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분대 외출-1
‘말해 봐.’
-예! 현재 제가 있는 곳은 대전 쪽입니다!
이봉구는 마기의 기운을 찾는 도중.
대전 쪽에서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던전을 발견했다며 알려 왔다.
-마기는 아닙니다. 정확히 표현은 못 하겠지만… 느낌이 그렇습니다.
‘제대로 확인해 봤냐?’
-다른 던전에 비해서, 헌터군들의 경비가 삼엄했습니다. 거기다 입구도 막혀 있었습니다.
‘그래. 당분간 거기 근처만 맴돌면서 주시해.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멀어져라.’
-알겠습니다! 그런데 김민준 님.
‘왜.’
이봉구는 국밥을 먹어도 되냐며, 조심스럽게 질문해 왔다.
‘그걸 나한테 물어보고 사 먹냐? 먹고 싶을 때 먹으라고 너한테 10만 원 준 거잖아.’
-크윽! 김민준 님! 감사합니다!
이봉구는 울먹거리며 대답한 뒤, 연락을 끊었다.
김민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질적인 기운에, 입구가 막힌 던전.’
거기에 수십 명의 헌터군들이 경계를 선다라.
‘뭔가 냄새가 나긴 하네.’
정확한 것은 대전에 가 보면 알 수 있겠지만, 현재 유격 훈련 때문에 병사들의 휴가가 제한된 상태다.
그나마 허용되는 게 분대 외출 정도.
‘휴가 제한은 다음 주에 풀리니까, 그사이에 정보를 수집하면 되겠네.’
김민준은 나이트 워커에게 대전에 있는 던전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
유격 훈련이 끝나고 시간이 지나, 주말이 다가왔다.
“드디어 일요일이다!”
“그날이 왔다!”
“가즈아아아!”
분대원들은 신나게 소리치며 전투복으로 환복했다.
평소 같았으면 여전히 활동복 차림으로 이불 안에 있었겠지만, 오늘은 분대 외출을 나가는 날이었다.
“아. 차라리 유격 마치고 마음 편하게 나가는 게 낫네.”
“나이스 타이밍이다.”
분대원들은 외출 전날 밤, 전투복을 미친 듯이 다리며 멋을 냈다.
“크. 김민준 병장님. 진짜 감사합니다. 손은서 분대랑 단체로 외출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이야. 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손은서가 너한테 관심이 있는 것 맞다니까?”
그들의 텐션은 그야말로 최고조.
다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거울을 몇 번씩이나 들여다보았다.
“알았으니까 빨리 준비하십쇼. 10분 남았습니다.”
부대 밖으로 외출을 할 때도 당연히 전투복 차림이다.
그런데 뭐가 그렇게 신났냐 하면, 첫 번째는 사회의 공기를 마신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무려, 손은서의 분대원들과 일정을 맞춰서 나간다는 점이었다.
“다들 말하지만, 강제하는 건 없어. 알지? 빠지고 싶은 사람은 빠져도 된다.”
“아닙니다!”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이놈들이 이럴 때는 귀신같네.”
병장들의 말에, 후임들은 끝까지 따라가겠다고 대답했다.
“어휴. 그런데 기껏 분대 외출인데 나가서 술 안 마시면 뭘 하냐.”
“그러게 말입니다.”
현재 무적 헌터 부대는 외출 시에도 음주가 금지된 상황.
헌터 기동 훈련의 여파인 셈이었다.
“계획은 잘 짰냐?”
“동선은 완벽합니다. 여헌터들한테도 미리 귀띔해 놨습니다.”
그래서 김민준의 분대원들은 부대에서 떨어진 도시로 나가, 몰래 술을 즐기기로 계획을 세웠다.
‘이 자식들. 아주 그냥 신났네.’
김민준은 분대원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자신에게 있어서 술이야 그냥 물이었지만, 분대원들이 기대하고 있는 것 같으니 따라 주기로 했다.
“신고하고 빨랑 가자.”
“예!”
그렇게 다들 들뜬 마음으로 보고하러 갔지만, 술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늬들 갔다 오면 알지? 이거 불어서 뜨는 순간 전원 군기 교육대다.”
당직 사관이 음주 측정기를 보라는 듯이 들어 올렸기 때문.
“내가 직접 한 명, 한 명 다 잴 거야. 알겠냐?”
“…알겠습니다.”
