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하사로 간다-2
행커 6마리 중, 머리통은 검게 물든 한 마리.
이레귤러였다.
‘저놈 한 마리 처리하는 데 들어가는 인력이 장난 아니겠지.’
이레귤러 행커는 다른 행커들에 비해, 처리 과정이 복잡하다.
일반 행커들이야 갈고리 공격을 무력화시킨 뒤, 마력탄이나 무기를 이용해 처리하면 수월하다.
하지만 이레귤러를 그냥 처리했다가는 놈의 머리가 터지면서 검은 가루가 뿜어져 나오게 된다.
‘석화 효과를 가진 가루랬나.’
검은 가루는 대기를 타고 떠돌아다니며 사람의 호흡기를 통해 들어가게 되는데, 마시게 되면 온몸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게 된다.
일반인 같은 경우는 소량만 마셔도 숨을 못 쉬게 될 정도.
그렇기에 이레귤러 행커는 특수 차량과 장비를 이용해, 무력화시킨 뒤 생포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병장 김민준입니다! 게이트 6개에서 행커 6마리가 출현했습니다! 그중 한 마리는 이레귤러입니다! 특수 차량 지원 부탁드립니다!”
-행커 6마리? 거기에 한 마리는 이레귤러? 근처 헌터군들이 도착하려면 10분 가까이 걸린다! 상대하지 말고 대피해!”
이레귤러라는 말에, 보고 받은 간부의 말이 급격하게 빨라졌다.
“제가 그동안 시간을 끌겠습니다. 이대로 대피하면 인명 피해가 발생하게 됩니다.”
대피는 무슨.
이놈들이 강해 봐야 얼마나 강하겠냐.
다 내 경험치들인데.
“크히히히히!”
소름 끼치는 목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행커들.
김민준은 주위에 민간인이 지나다니지는 않는지 체크했다.
‘좋아. 지금은 없고.’
쇄에엑!
그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 찰나, 갈고리가 날아들었다.
낫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갈고리들.
“크, 크힉!”
“키히힉?”
김민준은 놈들이 던진 갈고리를 하나씩 잡았다.
그가 오른손에 쥔 갈고리는 총 6개.
행커들은 힘을 주며 그를 끌어당기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 그럼 뽑기 들어갑니다.”
이 깜찍한 자식들.
몬스터 아니랄까 봐, 살짝 틈만 보이면 공격해 온다 이거지.
“키히히힉!”
“키아아악!”
행커들은 김민준과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발악하며 힘을 넣었다.
“그래 봐야 나한테 되겠냐?”
김민준은 다른 한 손으로, 놈들에게 채찍을 휘둘렀다.
[고통의 채찍 효과가 적용됩니다.]
“오?”
그러자 메시지와 함께 스킬 효과가 발생했다.
“끼, 끼아아아아악!”
행커들은 당장에라도 죽을 것처럼 비명을 질러 댔다.
상당히 고통스러운지, 몸을 부르르 떨기까지.
“괜찮네, 고통의 채찍. 시끄러운 게 단점이긴 하네.”
김민준은 머리통이 검게 물든 한 마리를 제외한, 나머지 행커들을 모두 처리했다.
[힘 스텟이 1 상승합니다.]
좋아.
스텟도 얻고, 실적 점수도 얻고.
무난하구만.
“넌 살려 준다. 운 좋은 줄 알아.”
“크히히힉!”
“뒤지기 싫으면 가만히 있어라.”
김민준은 채찍을 이용해, 놈의 몸을 포승줄 묶듯 둘둘 감았다.
이제 헌터군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끝이다.
“꺄아악! 저, 저거! 몬스터!”
잠시 후.
때마침 어린이 공원 근처를 지나던 여성 한 명이, 행커를 발견하고 땅에 주저앉았다.
몬스터를 마주해 공포에 질린 모습.
“크흐흐흐….”
행커는 음산한 소리를 내며, 여성을 향해 입을 쩍 벌렸다.
“괜찮습니다. 제가 속박해 놨거든요. 여기로 오시지 마시고, 다른 길로 돌아가 주세요.”
“네, 네!”
김민준은 민간인을 진정시키며, 그대로 뒤로 물러나라고 지시했다.
“크흐…? 크히히힉!”
그때.
이레귤러 행커가 돌발 행동을 했다.
놈이 벌린 입 안에서, 갈고리가 발사된 것이다.
그 대상은 전방에 있는 민간인 여성.
“아아아악! 살려 주세요!”
조심스럽게 뒷걸음질 치던 여성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갈고리를 보고 기겁했다.
“이 자식이. 헛짓하지 말라고 했지.”
