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50화 (50/212)

50. 대련

“던파를 못 하지 않습니까. 전 던파 없이는 못 삽니다.”

김민준의 되도 않는 이유 때문이었다.

많고 많은 이유 중에서, 고작 게임을 못 한다는 이유로 거절한다니.

특수 임무단 상사는 특수 부대가 무시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고작 게임을 가지고 이런 기회를 차 버린다는 건가?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이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장성급들 장교들이 밤새도록 회의를 거쳤다.”

상사는 그들이 애를 써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을 이렇게 걷어차는 것은 실례라며 대답했다.

‘참나. 언제는 내 의사가 우선이라고 안 했나?’

안 가겠다는데 저러네.

김민준은 굳은 표정의 상사에게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최대한 제 의사를 존중해 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전 장난으로 대답한 것이 아닙니다. 저에게 있어, 게임은 중요한 활력소입니다. 대체제는 없습니다.”

“…그래. 순간 흥분해서 실례를 저질렀다. 미안하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상사는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특수 임무단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것 아닌가?”

그렇게 나가려나 싶었지만, 뒤에서 담담히 지켜보던 중사가 입을 열었다.

“본래 특수 헌터 임무단은 철저한 선별 과정을 거쳐 선발된다. 넌 특례 중의 특례로 그 과정들을 모두 생략하고 넘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중사는 본래대로라면, 아무리 잘해 봤자 쉬운 1차 대련 과정에서 칼같이 탈락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네가 일반 부대에서는 날고 뛴다 해도, 우리들이 보기에는 우스울 뿐이라고. 어쨌든 기회는 네가 찼으니,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중사는 그렇게 말을 마치고, 등을 돌려 나가려 했다.

‘안 한다니까 별 이유를 붙여서 날 잡아가려 하는구만.’

딱 보면 각 나오지.

내가 모를 줄 아냐?

‘이대로 보내 줄 내가 아니지. 특수 부대 나왔다고 자부심에 가득 차 있는 것 같은데, 한번 실력 차이가 뭔지 느끼게 해 줘야지.’

김민준은 소대장실을 나가려는 그들을 멈춰 세웠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건 너무 실례 아닙니까?”

“…뭐라고?”

“대련 과정에서 저보고 탈락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걸 어떻게 장담합니까?”

부대가 다르다 하더라도, 그들은 엄연한 간부들이다.

아무리 김민준이 병장이라 하더라도 과격한 행동이라는 말.

‘민준아! 야, 이 자식아! 지금 뭐 하는 거냐! 당장 사과드려! 빨리!’

그 상황을 지켜보던 김철민 중위는 재빨리 김민준의 옆구리를 찌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장담 못 하면 뭐. 나랑 대련이라도 할 건가?”

김민준의 말에 중사는 가소롭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하겠습니다. 그냥 대련만 하면 재미없지 않습니까?”

김민준은 특수 임무단 간부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의 말을 듣자 상사가 김철민 중위에게 입을 열었다.

“대련장 좀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

“이런 미친놈들이 다 있나!”

한편.

4대대 대대장은 소대장의 보고를 받고, 황급히 부대로 복귀하고 있었다.

“잠시 자리를 비운 그사이에 찾아와? 나한테 보고도 없이?”

대대장은 험한 말을 뱉으며, 액셀을 미친 듯이 밟았다.

아주 그냥 작정을 했다.

안 그래도 얼마 전, 사단장님께서 김민준을 주시하라고 했는데….

하필이면 정신 없을 때를 노려서 올 줄이야.

“그 망할 놈의 특수 헌터 임무단 놈들! 그놈들이면 파격적인 조건을 제안할 텐데.”

자신이 볼 때, 김민준은 진급욕이 있는 병사다.

일단 하사는 기본적으로 달아 주고, 원한다면 중사까지 달아 줄지도 모른다.

그만큼 김민준은 단기간에 엄청난 성과를 세운 헌터였으니까.

“보고. 사단장님에게 보고 먼저 해야한다.”

대대장은 김민준이 그 자리에서 결정만 하지 않기를 빌며, 사단장에게 연락했다.

**

대련장 안.

