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제안
“열혈 신도라….”
신도들 중에서도 소수에게만 적용되는 스킬, 열혈 신도.
자신이 신도에게 마기를 건네주면, 그 마기의 효율성이 올라가는 스킬이다.
그 효과는 5배 이상.
이세계에 있을 땐 뭣 같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반가운 스킬이었다.
“좋아. 넌 이대로 해외로 나가서 정보들을 수집해. 위험한 짓은 하지말고.”
“예! 맡겨 주십시오, 김민준님!”
“자. 이거 알아서 환전해서 써라. 자본금이다.”
김민준은 이봉구에게 현금 100만 원을 건네주었다.
“허, 허억!”
돈다발을 본 이봉구의 눈이 커졌다.
전에 받은 10만 원으로, 국밥이라는 음식을 10번 이상 사 먹고도 돈이 남았는데, 그 10배에 달하는 돈이라니!
“마기란 마기는 모조리 찾아내겠습니다!”
이봉구는 말은 마친 뒤, 독수리로 변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좋아. 할 일도 끝냈겠다, 오랜만에 PC방가서 던파 버닝 이벤트나 달려 볼까.”
**
시간이 흐르고, 휴가 복귀 날.
‘응? 뭐야. 쟤도 휴가 나갔다 왔나 본데?’
김민준은 부대로 복귀하던 중, 손은서를 발견했다.
순간 장난기가 발동해,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기척을 죽이고 접근했다.
“와아악!”
“꺄아아악! 뭐야!”
손은서는 갑작스러운 비명에 화들짝 놀라다가, 김민준의 얼굴을 보고 인상을 구겼다.
“미, 미쳤어? 갑자기 이게 뭔 짓이야!”
“친구끼리 장난도 못 치냐. 너도 휴가 복귀냐?”
“하아… 미친 자식.”
그녀는 재밌다는 듯이 웃는 김민준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넌 왜 이렇게 휴가를 자주 나가냐? 설마….”
“뭐래.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거든? 지금까지 휴가 하나도 안 쓰고 모아 둔 거야.”
“그러냐? 그럼 수고해라. 나 먼저 간다.”
“야, 잠깐만.”
손은서는 김민준을 멈춰 세운 뒤, 밖에서 무슨 사고를 치고 왔냐며 물었다.
“아버지가 집에서 통화 엄청 오래 하셨는데, 네 이름이 몇 번씩 나오던데. 내가 볼 때는 헌터 본부 쪽에서 연락 온 것 같더라?”
아.
그 이야기인가.
사고를 치긴 쳤지.
물론 좋은 쪽으로.
“시간 지나면 알아서 알게 될 거다.”
김민준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은 뒤, 부대 안으로 들어갔다.
**
같은 시각, 헌터 본부.
장성급 장군들이 모여,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위장 던전에서 발생했던 일 때문에, 그들을 긴급 소집한 것이다.
“PPT 띄울 준비해.”
“예! 알겠습니다!”
중장 한 명이 입을 열자, 소령이 빠르게 움직이며 자료들을 준비했다.
그의 얼굴을 보면 상당히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준장과 소장들은 그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커피만 홀짝였다.
“손태호. 대대장 관리 똑바로 안 하나? 누구 마음대로 던전 조사 일수를 줄이라고 했나!”
한참 동안 자료를 들여다보던 중장이 입을 열었다.
그의 호통에 손태호는 재빨리 죄송하다며 대답했다.
“107사단은 헌터 본부에서 감사 한 번 들어갈 거다. 그리고 당장! 던전에 대한 결재는 대대장이 아닌, 사단장을 통해서 최후 결재를 맡는 방식으로 변경해!”
“예!”
“알겠습니다!”
결과적으로 인명 피해가 없었지만, 10명이 넘는 헌터들이 던전 안에 고립된 것은 사실이다.
거기다 다른 것도 아니고, 대대장이 매뉴얼을 무시하고 진행한 것이 원인이 되어 큰 사고로 번졌다.
만약 그 던전에서 한 명이라도 죽었다면, 헌터군에 대한 신뢰도는 수직 하강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상진 대령. 그 자식은 나중에 따로 징계 회의를 열도록 한다. 중령으로 강등 당할 각오하고 있으라고 전해.”
“예! 알겠습니다!”
무거운 분위기에서 회의가 진행되던 중.
