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헌터 유격 조교-1
“헌터 유격 조교 말입니까?”
“그래. 이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알고 있지?”
유격 조교는 병장 중에서도 우수한 실적을 가진 병장만이 지원할 수 있었다.
헌터 조교가 5명 정도 선발된다고 하면, 2명이 병장, 3명이 하사인 식이다.
자신은 그 2명 안에 든 셈이고.
“대대장님께서 추천하신 거다. 물론 최종 결정은 네가 하는 거고.”
김철민 중위는 지원서 작성은 형식적인 것이고, 지원만 한다면 유격 조교는 확정이라며 말했다.
‘이건 당연히 해야지. 실적 점수가 얼만데.’
거절할 이유야 없다.
물론, 알 만큼 아는 병장들은 실적 점수를 퍼 준다 해도 기겁할 것이다.
유격 조교가 겉보기에는 간부까지 마음껏 굴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실상은 달랐으니까.
조교로 선발된 헌터들은 훈련 전 미리 교육을 받게 된다.
교육 강도는 당연히 유격 훈련을 받는 것보다 높다.
“하겠습니다.”
“크. 역시 김민준이. 여기에 이름만 적고 사인만 하면….”
“그런데, 한 가지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응? 뭐냐?”
부탁이라는 말에, 김철민 중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김민준이 개인적으로 부탁을 해 온 적이 있었던가?
“말해 봐. 들어나 보자.”
“조교로 훈련에 참가하는 동안, 헌터로서도 훈련을 받고 싶습니다.”
“…뭐라고? 자세히 설명해 봐.”
김민준의 말은 이러했다.
조교로서도 유격 훈련에 참가하고, 병사로서 참호 격투는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하. 너 자대 와서 유격 처음이지? 조교는 참호 격투 못 하니까 아쉬워서 그러나 본데?”
“예. 그렇습니다.”
김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교로만 훈련에 참가하면 참호 격투를 할 수가 없잖아.’
난 그게 제일 재밌어 보였는데.
“잠깐만 기다려 봐. 중대장님께 보고부터 하고. 참호 격투 하나 정도는 상관없을 것 같다.”
“알겠습니다.”
김철민 중위는 중대장에게 연락해, 김민준이 했던 말을 그대로 전달했다.
-김민준 병장? 참호 격투를 꼭 하고 싶다고? 뭐…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 대대장님께서 추천하셨으니까, 그 정도는 허락해 주실 거다.
다만 참호 격투에 참가하는 이상, 반드시 우승하라고 말해 왔다.
-못 하면 군기 교육대에 확 집어넣어 버린다고 전해.
“예.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김철민 중위는 중대장의 장난스러운 대답을 듣고, 가볍게 웃었다.
“민준아. 참호 격투는 상관없으시단다.”
“감사합니다.”
“그래. 참호 격투도 실적 점수에 들어가니까 열심히 해봐. 물론 넌 조교라서 해당은 없겠다만.”
“감사합니다!”
김민준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도 상관없지. 분대 점수는 받을 테니까.’
그건 그렇고, 조교란 말이지.
헌터들을 미칠 듯이 굴릴 수 있다니.
빨리 와라, 유격 훈련!
“민준아, 너 유격 조교 한다던데 진짜냐?”
생활관으로 돌아오자, 귀신같이 정보가 빠른 선임들이 말을 걸어왔다.
“워, 그 빡센 걸 받아들였어? 이승호는 칼같이 거절하던데.”
“예. 아, 그런데 참호 격투는 참가하기로 했습니다.”
“참호 격투?”
“예. 유격 훈련 중에 제일 재밌는 훈련 아닙니까.”
이어지는 자신의 말에, 분대원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그거야 조교인 너는 괜찮겠지. 우린 봐라. 미친 듯이 구르고 지친 상태에서 참호 격투하면, 안 힘들겠냐?”
“조교도 사전 교육받는 거 빡셉니다. 병장님들도 다 아시면서 왜 그러십니까.”
“크흠. 그건 그렇네.”
병장들이 무안한지 헛기침을 했다.
“병장님들, 저한테 잘 보이셔야 할 겁니다. 그리고 너희들도. 알지?”
김민준은 분대원들을 눈으로 슥 훑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하필이면 쟤가 유격 조교야?”
“조졌다….”
“안 그래도 이번 훈련은 강도 세졌는데.”
분대원들은 김민준이 교육을 받으러 갈 때까지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
2주가 지나고, 유격 훈련 당일.
헌터들은 완전 군장으로 60㎞ 떨어진 유격장을 향해 출발했다.
