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의적-1
‘이레귤러군. 일단 뒤로 빠져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지시를 내리려는 순간,
“소대장님! 움직이지 마십쇼!”
어느새 김철민 중위의 앞으로 다가온 김민준이,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가 내뻗은 손에는 어느새, 푸른빛을 띤 뱀이 매달려 있었다.
그야말로 눈 깜빡할 정도의 시간.
꾸드득!
김민준은 놈의 꼬리를 잡아 뜯은 뒤, 태연한 얼굴로 포획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내가 뭘 본 거지.”
“저거 이레귤러 몬스터 아니냐?”
“보호 슈트를 입은 상태로 저렇게 빨리 움직인다고?”
분대원들은 김민준의 몸놀림에 경악하면서도, 재빨리 몬스터의 습격에 대비한 대열을 형성했다.
“어어… 김민준. 잘했다.”
소대장은 얼떨떨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눈에 간신히 잡힐까, 말까 한 수준의 이레귤러 몬스터.
김민준이 없었다면, 꼼짝없이 당할 정도의 빠르기였다.
“병장 김민준. 감사합니다.”
김철민 중위의 얼떨떨한 반응도 잠시.
“중위 김철민입니다. 스네이크 마인 처리 중, 이레귤러를 확보했습니다. 몸체가 푸른빛을 띠고 있으며, 눈으로 잡히지 않을 정도의 날렵함을 보였습니다.”
부대에 보고해 이대로 철수할지, 작업을 속행할지에 대한 응답을 기다렸다.
-그런 지뢰형 몬스터는 던전 밖으로 빠져나가는 즉시 곤란해진다. 힘든 건 알겠지만, 던전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나올 수 있도록.
“예! 알겠습니다.”
본래라면 이레귤러 몬스터가 출현한 시점에 바로 철수해야 한다.
놈들은 기존 몬스터와는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좀 더 확실한 대비를 한 뒤 재입장하는 것이 원칙.
그러나 지뢰형 몬스터는 던전 밖으로 빠져나가면 잡아내기가 까다로웠다.
놈들이 이대로 밖으로 나와, 레이더망을 피해 민가라도 습격했다가는 골치 아파지기에 속행 명령이 내려진 것.
“쯧. 중대장님께서 몬스터들을 끝까지 처리하라고 하신다. 작업은 이대로 속행한다. 김민준!”
“병장 김민준!”
“넌 방금과 같은 이레귤러 몬스터의 대처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역시 최전방.
얼마 전, 마기를 품은 괴물쥐도 그렇고, 코볼트도 그렇고.
이번엔 총알보다 느린 뱀이라 이건가.
‘이놈들 봐라. 3마리나 더 있잖아?’
마기라도 품고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딱히 마기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스네이크 마인 작업은 계속 진행되었고, 김민준은 이레귤러 몬스터가 나타날 때마다 놈들을 처리했다.
“허, 헉! 김민준 병장님! 여기 이레귤러 몬스터….”
작업을 진행하던 이동진 앞으로, 이레귤러가 나타났다.
뿌득!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민준이 나타나 놈의 꼬리를 낚아채 꺾었다.
“…전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정말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압도적인 재능이 바로 저런 것일까.
이동진이 눈을 몇 번 깜빡이길 잠시.
“너도 열심히 하다 보면 된다. 나도 처음부터 뛰어났던 건 아니었으니까.”
김민준은 그에게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한 뒤, 다른 위치로 이동했다.
‘노력하면 될 수 있다라….’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한계점이라는 게 존재한다.
노력으로 스텟을 올린다고 하더라도, 태생적으로 높은 스텟을 가진 헌터들을 뛰어넘기는 불가능한 수준.
‘해 보자.’
어느새 병장이 된 김민준이, 자신을 포함해 후임들의 편의를 봐주고 있다.
이동진은 김민준의 뒷모습을 보며, 의욕을 다졌다.
그렇게 스네이크 마인 제거 작업은 계속 진행되어, 밤 10시가 지나서야 끝이 났다.
“이것으로 스네이크 마인 제거 작업을 마친다! 다들 고생했다! 이대로 부대에 복귀한 뒤, 보호 슈트를 포함한 장비들은 바로 반납할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후우….”
“드디어 끝이다….”
김철민 중위의 신호에, 분대원들은 그제야 살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특히 김민준! 이레귤러 몬스터를 별 무리 없이 처리하던데, 민첩 스텟이 몇이냐?”
