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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52화 (52/212)

52. 포획

김민준은 고블린의 피와 살점이 묻은 채찍을 잠시 바라보았다.

힘껏 휘두른 것도 아니고, 적당히 휘둘렀는데 이 정도의 위력일 줄이야.

별의 힘이 개입되면 이렇게 된다는 건가?

“무기가 상당히 좋은 것 같습니다.”

“무기가 좋아도 그렇지, 채찍으로 그게 되냐? 힘 스텟이 높다고 되는 게 아닐 텐데… 어쨌든 잘 대처했다.”

“감사합니다.”

소대장은 전투 도중, 김민준이 대열에서 벗어나려 하자 주의를 주려 했다.

뭘 하려나 싶었더니, 원거리형 고블린은 발견해 처리할 줄이야.

‘원거리형은 주위 구조물을 이용해 숨는 습성이 있어, 처리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몬스턴데.’

김철민 중위는 원거리형 고블린이 섞여 있으니, 대열을 변경하겠다고 소대원들에게 알렸다.

“원거리형이 있었습니까? 전 전혀 몰랐습니다….”

“민준이가 채찍으로 다 처리했다. 나도 도중에 알았다.”

“와… 정말입니까? 매뉴얼대로라면 일반 고블린부터 처리한 뒤에 대처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내가 아까 살짝 봤는데, 뭔 채찍이 뱀처럼 움직이던데.”

소대원들이 신기하다는 눈으로 김민준을 지켜보길 잠시.

“자! 2차 전투를 대비해 대열을 변경한다! 바로 움직여라!”

“예!”

소대장의 지시로 대열을 변경했다.

“보고 받은 내용에 따르면, 놈들은 던전 안쪽에 바글거린다고 한다. 한 놈도 남김없이 처리할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고블린이 출현하는 던전은 오랜 기간 방치해 두면 위험해진다.

놈들은 일정 주기마다 폭발적으로 개체 수를 늘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불어난 놈들이 던전 밖으로 우르르 몰려나오기라도 하면, 처리하는 게 상당히 까다로워졌다.

“특수 가스는 준비 됐나?”

“예! 준비 완료했습니다!”

“전원! 방독면 장착해!”

“알겠습니다!”

소대원들은 1차 전투를 끝낸 뒤 던전 안쪽으로 이동했지만, 예상했던 위치에서 고블린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김철민 중위는 매뉴얼대로 놈들을 밖으로 끄집어내기 위해, 특수 가스를 준비시켰다.

1차 전투의 고블린은 그냥 무작정 달려드는 놈들이었다면, 이 뒤에 있는 놈들은 지능적으로 소대원들을 끌어들이려 했다.

“굳이 놈들의 홈그라운드로 들어갈 필요가 없지. 특수 가스 투척!”

“특수 가스 투척!”

휘익! 휙!

김철민 중위의 지시에 헌터들 몇 명이 수류탄 형태의 특수 가스를 던졌다.

푸쉬이이이-

안쪽으로 굴러 들어가기 무섭게 누런 연기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헌터 기동 훈련과는 달리, 생명에 위해를 끼칠 수 있는 가스.

“키엑! 케엑!”

“끄르르륵….”

연기가 퍼지자 안쪽에서 기척을 죽이고 있던 고블린들이 목을 부여잡으며 밖으로 나왔다.

어떤 놈들은 몸을 박박 긁고 있고, 어떤 놈들은 피거품까지 물고 있다.

그만큼 특수 가스가 강력하다는 뜻이리라.

“이대로 놈들을 마무리한다! 주 무기는 잠시 집어넣고, 진압봉만을 이용해 타격해라!”

“예!”

헌터들이 군용칼이나 창 같은 무기를 주로 사용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1차 전투부터 특수 가스를 살포했다면 더욱 수월했겠지만, 저 작은 깡통 한 개의 가격은 800만 원.

마력탄 역시, 마력석을 가동해서 만들기 때문에 상당한 비용이 든다.

결국은 돈 문제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고블린 48마리! 원거리형 5마리 전부 처치 확인했습니다!”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봐! 1마리라도 남김없이 싹 처리해야 한다!”

“예!”

소대원들은 2차 전투를 수월하게 마친 뒤, 살아남은 고블린이 없는지 던전 구석까지 탐색했다.

“다들 경계를 늦추기 말고 잠시 대기해라.”

“예!”

김철민 중위는 무전기를 꺼내 상황실에 보고했다.

“중위 김철민입니다! 2소대원이 담당한 던전은 깔끔하게 클리어했습니다! 예! 그럼 바로 철수하겠습니다!”

