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꿀꺽
“그래. 위장 던전에서 나오자마자 불러내서 미안하다. 상태가 멀쩡한 놈이 너밖에 없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후우. 그래. 혹시라도 중간에 몸에 이상이 생기면 언제든지 말하도록. 근처에 의무 장교가 대기 중이다.”
“예! 알겠습니다!”
본래 병사의 보고를 듣는 일은 사단장이 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손태호는 김민준에게서 직접 듣고 싶었다.
던전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위기가 있었는지.
“그 전에, 자네는 우리 부대가 담당하는 던전의 위치는 어떻게 알았나? 타 부대는 알기 어려울 텐데.”
손태호는 편하게 답하라고 말한 뒤, 김민준에게 커피를 한 잔 더 내주었다.
‘던전 위치야, 내 소환수랑 이봉구가 있으면 금방 찾지.’
물론 사실대로 대답할 이유는 없다.
김민준은 근처를 지나가는 도중 굉음이 들려, 우연히 던전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머리로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저절로 움직였습니다!”
“허, 참. 그거 참 별난 놈이네.”
모범적인 그의 대답에 손태호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어찌 되었든, 결과적으로 다친 사람이 하나도 없지 않는가.
“던전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보고해 보도록.”
“예! 알겠습니다!”
김민준은 위장 던전에서 맞이한 상황과, 출현한 몬스터들을 어떤 식으로 대처했는지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안에 있던 헌터들이랑 말도 잘 맞춰 놨으니, 문제없겠지.’
당연히 카드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애초에 공식적으로 밝혀진 아이템도 아니었고, 자신조차 카드의 발동 조건이 뭔지 몰랐으니까.
‘그 검은 카드가 개 쩌는 변신 카드인 걸 알면 구하기 힘들겠지.’
이런 정보는 당연히 자신이 독점해야 하지 않겠는가.
“허, 참. 맨몸으로 수많은 몬스터들을 처리한 것도 놀라운데, 그 많은 헌터들을 홀로 보호했다는 것이 더욱 놀랍구만.”
김민준의 보고가 끝나자, 손태호는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볼펜을 딸깍거렸다.
그가 우수한 헌터인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이병에서 일병으로 특별 진급.
일병에서 만점으로 승급 시험을 통과.
‘여기까지만 해도 놀라운데, 상병에서도 특별 진급이라.’
물론 그가 처리한 이레귤러 몬스터나, 단신으로 막은 비상 상황만 해도 특별 진급 사유는 충분하다.
하지만 보통은 대대장 선에서 암묵적으로 자른다.
너무 눈에 띄는 헌터가 등장해도, 부대 내에서 곤란하다는 뜻이다.
‘헌터 본부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분명히 특수 부대 쪽으로 압박을 넣을 거란 말이야. 그런데 104사단 쪽에서는 오히려 병장으로 진급시켰다 이 말이지.’
저쪽 사단장의 의도가 뭔지, 정확히 모르겠다.
‘설마, 일부러 병장으로 진급시키고 헌터 본부한테 반항하려고 하는 건가?’
아무리 사단장이라고 해도 리스크가 적지는 않을 텐데.
‘음. 이건 너무 앞서 갔다.’
손태호는 복잡한 고민은 잠시 넣어 두기로 하고, 김민준을 향해 말했다.
“자네가 돌발 행동으로 던전 안에 들어간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야. 만약 묻는다 하더라도, 나와 104사단 사단장이 책임지고 나설 것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예! 감사합니다!”
“거기다 그만한 큰일을 했으니, 당연히 보상을 받아야겠지. 그 이전에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보니,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그거야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
여기서 특별 진급을 한 번 더 시켜 줬으면 좋겠지만, 이번 한 번으로는 어렵겠지.
병장에서 하사인 간부로의 진급은 상당히 까다롭다고 들었으니까.
“여기까지는 부대 내의 이야기고. 이번 일은 자네한테 큰 신세를 졌으니, 개인적으로 보상을 주고 싶다. 원하는 건 없나?”
손태호는 자신의 힘이 닿는 한, 들어줄 수 있는 건 최대한 들어주겠다고 말해 왔다.
“하사로 특별 진급은 무리입니까?”
“그건 본부에서 논의해야 할 문제다.”
손태호의 단호한 대답.
