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57화 (57/212)

57. 하사

“와… 말하기가 무섭게 소대장님 목소리 나오는 거 봐라.”

“김민준 병장님. 하사 미리 축하드립니다.”

“하사 다시면 크게 쏘셔야 합니다.”

분대원들은 김민준이 하사로 진급은 거의 확정일 것이라며 축하해 줬다.

“아직 몰라. 저번에 빅고블린 생포했는데도 안됐거든.”

“김민준 병장님. 이번엔 민간인들이 지나다니는 춘천시에서 게이트가 터졌고, 그걸 단독으로 막으셨지 않습니까. 저번이랑 스케일이 다르다 이 말입니다.”

“그래. 거기다 근처에 지나다니던 민간인도 구했다고 안 했냐?”

분대원들은 이번에도 자신이 진급이 안 된다면, 김철민 중위를 끈질기게 괴롭히겠다고 말했다.

“가만히 있는 소대장님을 왜 괴롭혀 짜식들아, 어쨌든 고맙다.”

김민준은 피식 웃으며 소대장실로 향했다.

“충성!”

“어, 김민준이! 휴가는 잘 보내다 왔냐… 라고 묻고 싶은데, 네가 작성해야 할 보고서가 많다. 이것들부터 작성해라.”

김철민 중위는 자신을 보자마자, 각종 상황 보고서들을 내밀었다.

그의 업무 책상에 쌓인 서류들을 보면, 밀린 일이 상당히 많은 듯했다.

“알겠습니다.”

“그냥 형식적으로 적는 거니까 대충 적어도 된다. 너 하사로 진급은 거의 확정이니까.”

“그렇습니까?”

“그럼 당연하지, 이 자식아. 얼마 전에 커다란 놈 생포한 걸로 모자라서, 상대하기 까다롭다는 이레귤러 행커를 포획했는데. 이걸 안 해 주면 사단장님이 가만히 있으시겠냐?”

김철민 중위는 ‘너 때문에 일이 미친 듯이 불어나서 죽을 것 같다.’라며 장난스럽게 말을 뱉었다.

“그건 그렇고, 너한테 무기 지급을 한 게 신의 한 수였구만. 이번에 상대한 행커 6마리. 무기가 없었다면 너라도 힘들었지 않겠냐?”

“아, 채찍 말입니까? 전 그냥 맨손으로 처리했습니다.”

물론 이레귤러 개체는 채찍을 묶는 용도로 사용했지만.

“…뭐라고? 행커들을 무기 없이 상대했다고? 뭐 어떻게 대처한 거냐?”

맨손으로 상대했다는 말에, 김철민 중위의 눈동자가 커졌다.

“놈들이 던지는 갈고리를 잡은 뒤, 제 쪽으로 잡아당겨서 한 번에 처리했습니다.”

“허, 참. 무기를 놔두고 굳이? 결과적으로 잘 됐으니까 별 상관은 없다만.”

김민준이 채찍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맨손으로 한꺼번에 처리하는 편이 더 빠르기 때문이었다.

행커가 까다로워 봤자, 힘 스텟이 70 이상 넘어가는 그에게 있어 어린애 장난인 수준.

“여기 다 작성했습니다.”

김민준이 작성한 보고서를 넘겨주자, 김철민 중위는 생활관 졸업을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왔다.

“하사부터는 알지? 관사에서 출퇴근할 수 있는 거. 지금 빈방이 있으려나 모르겠네.”

“아. 전 당분간 생활관에서 지내겠습니다.”

“…뭐라고? 하사 달고 굳이? 너 혼자 방 하나 쓰는 게 편하지 않겠냐?”

그거야 물론 편하지.

편하지만, 관사에 가는 순간 내가 막내가 되잖아.

하지만 생활관에서는 내가 왕이지.

‘거기다 간부 달면 일과 시간 끝나고 부대 밖으로 나갈 수 있으니까 별 상관은 없지.’

그것뿐만 아니라, 내가 관사에서 출퇴근을 한다면 기껏 없어진 부조리가 다시 생길지도 모른다.

워낙 단기간에 부조리를 없애 버렸다보니, 시간을 들여 천천히 굳혀 나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

“관사는 중사 달고 가겠습니다.”

“그것 참 신기한 놈이네. 물론 하사 달고 생활관에 있어도 상관은 없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전달 사항이 있다. 네가 다는 하사는 다른 간부들의 하사랑 느낌이 좀 다를 거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쉽게 말하면, 네가 하사들 중에서 짱이라는 말이다.”

