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뽑기 영약
구슬의 정체는 일명 뽑기 영약이라고 불리는 레드 마블.
섭취한 자의 성향에 따라, 좋은 효과나 나쁜 효과를 주는 일종의 아이템이었다.
‘이게… 어떤 식으로 생겨난다고 했더라.’
던전의 효과로 인해 각종 식물들이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다고 했었나?
물론, 이것도 가설일 뿐 확실한 원인을 밝혀내지는 못했었지.
‘어쨌든 심봤다!’
김민준은 레드 마블을 서둘러 주머니 속으로 넣었다.
매뉴얼대로라면, 소대장에게 보고한 뒤 원형 그대로 제출해야 한다.
‘실적 점수를 주면 몰라도, 돌아오는 게 포상금이었지.’
고작 돈 몇십 만원과 영약을 바꾼다라.
절대 안 되지.
이건 내가 먹을 거다.
이걸 바꾸려면 최소한 던파 15강 무기는 들고 와야지, 암.
‘이건 나중에 기회를 봐서 먹든가 해야지.’
스스스스-
나이트 워커는 어느새 자신의 옆에 달라붙어, 칭찬해 달라는 듯이 움직였다.
“그래. 잘했다. 앞으로도 이런 거 많이 찾아내라. 그래야 내가 힘을 빠르게….”
만족스럽게 칭찬하려던 김민준은 구슬에 남아 있는 마기를 확인하고, 인상을 구겼다.
“이런 미친놈이! 이건 영약 종류긴 한데, 기껏 해 봐야 하급에서 중급이라고! 효율적으로 마기를 사용하라니까!”
스스….
나이트 워커는 풀이 죽은 채, 땅속으로 숨으려 했다.
“아직 귀신 역할 안 끝났다. 다시 와라.”
내 분대원들을 골탕 먹여야 하니까.
훅!
“어억!”
“아아악!”
김민준이 다른 헌터들을 몇 차례 겁주길 잠시.
“손은서 씨는 어느 대학 나오셨어요?”
“그냥 서울에 있는 4년제요.”
“어? 저돈데. 무슨 과예요? 보니까 문과 계열은 아닌 거 같은데.”
“이과 계열이요.”
김광식과 손은서가 언덕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하여간 저 자식도 남자 아니랄까 봐.’
김광식은 말이 없는 손은서의 관심을 어떻게든 얻기 위해, 다양한 주제로 말을 꺼냈다.
“저기요. 그것보다, 저 좀 도와줘요.”
“오! 좋죠! 뭐든지 말만 하세요.”
도와 달라는 그녀의 말에, 김광식은 눈을 빛냈다.
자신의 말발이 통하지 않아 포기하려 했는데, 이런 기회가 생길 줄이야.
“김민준 씨가 저희들을 겁주러 오면, 같이 달려들어서 진심으로 패요. 어떻게 분장했는지는 미리 전해 들었으니까.”
“…김민준 병장님은 갑자기 왜요?”
의아한 듯한 김광식의 질문에, 손은서는 화난 기색으로 대답했다.
“그 망할 자식! 저희 분대 화생방 할 때, 몇 분이나 가스실에 집어넣은 줄 알아요? 15분이에요 15분! 살면서 그런 악마 자식은 처음 봤다고요!”
“…15분이나요? 저흰 10분도 안 걸려서 나갔는데….”
“아악! 다시 생각해도 열 받네! 던판지 뭔지 거기서 나오는 캐릭터 이름을 내가 어떻게 아냐고!”
그녀는 화생방 때의 일로 상당히 열 받았었는지, 험한 말을 연달아 뱉었다.
‘와… 김민준 병장님은 우리한테 천사였구나.’
김광식은 그저 가만히 침묵을 유지했다.
‘이 자식들 봐라, 귀엽네?’
한편.
그 광경을 바라보던 김민준은 최선을 다해 그들을 겁주기로 했다.
훅!
김민준은 그들의 얼굴 앞으로,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우어어어어! 쓰벌!”
“꺄아아악!”
김광식은 순간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지만, 손은서는 그 와중에 주먹을 휘둘렀다.
어지간히 자신에게 감정이 쌓인 듯했다.
‘999년은 이르다!’
가볍게 그녀의 공격을 흘렸다.
그리고 귓가에 대고 뭐라 말한 뒤, 모습을 감췄다.
“어우, 미쳤네. 분장을 뭐 어떻게 하셨길래 저렇게 소름 돋지?”
김광식이 놀란 가슴을 추스르는 것도 잠시.
손은서가 어깨를 부들부들 떨다가, 소리쳤다.
“세리안지 뭔지 그딴 거 하나도 안 궁금하다고!”
