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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32화 (32/212)

32. 화천-2

스스스-

“게이트!”

허공이 조금씩 갈라지고 있었다.

게이트 생성의 전조 현상.

“김민준 씨! 빨리 여기서 벗어나요!”

손은서가 화들짝 놀라며 그의 팔을 끌어당겼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목적은 나이트 워커가 보고한, 저 게이트였으니까.

“아니요. 안 됩니다.”

“예?”

“이놈들 금방 튀어나와요.”

김민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갈라진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한 마리씩 모습을 드러냈다.

멧돼지의 외관을 가진 몬스터, 레드 보어였다.

“레드 보어라기에는… 뭔가 달라.”

손은서는 놈들을 관찰하고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놈들의 붉은 털들이,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눈도 마찬가지.

분명히 외관은 레드 보어지만, 뭔가가 달랐다.

“레드 보어 상대해 본 적 있어요?”

“상대야 해 봤지만… 저건 너무 많아요!”

“빨리 소대원들 데려오세요!”

“김민준 씨는요!”

그는 대답 대신 손가락을 들어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저까지 빠지면 저놈들이 민가를 휩쓸고 지나갈 겁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요! 그러다 진짜 죽어요! 장비도 없이 뭘 어쩌려고요!”

“걱정 말고 가요! 빨리!”

나 혼자 이놈들 마기 빨아먹어야 한다고!

물론 실적도 다 내 거다.

“조금만 기다려요!”

“아! 가기 전에 장비나 하나 빌려줘 봐요!”

손은서는 최대한 빨리 오겠다고 말을 남기며, 군용칼을 건네주었다.

“좋아. 이걸로 무기 숙련도 올려야지.”

방금 생성된 게이트.

전조 현상이 나타나는 게이트가 있는가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생성되는 게이트도 있었다.

게이트가 까다로운 이유가 바로 이 점 때문이었다.

방금 생성된 건 후자 쪽이었고.

“꽤에에에엑!”

레드 보어 무리는 김민준을 발견하자,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처럼 괴성을 내질렀다.

“어이고. 마기 빨아먹어서 기운이 넘치세요?”

레드 보어의 가죽은 상당히 두껍다.

거기다 마기를 빨아들였으니, 더욱 질겨졌을 터.

놈들을 처리하려면 마력탄이 필수인 수준이었다.

“총이야 저쪽 중대에서 비상용으로 가져왔겠지만, 그걸로는 무리겠지.”

당장 눈앞에 보이는 놈들만 열 마리다.

그것도 마기를 듬뿍 머금은 놈들이 말이다.

“이놈들은 다 내 거다.”

그리고 뒤에 딸려 오는 실적도 내 거다.

‘부패.’

스스스스-

놈들은 내부에서의 공격에 매우 취약하다.

미끼에 몬스터용 독만 풀어놓아도, 시간만 지나면 알아서 죽어 버리는 수준.

김민준은 놈들의 몸 안으로 마기를 흘려 넣었다.

“꾸, 꾸에엑!”

그러자 레드 보어들이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주는 마기는 많이 아프지?”

“꾸에엑!”

“가만히 있어!”

김민준은 놈들의 무리 한가운데로 들어가, 마구잡이로 마기를 흡수했다.

“꿰엑!”

“가만히 있으라고!”

그는 정신없이 몸부림치는 놈들에게 힘을 담아 군용칼을 휘둘렀다.

서걱!

“늬들 가죽이 질겨 봤자지. 나한테 될 것 같냐?”

김민준이 칼을 휘두를 때마다, 레드 보어의 몸이 두 동강 났다.

그는 마치 두부라도 자르는 듯, 놈들을 여유롭게 처치해 나갔다.

“저기 레드 보어가 보입니다!”

“김민준 상병은 어디 있어!”

“레드 보어들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오지 마십쇼! 제가 다 처리하겠습니다!”

그사이 4중대 소대장과 소대원들이 도착했지만, 김민준이 그들을 극구 말렸다.