‘역시 안 되는 건가. 그럼 딱히 부탁할 게 없는….’
아니네, 몇 가지 있네.
그때 손은서의 집에서 꿀꺽한 마기를 품은 보석.
그것들을 몇 개만 더 구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몬스터의 몸에서 드물게 나오는 검은 보석을 가지고 싶습니다.”
“보석?”
자신의 요구에 손태호는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에 대한 정보는 아직 공개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있나?”
“손은서 상병에게 들었습니다.”
“은서한테? 음… 그거야 어려운 문제는 아닌데… 왜 하필 그걸 요구하는 건가?”
몬스터의 사체에서 드물게 획득할 수 있는 검은빛을 띠는 보석.
금전적인 가치야 상당하지만, 애초에 거래가 금지된 물건이다.
사단장인 자신 정도는 되어야, 적당히 말을 돌려 가며 한두 개씩 빼내 올 수 있을 정도.
“단순한 수집욕입니다. 금전 거래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손은서 상병을 통해 전달받은 검은 카드. 그것도 물량이 있으면 추가로 가지고 싶습니다.”
“그래. 애초에 위험한 것도 아니니, 그 정도야 들어줄 수 있지. 그 아이템은 내가 전해 준 게 끝이다.”
“…알겠습니다.”
“아쉬워하는 걸 보니, 그냥 희귀한 물건에 대한 욕심이 있나 보구만.”
손태호는 시원스럽게 웃었다.
다른 병사들 같았으면 당연히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민준에게 있는 빚은 하나가 아니다.
자신의 딸인 은서가 헌터 기동 훈련부터 시작해, 대민 지원의 비상 상황까지 그의 도움을 받았으니까.
“마침 내가 하나 가지고 있다. 바로 가져가도록.”
그는 몸을 일으켜 미니 냉장고를 연상케 하는 금고를 열었다.
“그런데, 우리 딸이랑은 무슨 사이인가?”
“친구 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친구비 받고요.
“흠… 그래? 걔가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데. 일단 알겠다. 피곤할 텐데, 너무 오래 붙잡아 둔 것 같아 미안하다. 이제 돌아가도 좋다.”
“예! 그럼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충성!”
김민준은 마기가 든 보석을 건네받은 뒤, 부대 밖으로 나갔다.
손태호는 창문을 통해, 그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았다.
**
김민준은 부대 밖으로 나오자마자, 인적이 드문 산속을 찾았다.
그러자 이봉구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옆으로 날아왔다.
-김민준 님! 계획대로 잘 진행되신 것 같아서 다행이군요. 다음에도 시키실 일은 없습니까! 김민준 님의 오른팔인 저 이봉구! 한시라도 빨리 힘을 되찾으셨으면….
“정신 사납다, 조용해 봐. 마기 흡수할 거니까. 그리고 잘해 줬다. 이거 먹어라.”
김민준은 오다가 사 왔다며, 이봉구에게 붕어빵이 담긴 봉투를 내밀었다.
“붕어빠앙? 오, 이것 참… 신기한 음식이군요.”
먹을 것을 보자, 이봉구는 독수리 형태에서 본래 몸으로 돌아왔다.
바삭!
“으, 으음? 이, 이 맛은!”
적당히 달콤하면서도, 부드럽게 씹히는 이 식감!
붕어빵을 한 입 맛본 이봉구는, 몸을 부르르 떨며 전율했다.
“김민준 님! 지구란 곳은 정말 대단한 곳입니다! 국밥이라는 것에 이어, 붕어빵이라는 음식조차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다니!”
“마기 흡수하는 데 방해된다. 조용히 먹어라.”
“예!”
이봉구는 김민준이 마기를 흡수하는 사이, 입이 미어터지도록 붕어빵을 욱여넣었다.
스스스스-
[일정 수준의 마기를 흡수하였습니다.]
[마기 스텟이 1 상승합니다.]
[마기 스텟이 1 상승합니다.]
[마기 스텟이 1 상승합니다.]
[마기 스텟이 1 상승합니다.]
‘좋아. 이 안에도 마기가 진하게 들어있다.’
마기 흡수를 끝낸 김민준은 차오르는 마기의 충만감에 눈을 감았다.
‘역시, 마기 스텟은 이 정도가 한계인가 본데.’