“크히이이익!”
물론 그 갈고리가 여성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김민준이 그 즉시 대처했기에, 놈의 입에서 쏘아진 갈고리는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입에서 갈고리 쏘는 패턴은 없는 걸로 아는데. 이래서 이레귤러라는 건가.”
“흐큭….”
“넌 숨도 쉬지 마라. 공기도 아깝다.”
김민준은 행커가 눈도 깜빡하지 못하도록, 속박을 견고히 했다.
**
한편.
긴급 상황에 투입된 헌터군들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군용 차량에서 내렸다.
“이번에 발생한 게이트에서는 행커가 출현했다! 개체 수는 6마리! 그중 한 마리는 석화 현상을 유발하는 이레귤러다! 다들 방독면 장착해!”
“예!”
“방독면 장착!”
“내가 허락하기 전까지는 발포 금지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춘천 근방 부대의 헌터들은 군용 방패를 장비한 뒤, 곧바로 현장으로 향했다.
현재 마력 방패가 지급된 부대는 철원 쪽 부대뿐.
그렇기에 행커 6마리를 처리하는 데에만 2개의 소대가 투입되었다.
“너희들은 민간인들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안전 확보해!”
“예!”
“다음! 3소대원들은 나 따라온다!”
간부의 지시에 따라, 헌터들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게이트가 발생한 곳은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어린이 공원 한복판.
그만큼 빠른 대처가 중요했다.
“다들 여기서 군용 방패… 뭐냐?”
현장을 확인한 간부는 늘어져 있는 행커들의 시체를 보고 미간을 좁혔다.
“흐… 윽… 큭….”
이레귤러로 보이는 한 마리는 숨도 못 쉴 정도로 속박된 채, 눈만 끔뻑거리고 있는 상태.
그 옆에는 김민준이 태연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충성! 104사단 소속, 2대대 2중대 2소대 병장 김민준입니다!”
“어, 어어… 행커 6마리가 튀어나왔다고 하는데… 혼자 처리한 거냐?”
“그렇습니다.”
심지어 한 마리는 생포한 상태다.
최소 10명 이상의 헌터가 매달려 처리해야 하는 이레귤러가 헌터군 병장 한 명에게 힘을 못 쓰고 있다니.
‘소문으로 듣기는 했는데, 과장이 아니었잖아.’
5마리의 행커 머리통은 깔끔하게 터져 나가 있는 상태.
심지어 총기를 사용한 것도 아니다.
총기를 소지하고 있는 상태라 해도, 방패가 없으면 대처하기 까다로운 몬스터일 텐데.
“…이거, 상황 이미 끝난 것 아닙니까?”
“허… 행커 6마리를 혼자서 상대했다고? 심지어 한 마리는 저기 생포해 놨는데?”
“기가 막히게 묶어 놨네.”
간부뿐만 아니라, 병사들 역시 어안이 벙벙했는지 입만 떡 벌리고 있었다.
“특수 차량 빨리 들여보내! 이레귤러 포획부터 한다!”
“아, 알겠습니다!”
김민준의 활약으로 인해, 인명 피해는 제로.
거기다 샘플용 이레귤러 몬스터까지 생포했다.
“김민준이라고 했나?”
“병장 김민준. 그렇습니다.”
“행커 6마리를… 어떻게 상대한 거야? 방패도 없이?”
“놈들이 저에게 던진 갈고리를 붙잡고, 역으로 끌어당긴 뒤 처리했습니다.”
“허… 참. 그게 된다고? 한 마리도 아니고 6마리나? 저놈들 끌어당기는 힘이 무지막지할 텐데.”
순간 장난치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김민준의 몸은 작은 생채기 하나 없는 상태.
믿기 힘들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흐킥! 흐키키킥!”
“머리통 터지기 싫으면 가만히 있어, 자식아!”
“흐익….”
행커를 특수 차량에 싣고 나서야, 상황은 완전히 종료되었다.
놈은 특수 차량에 실리는 순간까지 발악해, 김민준이 마지막까지 나서서 도와주었다.
“자세한 건 부대에 복귀하고 나서 듣도록.”
“예! 알겠습니다! 고생하십쇼. 충성.”
“네 덕에 아무런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 잘했다.”
간부는 김민준의 어깨를 툭 친 뒤, 헌터들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
“이레귤러 몬스터가 힘이 좋긴 좋네.”
김민준은 어깨를 휙휙 돌렸다.
다른 개체에 비해, 확실히 끌어당기는 힘이 몇 배로 강하긴 했었다.
[스트렝스가 강화됩니다.]
그래도 스킬 등급이 올라갈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지.”