특수 헌터 임무단 소속 중사는 훈련용 칼을 든 채 대련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의 진지한 표정을 보면, 아무리 일반 병사라도 봐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딱 좋네. 이걸로 해야지.’

김민준은 정렬되어 있는 훈련 무기를 슥 훑으며, 구석진 곳에 있는 채찍을 잡았다.

“소대장님? 이거 사용해도 되는 겁니까?”

“어? 그걸 사용한다고? 너 채찍 다룰 줄은 아냐?”

김철민 중위는 의외의 무기를 고르자, 의아한 눈빛을 보내왔다.

채찍 말고도 특수한 무기들은 많다.

헌터들에게 맞는 무기를 찾아, 숙련도를 올리라는 취지에서 다양한 훈련용 무기들이 구비되어 있다.

‘그중에서 채찍을 고르는 놈은 또 처음이네.’

철사를 감은 둔기 같은 경우야 병장들이 몇 번 휘두르곤 했었지만, 채찍은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만큼 다루기도 힘들고, 몬스터에게 위력을 발휘하기 어려웠으니까.

“예. 채찍은 예전에 몇 번 다룬 적 있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채찍을? 사자라도 조련했냐?”

오, 김철민 중위님.

눈썰미가 좋으신데.

이세계에서 몬스터들 많이 조련했지.

조련당하기도 전에 다들 죽어 나간 게 문제였지만.

“준비 끝났으면 대련 준비하지.”

상사의 말에 김민준과 특수 헌터임무단 중사가 서로 마주보고 섰다.

“끝까지 나랑 장난하겠다, 이거냐? 미리 말해 두겠지만, 일반 헌터라고 해서 봐줄 생각은 없다.”

그 많은 훈련용 무기 중에서, 하필이면 골라도 채찍이라니.

중사는 그가 쥔 채찍을 보고, 화가 났는지 살벌한 표정을 지었다.

“전 진심입니다. 그것보다 제가 이기시면, 정중하게 사과하셔야 합니다.”

“네가 질 때를 더 걱정해야 할 거다.”

김민준이 한 제안은 이러했다.

자신이 중사에게 대련을 진다면, 어떠한 불이익이라도 받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긴다면, 정중하게 사과하라는 요청을 했다.

‘질 리는 없지. 그것보다 저놈 실력이나 한번 봐 볼까.’

“시작!”

상사의 신호가 내려지자마자, 중사는 훈련용 검으로 김민준의 급소 부위를 노려 왔다.

휙! 휘익!

무서우리만큼 빠르고 정확한 공격.

일반 헌터군과는 비교할 수 없는 몸놀림이었다.

‘오. 특수 부대는 특수 부대라 이거냐?’

김민준은 고개를 이리저리 젖히며, 채찍을 사용해 훈련용 검을 휘감으려 했다.

그럴 때마다 중사는 칼을 뒤로 뺴며, 발이나 주먹을 이용해 빈틈을 주지 않으려 했다.

“의외군. 채찍을 사용하는 것이 상당히 능숙한데.”

대련을 지켜보던 특수 임무단 상사가 눈을 빛냈다.

대련이 30초도 지나지 않아 끝날 것이라 생각했는데, 김민준은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중사의 공격을 대처하고 있었다.

‘역시, 저놈은 물건이다. 놓치면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지켜보던 도중, 이변이 발생했다.

찰싹!

“끄아아아아!”

훈련용 채찍에 공격을 허용한 중사가, 무릎을 꿇으며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른 것이다.

“뭐, 뭔….”

특수 임무단 상사는 순간 당황했다.

고작해 봐야 훈련용 채찍일 뿐이다.

그보다 더한 고통에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간부가, 저렇게 아파한다고?

‘어떠냐, 내 채찍의 맛이. 좋아 죽겠지?’

한편.

김민준은 고통에 눈물까지 머금은 중사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오랜만에 마기 채찍 사용하니까 좋네. 손에 착착 감기는게.’

김민준은 대련 시작 전부터 마기 채찍을 사용한 상태였다.

겉보기에는 훈련용 채찍이지만, 알맹이는 오크조차 비명을 지를 만한 고통을 선사해 주는 스킬이다.

거기에 마기의 특이점으로 인해, 완벽한 무색무취의 마기.

당연히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할 터.

찰싹! 찰싹!