김민준 병장에 대한 자료가 나오자, 중장의 화가 살짝 누그러들었다.
“후우. 그래. 김민준 병장. 이 병사가 고립된 헌터들을 구출하기 위해, 직접 던전 안으로 뛰어들었다고 했나?”
“예! 그렇습니다!”
손태호는 김민준에게 들었던 내용을 간결하게 정리해 보고했다.
“허, 군용칼 하나 없이 위장 던전에서 24시간 동안 몬스터를 상대했다라… 믿기지가 않는구만. 거기다 일반 몬스터도 아니고, 특수 몬스터들이 그렇게 출현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당시 고립되었던 병사들의 진술을 확보했습니다! 전원의 진술이 일치했습니다!”
“그래. 애초에 던전에 고립된 건 이병이랑 일병들이 대부분이다.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가지.”
중장은 자료를 몇 번 들여다본 뒤, 104사단 사단장에게 말했다.
“자네는 김민준 병장이 일반 부대에 있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 그렇습니다!”
사실은 아깝다.
다른 특수 부대에서의 접촉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무리하면서까지 병장으로 진급시켰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별 두 개와 세 개의 격차는 엄청나게 크다.
중장이 저 말을 꺼냈다는 건, 이미 김민준 병장의 차출은 절반 이상 확정이 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요 근래 철원에서 이레귤러 몬스터도 자주 출현하고 있고… 비상 상황이 터지는 횟수도 늘었습니다.”
“음… 그래? 타 부대에서 병장 애들 몇 명 추려서 보내는 걸로 하지.”
104사단 사단장이 소극적인 저항을 해 보았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강제적으로 차출시키지는 않을 테니, 너무 걱정은 말게. 무엇보다 본인의 의사가 우선 아닌가. 요즘 군대가 옛날 군대랑 같나.”
“…알겠습니다.”
그날.
사단장은 마음속으로 중장을 10번 이상 죽였다.
다음 날.
-2중대 2소대 김민준 병장. 김민준 병장은 지금 즉시 소대장실로 오도록 한다.
오전 일과가 시작되기 무섭게, 김철민 중위가 다급한 목소리로 김민준을 호출했다.
“뭐냐. 민준이 휴가 나가서 사고 쳤냐?”
“소대장님 목소리가 별로 안 좋은데?”
분대원들이 무슨 일이냐며 질문해 오기 무섭게, 김광식 상병이 생활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이런 미친! 속보입니다! 속보!”
“뭔 속보?”
“그, 있잖습니까! 얼마 전에 위장 던전 발생했다는 소문!”
“어, 그래. 근데 그거 구라라며?”
“구라가 아닙니다! 진짜였습니다!”
김광식은 빠르게 말을 뱉으며, 김민준을 가리켰다.
“107사단 소속 헌터들이 10명 가까이 고립되었는데, 김민준 병장님이 걔네들 살리겠다고 위장 던전 안으로 뛰어들었답니다!”
“…….”
“…뭐?”
그 말에 분대원들의 시선이 김민준에게 몰렸다.
김민준은 태연한 표정으로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그게 진짜냐, 민준아?”
“그렇습니다.”
“이런 미친! 위장 던전 안으로? 너 목숨이 안 아깝냐?”
“휴가를 나와서 던전에 갔다고? 도대체 왜 갔냐?”
뭐긴.
폭풍 같은 진급을 위해서지.
겸사겸사 스텟도 올릴 겸.
김민준은 호들갑 떠는 분대원들에게 잘 해결했다고 말한 뒤, 소대장실로 향했다.
“충성!”
“어, 민준이냐?”
소대장실 안에는, 김철민을 비롯해 2명의 간부들이 더 있었다.
‘저 마크. 특수 부대 마크네.’
저 붉은색 계급장.
헌터 특수 임무단이었나?
“충성! 병장 김민준입니다!”
“그래. 네가 김민준 병장이지? 헌터 본부에서 말 듣고 찾아왔다.”
김민준이 다른 간부들에게도 경례를 하자, 30대로 보이는 상사가 포근하게 웃으며 악수를 건넸다.
“위장 던전에서 그 많은 헌터들을 구출했다고 들었다. 일반 병사로 두기 아까울 정도야.”
“감사합니다!”
“우리는 헌터 특수 임무단 소속이고, 특수 부대원들이다.”
상사는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대화를 나눠 보자고 말하며, 자리에 앉았다.
