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병장
“충성! 상병 김민준!”
“으하하하. 그래! 이거 보이냐?”
김철민 중위는 병장 계급장을 보라는 듯이 들어 올렸다.
“헉! 설마….”
“소대장님! 김민준 또 특별 진급입니까?”
“아니, 특별 진급 기준이 얼마나 빡센데. 아무리 민준이라도 단기간에 연달아서는 안 되겠지.”
그러자 다른 선임들은 화들짝 놀라며 병장 계급장에 시선을 모았다.
“어제 회의를 통해 결정됐다. 사단장님이 적극적으로 동의하셨어. 다른 대대장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소대장은 김민준의 상병 계급장을 제거하고, 병장 계급장을 직접 달아 주었다.
“병장! 김민준! 감사합니다!”
“그래. 사단 통틀어서 이렇게 빨리 병장 다는 헌터는 네가 처음일 거다. 앞으로도 열심히 해라.”
“예!”
오.
나도 병장은 시간이 좀 걸릴 줄 알았는데, 벌써 달아 주다니.
‘사단장님이 보는 눈이 있으시구만.’
김민준은 왼쪽 가슴의 병장 계급장을 슥 보고, 만족스럽게 웃었다.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병장을 달게 될 줄이야.
“실화냐….”
상병들은 그 모습을 보고는 입을 쩍 벌렸다.
어느새 후임이었던 김민준이, 벌써 자신들의 선임이 되었으니까.
“다들 실적표를 확인했다시피, 민준이만큼만 하면 특별 진급도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다들 열심히 하도록!”
“아니, 김민준 병장님만큼 하는 게 엄청 어려운 것 아닙니까?”
“와, 씨. 김민준이 벌써 병장이라고? 하사까지 금방 가겠는데?”
분대원들이 경악하기도 잠시.
소대장은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며 알려 왔다.
“좋은 소식부터 말해 주자면, 당연히 김민준이 병장으로 특별 진급 한 것이고, 우리 소대원들 전원이 휴가를 받은 것이다.”
“휴가 말입니까?”
“그래. 포상 휴가다. 김민준은 3박 4일, 나머지는 1박 2일이다.”
“와아아아아아!”
“나이스다!”
“김민준 병장님! 감사합니다!”
다들 환호하며 김민준에게 달려들기도 잠시.
“아직 안 끝났다. 나쁜 소식도 들어야지.”
김철민 중위가 각오하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 부대의 훈련 성적이 미흡해, 훈련이 임의적으로 추가될 예정이다. 당연히 뒤에 있는 훈련은 앞으로 당길 거고.”
“으아아아악!”
“안 돼!”
“미친! 미흡입니까? 우리 소대는 훈련 점수 높지 않습니까!”
환호성으로 가득 찼던 생활관은, 어느새 절망으로 바뀌었다.
“우리 소대야 훈련 점수가 높지. 그런데 그건 2소대만 그런 거고. 사단 전체로 봤을 때, 이병이랑 일병들 80% 이상이 낙오됐다.”
소대장의 말에 상병장들의 시선이 후임들에게로 향했다.
일병들은 가만히 마른침을 삼켰다.
“어쨌든 오늘부터 많이 바빠질 거니까, 각오해라. 사단장님이 많이 화나셨다고 하니까.”
김철민 중위는 훈련이 추가되기 전, 던전 일정을 끝내야 한다며 변경된 일정에 대한 설명을 추가했다.
“일정 변경으로 오후에 던전에 갈 예정이니까, 대비를 확실히 하도록.”
“알겠습니다….”
소대장이 나가고 나자, 생활관이 조용해졌다.
일병들은 상병장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상병들은 김민준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제 김민준은 자신들의 선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침묵을 깬 것은 김광식 상병이었다.
그는 뭔가 생각난 듯이, 관물함에서 종이를 꺼내 왔다.
김민준이 없을 때 했던, 월급빵 내기 종이였다.
“지금부터 수금 시작하겠습니다.”
“아… 미친, 저게 있었네.”
분대원들은 종이를 확인하자, 깊은 한숨을 뱉었다.
저 내기에서 승리한 것은 오직 김광식 상병뿐이었으니.
‘오. 김광식 저놈. 나 없을 때 재밌는 거 하고 있었네?’
김민준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녀석의 손에 든 종이를 낚아채 갔다.
“광식아. 나 이제 병장인 거 알지?”
“상병 김광식! 헉… 그, 그렇습니다.”