지난번 보석에 비해 진한 마기가 들어 있었지만, 스텟 상승은 고작 4로 그쳤다.
마기 스텟이 높아질수록, 그만큼 순도 높은 마기가 필요했으니 당연했다.
‘스킬은. 이 정도면 스킬 해제될 때 됐는데.’
띠링.
[일정 수준의 마기를 흡수해, 마기 채찍이 개방되었습니다.]
“나이스. 괜찮은 거 떴네.”
지금까지 해제된 공격 스킬이 하급이었다면, 마기 채찍은 하급에서 중급 사이는 된다.
마기 채찍.
말 그대로 마기를 응축시켜, 채찍의 형태로 만들어 내는 것.
‘이놈을 완벽하게 다루는 데 애 좀 먹었지.’
숙련도가 필요한 스킬인 만큼, 소모되는 마기에 비해 뛰어난 효율성을 자랑했다.
“아, 잠깐만. 얌마! 이봉구!”
그러고 보니, 내가 지구로 귀환했을 때 상태창 오류가 났었지.
저놈 상태창은 어떤지 체크할 필요가 있다.
“우웁! 웁!”
한참 붕어빵을 입에 넣던 이봉구는 김민준의 부름에 대답하려 했지만, 볼이 빵빵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먹으면서 들어. 너 상태창 제대로 출력되냐?”
“우웁? 우우웁!”
이봉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재빨리 붕어빵을 삼켰다.
“후우. 예! 간단한 스킬을 포함해 스텟이 떠올라 있습니다.”
“보여 줘 봐.”
“예! 여기 있습니다!”
이봉구도 이스가르드에서 넘어와서 그런가.
녀석의 상태창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마기가 5에, 다른 스텟은 20인가.’
예상했던 수치보다 낮다.
저놈은 목숨을 걸고 차원 이동을 한 탓인지, 마기 스텟이 상당히 낮아져 있었다.
‘여기서 어떻게 할까.’
김민준은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흡수한 마기 상당 부분을 넘겨주고, 이봉구를 강화시킬 것인가.
아니면 저번과 같은 방식으로 움직일 것인가.
‘전자는 이봉구의 수색 범위를 넓힐 수 있다. 마기를 모으는 속도가 빨라지겠지. 하지만 녀석에게 위험 부담을 안겨야 한다. 후자는, 안정적이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
녀석에게 마기를 많이 넘겨준다 하더라도, 헌터군 생활에 별 지장은 없다.
헌터군에 들어가서 생긴 기본 스킬도 있고, 스텟도 조금이지만 꾸준히 올라가고 있으니.
‘그래도 급하게 가다가 저놈이 죽기라도 하면 말짱 도루묵이지. 여기선 안전하게 갈까.’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이봉구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김민준 님. 무슨 생각하고 계신지 다 알고 있습니다.”
“뭐.”
“도박을 할 것이냐, 안전하게 갈 것이냐를 고민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귀신같은 놈이네.”
“전 김민준 님의 오른팔입니다! 표정만 봐도 척하면 알 수 있습니다.”
이봉구는 이제 슬슬 활동 영역을 넓혀야 할 때라며, 강하게 주장했다.
“제가 그동안 이곳저곳 돌아다녀 봤지만, 한국에서 발생하는 마기가 너무 적습니다. 안 그래도 한국은 땅덩어리가 좁지 않습니까!”
“안 죽을 자신 있냐?”
“물론입니다!”
“그건 네 생각이고. 이 자식아.”
김민준은 자신감 있게 대답하는 이봉구에게 마기를 나눠 주었다.
“마기 스텟 15까지 올라가면 허락한다. 그 밑은 안 된다.”
“제 목숨을 신경 써 주시다니… 이 얼마나 자비로우신….”
“시끄럽고, 빨랑 가져가.”
“예!”
스스스스-
한동안 자신의 마기를 흡수하던 이봉구는 마기 스텟이 정확히 15가 되었다고 대답했다.
“아, 아니! 김민준 님!”
“뭔 일 있냐?”
이봉구는 새로운 스킬이 개방되었다며, 자신에게 알려왔다.
“한번 보자. 넌 공격 스킬은 거의 없던 걸로 기억하는데….”
김민준은 이봉구의 스킬을 확인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활동 범위 넓혀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