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39화 (39/212)

39. 헌터 유격 조교-2

그 사람의 정체는 손은서 상병이었다.

그녀 역시, 김민준이 빨간 모자를 쓴 것을 보며 말이 되냐는 표정을 지었다.

‘뭐, 뭐야. 유격 조교는 병장은 되어야 지원할 수 있을 텐데.’

벌써 병장을 달았다고?

얼마 전까지 분명히 나와 같은, 상병이었을 텐데?

“206번 교육생, 정면 응시합니다.”

“아, 악!”

그 표정도 잠시뿐.

손은서는 김민준의 경고에,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아. 그러고 보니까, 이 녀석 집에서 그 좋은 마기를 얻었지.’

그 덕분에 마기 스텟도 쭉쭉 올랐고, 필요하던 스킬도 풀렸고.

이대로 아무것도 안 갚아 주기에는… 너무 정이 없지.

같은 전우이기도 하고, 기브 앤 테이크를 실천할 때가 왔다.

‘넌 특별히, 내가 더욱 주시해 준다.’

PT 체조를 포함해, 육체를 혹사시키다 보면 스텟이 오르는 일이 가끔 있다.

자신처럼 우수한 조교가 옆에서 도와준다면, 그 효과는 극대화될 터.

“높이뛰기 준비!”

“유격!”

“5회 실시한다, 몇 회?”

“5회!”

“목소리 꼬라지 봐라. 10회 실시한다, 몇 회?”

“10회!!”

“높이뛰기, 6회! 실시!”

곧 유격 대장의 지시와 함께, PT 체조가 시작된다.

삑! 삐빅! 삑!

다들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PT 체조를 1번부터 시작해 나갔다.

유격 대장은 교육생들의 실수를 유발하기 위해, 마지막에 체조 횟수를 바꿔 나갔다.

“다음! 굽혀 닿기 준비!”

“유격!”

“4회 실시한다, 몇 회?”

“4회!”

“굽혀 닿기, 6회! 실시!”

헌터들은 처음에는 바짝 긴장하며 집중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PT 체조 자세 6번쯤 가자, 피로가 누적되며 실수하는 헌터들이 하나둘씩 발생했다.

“120번 교육생! 121번 교육생! 저쪽으로 열외합니다!”

“악!”

“빨리 안 튀어 나갑니까!”

“아, 악!”

마지막 구호를 외친 헌터들은 따로 열외되어, 조교들에게 PT보다 혹독한 기합을 받았다.

‘오, 이 녀석 봐라?’

김민준은 6번까지 완벽한 자세를 취한 손은서를 보며, 눈을 빛냈다.

‘잘하는데? 사소한 거 하나 걸리기만 하면 바로 굴리려고 했는데.’

역시 사단장의 딸이라 다르다 이건가.

하지만, 그것도 7번까지였다.

“8번! 온몸 비틀기 준비!”

“유격!”

PT 체조에서 가장 지옥의 구간이라는, 마의 8번.

온몸 비틀기의 차례가 되자, 교육생들은 죽을상을 지었다.

이전에도 그 고통을 겪어 봤는데, 이번에는 무거운 파워 슈트를 입은 채로 온몸을 비틀어야 했으니까.

“5회 실시한다, 몇 회?”

“5회!”

“패잔병이야 뭐야! 목소리 상태 봐라! 30회 실시한다, 몇 회?”

“30회!!!”

“온몸 비틀기, 40회, 실시!”

삑! 삐빅! 삑!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교육생들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열두우우울!”

“끄어어어! 열세엣!”

“머리 바닥에 닿지 마라! 다리는 왜 자꾸 내려가나!”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이전과 같은 유격 대장이 실시하는 PT 체조인데, 그 강도는 3배 이상 높았다.

“206번 교육생, 다리 45도 각도 유지합니다.”

“악!”

“좌로 45도, 우로 45도입니다. 5도 이상 틀렸습니다. 똑바로 합니다.”

“악!”

여헌터들 중, 우수하다는 손은서 상병이라 해도 PT 8번은 피해 가지 못했다.

거기다 김민준은 완벽한 자세가 나오지 않으면, 나올 때까지 그녀를 굴렸다.

그는 다른 조교들에 비하면, 완벽한 FM을 추구했다.

그야말로 악마가 따로 없었다.

‘아. 여기만 왜 이래!’

‘미쳤네. 좀 유도리 있게 넘어가 달라고!’

