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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47화 (47/212)

47. 위장 던전-3

가만히 기다리기 심심해 위장 던전을 두들기며, 몬스터 좀 내놓으라고 위협했는데 진짜로 내보낼 줄이야.

‘포이즌 붐버네.’

김민준은 몬스터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고, 헌터들에게 뒤로 빠져 있으라고 지시했다.

“50m 정도만 떨어져 계세요. 너무 멀리 떨어지진 말고요.”

“또 몬스터예요? 이런 미친… 잠깐만요, 놈의 발소리가… 너무 커요!”

쿵! 쿠웅!

던전 안쪽에서 들려오는 무거운 발소리.

그 소리에 헌터들은 오크가 나타난 것 같다며 세상 다 끝난 표정을 지었다.

“오크 아니니까 걱정 마요. 그것보다 더 귀찮은 놈이니까.”

“…예?”

“옵니다. 제 말대로 50m 이상 떨어지지 마세요.”

김민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축구공 형태를 지닌 몬스터, 포이즌 붐버였다.

놈은 몸을 뒤뚱거리며, 조금씩 김민준을 향해 다가왔다.

“크게게겍! 게겍!”

“…우린 다 죽었다.”

“저, 저거 포이즌 붐버잖아! 방독면 없으면 아예 상대가 불가능하다고!”

포이즌 붐버는 마력탄 한 발로도 처리할 수 있다.

그만큼 놈의 피부는 약하다.

그러나 놈이 죽으면 몸에서 맹독 가스가 새어 나오는데, 이 가스를 들이마시면 강력한 환각 증상을 겪게 된다.

‘환각 효과에 걸리면 자해한다고 했었나.’

주의에 주의를 기하여 상대해야 하는 몬스터라는 말.

“입구는 막혀 있고, 저놈이 10시간 이상 기다려 줄 리가 없겠지.”

이쪽에서 건드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저놈이 자폭하면 맹독 가스가 퍼지는 것은 순식간일 터.

김민준은 저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냥 손가락으로 톡 쳐도 죽일 수 있는 수준이긴 한데….’

저 안에 든 맹독이 문제다.

물론 맹독이라 할지라도 마음만 먹으면 빨아들일 수 있지만, 현재 자신의 스펙으로는 한계가 있다.

모든 맹독을 빨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

‘저놈들 긁힌 상처 하나 없이 완벽하게 구출해야 해.’

그러기 위해서 이 던전에 들어온 것이니까.

우우웅-

‘응? 뭐야.’

어떻게 하면 저놈을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이.

주머니 안쪽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이거… 사단장님한테 받았던 카든데?”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색 카드 한 장.

카드의 진동이 점점 거세지더니, 이윽고 메시지를 출력했다.

[블랙 카드가 알 수 없는 기운에 반응합니다!]

[블랙 카드가 사용자의 성향에 맞춰, 성질이 변합니다!]

[블랙 카드가 사용자의 힘에 알맞은 효과를 가집니다!]

“오… 미친?”

잠잠하던 카드가 갑자기 왜 반응했는지 알 순 없지만, 그야말로 지금 상황에 적격인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변신 카드–다크 나이트]

5분 동안 다크 나이트로 변합니다.

그동안, 고유 스킬 추방을 1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추방: 지정한 대상을 차원의 틈새로 영구히 가둡니다.

저 검은 카드가, 사실은 변신 카드였을 줄이야.

‘이런 아이템이 있다는 건 듣도 보도 못 했는데. 시스템이 아이템 정보를 띄워 주는 것도 그렇고.’

그것보다 남자의 로망을 이뤄 주는 꿈같은 카드가 있었을 줄이야.

김민준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고유 스킬, 추방이라.’

일회용 아이템에 유지 시간이 고작 5분인 것만 빼면, 김민준의 마음에 쏙 드는 아이템이었다.

“제가 처리할게요.”

“…예? 혼자서 저걸 어떻게….”

“아무리 김민준 씨라고 하셔도 방독면 없이는 건드리면 안 됩니다! 우리 다 가스에 노출된다고요!”

김민준은 입꼬리를 올리며, 헌터들에게 걱정 말고 구경이나 하라고 대답했다.

찌이익!

변신 카드를 찢자, 카드에서 검은 기운이 새어 나와 김민준의 몸을 감쌌다.

