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네가 여기서 왜 나와?
“충성! 상병 김민준입니다!”
김민준은 소대장이 건네준 스마트폰을 건네받았다.
-김민준? 휴가 중에 왜 거기 있는 거야? 무슨 일이야?
김철민 중위의 황당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김민준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
소대장이 다시 스마트폰을 채 가고는 현 상황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아. 지금 김민준 상병은 대민 지원 작업 도와주고 있습니다. 게이트가 터져 버려서, 작업을 다시 해야 합니다. 제가 나중에 따로 연락드려도 되겠습니까?”
-아, 알겠습니다.
소대장의 급한 목소리에, 통화는 간략하게 끝이 났다.
**
시간이 지나고, 소대장실.
“강원도 화천 말입니까?”
김철민은 4대대 4중대의 소대장에게 보고를 듣고,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재확인했다.
“2대대 2중대, 김민준 상병 맞습니까?”
-예. 다시 확인해 봤습니다. 현재 휴가 중인 김민준 상병입니다.
그는 이어지는 소대장의 보고에 기가 막혔다.
‘뭐? 애초에 대민 지원을 도와주려고 했다고? 그런데 게이트가 터졌고?’
차라리 농담이라고 말해 줬으면 좋겠다.
김민준은 거기에 한술 더 떠, 레드 보어들을 혼자서 처리했다고 한다.
-상병임을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신체 능력입니다.
“그 말이 사실… 입니까?”
-예. 저도 사실 믿기지 않습니다. 거기다 저희 중대의 밀린 일까지 도와주고 있습니다. 덕분에 작업 시간이 많이 단축된 것 같습니다.
1박 2일짜리 휴가를 써서 간 곳이 강원도 화천.
그것도 4중대 여헌터들이 대민 지원으로 작업하고 있는 곳을 콕 집어서 갔다.
‘헌터 기동 훈련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성실함이었다.
‘참나. 그것도 휴가 중에 저런다고?’
당장 자신보고 연차를 쓴 뒤 대민 지원이나 타 부대에 작업을 도우러 가라고 한다면, 속으로 욕부터 박을 것이다.
“이걸 중대장님께 보고해야 하는데….”
안 그래도 일이 밀린 상태인데, 김민준의 일까지 겹쳤다.
“오늘 밤새워야겠구만… 그래도 대견하긴 하네.”
다른 건 몰라도, 휴가를 반납하고 대민 지원을 도와준 헌터라니.
과연 전 사단에서 몇 명이나 될까?
‘이 자식, 이거. 이러다 금방 병장 다는 거 아니야?’
김철민은 중대장에게 연락해, 4중대 소대장에게 들었던 말을 적당히 각색해 보고했다.
**
김민준의 활약으로 인해, 화천에서의 대민 지원이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전우님! 고마워요!”
“다음에 보면 밥이라도 사 드릴게요!”
여헌터들은 버스에 올라타며, 거듭 감사를 표했다.
안 그래도 헌터 기동 훈련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되어 있었는데, 김민준 덕분에 작업이 매우 편해졌기 때문.
급기야 몇몇 여헌터들은 은근슬쩍 연락처를 알려 주려고까지 했다.
“아. 전 그럴 생각으로 도와 드린 게 아니라서요. 필요 없습니다.”
김민준은 단호하게 거절하며, 철벽을 쳤다.
‘나에게 필요한 건 실적 점수지, 늬들 번호가 아니다.’
자신에게 있어 1순위를 별을 다는 것.
여자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자신이 고자라는 것은 아니다.
‘1순위가 별과 힘을 되찾는 것, 2순위가 던파라면….’
4순위나 5순위 정도 되지 않을까.
이것도 높게 쳐 준 것이다.
“김민준 상병. 휴가 잘 마무리하고, 부대에 돌아가면 소대장님께 꼭 보고해. 네 덕분에 피해가 없다시피 했다.”
“상병 김민준! 알겠습니다!”
소대장의 말을 마지막으로, 여헌터들이 탑승한 버스가 떠나갔다.
김민준은 버스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 나이트 워커에게 마기를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
스스스스-
“빵빵하게 먹고 열심히 일해라.”
녀석은 눈치를 보는 듯하다가, 마기를 미친 듯이 빨아들였다.