‘하필이면 8번에서 걸고넘어져? 저 사탄 새끼!’

물론 손은서의 주위에 있던 교육생들도 마찬가지.

그들은 속으로 김민준에게 욕을 갈겼다.

손은서 역시, 그를 미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짜증 나냐? 그럼 완벽하게 해라. 그리고… 알지?’

열 받으면, 너도 조교 해라.

김민준은 잠시 후, 최승우 병장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 지옥을 선사해 주었다.

‘아. 이 맛에 조교 하는 건가.’

실적 점수도 먹고, 계급에 상관없이 헌터들도 마음껏 굴리고.

가슴이 절로 상쾌해진다.

‘다음에도 조교 해야지.’

김민준은 다리를 달달 떨고 있는 최승우 병장에게 다가가, 친절하게 자세를 바로잡아 주었다.

“오늘 유격 일정은 이것으로 마친다! 유격 대장이 볼 때 교육생들의 수준이 낮아서 이렇게 늦게 끝난 것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남은 훈련에 임하도록!”

“악!”

유격 체조는 한밤중이 되어서야 끝났다.

보통 유격 체조는 아무리 길게 끌어 봐야 저녁 전이면 끝난다.

이번에는 훈련이 강화되었기에, 밤 9시가 넘어서야 끝이 난 것.

“아….”

“살았다….”

1일 차 훈련이 끝나자마자, 헌터들은 서둘러 파워 슈트부터 벗었다.

그리고 바로 땅 위를 침대 삼아 누웠다.

남헌터, 여헌터 할 것 없이, 다들 통일된 움직임이었다.

그만큼 이번 훈련의 강도가 높았다는 뜻이리라.

“와… 나 스텟 올랐다. 김민준 저 악마 놈이 나 굴리고 나니까, 체력이 1이나 올랐다.”

“전 힘이 1 올랐습니다.”

덕분에 헌터들 몇 명은 스텟이 오르기까지 했다.

특히나 김민준이 스쳐 지나간 헌터들은 그 효과를 톡톡히 봤다.

그는 정말 기절하기 직전까지 헌터들을 굴렸으니까.

“고맙지? 내가 은근 정이 많은 사람이라서, 우리 분대원들한테는 특별히 신경 써 줬다.”

“김민준 병장님… 서운하게 이러실 겁니까?”

“전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스텟 올랐으면 됐지, 이 자식들아. 동진이는 스텟 좀 올랐냐?”

김민준의 시선이 이동진에게 향했다.

“일병 이동진. 힘과 체력 스텟이 1씩 올랐습니다.”

이동진은 거친 숨을 뱉으며 대답했다.

‘저놈은 의외로 훈련 잘 받던데.’

시간이 길어질수록, 헌터들 대다수가 어떻게든 넘기기만 하자는 생각으로 훈련에 임했다.

하지만 이동진은 이를 악물며 악으로라도 훈련을 소화했다.

‘일병 생활만 4년이라고 했나. 역시 짬은 무시할 수 없다니까.’

진작에 저렇게 헌터군 생활했으면, 병장까지도 달았을 텐데.

사실 이동진 일병이 의욕을 다진 계기는 김민준 때문이었지만, 본인은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샤워나 빨리해라. 너희들 뜨거운 물은 2시간밖에 안 나오는 건 알고 있냐?”

“그냥 좀 더 누워 있다가 찬물로 하렵니다. 지금 가 봐야 자리 없을 겁니다.”

훈련 첫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

훈련 2일 차.

헌터들은 특수 장애물 훈련을 위해, 산 안쪽으로 이동했다.

“아… 다리에 알 오지게 배겼다.”

“난 어제 잠을 잘못 잔 것 같은데… 목이….”

첫날 훈련의 강도가 상당했는지, 헌터들 대다수가 앓는 소리를 냈다.

‘아. 참호 전투는 언제 하냐?’

반면, 김민준은 훈련에 참가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자! 지금부터 특수 장애물 훈련을 시작하겠다! 교육생들은 어제와 같은 자세로 훈련에 임한다면, 훈련량을 2배로 늘리겠다! 알겠나!”

“악!”

특수 구조물이 설치된 훈련장에 도착하자, 유격 대장이 정신 똑바로 차리고 훈련에 임하라며 경고했다.

훈련 1일 차의 유격 훈련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태.

“처음은 줄 잡고 건너기부터 실시한다!”

