고생 많았다.”
“사, 살았다….”
“드디어 끝이다….”
시간이 흘러, 제초 작업은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이것도 김민준이 빨리 움직인 덕분이었지, 평소 같았으면 야간 작업까지 해야 할 양이었다.
“이야. 제초 한번 기가 막히게 해 놨네. 생각보다 빨리 끝났는데? 이거 딱 보니까 민준이 덕분이겠구만.”
때마침 부대에 도착한 김철민 중위는, 깔끔하게 제초된 지역을 슥 보고 씨익 웃었다.
“이제 부소대장인데 애들 많이 시키지 그랬냐.”
“전 몸을 움직이는 쪽이 편합니다.”
“그럴 줄 알았다. 병사 때 습관이 어디 가겠냐.”
김철민 중위는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말한 뒤, 자신의 어깨를 툭 치고 사라졌다.
**
“추… 충성!”
일과 시간이 지나가고, 저녁 7시.
“응? 뭐야.”
김민준은 PX를 가는 길에, 익숙한 여헌터를 만났다
어색한 얼굴로 경례를 하는 손은서 상병이었다.
“야, 친구 사이에 뭘 그렇게 딱딱하게 하냐. 그냥 편하게 말해.”
“아닙니다!”
“오, 안 속네. 바로 말 놓으면 혼내려 했는데.”
“…….”
“일과 시간 끝나고 까톡이나, 부대 밖에서는 말 놔도 된다.”
“…알겠습니다.”
평소에는 편하게 말하는 사이였는데, 불과 며칠 만에 이렇게 되다니.
손은서는 어색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대답한 뒤, 김민준과 멀어졌다.
손은서: 미워 죽겠네. 하사 달았다고 신났어 아주.
김민준: (곰돌이가 윙크하는 이모티콘)
손은서: 누구는 하사 못 다는 줄 알아? 나도 금방 하사 달아 줄게. 기다려.
김민준: 그때쯤이면 난 중사일 듯. 아니면 상사나 소위일 수도 있겠네.
손은서: 너 간부 진급이 얼마나 빡센지 모르지? 병사일 때야 그렇다 쳐도, 중사로 가는 것만 해도 한세월일걸?
김민준: 한번 지켜봐라. 얼마나 걸리는지.
물론 까톡으로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대화를 이어 나갔지만.
‘나도 곧 있으면 병장이야. 하사만 달고 다시 말 놓으면 되지, 뭐.’
저놈이 이상할 정도로 진급이 빠를 뿐이지, 자신의 진급 속도가 느린 편은 아니다.
‘단련 시간을 2배로 늘리든지 해야지. 이대로 있다가는 저 자식한테 얼마나 놀림 받을지 상상이 안 가.’
손은서는 의욕을 불태우며, 바로 단련실로 향했다.
**
“김민준 하사님! 2분대원 다 왔습니다!”
“어어. 왔냐? 다른 소대원도 올 애들 있으면 오라고 해.”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보이냐? 이거. 너희들 생각해서 아까 나가서 포장해 왔다.”
시간이 지나고, PX 안.
김민준은 밖에서 포장해 온 각종 배달 음식들을 보라는 듯이 내밀었다.
“간부는 일과 시간 끝나면 퇴근이지. 그래서 이런 것도 내 마음대로다 이 말이야.”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요즘 치킨이 땡겨 죽는 줄 알았습니다.”
“김민준 하사님 먼저 한 잔 받으십쇼.”
“오. 나 하사 달았다고 대우해 주는 거냐?”
순식간에 떠들썩해진 내부.
‘언제였나. 내가 상병 진급했을 때도 한 번 이랬었지.’
김민준은 분대원들을 슥 훑어보며 피식 웃었다.
그때와는 다르게, 자신은 벌써 간부가 되어 있는 상태.
그만큼 자신의 진급 속도는 다른 헌터들에 비해, 상상을 초월했다.
‘나만 가지고 있는 스킬. 이세계에서 목숨 걸고 구르던 경험. 압도적인 스텟.’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결과긴 했다.
이곳의 헌터들은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에 있어, 장비 말고는 의존할 수 있는 게 없다.
신체를 아무리 단련해 봐야, 인간의 몸으로는 몬스터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말이다.
‘그래도 이스가르드는 싫다.’
이 세계의 덕을 보긴 했지만, 그만큼 고생한 것을 돌이켜 볼 때마다 성녀의 뚝빼기를 깨 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김민준 하사님.”
“왜.”
“김민준 하사님은 왜 일반 헌터군으로 입대하셨습니까?”
닭다리 하나를 뜯던 김광식 상병이 문득 질문해 왔다.
지금까지 보여 준 압도적인 기량이라면, 하사나 장교로는 충분히 입대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호기심에서라고 한다.
“사실 저도 궁금했습니다.”
“무슨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 말에, 다른 분대원들도 궁금하다는 듯이 눈을 빛냈다.
“이유? 있지. 고졸이라서. 그리고 4년 동안 대학 다녀서 입대하는 것보다, 일반 헌터로 들어가서 진급하는 게 더 빠를 것 같아서 그랬다.”
사실은 이세계에서 귀환한 다음 날이 입대였지만.
“그렇습니까? 근데 사실 요즘 시대에 4년제는 별 의미 없는 것 같습니다.”
“저기 앉아 있는 이승호 병장도 고졸입니다. 간부로 진급해서 장기 복무하는 게 목표랍니다.”
“난 또 왜.”
“오, 그러냐? 이승호가 그래서 훈련에 목매던 거였냐?”
“…훈련은 김민준 하사님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습니다.”
“그건 저도 동감합니다.”
그렇게 분위기는 무르익어 갔고, 김민준은 분대원들과 잡담을 나눴다.
“얌마. 적당히 마시라고 했잖아.”
“어욱! 죄송합니다….”
2시간쯤 지났을까.
분대원들 중 상당수가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멀쩡한 놈들 있냐? 이 자식들 부축해서 생활관으로 데려가라. 점호 똑바로 받고!”
“예!”
“남은 애들은 여기 청소하고 바로 들어가라.”
“알겠습니다!”
술 세다는 놈들이 뭐 저렇게 빨리 뻗어.
난 밖에서 바람이나 쐬고 들어가야지.
띠링.
“응? 뭐냐?”
밖으로 나오자마자, 자신의 눈앞에 의외의 메시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