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분대장
그곳에는 소대장의 보고를 듣고 달려온 대대장이 서 있었다.
“충성!”
“어, 그래. 김민준 병장. 나랑 얘기 좀 하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소대장.”
“중위 김철민!”
“특수 임무단 헌터들이 따로 남긴 말은 없나?”
“예! 그렇습니다! 김민준 병장과의 간단한 대련을 마친 뒤, 바로 떠났습니다!”
대대장은 고개를 작게 끄덕인 뒤, 김민준에게 따라오라며 손짓했다.
‘뭐지. 내가 좀 과하게 때린 게 문제가 됐나?’
에이, 설마 특수 부대 헌터가 그런 일로 이르기나 했겠어?
애들도 아니고.
김민준은 훈련용 채찍을 원래 자리에 돌려 둔 뒤, 대대장을 따라갔다.
**
2대대 대대장실.
대대장은 부드럽게 웃으며, 음료수와 과자를 직접 내왔다.
“편안하게 있어.”
“감사합니다!”
“그래. 그것보다 네가 특수 임무단 중사를 개 패듯이 팼다고 하던데… 정말 잘했다.”
“감사합니다.”
대대장은 자기 속이 다 시원하다며, 그런 놈들은 좀 당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놈들은 유능한 병사들이 생겼다 하면 빼내 가려고 악을 쓰지. 우리 부대도 최전방에 위치해 있는데 말이야. 그것보다… 특수 임무단에서 하사로 특별 진급을 제안 받았다던데?”
“예, 그렇습니다.”
“그래. 특수 부대 간부를 그렇게 때려눕힐 정도면, 큰물에서 놀 만하지.”
대대장은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민준아.”
“병장 김민준.”
“우리 부대에서도, 당연히 너 같은 병사들을 붙잡아 두고 싶다는 말이지. 무슨 뜻인지 알겠나?”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단장님이 너에게 제안 몇 가지를 하셨다.”
오.
사단장이 나에게 제안이라.
어차피 특수 부대야 갈 생각이 없지만, 일단 들어나 볼까.
“병장에서 하사로의 진급은 상당히 까다롭다. 너도 알지? 병사에서 간부가 되는 거니까. 실적 점수를 엄청나게 채워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의무 복무로 인해 얻는 실적 점수의 영향이 큰 편이라고 말했다.
“병장들이 말년에 하사로 진급을 노리는 것도 대부분 이런 이유 때문이고.”
대대장은 병사에서 간부로의 진급은 신경 써야 할 것이 많다며 말해 왔다.
‘그 정도야, 뭐. 실적으로 다 때려 부수고 하사 달면 되지.’
물론 자신에게 있어, 별문제는 되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이었으니까.
‘그것보다 제안이 뭘까. 그쪽이 더 궁금한데.’
그렇게 궁금해하던 찰나, 괜찮은 이야기가 들어왔다.
“그 의무 복무 점수에 대해서는 사단장님이 어떻게든 힘을 써 주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민준이는 아직 분대장 안 달았지?”
“예, 그렇습니다.”
“그래. 그럼 내일부터 분대장 달아라. 지금 분대장은 이승호 병장인데, 실적 점수 다 채워서 상관없을 거다.”
자신이 하사로 진급을 빨리할 수 있도록, 사단장이 직접 도와준다는 말이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제안은 자신에게 주 무기를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일반 헌터 중에서 주 무기를 지급받은 헌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대대장이 말하는 주 무기란, 개인적으로 소지가 허용되는 수준의 무기였다.
당연히 휴가를 나갈 때도 가지고 나갈 수 있다.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공짜로 무기를 하나 쥐여 주는 셈이었다.
“사단장님께서 너 하나를 위해 그 많은 서류들을 직접 작성하고, 사인까지 하셨다. 주 무기 상시 휴대는 장교들 중에서도, 우수한 장교들만 가능한 거 알지?”
“예! 그렇습니다!”
“그래. 그리고 당연히 사단장님께서 직접 지시한 것이니까, 상당히 좋은 품질의 주 무기가 지급될 거다.”
여기까지 말을 마친 대대장은 지금 이 자리에서 대답해 달라고 말했다.
“물론 특수 부대로 영영 가지 말라는 것이 아니야. 단 1년이다. 그 뒤에는 네가 좋을 대로 해도 상관없다.”