유격 훈련 첫날, 이른바 입소 행군인 셈이다.
“아. 유격장 바로 저기 앞에 있는데, 뺑뺑이 도는 거 실화냐.”
“전 그것보다, 파워 슈트 입으니까 벌써 힘든 것 같습니다.”
지난번 유격과는 달리, 헌터들은 파워 슈트라는 조끼를 각자 걸치고 있는 상태였다.
파워 슈트는 무게 80㎏을 자랑하는 조끼였다.
헌터들은 지금부터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파워 슈트를 상시 착용해야 했다.
[무적 유격장]
헌터들이 유격장 입구에 도착하자, 빨간 모자를 쓴 조교들이 열을 맞추고 서 있었다.
앞으로 4박 5일 동안 자신들을 열심히 괴롭힐 악마들이었다.
“자! 숙영지 먼저 편성할 수 있도록 한다! 시간은 넉넉하게 줄 테니까, 훈련 전 수분 보급 철저하게 할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유격 교관의 지시에, 헌터들이 자리를 잡고 각자 텐트를 치기 시작한다.
“어우, 씨 깜짝이야.”
“김민준 병장님이었습니까?”
텐트를 치던 도중.
조교 한 명이 다가오자, 헌터들은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누군가 싶었더니, 김민준이었다.
“그래. 가만히 있기에는 몸이 근질거려서 놀러 왔다. 지금 조교들은 휴식시간이거든.”
“크윽… 우린 조금 뒤면 구르는데….”
“사전 교육받아 보면 그런 말 안 나올걸. 그것보다 텐트나 후딱 치고 쉬어 둬라. 지금이 제일 여유로울 때다.”
“알겠습니다.”
헌터들이 텐트를 치던 도중, 옆 소대의 병장 한 명이 김민준에게 다가왔다.
근육질 몸에, 힘 스텟이 40 가까이 되는 최승우 병장이었다.
“김민준! 나랑 내기 하나 하자!”
“병장 김민준. 뭔 내기 말입니까?”
“너 이번에 조교 맡았잖아. 그러니까 저걸로 어떠냐?”
최승우 병장은 군용 텐트를 가리켰다.
헌터 기동 훈련에서도 사용했던, 그 텐트였다.
“시간 안에 누가 가장 많이 설치하는지로. 내가 이기면, 난 눈치껏 적당히 굴려 줘라.”
오.
이놈 봐라.
하긴, 이놈은 옆 소대였으니까 나의 텐트 설치 실력을 모르겠지.
“그럼 제가 이기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굴려도 되겠습니까?”
“오케이. 콜!”
그 말에, 최승우 병장은 이기고 나서나 그런 말을 하라며 코웃음 쳤다.
‘크흐. 나에겐 다 생각이 있다 이 말이야.’
옆 소대 병장은 김민준이 조교로 교육을 받으러 간 날부터, 미리 계획을 세워 뒀다.
“교관 없을 때 후딱 하고 끝내자.”
“알겠습니다.”
즉흥적인 내기가 성립되자, 다른 헌터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집중되었다.
“그럼 시작한다!”
내기가 시작되고, 병장과 김민준이 분주하게 텐트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저놈은 김민준이 텐트 설치 잘하는 건 알고 저러는 거냐?”
“참교육당하겠구만. 우리 거까지 설치해 준다는데, 일단 지켜보자.”
헌터들의 말대로, 초반은 김민준이 압도적으로 빨랐다.
“소환! 나와라! 내 소환수들이여!”
그러나 텐트 설치 도중.
최승우가 기묘한 포즈를 지으며 말을 뱉었다.
“나 혼자 한다고는 안 했다? 너도 머릿수 맞춰서 부르시든가?”
그러기 무섭게, 그의 분대원 3명이 나와 텐트 설치를 거들기 시작했다.
“야, 이 미친. 기껏 생각한 게 저거냐?”
“저거 완전 양심 없는 놈이네.”
“저놈들 움직이는 거 보면 짜고 친 거네.”
“이 또라이야! 저런 노력을 스텟 올리는 데에 투자를 했으면 하사도 달았겠다!”
흥미진진하게 내기를 지켜보고 있던 분대원들은 병장의 한심한 행동에 험한 말을 뱉었다.
“와… 저거 봐라.”
“워우… 그래도 민준이가 더 빠른데?”
그러길 잠시.
헌터들의 시선은 김민준에게 쏠렸다.
상대 쪽은 4명이 텐트 설치에 매달려 있는데도, 그의 속도는 뒤처지기는커녕 더 빨라졌다.