스스스스-

잠시 후.

온몸이 검은 갑주로 뒤덮인 기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 저니까 놀라지 마세요.]

헌터들은 외양이 변한 그의 모습을 보고, 다리의 힘이 풀렸는지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야. 너무 멋있는데?’

검게 빛나는 안광에 검은 망토.

거기에 중세 영화에서나 볼 듯한 거대한 검까지.

목소리까지 멋있게 바뀌어 있었다.

“게게게게겍!”

자신의 변신 모습에 만족하고 있길 잠시.

뒤뚱거리며 걸어오던 포이즌 붐버가 괴성을 내지르며, 몸을 부풀렸다.

이대로 자폭해 버리겠다는 속셈이다.

[아니, 이 자식이. 아직 4분이나 넘게 남았는데 뭐 하는 짓이냐? 진실의 방으로 한번 가 볼래?]

김민준은 다크 나이트의 고유 스킬, 추방을 사용했다.

쉬익!

검을 든 손으로 허공을 가르자, 검은 균열이 생겨났다.

그 균열은 점점 커지더니, 몸집을 키우는 포이즌 붐버를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였다.

[이거 죽이는데?]

일회용 아이템치고는 상당히 강력한 성능이었다.

스스스스-

제한 시간이 지나자, 김민준은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 재밌었는데.”

변신 유지 시간이 5분밖에 되지 않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미, 미쳤다. 방금 뭐였어요?”

“아니, 뭔 사람이 몬스터로 변해? 근데 방금 몬스터 맞나?”

“판타지 영화에서나 볼 듯한 장면이 나온 것 같은데요?”

“슥 하고 베니까 몬스터가 사라지던데요?”

한편.

그동안 뒤에서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던 헌터들은, 믿기지 않는 눈으로 김민준과 녹아내리고 있는 카드를 응시했다.

“아. 이거 친구 아버지가 저한테 주신 건데, 그런 아이템인 줄은 몰랐네요.”

“친구 아버지가 뭐 하시는 분이길래….”

“107사단 사단장님이요.”

“허, 헉!”

“사, 사단장님….”

사단장이라는 말이 나오자, 헌터들은 그 이상 캐묻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제 9시간도 안 남았어요. 조금만 더 버텨 보죠.”

김민준은 헌터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

한편.

107사단 사단장, 손태호는 심각한 얼굴로 던전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이상 시간을 끌면 위험하다.’

그동안 특수 장비를 투입해 던전 입구를 뚫어내려 했다.

8시간 이상 투입한 결과가, 작은 구멍이 뚫린 정도.

이렇게 된 이상, 남은 방법은 마력 폭탄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병사들이 던전에 고립된 지 반나절이 지났다. 이병들과 일병이 대부분이고, 무기 하나 없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 사용해야 한다.’

그는 분노에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망할 놈의 새끼들. 저 안에 갇힌 인원만 몇 명인데, 그깟 마력 폭탄 하나 허가 내주는 데만 20시간이 넘게 걸려?’

헌터 본부의 느린 대응 때문이었다.

손태호는 헌터 본부에 연락해, 한시라도 빨리 고립된 헌터들을 구출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매뉴얼대로 하라, 였다.

‘이런 개 염병할 놈의 자식들. 이래 놓고 병사들 죽으면 사단장인 내 탓으로 뒤집어씌우려고 하겠지.’

어떻게 세월이 지나도 이런 부분은 개선이 되질 않는지.

사단장은 한숨을 내쉰 뒤, 입을 열었다.

“진행 상황 보고해.”

사단장의 말에, 마력 폭탄을 설치하고 있던 간부들이 입을 열었다.

“예! 마력 폭탄은 이대로 진행하면 1시간 안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지시대로 근방에 있는 민간인들은 대피 완료했습니다!”

“후… 그래. 폭발 세기는 어떤가. 조절할 수 있겠나?”

그 질문에 간부들은 애매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폭발 전문가 중에서도 수준 높은 간부들이었지만, 위장 던전의 입구를 뚫어 본 적은 없었으니.

‘애초에 마력 폭탄은 던전 입구를 뚫는 목적이 아니다. 오우거급 이상 되는 몬스터들이 대량으로 출현했을 때 사용하려고 만든 폭탄이지.’

거기다 던전도 어디 보통 던전인가.