대대장은 1년 동안 무적 헌터 부대에 남아 있다면, 지금까지 말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1년이라.’
계속 있으라는 것도 아니고, 1년이면 할 만한 것 같은데?
사단장이 직접 신경을 써 준다는 것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주 무기를 지급한다는 내용이 매력적이었다.
“여기 남아 있겠습니다.”
“결정이 빠르군. 좋아. 여기에 원하는 주 무기를 적도록. 빠른 시일 내 지급될 거다.”
“예! 알겠습니다!”
김민준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서류작성을 마쳤다.
어차피 특수 부대 대부분이 해외 파병을 주로 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다.
어차피 그쪽으로는 갈 생각이 없었는데, 알아서 이런 제안을 해 올 줄이야.
‘이래서 군생활을 잘해야 한다니까.’
아.
설렌다.
내일 바로 줬으면 좋겠다, 주 무기.
얼마나 좋은 걸로 지급될까.
‘일이 생각보다 잘 풀려서 다행이군.’
한편.
대대장은 계획했던 대로 일이 잘 진행되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년. 다른 놈들은 몰라도, 저놈의 역량이라면 분명히 1년 안에 하사를 달 수 있다.’
그렇게만 되면, 어떻게든 이유를 붙여 김민준을 이곳에서 복무하게 할 수 있을 터.
‘저놈은 혼자서 그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을 다 대처했다. 거기다 특수 부대원까지 압도적으로 상대했고.’
저 정도로 우수한 병사가 부대에 남아 있으면, 자신의 진급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것은 사단장님도 마찬가지.
괜히 김민준에게 주 무기를 지급해 주는 것이 아닐 터.
“그래. 이제 가 봐도 좋다.”
“예! 충성!”
대대장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
다음 날.
소대장이 던전 공략 일정이 잡혔다며, 단독 군장 지시를 내렸다.
그들이 향할 곳은 고블린들이 바글거리는 던전.
생각보다 몬스터들이 빨리 불어나, 공략 일정을 앞당긴 것이다.
“고블린 몇 달 전에 잡았지 않냐? 벌써 그렇게 불어났어?”
“그러게 말입니다. 그놈들 번식력 하나는 미친것 같습니다.”
다들 툴툴대며 전투복으로 환복하길 잠시, 소대장이 생활관 안으로 들어왔다.
“충성!”
“그래. 던전 대비 잘할 수 있도록 하고, 한 가지 전달사항이 있어서 왔다.”
김철민 중위는 녹색 견장을 들고 와, 그대로 김민준의 어깨에 달아 주었다.
“어?”
“저건? 분대장은 이승호 병장님 아닙니까?”
분대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녹색 견장은 분대장이라는 표식이다.
시선을 돌려 보면, 이승호 병장의 전투복에는 녹색 견장이 제거되어 있었다.
“이승호는 분대장 실적 점수 다 채웠다. 본래는 승호 바로 밑에 애들이 분대장 달아야 하는데, 대대장님이 직접 지시하셨다. 너희들도 불만 없지?”
“예.”
“괜찮습니다. 민준이면 다는 게 당연합니다.”
김철민 중위는 견장을 달아 준 뒤, 분대원들을 잘 이끌어 보라며 말했다.
“병장! 김민준! 감사합니다!”
“와… 김민준 병장님. 완전 LTE를 넘어서 5G입니다.”
“위장 던전에서 애들 다 멀쩡하게 빼냈는데. 분대장 정도로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짝짝짝짝!
분대원들은 박수를 치며, 이대로면 하사까지도 무난하게 가겠다고 축하해 주었다.
‘겨우 분대장 정도로 무슨.’
그것보다 무기는 언제 주는 거지?
내가 요청한 무기나 받고 싶은데.
“소대장님. 이전에 제가 요청했던 무기는 언제 지급됩니까?”
“안 그래도 지금 오고 있다. 던전 공략 전에 지급될 테니, 걱정 마라.”
“알겠습니다.”
무기라는 말에 분대원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었다.
“김민준 병장님? 무기 지급이라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무기는 대여가 끝 아닙니까? 지급은 장교는 되어야 가능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나 정도 되면 받을 수 있다. 나중에 구경시켜 준다.”
“…….”