교육 대장의 말에, 김민준이 앞으로 나와 훈련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설명이 끝나는 순간, 앞 열부터 1명씩 나올 수 있도록 합니다. 알겠습니까?”

“악!”

양쪽으로 넓게 박힌 특수 재질의 통나무 사이로, 줄이 하나 매달려 있다.

교육생들은 이 줄을 잡고 매달린 채, 물웅덩이 위를 건너가면 된다.

여기까지 설명을 들으면 일반 군대와 별 차이가 없다.

“교육생들이 건너가는 사이, 조교들이 무작위로 공격을 가합니다. 이 훈련에서 중요한 것은 상황 판단과 순발력입니다. 알겠습니까?”

“악!”

“발이 정확히 지면에 착지해야 완료입니다. 그 전까지는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합니다. 알겠습니까?”

“악!”

“그럼, 본 조교가 시범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잘 보고 따라 할 수 있도록 합니다.”

하지만 헌터군 같은 경우는, 교육생들이 줄을 잡고 건너가는 사이 조교들이 공격을 가했다.

고무탄을 쏘기도 하고, 훈련용 재질의 무기로 찌르기도 한다.

장애물 훈련이라고 해서 쉽게 봐서는 안 된다는 말이었다.

‘봐주지 마라. 죽일 기세로 공격해.’

‘알겠습니다.’

김민준이 줄을 잡자, 조교들의 눈매가 매섭게 변했다.

그들은 전날 밤, 교육 대장에게 불려가 기합을 받았다.

‘김민준 병장이 저렇게 하는데, 너희들은 이따위로 할 거면 조교에 왜 지원했나!’라는 말과 함께, 험한 말을 들어야 했다.

이것도 김민준이 너무 뛰어났기에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타닷!

“유격!”

김민준이 줄을 잡고 웅덩이를 건너기 시작하자, 양방향에서 조교들이 공격해 왔다.

‘뭐야? 이놈들은 갑자기 또 왜 이래?’

자신이 보여 주는 건 어디까지나 시범이다.

그렇기에, 조교들은 굳이 기를 쓰고 공격해 올 필요가 없다.

‘그래 주면 나야 더 재밌고 좋지만.’

그들은 온 힘을 다해, 김민준을 떨어트리려 했다.

쉬익! 쉭!

특수 재질의 창이 여기저기서 찔러 들어온다.

김민준은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공격을 가볍게 회피했다.

사각지대로 오는 공격은 한 손으로 쳐 내기까지.

“아니, 진짜 훈련 강도 돌았나.”

“저걸 어떻게 하라고. 열이면 열 다 입수행이겠는데?”

“민준이가 괜히 병장을 빨리 단 게 아니네. 피지컬 미쳤다, 진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헌터들은 기겁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놈들이?’

한편.

김민준이 완벽하게 공격을 회피하고 지면에 착지하려던 순간.

조교 한 명이 줄을 잡고 뒤로 밀었다.

그 반동으로, 김민준은 다시 출발 지점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진심으로 한다 이거야? 그럼 나도 봐줄 필요 없겠네?’

거기다 다시 쏟아지는 공격들.

김민준은 얼굴 옆으로 지나가는 창을 한 손으로 잡은 뒤,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어? 어어?”

스텟 65의 완력.

아무리 하사라 할지라도, 그의 힘을 당해 낼 순 없었다.

풍덩!

“어억!”

순식간에 끌려간 하사는 그대로 웅덩이에 빠졌다.

‘드루와! 더 드루와 봐!’

다른 조교들 역시, 그에게 2초도 채 버티지 못하고 웅덩이 안으로 입수했다.

“유-격!”

김민준은 유유히 시범을 보인 뒤,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그렇게까지 하고도 걸린 시간이 고작 20초.

보통 교육생은 30초대만 나와도, 조교가 따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열외시켜 주는 수준이었다.

“오오….”

“대박… 조교들이 힘도 못 써 보고 다 떨어져 나가네.”

“간부가 세 명이나 있었는데.”

짝짝짝짝.

훈련 시범을 지켜보던 헌터들은, 김민준을 보고 박수를 쳤다.

근처에 있던 교육 대장 역시, 시범이 만족스러웠는지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자! 그럼 이대로 훈련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한다!”

교육생들이 훈련을 진행하는 동안, 김민준을 제외한 조교들은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창을 휘둘렀다.

‘오? 뭐야? 이게 오른다고?’

김민준이 교육생들을 가만히 지켜보길 잠시.

그의 눈앞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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