“끄아아아아! 아아아악!”

‘이 맛이지! 바로 이 맛이라고!’

김민준은 상대가 기절하지 않는 선에서 힘 조절을 해 가며, 다양한 부위를 타격했다.

‘이야. 역시 특수 부대다 이건가.’

많이 아플 텐데, 손에서 칼은 안 놓네?

김민준은 속으로 중사의 인내심에 감탄하며, 다시 채찍을 들어 올렸다.

이미 승부는 난 상황이나 다름없었지만, 중사는 자존심 때문인지 이를 악물며 버티는 중이었다.

“그만! 그만해! 이제 그만 됐다!”

김민준이 채찍을 들어 올리자, 헌터 임무단 상사가 대련은 끝났다고 말하며 끼어들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사과를 하시면 되는데… 정신 차릴 때까지 기다려 드리겠습니다.”

상사는 중사의 몸 상태를 살피고 경악했다.

‘이건… 경상에서 중상 사이다. 돌아가면 포션을 사용해야 할 정도다.’

고작 훈련용 채찍으로 맞았을 뿐인데, 시퍼런 피멍이 귀여울 수준으로 심한 상처가 나 있었다.

얼마나 끔찍한 고통이었으면, 눈물까지 흘리고 있을까.

‘몬스터한테 두들겨 맞아도 눈 하나 깜빡 안 하던 놈이었는데….’

몸 상태가 도저히 정상이 아니다.

상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김민준을 향해 정중히 사과했다.

“부하의 잘못은 곧 상관의 잘못이다. 내가 대신 사과해도 되겠나?”

“예. 괜찮습니다. 저도 병장인데 계급에 맞지 않게 행동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너무 신나서 살짝 과하게 때린 것도 있으니, 그냥 넘어가 주기로 했다.

“…알겠다. 김철민 중위님. 저흰 이만 가 보겠습니다. 오늘은 실례 많았습니다.”

“아, 예! 예! 그러시죠! 급하시면 의무대에 들렀다가 가셔도 됩니다.”

그동안 멍하게 그들을 지켜보던 김철민은 화들짝 놀라며, 중사를 부축하려 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특수 임무단 상사는 흐느적거리는 중사를 홀로 부축해 가며, 대련장을 벗어났다.

“…….”

텅 빈 대련장 안.

잠시 정적이 흐르고, 김철민 중위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김민준을 바라보았다.

“민준아.”

“병장 김민준.”

“후우… 채찍을 그렇게 잘 다룰 줄 알았으면 말하지 그랬냐! 이 자식아!”

김철민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잘했다고 칭찬해 왔다.

“크으! 내 속이 다 시원하다! 저놈들 저러는 게 한두 번이 아니거든.”

“그렇습니까?”

“그래. 네가 자대에 배치받기 전에도 한 번 왔다 갔었다. 그때도 유능한 병장 1명을 빼 갔었지. 아주 그냥 저놈들이 갑이지, 갑.”

김철민은 앞으로도 이런 식의 제의가 온다면, 웬만하면 거절하라고 말했다.

“그런 부대는 대부분 해외 파병만 다닐 거다. 괜히 진급 빨리 시켜 주는 게 아니지. 배 타는 곳도 많고. 당연히 인터넷은 전혀 안 된다.”

특수 임무단 헌터를 저렇게 압도적으로 상대할 정도다.

소대장의 입장에서나, 부대 입장에서나 절대로 놓치면 안 되는 병사라는 말!

“해외 파병이라… 나도 한 번 간 적 있었지. 그때 돌스스톤 확장팩 나왔었는데, 거짓말 안 하고 6개월 동안 인터넷 구경도 못 했다.”

김철민은 게임과 인터넷을 강조하며, 특수 부대는 환경이 열악하다고 설명했다.

그가 부대에서 차출되는 순간, 대대장을 비롯해 중대장과 자신까지 먼지 나듯 털리기 때문이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김민준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굳이 특수 부대에 들어갈 필요가 없으니.

‘그건 그렇고. 오랜만에 마기 채찍을 써서 그런가, 아직 뭔가 어색하네.’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세밀한 힘 조절이 되질 않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연습하기로 하고 대련장을 나가려는 순간, 입구 쪽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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