“병장 김민준! 제 민첩 스텟은 60입니다!”
“…허. 그럴 줄 알았다. 짜식.”
“헉! 김민준 병장님의 민첩 스텟이 60이나 됩니까?”
“미쳤네. 그렇게 빠른 걸 어떻게 홱홱 낚아채나 했다.”
민첩 스텟이 60이라는 말에, 다른 헌터들이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소대장에게 김민준의 힘 스텟이 60이라는 말을 은근슬쩍 듣긴 했는데, 민첩까지 저렇게 높을 줄은.
“뭐. 나 이거 노력해서 얻은 거다? 재능충이니 뭐니 하지 마라.”
“에이. 노력해서 어떻게 스텟 60을 찍습니까? 특별 진급을 두 번이나 한 이유를 이제 알겠습니다.”
“민준이 이 자식. 그냥 축복받은 놈이었잖아. 재능충인 거 인정해? 안 해?”
“인정 안 합니다. 전 엄청난 노력을 통해 스텟을 올렸습니다.”
그럼 너네들도 이세계 가서 구르고 오든가.
김민준이 분대원들과 잡담을 나누던 도중.
띠링.
[민첩 강화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어. 뭐야.’
몬스터를 처리한 영향 때문일까.
그의 눈앞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민첩 강화(E): 민첩 스텟이 5 상승합니다.]
‘이제 65네.’
스트렝스에 이어, 민첩 강화라.
이상하게 기대하지 않았던 스킬이 자꾸 생성되고 있었다.
‘흑마법사 스킬이나 좀 풀리지. 없어서 나쁠 건 없다만.’
그러고 보니.
이봉구 이 자식은 잘하고 있나?
‘얌마. 이봉구. 상황 보고해.’
-김민준 님!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현재 이봉구는 인천 쪽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김민준 님의 소환수가 뭔가를 감지한 것 같습니다. 녀석이 맞다면, 아마 마기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냐? 던전 안이면 위치만 기억해 놓고 나와. 내가 나중에 흡수할 테니.’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자신의 신도들은 돌발적인 행동을 가끔 하는데, 특히 자신을 위해 움직일 때 그러했다.
지들 몸뚱이는 생각도 안 하고, 일단 지르고 본다.
그걸 알기에, 김민준은 굳이 건드리지 말라는 명령을 다시 한번 내렸다.
‘그래도 생각보다 빨리 찾은 것 같은데?’
미리 휴가 신청을 해 놔야겠네.
**
같은 시각.
-역시 김민준 님의 소환수! 나보다 빨리 목적을 완수해 버릴 줄이야!
까마귀… 아니, 이봉구는 나이트 워커가 표시한 장소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스스스스.
나이트 워커는 위치를 확인했으니, 이제 그만 물러나자고 말했다.
-물러나다니! 아무리 김민준 님의 소환수라도 그 말을 들을 순 없다! 김민준 님이 말씀하신 건 던전일 때에 한해서였으니까!
스스스스.
나이트 워커는 주인님에게 혼나기 싫다며 대답했다.
-그럴 일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난 김민준 님의 오른팔이니까!
이봉구가 날아간 곳은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사택 안.
-여기 맞는가? 오오!
이봉구는 마당에 놓인 병에서 흘러나오는 마기를 감지했다.
가까이 가 보니, 투명한 유리병 안에 보석이 들어 있었다.
-저렇게 압축된 마기가 있을 줄이야… 김민준 님께서 분명히 좋아하실 거다!
보석은 마기를 품고 있어, 어두운 색으로 빛나는 중이었다.
콕! 콕!
-큭! 이걸 깨야 가져가든지 말든지 하는데.
이봉구는 생각보다 튼튼한 병의 내구성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뭐야. 야! 너 거기서 안 떨어져! 그게 얼마나 귀한 건데!”
-여기서는 일단 후퇴다!
이봉구는 기겁하며 달려 나오는 여성을 확인하고, 재빨리 도망쳤다.
“어휴. 그러니까 아빠는 왜 자꾸 이걸 여기에다가 놔두는 거야?”
그 여성의 정체는, 현재 휴가 중인 손은서였다.
**
다음 날.
김민준은 휴가 보고를 위해 당직 사관실로 향했다.
이봉구의 보고를 받고, 마기를 흡수하기 위해서였다.