김철민 중위는 안절부절못하며 음료수를 내왔다.
‘오. 이게 그건가?’
스카우트 제의… 라기보다는 차출?
폭풍 같은 진급을 약속해 준다면야, 못 갈 것도 없지.
그렇게 생각하던 중, 상사가 헌터 특수 임무단에 대한 소개를 시작했다.
“우리 헌터 특수 임무단은 일반 헌터들과는 달리, 특수 임무를 주로 수행한다.”
일반 헌터들은 던전 클리어를 중점으로 두고 있다면, 특수 임무단은 침투, 납치, 주요 인질 구출 등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너도 알다시피, 일반인 중에서도 헌터의 소질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물론 대부분은 입대를 택하지만, 해외 같은 경우는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야 신체 건강한 남자라면 무조건 군대를 가야 한다.
그렇기에 헌터의 소질이 있는 남자들은 대부분 헌터군으로의 입대를 택한다.
혜택도 혜택이거니와, 헌터군으로 전역하면 그 경력을 살려 민간 헌터의 길을 택할 수 있었으니까.
헌터군 출신의 민간 헌터는 상당히 귀한 대접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대략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네.’
반면 미국이나 일본 같은 해외는 여전히 모병제.
압도적으로 민간 헌터가 많다.
결국, 특수 헌터 임무단은 범죄 같은 문제를 일으키는 헌터들을 제압하는 임무를 주로 한다는 셈이다.
‘나쁘지 않은데? 뭔가 색다를 거 같기도 하고.’
김민준이 흥미가 있다는 표정을 짓자, 상사는 이때다 싶어 생각해 둔 말을 꺼냈다.
“자네의 우수한 활약에 헌터 본부에서 조건부로 특별 진급 할 수 있는 제안을 해 왔다.”
“특별 진급 말입니까?”
오.
아직 하사는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진급이라니.
그 조건이 뭔지는 들어 봐야 알겠지만, 웬만하면 오케이 해야겠는데?
“김민준 병장. 자네가 우리 특수 헌터 임무단으로 소속이 바뀌는 대신, 하사로 특별 진급시켜 주겠다. 그뿐만 아니라, 특수 헌터 임무단은 일반 헌터군에 비해 진급이 빠르다.”
“얼마나 빠릅니까?”
“실적제기 때문에 네가 하기 나름이겠지만, 2배 이상 빠르다고 생각하면 된다.”
거기다 전역 후 받는 연금의 금액도 훨씬 높으며, 월급은 일반 헌터군도 비교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진급 속도가 빠르다.
‘이건 안 갈 이유가 없지.’
그렇게 생각해 대답하려는 순간, 잠시 멈칫했다.
중요한 문제를 확인하지 않았다.
“인터넷은 마음껏 할 수 있습니까?”
그들이 주로 활동하는 무대는 해외라고 들었다.
인터넷이 느려 터져서는 자신의 속도 답답해 터질 것이다.
‘뚝뚝 끊기는 인터넷으로 던파를 할 순 없지.’
의외의 질문에 헛기침을 하던 상사는, 신분 노출은 금지기에 인터넷을 비롯한 각종 전자 기기는 엄금이라고 대답했다.
“휴가는 얼마나 자주 나갈 수 있습니까.”
“휴가야 일반 헌터군도 같다. 다만, 휴가 중에도 전자 기기 사용은 금지다.”
상사의 대답에, 김민준의 타오르던 의욕은 사그라들었다.
‘이런 망할. 좋다가 말았잖아.’
생각 없이 넙죽 물었으면 뭣 될 뻔했네.
스마트폰도 안 되고, 컴퓨터도 안 되고, TV도 안 된다고?
그럴 바엔 차라리 이세계 가서 떵떵거리고 살지.
“그런 작은 불편함은 감수해야 하지 않겠나. 특수 헌터 임무단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부대가 아니다.”
뭐?
작은 불편함이라고?
나에게는 크다.
그것도 엄청나게.
“헌터 본부의 장성급들이 긴 회의를 거쳐 너에게 혜택을 준 것이다. 그러니 잘 생각해 보고….”
김민준은 상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칼같이 대답했다.
“전 그냥 여기 있겠습니다.”
“…뭐라고?”
의외의 대답에 상사가 그 이유가 뭔지 대답을 요구했다.
“너!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냐?”
김민준의 대답을 들은 상사는, 인상을 험악하게 구기며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