이등병에서 하사가 된 헌터와, 훈련을 거치고 하사가 된 헌터.

당연히 전자 쪽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많다.

특히나 김민준은 그간 달성한 실적만 해도 상당한 수준.

“그러니까 던전 공략 중에 너와 다른 하사가 있다, 이러면 네 판단이 우선시된다는 이야기다. 알겠냐?”

“예. 알겠습니다.”

그건 좋구만.

하사 다는 순간 간부들 중에서 막내가 되는 셈이지만, 영향력은 장난 아니란 소리잖아?

‘내일 당장이라도 하사 달았으면 좋겠네.’

**

다음 날.

헌터들은 아침 구보를 끝내고 식사를 마치자마자, 연병장으로 집합했다.

“거기 너! 저쪽에 낙엽들 쌓인거 다시 치워!”

“이병! 진철호! 알겠습니다!”

“세차는 새벽에 다 끝냈냐!”

“예! 그렇습니다!”

“여기 이 부분! 여기랑 여기 다시 칠해라! 이건 구두약으로 칠해!”

“알겠습니다!”

아침 일과 시작 전부터, 헌터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병사나 간부나 할 것 없이, 이리저리 쓸고 닦고 바르고 난리도 아니다.

대대장도 아니고, 사단장이 잠시 후 부대에 방문하기 때문이었다.

사단장이 방문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김민준의 하사 진급식.

얼마 전, 춘천에서 발생한 게이트를 처리한 건과 지금까지 우수한 헌터군 생활의 실적을 반영해 하사로의 특별 진급이 결정됐다고 한다.

보통 진급식은 대대장이 진행하지만, 이번만큼은 사단장이 직접 진행하겠다며 의사를 밝혀 왔다.

“아오! 방문 한 시간 전에 알려 주는 게 어딨냐? 밥도 제대로 못 먹었네.”

“와… 우리 부대 진짜 레전드다. 군생활 하면서 한 번도 보기 힘들다는 사단장님을 벌써 두 번이나 보잖아.”

“세 시간만 일찍 알았어도 아침 구보 안 했다. 인정?”

“우리 부대 제대로 찍힌 거 같은데… 앞으로 어떡하냐, 스벌.”

헌터들은 불만을 뱉으면서도, 움직이는 손은 쉬지 않았다.

“그것보다 우리 부대 레전드는 김민준 병장님이지. 이번 걸로 특별 진급만 몇 번 한 줄 아냐?”

“세 번 아니냐?”

“그 짧은 기간에 세 번? 누가 보면 헌터군 진급이 킹든어택처럼 쉬운 줄 알겠다.”

“난 3년 동안 미친 듯이 구르고 턱걸이로 상병 달았는데, 김민준 병장님 보면 그냥 말이 안 나온다.”

자대에 배치받은 지 몇 달도 지나지 않은 일반 병사가 순차적으로 진급해 벌써 하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니.

헌터들은 김민준이 저런 기세면 중사, 상사를 거쳐 소위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잡담을 나눴다.

“어우, 가만히 있으니까 심심하네.”

한편.

김민준은 가만히 서 있는 게 지루해, 헌터들의 청소를 거들어 주려고 했다.

“김민준, 이 자식아. 넌 그냥 저기 가서 앉아 있어. 진급식 주인공이 뭔 청소를 하냐.”

그러던 찰나, 김철민 중위가 다가와 헛짓하지 말고 저쪽에 가 있으라며 손짓했다.

“병장 김민준.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이제 1시간 뒤면 하사네? 중사는 또 얼마나 빨리 다는지 지켜봐야겠는데?”

김철민 중위는 시원하게 웃다가, 뭔가 생각났는지 자신의 어깨에 붙어 있는 녹색 견장에 손을 가져갔다.

“너 이제 하사니까 분대장 못 한다. 이렇게 빨리 달 거면 분대장 왜 달았나 싶겠네.”

“분대장 실적 점수는 중사 진급에 반영됩니까?”

“되겠냐, 이 자식아. 벌써부터 중사 달고 싶냐?”

김철민 중위는 녹색 견장을 회수한 뒤, 복장이나 한 번 더 점검하라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김민준이 한쪽으로 빠져 있던 사이, 진급식에 관한 소식을 알게 된 병장들이 그에게 다가왔다.

“민준아, 아니. 김민준 하사님! 벌써 하사로 진급이라니, 축하드립니다!”

“저 아직 하사 아닙니다.”

