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헌터 유격 조교-3
띠링.
[민첩 스텟이 1 증가했습니다.]
‘이게 오른다고?’
의외였다.
다른 헌터들 같았으면 스텟이 쭉쭉 올랐을 것이지만, 자신은 다르다.
이미 높은 스텟을 가지고 훈련을 받아 왔기에, 그만큼 스텟의 성장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훈련소부터 지금까지 해서 단 1이라.’
아예 기대를 안 했는데, 이게 오르긴 하는구나.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100레벨 모험가가 1레벨 민달팽이를 수만 마리 사냥한 느낌일까.
‘없는 것보다는 낫지.’
**
특수 장애물 훈련은 오전 내내 진행되었다. 교육생들은 마지막 장애물 코스인 외줄 타기만을 앞두고 있었다.
“오늘 교육생들의 훈련 태도가 어제보다는 마음에 든다. 남은 훈련 일정도 열심히 임할 수 있도록 한다! 알겠나!”
“악!”
현재 그들이 정렬해 있는 곳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만 설치된 훈련장.
“워… 미칠 듯이 아찔하네.”
“아까 하강 훈련한 건 그냥 장난이겠는데….”
헌터들은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지난번 유격에서는 외줄 타기를 형식적으로 진행했었는데, 이번에는 완전히 FM이었다.
“앞에 있는 외줄 다리의 길이는 100m입니다. 좌측 선은 1번선, 우측 선은 2번 선입니다. 이 줄들을 잡고, 각각 한 명씩 건너갈 수 있도록 합니다. 알겠습니까?”
“악!”
“거기 206번 교육생! 우리가 이 훈련을 받는 이유가 뭡니까?”
김민준은 설명 중, 교육생 한 명에게 질문을 던졌다.
“외줄 타기는 던전 공략 중, 일반적인 방법으로 이동할 수 없는 늪지대나 독 웅덩이에 봉착하였을 때에 주로 사용합니다.”
손은서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완벽하게 대답했다.
‘한눈팔고 있길래 물어봤는데, 아깝네.’
김민준은 시범을 보이기 위해, 안전줄을 로프에 매달았다.
‘아마 이 훈련이 다른 헌터들에게는 가장 어렵겠지.’
일반군이 외줄 타기 훈련을 했을 때, 이동하는 거리는 대략 50m 정도.
헌터군은 그 2배인 100m를 줄 하나만 의지해 이동해야 한다.
그뿐만이라면 할 만하겠지만, 교육 대장이 도중에 비행형 몬스터를 푼다.
‘스몰 펙커. 겉보기엔 딱따구리같이 생긴 몬스터였지.’
스몰 펙커는 하운드와 마찬가지로 하급 몬스터였지만, 외줄을 타는 상황에서는 악마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80㎏짜리 파워 슈트까지 입은 상황에서는, 놈에게 대항하는 게 상당히 버겁다.
‘애초에 얻어맞아야 하는 훈련이지.’
이 훈련의 요점은, 신체에 가해지는 피해를 최소화하며 건너는 것이었으니까.
“교육생들은 숙달된 조교의 시범을 보고 잘 따라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알겠습니까!”
“악!”
“여러분이 파워 슈트를 입은 채로 떨어져도 아무 상관없습니다! 그러니까 겁먹지 않도록 합니다! 알겠습니까!”
“악!”
줄 밑에는 특수 재질의 안전망이 설치되어 있다.
얼마나 안전하느냐면, 파워 슈트를 입은 교육생이 무더기로 떨어져도 아무 걱정 없는 수준.
“00번 교육생! 도하 준비 끝!”
김민준은 외줄에 오른쪽 발목을 건 뒤, 도하 자세를 취했다.
교육생들이 잘 보고 따라 할 수 있도록, 완벽한 자세를 일정 시간 유지해 주었다.
“도하!”
다른 조교의 구령이 떨어지자, 김민준이 외줄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속도는 이쯤 하면 되겠지.’
평소 같았으면 빠르게 건너갔겠지만, 현재 자신은 조교다.
교육생들을 배려해, 일부러 속도를 늦춰 줄 필요가 있었다.
“지금부터 몬스터를 투입한다!”
50m 구간을 지나자, 건너편에 있던 교육 대장이 스몰 펙커 두 마리를 풀었다.
“끽끽끽끽!”
“끽끽!”
그러자 긴 부리를 가진 작은 새들이 김민준을 덮쳤다.
휙! 휘익! 휙!
스몰 펙커들은 김민준의 머리나 팔, 다리 등을 집요하게 노리며 공격해 왔다.