일반 던전이 아닌, 극히 드물게 발생하는 위장 던전이다.

입구의 강도를 예상해 마력 폭탄의 세기를 조절하라니.

그들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최대한 조절해 보겠습니다.”

간부들은 변수를 하나씩 체크해 나가며, 마력 폭탄의 강도를 조절해 나갔다.

-아니! 저놈들이?

한편.

김민준의 명령에 따라 밖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독수리, 이봉구.

그는 폭탄이라는 말이 나오자 기겁하며 김민준에게 보고했다.

-김민준 니임! 큰일입니다! 군인 놈들이 던전 입구에 폭탄을 설치하는 중입니다! 이 일대가 쑥대밭이 될 겁니다! 거기다 그렇게 끔찍하다는 방사능까지! 이렇게 된 이상, 저놈들이 폭탄을 터트리기 전에 제가….

‘가만히 있어. 네가 말하는 건 핵폭탄이겠지. 곧 여기 있는 애들 데리고 나간다.’

-그렇군요. 역시 김민준 님이 사는 곳은 대단한 게 많은 것 같습니다.

곧 나간다는 김민준의 말에, 날아오를 준비를 하던 이봉구가 행동을 멈췄다.

“마력 폭탄, 준비 완료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간부들은 손태호에게 폭발 스위치를 넘겨주었다.

“좋아. 매뉴얼대로 1㎞ 떨어진 지점해서 사용하겠다. 다들 대피해!”

“예!”

“알겠습니다!”

그의 말에, 헌터들이 분주하게 철수하기 시작했다.

‘마력 폭탄으로도 안 되면… 포기해야 한다.’

마력 폭탄도 억지로 우겨서 사용 허가를 받아 낸 것이다.

손태호가 복잡한 얼굴로 위장 던전에서 물러나는 도중, 변화가 일어났다.

스르르르르-

굳게 닫혀 있었던 던전의 입구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동작 그만! 다들 다시 돌아와! 의무 헌터는 어디 있나! 애들 이송할 준비부터 해라! 마력 폭탄은 바로 해제할 수 있도록!”

“예, 예!”

“알겠습니다!”

갑작스러운 변화.

그렇게 애써도 열리지 않던 던전이 열렸다.

사단장은 당황하지 않고, 의무 헌터와 장교부터 호출했다.

“돈 상관 말고, 비싼 물약들 모조리 퍼부을 준비해!”

“알겠습니다!”

숨만 붙어 있으면, 어떻게든 살릴 수 있다.

그렇게 다들 마음을 졸이며 던전 입구를 바라보길 잠시.

저벅, 저벅.

“…….”

“뭐야?”

헌터들이 멀쩡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지쳐 있었지만, 이렇다 할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들것을 들고 대기하던 의무 헌터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민준….”

그들의 중심에는 김민준이 있었다.

그는 탈진한 헌터들을 양손으로 부축한 채, 밖으로 나오자마자 물을 찾았다.

“충성! 여기 물부터 주십쇼! 헌터들이 탈수 증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거기에 자신의 몸은 신경 쓰지 않고, 주위의 헌터들부터 챙기기까지.

“후우….”

손태호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세한 보고는 들어 봐야 알 수 있다.

하지만 딱 봐도 김민준 덕에 헌터들 전원이 생존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저놈과 따로 이야기를 나눠 봐야 되겠군.’

**

‘이야. 여기가 사단장실이야?’

시간이 지나고.

김민준은 107사단 사단장의 호출로 사단장실에 대기하고 있는 상태.

아무리 휴가 중이라고 해도 그만한 큰일이 있었는데, 보고부터 해야 하는 건 당연했다.

‘그건 그렇고, 던전을 클리어했는데 아무것도 안 줘?’

위장 던전에서 몬스터를 얼마나 때려잡았는데, 어찌된 게 아무것도 안 나오냐.

위장 던전이라 그런 건가?

‘어쨌든 그곳에서는 스텟을 얻었으니까 됐다치고.’

헌터군 쪽에서도 분명 보상을 해 주겠지.

그 살아남기 힘들다는 위장 던전에서 고립된 헌터들을 긁힌 상처 하나 없이 빼냈다.

과연 어떤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까.

“김민준.”

“충성! 병장 김민준!”

김민준이 사단장실에서 커피를 홀짝이길 잠시.

사단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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