‘이 귀여운 것들. 재밌는 걸 생각했네.’
훈련 때 보자.
미친 듯이 굴려 주마.
“얌마. 내가 그러게 말했지? 김민준 텐트 개 잘 친다고 말했었잖아.”
“크! 이게 바로 참교육이지!”
김민준의 분대원들은 꼴좋다며 최승우를 놀려 댔다.
“이걸 진다고….”
결국 텐트 하나의 차이로, 김민준이 내기에서 승리했다.
최승우는 충격받은 표정을 지으며, 김민준에게 시선을 돌렸다.
“최승우 병장님. 2중대 3소대 맞습니까? 제가 꼭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특히 병장님은 각오하십쇼.”
김민준은 각오하라는 말을 남긴 뒤, 쿨하게 PT 체조 교육 준비를 위해 자리를 비웠다.
“망했다… 말년에 유격인 것도 엿 같은데 이걸 이렇게 진다고…?”
내기를 제안했던 최승우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
시간이 지나고, 무적 유격장 연병장 앞.
남헌터든 여헌터든 할 것 없이, 다들 긴장한 표정으로 오와 열을 맞추고 있는 중이다.
평소에는 서로 만날 일이 없어 항상 노래를 부르던 헌터들이었지만,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굳은 상태였다.
그럴 것이, 지난번에는 없던 파워 슈트를 입고 훈련을 완수해야 했으니까.
게다가 이번엔 조교들의 숫자가 2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그 말은 결국, 헌터들을 더욱 빡세게 굴리겠다는 뜻이다.
“지금부터 훈련 종료 시까지, 모든 대답은 악으로 대체한다. 알겠나!”
“악!”
“목소리가 이것밖에 안 되나, 알겠나!”
“악!!”
“거기 너! 기준.”
“198번 헌터 교육생! 기준!”
“체조 대형으로 간격을 넓게 벌린다, 실시!”
“유격! 악!”
훈련이 시작되자, 유격 대장의 목소리가 험해졌다.
“너희들은 아직 정신 상태가 안 됐다. 엎드려뻗쳐!”
“악!”
“신속하고, 빠르게 움직이란 말이야! 알겠나!”
“악!”
유격 대장은 조금이라도 뭉그적대는 교육생들이 보이면, 곧바로 기합을 줬다.
이 뒤에 있을 훈련들도 당분간 빡세게 굴리라는 대대장의 특별 지시 때문이었다.
‘어이고, 이놈들. 고생 좀 하겠네.’
물론 지금 교육생들에 비하면, 조교들이 훨씬 고생하긴 했다.
“거기 교육생! 자세 똑바로 안 합니까!”
“악!”
“더 내려갑니다!”
“악!”
그 때문인지, 조교들의 눈은 독기로 가득 차 있었다.
김민준은 다른 조교들과 교육생 근처를 돌아다니며, 그들이 기합을 제대로 받는지 지켜보았다.
“지금부터 PT 체조를 시작할 건데, 시작하기에 앞서! 숙련된 조교의 시범을 보겠다! 조교 앞으로!”
“유격!”
유격 대장의 말에, 김민준은 단상 앞으로 뛰어나갔다.
시범 조교는 선발된 조교들 중, 교육 성적이 가장 뛰어난 1명만 선발했다.
당연히 그 대상은 김민준이었고.
“높이뛰기 준비!”
“유격!”
“이게 높이뛰기 준비 자세다, 알겠나!”
“악!”
“PT 1번 높이뛰기, 최초 3회 실시!”
김민준은 유격 대장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높이뛰기를 실시했다.
삑! 삐빅! 삑!
“하나!”
삑 삐빅! 삑!
“둘!”
각도기로 잰 듯한 체조 동작에, 교육생들의 시선이 김민준에게서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와… 저 각 잡힌 거 봐라. 미쳤다.’
‘되게 멋있다….’
특히나 여헌터들은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지금부터 PT 체조 1번을 실시한다! 마지막 구호는 생략한다, 알겠나!”
“악!”
“한 명이라도 구호를 외치는 순간, 횟수는 세 배로 증가한다. 알겠나!”
“악!”
유격 대장이 조교들에게 턱짓을 하며, 호루라기를 입에 물었다.
조교들은 교육생들의 주위로 자리를 잡고, 감시할 준비를 마쳤다.
‘오? 이런 우연이?’
김민준의 시선이 교육생 한 명에게서 멈췄다.
‘얘가 마침 내 눈앞에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