‘어우 씨. 이놈들 죽여 버릴 뻔했네.’
몬스터는 죽이지 말라는 교육 대장의 지시가 떠올라, 팔다리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방어만 했다.
“끽끽!”
“끽끽끽!”
놈들은 자신들의 공격이 계속 빗나가자, 더욱 약이 올랐는지 온 힘을 다해 부리를 휘둘렀다.
‘나대지 마라.’
김민준은 스몰 펙커를 노려보며 딱밤을 날려 주었다.
“끼익….”
그러자 딱밤을 맞은 한 마리가 겁먹었는지 뒤로 도망쳤다.
“끼, 끼끽!”
다른 한 마리 역시, 날개를 퍼덕거리며 오히려 거리를 벌렸다.
“아니, 이놈들이?”
교육 대장은 스몰 펙커들의 돌발행동에, 재빨리 목에 묶어 놓은 줄을 잡아당겨 회수했다.
“유격!”
김민준의 시범이 끝나자, 헌터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저거 뭐야. 그냥 딱밤 한 방 날린 거냐?”
“진짜 스텟 괴물이네. 이거 무조건 맞아야 하는 훈련이라고, 방금 저놈이 설명했잖아. 근데 본인은 한 방도 안 맞는데?”
“저거 그냥 그거 아니냐? 스몰 펙커가 저 동작을 무서워하는 걸 수도 있잖아.”
“오, 그런가?”
그 뒤.
헌터들은 줄을 건너며 스몰 펙커에게 딱밤을 날려 보았지만, 돌아오는 건 성난 스몰 펙커의 부리 공격이었다.
“이익! 저리 안 가!”
‘풉. 사단장의 딸도 저건 어쩔 수 없나 보네?’
김민준은 손은서가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왠지 모르겠는데, 우리 분대원이랑 저 녀석이 당하는 걸 보면 재밌단 말이지.’
**
2일 차 훈련은 그렇게 지나가고, 3일 차.
“드디어 왔다! 참호 격투 날이다!”
김민준이 그렇게 기다리던 참호 격투 훈련을 하는 날이 다가왔다.
“훈련이 그렇게 좋냐?”
“그냥 너 혼자 다 해라.”
분대원들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김민준을 보며, 질렸다는 듯이 말했다.
“제가 고급 정보 하나 흘려 드리겠습니다. 참호 격투에서 우승하는 분대는 교육 대장님이 분대 외출권 하나 주신답니다.”
“오?”
“레알?”
분대 외출이라는 말에, 분대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근처에서 듣던 다른 헌터들 역시 마찬가지.
“김민준. 너도 참호 격투하냐?”
“병장 김민준. 저도 합니다.”
“그래? 너, 나 만나면 조심해라. 내가 저번 참호 격투 1등 했다.”
이전, PT 체조에서 엄청난 지옥을 겪었던 최승우 병장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오? 이놈 봐라?’
PT 체조로 인해, 자신에게 감정이 쌓인 듯했다.
“자! 유격 훈련이 3일 차에 접어들었다! 교육 대장이 오늘 교육생들의 훈련 태도를 보고, 마지막 날 오락 시간을 줄지 말지 결정하겠다!”
“악!!”
“악!”
참호 격투장 앞.
교육 대장이 오락 시간이라는 의외의 단어를 뱉었다.
‘와… 진짜?’
‘이번 훈련 강도 미쳐서 기대 하나도 안 했는데?’
그 말에, 교육생들의 눈이 의욕으로 타올랐다.
보통 유격 훈련 4일 차 저녁에는 교육생들에게 고생했다는 의미로, 담력 훈련 같은 오락 시간을 준다.
이번 유격에는 당연히 없을 줄 알았는데, 일말의 가능성이 생긴 것.
‘중간에 기절하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간다!’
오락 시간은 남헌터와 여헌터들의 친목을 다질 좋은 기회.
그들은 참호 격투를 진지하게 임하기로 했다.
“자! 우승하는 분대에게는 교육 대장이 외출권을 하나 주겠다. 반대로! 성적이 부진한 분대에게는 조교가 따로 PT 체조를 시킬 것이다.”
교육 대장은 참호 격투라 하더라도, 실전처럼 임하라고 말했다.
‘오우, 흙탕물. 이게 참호 격투지.’
거기다 1개의 소대가 들어갈 정도의 넓은 구덩이까지.
김민준은 들뜬 마음으로 순서를 기다렸다.
“모든 참호 격투는 단판으로 끝낸다. 성별과 계급에 관계없이 분대별로 진행한다!”
“악!”