이렇게까지 나오니, 결국 술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어디 갑니까?”
“피시방… 이라기에는 인원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아니, 미친놈아. 여헌터들이랑 뭔 피시방이야. 네가 그러니까 모쏠이지.”
분대원들은 부대 밖으로 나오며,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아니, 한창때의 남녀들이 술이 안 되면, 도대체 뭘 하란 거야?”
“얘들아. 빨랑 뭐 없나 찾아봐라! 1분 1초가 소중한 시간이다!”
“알겠습니다!”
한동안 다들 머리를 굴리던 사이.
“어? 다들 여기 어떻습니까?”
김광식 상병이 최근 개장한 놀이 공원을 가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오! 놀이 공원? 그거 좋네.”
“괜찮은데? 오늘 당직 사관 FM이잖아. 음주 측정 기본 3번은 할걸? 술은 포기하고 그냥 거기 가자.”
분대원들은 괜찮은 생각인 것 같다며,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여기가 헌터군은 할인도 해 주고, 최신식 어트랙션까지 있다고 합니다. 서로 간에 친해지기 딱 좋은 것 같습니다.”
“잘 찾았네. 민준아! 너도 괜찮지?”
분대원들의 시선이 김민준에게 집중되었다.
어쨌거나 최종 선택권은 그에게 있었으니까.
‘살짝 놀려 볼까.’
김민준은 순간 장난기가 발동해, 별로라는 표정을 지었다.
“음. 별로 안 내키는데, 그냥 남자 따로, 여자 따로 노는 게 어떻습니까?”
“이런 미친! 우리 봐라! 어제 밤부터 미친 듯이 전투복 다렸다고!”
“김민준 병장님! 저희가 뭐든 할 테니, 제발 허락해 주십쇼!”
그는 분대원들의 애원에 입꼬리를 올렸다.
“뭐든? 좋아. 선택지를 두 개 준다. 1번. 다음 휴가 때 던파 만렙 찍고 온다. 그 대신 내가 책임지고 여헌터들 놀이 공원으로 데려가줄게. 2번. 그냥 따로 논다.”
“1번!”
“저도 1번입니다!”
“이야. 민준이 병장 달았다고 선임들한테까지….”
“손은서한테 취소하겠다고 까톡 보내겠습니다.”
“아니, 안 한다고는 안 했다. 한다, 해.”
김민준의 말에, 분대원들을 별 고민도 하지 않고 1번을 골랐다.
여헌터들이랑 일정을 맞춰서 분대 외출을 할 기회가 얼마나 있으랴.
노답 게임한다고 놀림을 받더라도,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좋아.’
김민준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던파 분대 탄생이다.’
이것으로 분대 외출의 행선지는 최근에 개장한 놀이공원, ‘썬더랜드’로 정해졌다.
“근데 여기 되게 무서운 거 많다던데?”
“그렇습니다. 썬더랜드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라 하면, 몬스터 익스프레스라고 있습니다. 몬스터에게 납치되는 컨셉으로 만든 롤러코스터인데….”
“무서워 봤자 얼마나 무섭겠냐.”
“여헌터들이랑 같이 탄다고 생각해 보십쇼.”
“…2번 타자.”
“바로 그겁니다.”
분대원들은 한동안 들뜬 기색으로 대화를 나눴다.
**
오전 9시, 놀이공원 앞.
매표소 앞에 대기열이 엄청나게 늘어져 있었다.
“워우, 개장한 지 얼마 안 되서 그런가. 사람 되게 많은데?”
“안 그래도 인터넷 봤는데, 대기 시간이 최소 2시간이란다.”
“여헌터들은 미리 들어가 있단다. 우리도 빨리 가자.”
물론 군인들은 예외다.
군인들을 포함해,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프리 패스 존을 통해 입장할 수 있었다.
“헌터군이시네요. 90% 할인 적용해 드리겠습니다.”
“90%나요? 감사합니다.”
“할인 되게 많이 해 주네.”
“감사합니다!”
분대원들이 밝은 표정으로 움직이길 잠시.
“저기 헌터군이다!”
“나라를 지켜 주셔서 항상 고맙습니다!”
“군인 아저씨! 고마워요!”
“무서운 몬스터들이랑 싸우는 거 멋있어요!”
짝짝짝짝-
대기열 옆에 서 있던 사람들이 그들을 발견하자, 큰 소리로 환호해 주었다.