김광식은 그제야 아차 싶었는지 동작을 멈췄다.
“이야. 많이도 했네.”
“죄송합니다! 기분 나쁘시다면, 없는 걸로 하겠습니다!”
김광식은 혹시라도 김민준의 기분이 나쁠까 싶어, 곧바로 사과했다.
“기분은 별로 안 나쁜데?”
자신이 병장까지 몇 개월 걸릴지를 두고 내기를 한 것이다.
기분이 나쁠 이유가 없었다.
“대신 수수료 내놔. 나한테 혼날래, 아니면 수수료 주고 돈 가져갈래.”
“드리겠습니다.”
“30 퍼센트 내놔.”
“…알겠습니다.”
김광식은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대답했다.
30 퍼센트는 과한 느낌이 있었지만 어쩌겠는가.
자신의 후임이었던 김민준이 선임이 되었는데.
‘하지만! 어차피 내기에서 이긴 것은 나 혼자다.’
수수료를 뜯겨도 상당히 짭짤한 금액일 터.
그렇게 생각하던 도중, 김민준이 눈을 빛냈다.
“오, 이놈 봐라? 내가 병장을 한 달 안에 다는데 2달 치를 걸었네? 이 기특한 자식.”
“감사합니다. 그럼 수수료 조금만 깎아 주실 수 없습니까?”
“깎아 주려고 했는데, 네가 그 말을 하니까 그러기 싫어졌다. 40 퍼센트 내놔.”
“크윽… 알겠습니다.”
김민준은 악덕 업체 사장처럼 웃으며, 김광식에게 계좌 번호를 적어 주었다.
‘아, 맞다. 내가 병장 달았으니까, 우리 생활관부터 바꿔야지.’
부조리를 없애 버릴 때가 왔구만.
김민준은 후임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내가 병장 달았으니까, 이병이든 일병이든 지금부터 자유롭게 움직여라. TV도 마음껏 보고, 일과 시간만 끝나면 하고 싶은 거 해. PX든 단련장이든 상관없다.”
그 말에, 분대원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상병장들은 황당한 듯한 표정이었으며, 일병들은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병장님들? 제 뜻대로 해도 되겠습니까? 물론 훈련 성적이 부진하면 제한하는 쪽으로 하겠습니다.”
“그래. 네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해라. 난 불만 없다.”
“나도. 후임들 챙겨 주겠다는데, 막을 필요가 있겠냐.”
불만인 듯한 병장들도 있었지만, 감히 그의 말에 토를 달 순 없었다.
이대로라면 그가 하사로 진급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기에.
“그리고 상병들은 좀 혼나야지. 부조리가 있으면 바꿀 생각을 해야지, 왜 안 없애고 가만히 두냐?”
“죄송합니다!”
김민준은 상병들에게 벌을 주겠다고 말한 뒤, 뭐가 좋을지 곰곰이 생각했다.
물론 병장들은 자신이 하사를 달아도 변하지 않는다면, 혼내 주기로 했다.
‘그냥 평범하게 기합만 주면 재미가 없는데… 뭐 없나?’
그렇게 생각하던 도중.
-토옷! 무적 레인저! 변신!
김민준은 병장들이 튼 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고, 박수를 딱 쳤다.
“이야. 저거네.”
“설마….”
“김민준 병장님?”
상병들은 불안한 듯이 눈동자를 굴렸다.
“오. 너네 상병들이라고 제법 눈치 빠르다?”
김민준은 즐거운 듯이 웃으며 TV를 가리켰다.
정확히는 어린아이들이 주로 즐겨 보는, 무적 전대 시리즈물.
“어차피 오전에 할 것도 없겠다, 다들 저거 변신 포즈 연습해라.”
그 말에, 상병들이 탄식을 뱉었다.
“너부터 빨강이, 노랑이, 김광식 넌 핑크 해. 이 자식아.”
“상병 김광식… 알겠습니다.”
“하기 싫으면, 한 손가락으로 푸시업 9,999개 하든가. 지금까지 후임들이 고생했는데, 이 정도로 봐주는 건 천사인 수준이지.”
결국 상병들은 각자 지목받은 대로, 오전 내내 변신 연습만 했다.
“후임들한테 잘못한 것을 혼내는 건 좋은데, 별거 아닌 거 가지고 애들 털다가 걸리면 알지?”
“알겠습니다….”
김민준의 경고에 상병들은 풀이 죽은 채 대답했다.
‘김민준 병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진급하셔도 우릴 신경 써 주실 줄은 몰랐는데.’