김민준이 말한 내용은 화생방에서 냈던 문제의 정답이었다.
**
다음 날.
유격 훈련 5일 차가 되어, 헌터들은 퇴소 행군만 남겨 두고 있었다.
퇴소식은 형식적으로 잠깐 진행하는 정도.
“우리 사단은 현재 훈련 미흡 사단으로 지정되어 있다. 앞으로도 항상! 긴장감을 가지고 훈련과 각종 임무에 임할 수 있도록 한다! 알겠나!”
“예!”
대대장은 중대장에게 종이 2장을 넘긴 뒤, 곧바로 유격 훈련장을 떠났다.
“이승호, 김민준.”
“병장 이승호.”
“병장 김민준.”
“그래. 이거 너희들 거다. 구겨지지 않게 잘 보관해라.”
“알겠습니다.”
그 종이의 정체는 우수 조교 표창장과 유격왕 표창장이었다.
“2중대 2소대가 요새 성과가 좋아. 앞으로도 잘해 봐라.”
“예!”
“알겠습니다!”
중대장은 이승호의 가슴에 유격왕 메달을 하나 달아 주었다.
‘뭐야. 우수 조교는 그런 거 없나?’
김민준은 이승호의 가슴팍을 빤히 바라보았다.
“뭐냐.”
“이승호 병장님. 저 덕분에 유격왕 다셨는데, 달고 있는 메달이라도 저 주십쇼.”
“참호 격투 말고 한 거도 없는 놈이 무슨.”
“그거 저 없었으면 우승 못 했습니다. 분대 외출까지 딴 게 다 누구 덕분입니까?”
“닥쳐. 화생방 때 죽여 버릴 뻔한 거 겨우 참았으니까.”
“저희 분대원들이라 적당히 봐줬습니다. 다른 분대원들은 10분 이상 꽉꽉 채워서 내보냈습니다.”
병장끼리 유치한 대화가 한동안 이어지길 잠시.
“이야! 김민준! 하사들 제치고 우수 조교 받았네?”
“이승호 병장님. 메달 별 의미도 없는 거 그냥 민준이 주시지 말입니다.”
분대원들이 다가와, 분대 외출 일정을 잡자며 말했다.
“아직 퇴소 행군 남았습니다. 60㎞ 이상 걸으셔야 할 텐데, 그거 다 끝나고 얘기하겠습니다.”
김민준은 그들에게 활짝 웃으며, 보란 듯이 군용 차량을 가리켰다.
당연히 조교인 자신은 퇴소 행군에서 제외다.
“전 미리 도착해서 쉬고 있겠습니다.”
“아… 진짜 저럴 때마다 조교가 부럽더라.”
“엿 같은 놈. 가다가 타이어 펑크 나라.”
김민준은 분대원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군용 차량에 올라탔다.
그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야. 김민준이!”
먼저 부대에 복귀하자, 김철민 중위가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충성! 병장 김민준! 조교역을 마치고 먼저 복귀했습니다!”
“그래. 너 우수 조교 표창도 받았다며? 이승호는 유격왕 받았고.”
“그렇습니다.”
우수 조교 표창장을 보여 주자, 김철민의 표정이 환해졌다.
“크. 하사들도 껴 있어서 우수 조교는 어려울 줄 알았는데! 넌 그냥 지금부터 푹 쉬어라. 원래 오늘까지는 훈련인데, 애들 부대 안으로 들어오려면 저녁은 되어야 하니까.”
그는 어차피 부대 안에 사람도 없으니, 신경 쓰지 말고 마음껏 휴식을 취하라고 말했다.
‘어지간히 기분이 좋으신가 본데.’
김민준은 곧바로 단련실에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피로를 해소해야 했겠지만, 자신이 누군가.
이세계에서 정점을 찍고 귀환한 흑마법사다.
“빨리 별 달려면 열심히 스텟 올려야지.”
주위를 살핀 뒤, 유격 훈련장에서 습득한 레드 마블을 꺼냈다.
꿀꺽.
“오우, 불닭 맛이랑 짬뽕 섞은 맛 나네.”
곧바로 목 안으로 넘기자, 매콤한 맛과 함께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이템을 복용하였습니다.]
[복용한 자의 성향에 따라, 효과가 적용됩니다.]
[해로운 효과가 적용됩니다.]
“에라이.”
꽝이었다.
해로운 효과라 해 봤자 별것 있겠는가.
어차피 마기가 알아서 정화해 줄 터였다.
스스스스.
[해로운 효과가 정화됩니다.]
[정화된 기운이 적용됩니다.]
“응? 뭐야?”
가만히 기다리자, 몸 안의 마기가 의외의 결과를 만들어 냈다.