“어차피 1시간 뒤에 하산데 뭐 어떠냐. 그럼 그동안 반말이라도 실컷 해야지. 키야… 그것보다 이게 간부들한테만 지급된다는 예복이야?”

“몸이 좋으니까 핏이 확 사는 거 봐라.”

“확실히 헌터군 예복이 수준 높긴 하네.”

병장들은 예복을 입은 김민준을 부럽다는 눈으로 이리저리 훑었다.

‘이게 단가만 80만 원짜리랬나.’

확실히 괜찮긴 하네.

부대 밖으로 나갈 때 입고 가든가 해야지.

“부대 차렷!”

시간이 지나고, 사단장이 부대에 방문했다.

시끌벅적했던 분위기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사단장님께 대하여! 경례!”

“충! 성!”

“그래. 사단장이 자주 부대에 와서 불편하지?”

“아닙니다!”

사단장은 진급식을 시작하기 전, 간단한 전파 사항을 전달했다.

최근 들어 비상 상황이 발생하는 빈도가 늘었으니, 그에 대한 대처를 확실하게 하라는 말이었다.

“일반 도시 같은 곳에서 게이트가 터지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대처 속도다. 몬스터가 시민들을 덮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도착해야 한다는 말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예!”

“그래. 이번에 춘천에서 발생한 게이트 알지? 우연히 김민준 병장이 근처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이었는데, 근처에 있는 헌터군 부대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덕분에 피해가 하나도 발생하지 않았고.”

전파 사항 반, 김민준에 대한 칭찬 반이었다.

“김민준 하사. 앞으로도 그런 자세로 군생활에 임하기 바란다.”

“하사! 김민준! 감사합니다!”

진급식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사실 진급식이라고 해 봐야 별거 없다.

사단장에게 크게 경례 한 번 한 뒤, 악수만 나누면 끝이다.

지금 같은 시기에 진급식은 건너뛸 만했지만, 사단장이 직접 하겠다는데 어쩌겠는가.

사단장은 진급식이 끝나자마자, 부대 밖으로 나갔다.

짝짝짝짝짝.

“김민준 하사님! 축하드립니다!”

단상에서 내려오자, 헌터들의 큰 박수 소리가 자신을 맞아 주었다.

“저희 분대에 김민준 하사님 없으면 재미가 없습니다.”

“…전 아직도 하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김민준 하사님을 보면 그냥 말이 안 나옵니다.”

이동진 일병이나 김광식 상병, 이승호 병장 등등.

분대원들은 그동안 같은 생활관에서 재밌었다며, 관사 가서도 자기들을 잊지 말라고 말해 왔다.

“누가 들으면 내가 차출이라도 되는 줄 알겠네. 아, 너희들한테 말 안 했구나? 나 관사 안 가는데?”

“잘못 들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 생활관에 있을 거다. 중사 달 때까지.”

그 말에, 분대원들 중 상병장들은 ‘어? 이게 아닌데….’라는 얼굴을 했다.

그들은 오히려 김민준이 있어서 생활이 불편해졌기 때문이었다.

후임들을 마음껏 부려 먹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김민준의 존재 때문이었으니.

“나 관사 가면 막내잖아. 근데 여기 남아 있으면 내가 왕이거든? 킹 오브 킹. 알겠냐?”

“…하사 달고 생활관에 남아 있는 간부는 김민준 하사님이 최초일 겁니다. 병과 선택은 안 하셨습니까?”

“어. 그냥 일반 헌터 그대로 간다. 그쪽이 진급이 빠르니까.”

“…대단하십니다.”

이승호 병장은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참나. 너희들 아까는 눈물 짤 것처럼 말하더니, 다 연기였냐? 어쨌든 오늘 일과 끝나고, 2분대원들 PX로 모여. 내일 토요일인 거 알지?”

“설마?”

“김민준 하사님?”

“그래, 이 자식들아. 불금 달려 보자고. 오늘 내가 다 쏜다.”

“우와아아악!”

“술 마신 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 술이다!”

소대장님한테 음주 허가를 받아 놨다는 자신의 말에, 분대원들이 저마다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술이 그렇게 좋냐? 그럼 비싼 양주로만 먹여 준다.”

“좋습니다!”

한동안 떠들썩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헌터들은 일과 준비를 위해 생활관으로 복귀했다.

‘하사라. 진짜 바로 다음 날 달아 줄 줄은 몰랐는데.’

역시 압도적인 실적을 세우면 된다니까.

김민준이 하사 계급장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는 도중.

-김민준 니이이임!

익숙한 목소리가 말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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