이번 게이트 처리로 올라간 힘 스텟만 무려 6.
힘: 77 민첩: 67 체력: 60 마기: 30
힘 스텟이 어느새 80에 육박하게 되었다.
“좋아, 이거지.”
김민준은 스텟창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확실히 이스가르드에 있을 때보다 마기를 모으기 까다로운 환경이었지만, 전반적은 스텟은 오히려 빨리 올라갔다.
“조만간 날 잡고 마기 스텟도 확 올려 버리고 싶네.”
“야! 김민준!”
“뭐야?”
잠시 어린이 공원 그네에 앉아 있던 사이, 익숙한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손은서 상병이었다.
“뭘 그리 급하게 왔냐? 군용칼은 또 왜 챙겼어?”
“…여기 상황 터진 건?”
“내가 다 처리했지. 30분쯤 전에.”
“…혼자서?”
“당연하지.”
손은서는 당연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김민준을 보고, 인상을 구겼다.
“내가 혹시나 싶어서 휴가 일정을 맞춰서 썼는데, 실적 점수를 혼자서 다 먹어 버리네! 재수 없게!”
“뭐야. 언제는 볼일 보러 왔다며. 그런데 혹시나 싶은 건 무슨 말이냐?”
“뭐긴 뭐야. 너 휴가 나올 때마다 상황 터졌잖아. 이번에도 그럴까 싶어서 따라 나온 거지, 뭐.”
그거야 당연히 터질 수밖에 없지.
상황 터지기 직전의 장소를 골라내서 갔으니까.
그건 그렇고.
은근 감이 좋은데? 쟤는?
“늦은 네가 잘못이지. 인정?”
물론 네가 왔더라도 양보는 없었겠지만.
김민준은 그녀에게 보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재수 없어 죽겠어.”
“그것보다, 너 다음부터 나 보면 말 높여야겠는데?”
“뭐래. 또 무슨 개소리 하려고.”
“에이. 다 알면서. 내가 이 정도나 활약했는데, 하사를 안 달아 주겠어?”
“…하사.”
하사라는 말에, 손은서의 어깨가 축 처졌다.
분명 일병이라는 출발선은 같았는데, 어느새 간부로 진급할 상황이라니.
‘이번엔 확실히 되겠지, 하사.’
듣자하니 이레귤러 몬스터까지 포획했다는데, 안 달아 주는 게 이상한 수준이다.
‘쟤한테 말을 높여야 한다고?’
일반 병사야, 타 중대 정도만 된다면 요 자를 써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간부부터는 타 부대 헌터라도 말을 높여야 한다.
“뭘 그렇게 뚱하게 있냐. 커피라도 한 잔 사 준다. 가자.”
“…누가 너 보면 헌터군 진급하는 게 쉬운 줄 알겠네.”
“난 쉽지. 잘 봐라. 이대로 별까지 갈 거니까.”
김민준은 손은서의 어깨를 툭 친 뒤, 유유히 어린이 공원을 빠져나갔다.
그녀는 손에 든 군용검을 잠시 바라보다가, 집어넣었다.
**
휴가 복귀 날.
부대 안은 떠들썩했다.
김민준이 춘천에 발생한 게이트를 단독으로 처리했으며, 민간인들을 상처 하나 없이 보호한 일 때문이었다.
그것도 휴가 중에.
“어떻게 쟤가 휴가 가는 곳마다 게이트가 터지냐?”
“그러게 말입니다. 게이트도 게이튼데, 그걸 혼자서 다 막아내는 김민준 병장님도 장난 아닙니다.”
“이번에 춘천 어린이 공원에서 행커 6마리가 나왔는데, 1마리는 생포까지 했다더라.”
“…행커를? 혼자서 말입니까? 갈고리 한번 걸리는 순간 지옥인데 말입니다.”
김민준의 분대원들은 이번 일까지 해서, 하사로 진급되는 것 아니냐며 이야기를 나눴다.
“당연히 하사 달아야지. 아니면 헌터 본부에 쳐들어갈 거다.”
“어, 민준이 왔냐.”
“예, 충성! 휴가 다녀왔습니다.”
“참나. 이 자식 상처 하나 없는 거 봐라. 미친놈이네.”
“안 그래도 진급 건으로 소대장님이 곧 부르실걸. 잘 봐라.”
“그것보다 상황 어땠는지 우리한테 이야기 좀 해 줘 봐.”
“알겠습니다.”
김민준이 분대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
-소대장이 알린다. 김민준 병장. 김민준 병장은 지급 즉시 소대장실로 올 수 있도록 한다.
김철민 중위의 목소리가 생활관 내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