그는 보고를 마친 뒤, 소대원들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

“다른 소대들이 맡은 던전도 무난하게 클리어해 나가고 있다고 한다. 우리들은 밖으로 철수해서….”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상황실에서 지원 요청이 들어왔다.

“중위 김철민입니다! 예! 3소대 말입니까? 3소대에서… 이레귤러 말입니까? 바로 지원 가겠습니다!”

3소대가 맡은 던전에서 방금 이레귤러 몬스터가 출현했다는 보고였다.

놈의 정체는 오크만 한 덩치를 가진 고블린.

빅고블린으로 불리는 몬스터였다.

“3소대에서 지원 요청이 들어왔다! 전원 마력탄 장전하고 해당 던전으로 들어간다!”

“비, 빅고블린 말입니까?”

“하필이면 빅고블린이… 2년 전에 한 번 등장했던 놈 아닙니까?”

빅고블린이라는 말에 소대원들이 긴장한 듯했다.

말이 고블린이지, 놈은 오크 중에서도 힘 좋고 맷집 좋은 오크와 별 차이가 없었으니까.

2년 전에 놈을 상대했을 때, 1개의 중대가 마력탄을 미친 듯이 퍼붓고 나서야 죽었다고 한다.

“다른 소대들도 마무리하고 지원 가기로 했다! 3소대원들이 이미 중상을 입혀 놨다고 하니까, 우리는 가서 마무리만 하면 된다! 빨리 움직여!”

“예!”

“알겠습니다!”

**

‘이야. 확실히 덩치가 크긴 크네.’

2소대원들이 해당 던전에 도착했을 때는 빅고블린이 쓰러질 듯 말듯 숨을 거칠게 뱉고 있는 중이었다.

김민준은 오크보다 몇 배는 큰 놈을 보며, 흥미롭다는 듯이 눈을 빛냈다.

“2소대입니다! 상황실에서 보고받고 지원 왔습니다!”

현재 3소대원들은 마력탄을 다 소모하고, 놈이 쓰러지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섣불리 다가갔다가는 놈이 휘두른 주먹에 맞을 수도 있다.

잘못 맞는 순간 즉사할 정도의 위력이기에 거리를 잔뜩 벌린 채 주시만 하고 있는 것이다.

“어어! 그래! 마침 잘 왔다! 이대로 마무리하면 된다!”

3소대장은 마력탄을 다 소모해, 여분의 탄창이 없다고 말해 왔다.

“예! 맡겨주십시오! 2소대원 전원 사격 준비!”

“사격 준비!”

김철민 중위의 지시에, 소대원들이 사격 대열을 형성했다.

“마력탄 장전하고 사격 실시해! 마력탄 아끼지 말고! 놈이 쓰러질 때까지 계속 갈겨라!”

“알겠습니다!”

쿠와아앙! 쿠와앙!

던전에서 굉음이 울려 퍼진다.

“크으으으… 인간들이….”

빅고블린은 지친 와중에서도 양팔을 교차하며, 마력탄을 견뎌 냈다.

“저런 질긴 놈을 봤나. 2개 소대가 마력탄을 퍼부었는데….”

김철민 중위는 여전히 쓰러지지 않는 빅고블린을 보며, 인상을 구겼다.

“잠시 후면 다른 소대도 지원 온다고 하니까, 저희들도 거리를 두고….”

“쿠아아아아!”

“뭐, 뭐야!”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빅고블린이 돌발 행동을 했다.

갑자기 몸을 일으켜 던전 입구 쪽으로 돌진해 오기 시작한 것이다.

“저 엿 같은 놈! 지친 척 하고 있었잖아! 다들 나가! 던전 밖으로 나가라!”

“후퇴! 후퇴한다!”

그 행동에 헌터들은 재빨리 던전 밖으로 빠져나갔다.

현재 놈에게 유효한 수단은 마력탄.

탄환을 다 소모했기에, 후퇴하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김민준! 아무리 너라도 그건 안 된다!”

김철민은 오히려 앞으로 걸어가는 김민준을 보며, 빨리 후퇴하라고 소리쳤다.

“이놈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위험합니다! 저한테 맡겨 주십쇼!”

“뭐, 뭐라고? 그건 그냥 죽자고 달려드는 거다! 아무리 너라해도 그건 안 된다고!”

“괜찮습니다! 먼저 후퇴하십쇼!”

너희들은 다 빠져 있어.

이놈은 내가 처리한다.

어우, 저놈 잡으면 실적 점수가 얼마야.

김민준은 환하게 웃으며, 육중한 발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몬스터를 향해 채찍을 휘둘렀다.