‘내 실적 건들지 마라.’

[일정 수준의 마기를 흡수하였습니다.]

[마기 스텟이 1 상승합니다.]

[마기 스텟이 1 상승합니다.]

[마기 스텟이 1 상승합니다.]

[나이트 워커가 강화됩니다.]

[기본 검술이 강화됩니다.]

‘나이스. 마기 괜찮게 들었네. 겸사겸사 스킬 등급도 올랐고.’

김민준은 떠오른 메시지창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와… 뭐야. 전우님 혼자 레드 보어 상대하신 거야?”

“전우님! 혼자서 어떻게 하신 거예요?”

“군용칼로 이등분 하면 쉬워요.”

“…네?”

“그게… 되나?”

군용칼로 처리했다는 말에, 여헌터들이 당혹스러워했다.

레드 보어는 물리적인 공격에 강했으니까.

“김민준 상병! 너 몸은! 다친 데는 없나?”

“상병 김민준. 조금 긁힌 상처 말고는 멀쩡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정리되었다.

4중대의 소대장이 재빨리 달려와, 그의 몸에 부상이 없는지 꼼꼼하게 살폈다.

“후우. 게이트가 나타나면 바로 대피해서 보고부터 해야지. 자리에서 안 벗어나고 뭐 했나.”

“죄송합니다. 이대로 놔두면 레드 보어들이 민가에 큰 피해를 입힐 것 같았습니다.”

“헌터로서 잘 행동한 건 맞는데, 거기서 도망쳤어도 너에게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무기도 없이 맨몸으로 뭘 어쩌겠다는 거냐.”

“죄송합니다!”

그녀의 말에 다른 여헌터들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게이트가 전조 현상도 없이 눈앞에서 발생했는데, 안 도망치는 게 이상한 수준이었다.

“아니, 그런데 도대체 너는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대민 지원은 4중대가 맡는데. 넌 몇 중대야?”

“상병! 김민준! 2대대 2중대 소속입니다!”

김민준은 대답과 함께, 품에서 휴가증을 건네 보여 주었다.

그러자 소대장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휴가를 오늘 나왔는데, 여기에 온 이유가 뭐야?”

“볼일이 있어 화천에 왔었는데, 이 뒤에 할 일이 없어 대민 지원을 돕고자 왔습니다!”

“뭐라고?”

대민 지원을 돕고자 왔다고?

그것도 휴가 도중에?

믿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김민준 상병에 대해 듣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좋아. 이러는 게 완벽하지.’

한편.

김민준은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다.

‘휴가 중, 자의로 대민 지원을 도와주러 왔다가 게이트 처리.’

마기도 얻고, 몬스터도 처리하고.

실적 점수도 얻고.

이미지 상승까지.

완전 꿩 먹고 알 먹고였다.

“게이트 발생했을 때의 상황은?”

“레드 보어 같은 경우는, 제가 손은서 상병에게 군용칼을 빌려 상대했습니다.”

“…….”

김민준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상황 보고를 마쳤다.

손은서는 그를 보며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그렇지, 그걸 혼자서? 음… 일단 상황은 마무리된 것 같으니까 됐다.”

소대장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소대장님! 레드 보어가 깔끔하게 두 동강 났습니다!”

“와. 평범한 군용칼로 저게 되네.”

“전우님. 힘 되게 좋으시다!”

여헌터들은 레드 보어의 시체를 확인하고 감탄했다.

‘이대로 잘 넘어갔네.’

추후에 상황 보고서 작성 때문에 귀찮아질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때의 일이다.

‘어쨌든 레드 보어를 눈으로 확인한 건 나고, 처리한 것도 나니까.’

별일 없겠지.

“전우님. 괜찮아요?”

“소대장님께 비상 약품 받아 왔어요! 이거 쓰세요!”

여헌터들은 언제 왔는지 순식간에 자신을 우르르 에워쌌다.

“별거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소독이라도 하세요!”

“그래요!”

급기야 직접 약을 발라 주려고 하기까지.