조교들이 조 편성을 끝내는 사이, 헌터들의 시선이 김민준의 분대를 훑었다.
“이야. 벌써 견제 들어오는 거 봐라.”
“민준이가 있으니까 그렇겠지. 힘과 민첩 스텟만 해도 괴물 수준인데!”
“그것보다 진형이나 짜자. 전방은 이승호랑 김민준으로 하자고.”
휴가권도 아닌 분대 외출권이었지만, 헌터들은 열정적으로 참호 격투를 준비했다.
“2소대 2분대와 3소대 3분대부터 시작한다!”
“악!”
첫판부터 자신의 분대가 걸렸다.
상대는 최승우 병장이 포함된 분대.
지난번 참호 격투에서 우승했던 분대였다.
“김민준. 힘 스텟 40으로 60을 이기는 마술을 보여준다.”
“기대하겠습니다.”
“아니, 미친! 그런데 왜 하필 저쪽에 하사님이 있는 거야!”
분대원들은 3분대에 간부가 한 명 껴 있는 걸 보고 망연자실했다.
“운도 실력이다. 억울하면 늬들도… 알지?”
최승우는 몸을 낮추며, 입꼬리를 올렸다.
“이거… 진영 바꿉니까?”
다급해진 김민준의 분대원들은, 재빨리 의견을 나눴다.
“진영은 그대로 하고, 나랑 김민준이 저기 하사님이랑 최승우를 맡는다. 너희들은 그동안 저놈들이 우리한테 못 달라붙게 시간 끌어.”
“알겠습니다!”
이승호 병장의 지시에, 분대원들이 자리로 가 위치를 잡았다.
“…….”
분대원 간, 약 10초 정도 정적이 흐른다.
삐익!
“가즈아아아!”
“우아아아아!”
교육 대장의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자, 각 분대원들은 소리를 지르며 서로 엉겨 붙었다.
“끄아아아!”
“그냥 물고 늘어져! 민준이랑 승호한테 달라붙게 하지 마라!”
“으아아아!”
참호 격투의 룰은 간단하다.
참호 안에 있는 상대를, 밖으로 밀어내기만 하면 된다.
당연히 주먹질한다든가, 발로 민다든가 하는 과격한 행위는 금지.
“제가 김민준을 맡겠습니다!”
“그래. 후딱 해치우고 쉬자.”
분대원들이 서로 흙탕물을 튀기며 밀어내는 사이.
최승우 병장과 하사가 유유히 참호 중앙으로 걸어갔다.
“이승호 병장님. 뒤처져도 못 도와 드립니다?”
“너나 잘하고 말해, 자식아.”
“알겠습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스킬을 시험해 볼까.
아까부터 이 스킬 사용하고 싶어서 손가락이 근질근질했네.
‘마기의 특이점은 미리 켜 놨지.’
이걸로 자신의 마기는 완벽히 무색무취인 상태.
‘그럼 5초 컷 가 볼까!’
김민준은 마기의 손아귀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무색의 마기가 커다란 손의 형태를 취해, 최승우를 끌고 왔다.
“어, 어어?”
최승우는 갑작스럽게 잡아당기는 힘 때문에, 앞구르기를 하며 굴러갔다.
“어우, 최승우 병장님. 살 좀 빼셔야 되겠습니다.”
김민준은 자연스럽게 그의 옆구리를 잡고,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뭐, 뭔데! 방금 뭐였는데! 미친!”
“최승우 병장님. 화려하게 구르시던데, 어디 걸리신 것 아닙니까? 전 램머스라도 보는 줄 알았습니다.”
휘익!
“억!”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최승우는, 고작 10초 만에 참호 밖으로 던져졌다.
‘오, 저기 둘은 비슷비슷하네.’
시선을 돌려 보면, 이승호 병장이 하사와 두 손을 맞대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끄아아아!”
“크아악!”
이승호 병장이 근소한 차이로 밀리고 있는 상황.
‘저긴 일단 놔두자. 남자들끼리 일대일 승분데 끼어들면 눈치가 없지.’
그것보다 일단 우리 분대원 먼저지!
‘흑마 그랩!’
김민준은 참호 밖으로 던져지려는 분대원들에게 마기의 손아귀를 사용했다.
그러자 분대원들은 귀신같이 그의 주변으로 굴러왔다.
“방금 뭐냐?”
“어우, 미친. 나도 몰라. 뭔가 확 끌어당기던데?”
“그것보다 이승호 병장님이 당했습니다!”
분대원 한 명이 이승호가 있는 쪽을 가리켰다.
“포기해라, 이놈들아.”
그곳에는 목과 어깨를 풀고 있는 하사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