스스스-
나이트 워커의 등급이 C로 올랐기 때문에, 녀석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다.
지금까지 낚싯대를 던지고 물기를 기다리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그물을 들고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수준.
“좋아. 안 그래도 마기 모으는 일이 답답했는데, 던전에 대한 정보는 쉽게 얻을 수 있겠네.”
김민준이 만족스럽게 웃던 사이, 나이트 워커가 이상 현상을 감지했다며 알려 왔다.
강화된 나이트 워커의 성능은 강력했다.
“뭐냐? 또 게이트야?”
스스스-
나이트 워커는 마기를 품은 존재가 자신을 알아차리고, 이쪽으로 넘어오는 중이라고 알렸다.
“뭐? 몬스터는 아니라고? 그럼 뭔데. 마기는 사라질 듯 말듯 미약하다고?”
나이트 워커는 현재 그 대상이 차원을 떠돌고 있는 중이라고 알렸다.
“차원을 떠돌고 있는데, 너를 알아차리고 이쪽으로 온다고?”
나이트 워커가 강화되어서 그런가? 이게 역추적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거기에 마기는 미약하게 품고 있다라….
“차원 이동을 하다가 망한 케이스 같은데. 이대로는 죽을 것 같으니까 뭐라도 잡아 보려는 것 같고.”
자신조차 차원 이동을 하는 데에 있어, 많은 페널티를 감수해야 했다.
저 정도면 살아 있는 게 기적일 수준.
“일단 내버려 둬. 내가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자신의 힘으로는, 차원에 대한 간섭은 불가능하다.
김민준은 자리에서 가만히 기다렸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마기를 품고 있었으니까.
스으으으으-
“포탈이네.”
30분쯤 지났을까.
자신의 근처에 검붉은 포탈이 생성되었다.
“조잡하네. 저렇게 만드니까 망하지.”
포탈의 상태는 한눈에 봐도 불안정했다.
몸이 갈려 나가지 않은 것만 해도 기적인 수준.
“마기로 포탈을 만든 것 같은데, 일단 마기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검붉은 색을 띠는 거 보니까 뭐 이상한 걸 섞은 것 같은데.”
김민준이 혼자 중얼거리던 사이.
검은 로브로 전신을 뒤집어쓴 남성이 포탈 밖으로 기어 나왔다.
“동작 그만. 손가락 하나라도 움직이는 순간 나한테 죽는다.”
그 말에, 남성의 몸이 크게 요동쳤다.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남성에게 공격을 가하려는 순간.
“미놀드 니이이이임!”
익숙한 목소리에, 동작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설마.”
김민준은 녀석이 뒤집어쓴 로브를 걷어 냈다.
그러자 자신이 알던 얼굴이 나타났다.
“아오, 이 미친놈이… 나 잊고 살라고 했냐, 안 했냐?”
“미놀드 니이이이임!”
남성의 정체는 이스가르드에서 넘어온 흑마법사이며, 세리아 교의 열혈 신도였다.
이름이 없었기에, 자신이 직접 이름을 지어 준 놈이기도 했다.
“이봉구. 너 제정신이냐? 네가 무슨 깡으로 차원 이동을 한 거야?”
촌스러운 이름과는 달리, 이봉구는 상당히 화려한 외모를 지닌 남성이었다.
지나가는 여성들이 한 번쯤은 뒤돌아볼 외모.
그렇기에 김민준은 일부러 녀석에게 이봉구라는 촌스러운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이유?
흑마법사 주제에, 기분 나쁠 정도로 잘생겨서.
“크흑! 미놀드 님이야말로, 쪽지 한 장 남기시고 저흴 떠나 버렸지 않습니까!”
“아니, 이 미친놈아! 너희들 모아 놓고 차원 이동한다고 말하면, 전부 따라올 게 뻔한데, 그걸 말해?”
자신의 신도들은 정상이 아니다.
차원 이동이 쉬웠다 할지라도, 신도들을 지구에 데려다 놓을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미놀드 님의 오른팔인 저 정도는 데려갈 만하지 않았습니까!”
이봉구는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엉금엉금 기어 자신의 군화를 두 손으로 잡았다.
“누구 마음대로 오른팔이냐! 당장 떨어져!”
뻐억!
“억… 주, 죽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미놀드 님의 손에 죽는다면, 행복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아, 나도 모르게 때렸네. 일단 마기나 받아.”