[정화된 기운의 효과로 인해, 스트렝스의 스킬 등급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스트렝스가 D등급으로 상승하였습니다!]
“이게 이렇게 된다고?”
어차피 꽝이었는데, 이걸 이렇게 만들다니.
“운이 좋군.”
이것으로 힘 스텟 70을 달성했다.
이렇게 스텟이 쭉쭉 오르는 것도 자신만이 보유한 스킬 덕분이었다.
헌터 사관학교의 스텟 커트라인이 50 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김민준의 스텟은 그야말로 괴물 수준.
“그래도 헌터 사관학교가 스텟이 높다고 해서 다가 아니지.”
그렇다.
헌터 사관학교에 들어가려면 스텟도 스텟이지만, 무엇보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
병사들을 지휘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으니까.
“명문 4년제 대학교 졸업하고 별 다는 게 빠를지, 나처럼 일반병부터 올라가는 게 빠를지 어디 한번 지켜봐라.”
김민준은 헌터들이 퇴소 행군을 하는 사이, 단련실에서 단련을 반복했다.
**
“아… 인생.”
“끝났다! 드디어! 엿 같은 유격이 끝났다고!”
저녁 시간이 지나고, 헌터들이 살았다는 표정으로 부대에 복귀했다.
임시 훈련이 당분간 추가될 것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그것은 나중의 일이다.
“다들 4박 5일 동안 훈련받느라 고생했다! 내일은 전투 휴무니까, 오늘내일 푹 쉬어서 그동안 쌓인 피로를 회복하도록 해라.”
“예….”
“알겠습니다아….”
“그리고 이승호. 유격왕 받았던데 잘했다.”
“병장 이승호. 감사합니다.”
김철민 중위의 짧은 전달 사항이 끝나고.
분대원들은 흐느적거리며 샤워를 마친 뒤, 침대 위로 뛰어들었다.
“눈 감았다 뜨면 아침이겠지.”
“어우… 진짜 이번 유격 개 돌았다.”
어지간히 피곤했는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잠들었다.
“니들도 그냥 자라. 눈치 볼 필요 없으니까.”
“감사합니다.”
“김민준 병장님. 그럼… 먼저 자겠습니다.”
자신의 말에, 눈치를 보던 일병들도 하나둘 잠을 청했다.
‘난 스마트폰이나 만지다가 잘까.’
스마트폰을 꺼내자, 귀신같이 메신저 알림음이 왔다.
‘뭐야? 얜 내 번호를 어떻게 알았지?’
까톡을 보낸 사람은 손은서였다.
손은서: 저기요.
김민준: 차단할게요.
손은서: 잠깐만요! 잠깐….
가차 없이 차단하려 하자, 손은서가 할 말이 있다며 빠르게 대답했다.
손은서: 김민준 씨. 분대 외출 받았죠? 저도 분대 외출 가지고 있는데, 같이 일정 맞춰서 쓰실래요?
뭐냐.
얜 또 갑자기 왜 이래?
이게 말로만 듣던 작업 건다는 건가?
‘근데 별로 생각이 없네.’
김민준이 거절 메시지를 보내려던 찰나.
“김민준 병장님! 안 됩니다! 제발!”
언제 슬쩍 보고 있었는지 김광식이 입을 열었다.
“갑자기 뭐야.”
“이런 기회는 평생 안 옵니다! 저를 포함해서, 다른 선임들과 후임들까지 생각해 주십쇼! 김민준 병장님은 간부까지 가실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병사들의 멘탈 관리는 기본입니다!”
김광식은 손은서가 사단장님의 딸이기도 하니, 친해져서 나쁠 것이 없다며 애원했다.
“알았다. 간다, 가. 내가 이병 때, 네가 잘 대해 줘서 한 번만 봐주는 거다.”
녀석의 말도 일리가 있긴 하니, 한 번 넘어가 주지 뭐.
“크으! 역시 김민준 병장님! 감사합니다!”
녀석은 급기야 자고 있는 동기들을 깨우면서까지 분대 외출에 관한 내용을 알렸다.
김민준: 근데 제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요?
손은서: 김광식 씨한테 알려 달라고 했어요.
김민준: 아.
“김광식!”
“상병 김광식!”
“누가 마음대로 내 번호 알려 주라고 했냐. 푸시업 100회 실시.”
“실시!”
녀석은 기쁜 마음으로 푸시업을 시작했다.
손은서: 그럼 다음 주말에 가는 걸로 해요.
김민준: 그러죠.
김민준이 손은서와 일정을 맞추던 사이.
-김민준 님! 드디어 찾았습니다!
부대 밖에서 활동하는 이봉구에게 연락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