김민준은 그들을 향해 기대하라며 말해 주었다.
시간이 지나, 던전 앞.
“다들 주목!”
“주목!”
“인원 이상 없나?”
“예, 이상 없습니다!”
인원 체크를 끝내고, 헌터들은 장비한 무기들은 다시 한번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민준.”
“병장 김민준!”
“그래. 여기 받아가라. 이런 특이한 무기는 살면서 처음 본다.”
그사이, 소대장이 다가와 자신이 요청했던 무기를 건네주었다.
마력석을 가공해서 만든 채찍이었다.
“워우. 취향 한번 특이하네. 그거 잘 다룰 줄은 아냐?”
“잘 다뤄도 몬스터 잡는 데는 별로인 것 같은데.”
평범한 군용 무기와는 확연하게 차이 나는 퀄리티에, 헌터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참고로 김민준이 받은 무기는 상시 휴대할 수 있는 주 무기다. 너희들도 우수한 성과를 내다보면, 민준이처럼 지금 받을 수 있으니 열심히 해라.”
“아무리 그래도 그건 힘들지 않습니까….”
“소대장님도 주 무기를 지급 받지 못하셨지 않습니까.”
“말이 그렇다는 거야, 말이! 장비나 제대로 점검해!”
잠시 후.
던전 입장 준비를 마친 소대원들이 던전에 입장했다.
2소대원들이 맡은 던전은 4개의 입구 중, 가장 많은 고블린이 서식하고 있는 장소였다.
“최근 들어 이레귤러 몬스터의 출현 빈도가 잦다. 고블린이라고 해서 긴장감을 늦추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소대원들은 소대장의 지시에 맞춰, 대열을 유지하며 천천히 던전 안쪽으로 이동했다.
“키에엑!”
“전방 120m 부근, 고블린 무리 출현!”
“다들 대열 유지하고 전투 시작해! 원거리 공격을 하는 고블린을 발견하면 즉시 대처하도록!”
“알겠습니다!”
소대장의 지시에 헌터들은 각자 자리를 잡고, 전투를 시작했다.
“키에에엑! 인간들! 우리 영역에 침범했다!”
“전부 죽인다!”
“이놈들 약한 개체들이다! 다들 밀어붙여!”
“으아아아!”
전방을 담당하고 있는 헌터들은 대부분 상병과 병장들이었기에, 그리 힘들이지 않고 고블린들을 처리해 나갔다.
‘구석에 한 놈 발견!’
그사이, 김민준은 멀리 떨어져 기척을 죽이고 있는 고블린을 발견했다.
“소대장님! 11시 방향에 원거리형 고블린입니다! 제가 맡겠습니다!”
김민준은 보고를 마친 뒤, 화살을 장전하고 있는 놈을 향해 채찍을 휘둘렀다.
‘오. 확실히 훈련용 무기보다 좋은데? 리치도 훨씬 길고.’
채찍 길이가 길수록 다루기 어렵지만, 그거야 자신에게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그렇다면 무기 자체의 위력은 어떨까.’
마력석을 가공해서 만들었으니, 상당히 비싸다고는 들었는데.
일단 저놈한테 한 방 갈겨 봐야겠네.
휘익!
그렇게 생각하며 놈의 등짝을 향해, 채찍을 휘둘렀다.
푸화학!
“키에에에엑!”
“어?”
뭔가 이상한 소리가 났는데.
분명히 찰싹 소리가 나야 하는데, 뭔가 깨지는 소리가 나잖아?
푸화학!
다른 한 놈에게 휘둘렀는데도 마찬가지.
힘 조절을 했는데도 고블린들은 일격에 몸이 터져나갔다.
마치 부드러운 두부를 때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들 대열을 유지한 채로, 한 번 정비한다! 경계는 늦추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김민준이 원거리형 고블린을 처리해 준 덕에, 1차 전투를 수월하게 마쳤다.
“후우, 정신없다.”
“어우, 이놈들 피 튀긴 거 봐.”
소대원들은 김민준이 원거리형 몬스터를 처리한 줄도 모르는 눈치였다.
“…민준아.”
한편.
김민준이 채찍 휘두르는 것을 확인한 김철민 중위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병장 김민준.”
“어떻게 휘둘렀길래, 채찍질 한 번에 몬스터가 풍선처럼 터져 나가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