‘가만히 보면 알게 모르게 후임들 챙겨 주신다니까.’
일병들은 속으로 감사함을 느끼며, 상병들의 변신 포즈를 구경했다.
“느와아아앗! 변신!”
“자연의 힘이 우리를 돕는다!”
“불꽃 전사! 레드!”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진 생활관.
“이 자식들이 또 난리네. 던전 갈 준비는 잘해 놓고 저러나?”
소대장실에서 보고서를 작성하던 김철민 중위는, 뭔가 싶어 문제의 생활관으로 향했다.
그러자 괴상한 포즈를 취하는 헌터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 그냥 단체로 지랄 났네, 지랄 났어.”
다른 생활관이었으면 혼냈을 테지만, 김민준의 생활관이었기에 한 번 봐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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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가 되자, 2분대원들은 장비들을 챙겨 던전으로 향했다.
그들이 맡은 던전은 지뢰형 몬스터가 나오는 장소.
‘아. 하필이면 스네이크 마인이냐.’
‘이거 오늘 밤 내내 해도 힘들겠다.’
큰 위험은 없지만, 땅 밑으로 숨어 움직이는 몬스터를 찾아내야 했기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던전이었다.
분대원들은 보호 슈트를 착용한 채, 소대장의 지시를 기다렸다.
“자! 던전에 입장하기 전, 탐지기가 잘 작동되는지 다시 한번 점검한다!”
“알겠습니다!”
분대원들은 김철민 중위의 지시에 몬스터 탐지기를 점검했다.
“이상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보호 슈트를 점검한 뒤, 대열을 맞춰서 입장한다!”
“예!”
[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헌터들은 2열 횡대로 대열을 맞춰,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보호 슈트를 입고 있다 하더라도, 던전은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걸 항상 유념하고 작업하도록!”
“알겠습니다!”
스네이크 마인의 타입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땅 밑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잠복형.
다른 하나는 땅 밑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활동형.
삑. 삑.
헌터들은 탐지기를 사용해 스네이크 마인을 천천히 탐색해 나간다.
삐이이익-
탐지기의 신호음이 울리자, 분대원들은 곧바로 움직임을 멈췄다.
“미끼 던지고 포획할 준비해라! 김민준! 이승호! 그리고 나까지 해서 포획 작업은 3명으로 진행한다! 나머지는 뒤로 빠져!”
“예!”
“알겠습니다!”
스네이크 마인을 다른 몬스터처럼 처리했다가는, 그대로 놈이 폭발해 피해를 입는다.
‘꼬리 부분을 잡고 꺾으면 된다고 했지.’
놈들은 꼬리 부분에 상처를 입는 순간, 폭발 능력을 상실한다고 했으니.
‘많기도 많다. 30마리는 그냥 넘겠는데?’
김민준은 놈들이 올라오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지면 아래에 잠복해 있는 놈들 중, 움직이는 놈들은 대략 10마리.
가만히 잠복해 있는 놈들은 20마리 정도.
‘근처에 있는 놈들만 이 정도면, 던전 전체로 잡으면 엄청 나겠는데?’
이놈들 한 마리, 한 마리가 실적 점수다.
단 한 마리도 놓치지 않으리라.
스슥, 스스슥-
“올라옵니다!”
분대원들이 미끼를 뿌리기 무섭게 스네이크 마인이 한두 마리씩 지면으로 올라왔다.
겉보기에는 검붉은 색을 띤 뱀이지만, 놈을 잘못 건드리기라도 했다가는 그대로 터져 버린다.
“빨리 움직인다!”
“예!”
“알겠습니다!”
김민준은 날렵한 움직임을 시작으로 김철민 중위와 이승호 병장이 몬스터 포획을 시작했다.
“쉬익! 쉬이익!”
놈들은 저항이라도 하려는 듯 그들에게 뛰어들었지만, 그때마다 꼬리가 잡혀 무력화될 뿐이었다.
“와. 그런데 김민준 병장님은 저거 처음 아니냐?”
“그러게. 처음인데 소대장님이랑 속도가 비슷한 것 같은데?”
“저거 은근 어려운데, 처음부터 저렇게 잘한다고?”
뒤에 빠져 있던 헌터들은 그들의 거침없는 손놀림을 보며, 감탄사를 뱉었다.
‘응? 이놈은 또 뭐야?’
김철민 중위가 스네이크 마인을 처리하는 도중.
푸른빛을 띤 개체가 시야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