‘마기 채찍까지 사용해, 상당히 아플 거다.’

차악!

“크아아아악!”

김민준이 휘두른 채찍질 한 번에, 빅고블린의 살점이 뜯겨져 나갔다.

“손맛 좋고!”

촤악! 차악!

채찍을 휘두를 때마다 빅고블린은 고통에 몸부림쳤다.

“여기서 손목 스냅을 이렇게 넣어 주면!”

“크아악! 크아아아악!”

아주 좋아 죽지.

김민준의 채찍의 숙련도와 좋은 품질의 채찍.

그리고 마기 채찍까지 합쳐져 발생한 시너지는 상당했다.

“이, 인간! 내가 잘못했다! 제발! 제발… 그만!”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고블린 쪽에서 항복 의사를 보내올 정도.

“오? 진짜냐? 흠… 스텟을 올리냐, 실적 점수를 받냐인데….”

김민준은 바닥에 누워 부들부들 떠는 놈을 보며, 방긋 웃어 주었다.

“역시 실적 점수가 먼저지. 야. 허튼짓 하면 알지?”

“아, 알았다! 인간! 말 잘 듣겠다!”

“그 자세 그대로 가만히 있어. 알겠냐?”

김민준은 던전 밖으로 나가, 놈을 생포했다고 보고했다.

“뭐? 생포? 그게 말이 되는….”

자신의 말에 김철민 중위와 3소대장이 조심스럽게 던전으로 들어왔다.

“자, 말해.”

“항, 항복한다! 인간들의 말! 따르겠다!”

“…….”

“허… 이게 뭔….”

소대장들은 완전히 전투 의지를 상실한 빅고블린을 보며, 입을 떡하니 벌렸다.

“이레귤러 중에서도 빅고블린을… 생포했다고?”

“민준아. 너 도대체… 어떻게 한 거냐?”

“이걸로 몇 대 때리니까, 항복하겠다고 말해 왔습니다.”

“…허.”

소대장들은 빅고블린의 살점과 피가 달라붙은 채찍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몬스터를 처리했을 때보다, 생포하는 쪽이 실적 점수가 압도적으로 높다.

더군다나 일반 몬스터도 아니고, 이레귤러 몬스터.

그중에서도 빅고블린이다.

생포가 불가능한 수준의 몬스터라는 말.

‘이거 대박 터졌는데….’

지금까지 빅고블린을 생포한 적은 단 3번밖에 없다.

잘 나타나지도 않는 놈이었고, 특히나 하급 던전에서 출현하곤 했으니까.

“중위 김철민입니다! 이레귤러 몬스터인 빅고블린을 생포했습니다! 몬스터 포획반과, 놈을 이송할 특수 차량 지원 부탁드립니다!”

-뭐, 뭐라고? 생포? 빅고블린을? 확실하나?

“예! 확실합니다!”

놈을 생포했다는 말에, 상황실에서도 당황했는지 확실하냐고 되물을 정도였다.

‘오. 반응 보니까 생각보다 잡기 힘든 놈이었나 본데?’

확실히 그놈 맷집이 좋긴 했지.

봐주지 않고 팼는데, 죽지 않고 항복 선언을 했으니.

‘실적 점수가 얼마나 오르려나.’

김민준은 여전히 던전 한편에 움츠리고 있는 빅고블린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

던전 공략을 마치고, 생활관 안.

“와… 말이 되냐?”

“그러니까. 좀 심하네.”

“아무리 마력탄을 갈겨 놨다고 해도, 민준이 혼자서 그놈을 막았다고?”

분대원들은 특수 차량에 실려 나가는 빅고블린을 보며, 경악했다.

무엇보다 놈을 생포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아니, 우리보고 깔아뭉갤 듯이 달려오더니, 안에서 뭔 일이 있었냐, 도대체?”

“소대장님 말로는 채찍 몇 번 휘두르니까 항복이라고 말했답니다.”

던전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지만, 현재 김민준은 생활관 내에 없다.

그는 소대장실에 불려 간 상태였다.

‘이번엔 뭘 주려나.’

한편.

소대장실 안에는 김민준만 대기하고 있었다.

‘이 정도로 하사가 되려나 모르겠네.’

빅고블린 생포라는 큰 성과를 달성하긴 했지만, 특별 진급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이었으니.

‘뭐라도 주겠지, 뭐.’

그렇게 생각하며, 소대장실에서 차를 홀짝이길 잠시.

띠링.

“뭐야. 이건 또 처음 보는 스킬이네.”

자신의 눈앞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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