“아. 이것이 병장의 힘인가.”
보통 휴가는 늦어도 나가기 3일 전에는 신청해야 한다.
하지만 병장은 1일 전에 신청해도 별 상관없었다.
“충성!”
“어, 김민준이. 또 1박 2일이야? 이제 병장도 달았는데, 좀 팍팍 쓰지 그러냐.”
“간단하게 볼일만 보고 오려고 합니다.”
“그래. 잘 다녀오고. 곧 훈련 일정 있는 거 알지?”
“예! 다녀오겠습니다! 충성!”
김민준은 당직사관에게 보고를 마친 뒤, 바로 인천으로 향했다.
“얌마, 이봉구. 확실한 거 맞지?”
-물론입니다, 김민준 님! 제가 길잡이를 확실히 하겠습니다!
현재 이봉구는 자신의 어깨 위에 앉아, 열심히 내비게이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와. 저거 진짜 까마귀 맞지?’
덕분에 지나가던 사람들은 한 번씩 김민준과 이봉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참나. 뭔 마기가 도라곤볼이야? 뭐 이렇게 여기저기 흩어져 있냐?”
-도라곤볼이 뭡니까, 김민준 님? 설마, 김민준 님이 마기를 잃어버린 게 도라곤볼 때문입니까!
김민준이 불만을 내뱉자, 이봉구는 날개를 펄럭거리며 지금이라도 도라곤볼을 처치하고 오겠다며 말했다.
“정신 사납다, 이 자식아. 가만히 좀 있어.”
-이런. 저도 모르게 흥분했군요. 죄송합니다.
이봉구의 길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길 잠시.
-이곳입니다! 여기 안에서 마향을 느꼈습니다!
거대한 사택이 눈앞에 들어왔다.
“맞네. 여기까지 와야 느껴지는 거 보면, 생물체에 있는 건 아니겠는데.”
-과연 김민준 님! 그 말씀대로, 마기는 유리병 안에 있더군요! 생각보다 단단해, 제 부리로는 무리였습니다!
“가서 감시 카메라 위치 확인하고 전달해.”
-김민준 님! 당당하게 정문으로 가서 요구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난 지금 군인이야, 미친놈아. 별 달려면 범죄 저지르면 안 된다고.”
물론 지금 자신이 하는 행동 자체가 범죄였지만, 들키지만 않으면 범죄가 아니다.
거기다 무생물이라 할지라도 마기가 오랜 기간 응축되어 있다 보면, 분명 이상 현상이 발생할 터.
“난 사전에 발생할 위험을 제거하려고 온 거다. 이건 범죄가 아니지. 저런 위험한 물건은 빨리 처리해 줘야 해.”
김민준은 자신을 합리화하며, 이봉구의 보고를 기다렸다.
-확인 끝냈습니다! 총 여섯 군데나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쪽으로 넘어서 가시면 완벽합니다!
“오케이.”
군복은 너무 눈에 띄니, 진작 사복으로 갈아입은 상황.
그리고 혹시 모를 얼굴 노출을 막기 위해, 가면까지 착용했다.
“후딱 흡수하고 맛집 탐방이나 해야지. 인천까지 왔는데 그냥 복귀하기는 아깝잖아.”
김민준은 가볍게 점프해, 사택의 높은 담을 뛰어넘었다.
“이야. 이 정도면 연예인이 사는 곳 아닌가? 되게 넓네.”
100평은 가뿐하게 넘을 듯한 드넓은 마당.
그리고 3층은 되는 듯한 높이의 집이라.
“나도 별 달고 저런 으리으리한 집이나 지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마기가 담긴 유리병에 다가갔다.
“워. 되게 많네. 이 정도면 스텟이 5는 오르겠는데?”
당첨이었다.
저 작은 보석에 응축된 마기량은 상당했다.
저걸 빨아들인다면 스킬 해제는 확실한 상황.
“동작 그만!”
그가 손을 뻗기 무섭게, 등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대한 조용히 움직였는데, 이렇게 빨리 들킬 줄이야.
‘…뭐야? 제대로 확인했다며? 그냥 일반인 1명이 끝이라고 안 했냐?’
김민준은 여성의 익숙한 얼굴을 확인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이봉구에게 시선을 옮겼다.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이봉구는 화가 난 듯한 김민준의 표정을 확인하고, 나이트 워커 때문이라며 시치미를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