예전 같았으면 군인들만 왜 그런 혜택을 주느냐,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나며 불만이 쏟아졌을 것이다.
‘한국이 많이 변하긴 했어.’
김민준은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야야. 뭔데 여기. 왜 이렇게 넓냐?”
“이거 하루 만에 다 못 타겠는데?”
“그것보다 4분대원들은 어디에 있냐?”
안으로 들어가자, 직원이 안내 책자를 건네주었다.
펼쳐 보니, 눈으로 보이는 어트렉션만 30가지 이상이었다.
“어! 저기 있다! 안녕하세요! 전우님들!”
“네. 안녕하세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놀이 공원 안은 사람들로 북적거렸지만, 헌터들끼리 만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군복이었기에, 멀리 있어도 눈에 잘 띄었으니까.
“…잠깐만. 저, 저기!”
싱글벙글하던 분대원들의 표정이 굳었다.
그들은 손은서의 옆에 있는 남성을 확인하고, 겁먹은 듯이 뒤로 물러났다.
“…107사단 사단장님이시잖아!”
“어우, 자세히 보니까 맞네. 107사단이면 손은서 아버지겠는데? 사복 입고 계셔서 몰랐다.”
“분대 외출 아니었냐? 왜 사단장님이 저기 계시는데!”
“야. 이거 어떻게 해야 하냐?”
“김민준 병장님. 가서 경례합니까? 아니면 모른 척하고 빨리 멀어집니까? 여기 되게 넓어서 못 본 척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돌발 상황.
분대원들은 패닉이라도 온 것처럼 어쩔 줄 몰라 했다.
“가서 경례해야지. 우리 복장을 봐라. 헌터 군복이다.”
“알겠습니다.”
아무리 인파가 많은 놀이 공원이라도, 군복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충성!”
분대원들은 사단장에게 다가가, 큰 목소리로 경례했다.
“어, 그래. 너희들도 분대 외출 나왔냐?”
“예! 그렇습니다!”
“그래. 너희들 104사단 소속이지? 몇 대대냐?”
“2대대 2중대 2소대 소속입니다!”
우렁찬 분대원들의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아버지! 그냥 분대 외출 나왔는데, 여기까지 왜 따라 오셨어요! 그냥 놀이 공원 입구까지만 태워 달라니까!”
손은서는 민망하다는 듯이 사단장의 팔을 잡아끌었다.
“하하. 군인들은 어차피 거의 무룐데, 헌터들 얼굴이나 익힐 겸 왔지. 금방 갈 거야.”
그는 멋쩍게 웃으며, 헌터들을 슥 훑었다.
척!
분대원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차렷 자세를 취했다.
‘음. 김민준이라. 헌터 기동 훈련에서 우리 딸 도와준 녀석이구만? 거기다 헌터군 중, 최단기간에 병장을 단 헌터고.’
사단장의 시선이 한동안 김민준에게서 머물렀다.
“그럼 잘들 놀도록 하고! 선은 지키면서 놀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예! 충성!”
사단장이 사라지자, 헌터들 사이에서 한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하아….”
손은서가 한숨을 내쉬기도 잠시, 김광식이 재빠르게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전우님들! 오늘 복귀 8시까지죠? 빨리 놀아요!”
“네, 네! 좋아요.”
“제가 어트랙션 재밌는 거 추려서 동선 짜 놨거든요? 여기 되게 넓거든요. 그냥 막 움직이면 시간 다 가요.”
“와. 되게 신경 쓰셨다.”
녀석 덕분에, 어색했던 분위기가 다시 되살아났다.
“그 전에, 저거 먼저 어때요?”
주위를 둘러보던 김민준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사격 게임?”
“허. 넌 놀러 나와서도 처음 하는 게 사격이냐?”
근처에 있는 미니 사격 게임장이었다.
분대원들은 질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물론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까, 꼴등 한 사람이 전부 계산하는 건 어떻습니까?”
“오. 그건 좀 괜찮네.”
“재밌겠네. 하자. 전우님들은 어때요?”
“해요! 재밌어 보이는데요?”
그렇지.
이런 미니 게임도, 내기가 걸리면 달라지지.
‘상품도 있네. 1등은 뭔가 되게 큰 거 같은데 일단 제쳐 두고. 2등은….’
김민준의 시선은 2등에서 멈췄다.
‘저게 여기에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