김민준은 당장 숨이 넘어갈 듯 경련하는 이봉구에게 마기를 나누어 주었다.
이것으로 충만했던 마기의 잔고가 다시 바닥을 드러냈다.
“후우. 드디어 살 것 같습니다.”
안색이 창백했던 이봉구는 그제야 몸을 일으키며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하나부터 열까지 보고해.”
“예. 당연합니다!”
이봉구는 차원 이동을 하게 된 계기부터 설명을 시작했다.
“미놀드 님께서 사라지자, 신도들은 새로운 교주를 뽑기는커녕 미놀드 님을 따라가려고 하더군요…. 이대로 있다가는 교단이 와해될 것 같았습니다.”
“참나. 나 신경 쓰지 말고 살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마기를 전부 쥐어짜 내서 포탈을 만든 거냐?”
“예! 바로 그렇습니다! 제가 대표로 가겠다고 했죠!”
“조잡한 포탈이야 그렇다 치고, 좌표 설정은 어떻게 했냐? 지구 좌표를 알고 있는 이스가르드인은 없을 텐데.”
그 말에, 이봉구는 자랑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야 당연히 찍었습니다.”
“오. 그래? 10억 분의 1도 안 되는 확률을 찍어서 이쪽으로 넘어왔다고?”
“물론입니다! 교주님에 대한 믿음이 있는 이상, 확률이야 단순한 숫자에 불과한 것 아닙니까!”
“대가리 찍히기 싫으면 제대로 말해.”
“정말입니다, 미놀드 님! 제가 어찌 교주님께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김민준은 억울하다는 듯이 말하는 이봉구를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이놈이라면 그럴 만하지. 나 보겠다고 목숨까지 걸면서 이곳으로 넘어왔는데, 매정하게 대하는 것도 그렇고.’
김민준은 기본적으로 이스가르드인들을 싫어한다.
다만.
흑마법사들 중에서도, 자신의 신도들은 예외였다.
‘이세계에서 이놈들 덕을 많이 보긴 했으니까.’
신도들은 자신이 이세계에 있을 동안 이유 없이 움직여 주었고,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배신하지 않았으니까.
“내 이름은 김민준이다. 미놀드가 아니고. 여기서는 김민준이라고 불러라.”
“알겠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죽을 때까지 김민준 님을 도와 드리겠습니다!”
이봉구는 무릎을 꿇으며 예를 취했다.
“너, 모방 스킬은 사용할 수 있겠냐?”
“물론입니다! 김민준 님의 은혜로운 마기 덕분에, 힘이 넘칩니다!”
“구라 치지 말고. 별로 안 줬다.”
“사실 지금으로서는, 작은 동물 대상으로밖에 사용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죄송합니다!”
이봉구의 특기라고 한다면, 바로 모방이다.
지정한 생명체의 겉모습은 물론, 특유의 성격과 목소리까지 베껴 올 수 있다.
그야말로 잠입에 특화된 스킬.
‘이왕 이놈이 여기에 넘어왔으니, 열심히 일을 시켜야겠지.’
이봉구는 김민준의 지시로 근처의 까마귀를 지정해 모방 스킬을 사용했다.
“넌 당분간 나이트 워커랑 같이 움직여. 그리고 위험한 짓은 절대 하지 마라. 안전제일이다. 알겠냐?”
“그 말을 따르겠습니다!”
스스스스-
김민준이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나이트 워커가 이봉구의 몸체를 감싼 뒤, 지구에 대한 정보를 넘겨주었다.
-오오. 이곳이 지구. 그리고 김민준 님의 고향! 대한민국이라는 곳이군요!
이봉구는 날개를 퍼덕거리며 감격의 울음을 토해 냈다.
-역시 김민준 님! 엄청난 힘을 소유하셨으면서도, 지배의 감정에 먹히지 않으시다니!
“내 고향인데 그런 짓을 하겠냐? 난 대한민국이 좋아.”
-그럼 저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좋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봉구가 기쁨에 찬 듯, 날개를 펄럭거렸다.
“아, 잠깐만. 그러고 보니, 다른 신도들은 괜찮냐? 성녀가 개짓거리 하는 건 아니고?”
자신의 말에 이봉구가 진지한 눈빛으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