김민준은 재빨리 여헌터들에게서 멀어졌다.

‘에라이. 잡몹들한테 긁혀 버렸잖아.’

어쨌든 게이트는 마무리했으니까, 이대로 돌아가면 되겠네.

“아….”

“몬스터 사체가 또 늘었어.”

“소독 다시 해야 해….”

시선을 돌려보면.

여헌터들이 절망적인 얼굴로 레드 보어의 사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동안 힘들게 소독을 끝냈는데, 게이트가 터져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어차피 할 것도 없는데 도와줄까?’

지금 돌아가 봐야, 피시방에서 던파밖에 더하겠어?

시간 날 때 점수 좀 따 놓지 뭐.

김민준은 약품 분사기를 하나 집어 들어, 등에 멨다.

“소대장님. 저도 도와 드려도 되겠습니까?”

“뭐라고?”

“이대로면 작업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습니다. 제가 도와 드리고 싶습니다.”

4중대 소대장은 그 행동을 보고, 순간 어이가 없었다.

아니, 이제는 혼란스러웠다.

‘이곳에 온 이유도 그렇고. 휴가를 반납하면서까지 대민 지원을 도와주려는 것도 그렇고.’

어쨌든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해, 작업량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라. 이 일은 내가 2중대 소대장님에게 보고할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전우님! 그냥 쉬세요!”

“몬스터 상대하느라 지쳤을 텐데, 그냥 저희가 할게요!”

여헌터들의 만류에도 김민준은 괜찮다고 말하며 소독을 시작했다.

“와. 저분 오늘 휴가 나오셨다는데?”

“그럼 휴가 도중인데 우리 도와주는 거야?”

“대박이다….”

여헌터들의 대화 주제는 어느새 김민준이 되어 있었다.

“어떻게 겁이 없을 수가 있어? 레드 보어가 들이박으면 트럭에 치이는 수준 아니야?”

“거기다 너무 많았어.”

그녀들은 김민준이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며, 의욕을 다졌다.

**

작업은 어느새 길어져, 밤이 되었다.

“김민준 씨.”

“어우 씨, 깜짝이야.”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김민준은 손은서의 얼굴을 보자 순간 그녀에게 분사기를 뿌려 버릴 뻔했다.

“하마터면 얼굴에 쏴 버릴 뻔했네.”

“뭐, 뭐요?”

“아. 거기 잠깐 비켜 봐요.”

김민준은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근처의 일대를 깔끔하게 소독했다.

“저랑 잠깐 얘기할 수 있어요?”

“작업 다 끝나 가니까, 그러죠 뭐.”

어차피 난 휴가 중이니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

“지난번에 있었던 승급 시험. 만점으로 통과하셨잖아요.”

아.

승급 시험.

그 얘기인가.

“그때, 창가에서 저한테 욕하셨죠?”

“예?”

“막 뭐라 손짓하면서 저한테 욕하신 거 아니에요?”

뭐라는 거야 이 여자가.

내가 말한 건 ‘이게 너와 나의 눈높이다.’였는데.

김민준은 친절하게 이전의 손동작과 입 모양을 재현해 주었다.

“전 이렇게 말했는데요. 이것이 너와, 나의, 눈높….”

“이익…! 그거나, 이거나 결국 욕이잖아요!”

“그게 왜 욕이에요. 그냥 웃자고 하는 말인데.”

그녀는 살짝 짜증스럽게 대답했으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

“일병이 승급 시험에서 만점으로 통과한 적, 딱 한 번 있는 거 알아요?”

“저요?”

“아뇨, 김민준 씨 말고, 25년 전에 딱 한 명 있었어요.”

오.

누군진 몰라도 좀 하네.

“그게 누구였나요?”

자신의 질문에, 손은서는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우리 아빠… 아니, 아버지요.”

“아. 혹시 사단장님?”

“네. 아버지는 유일하게 병사 출신에서 별까지 다신 분이시거든요. 저도 아버지처럼 되고 싶어서 병사로 입대했어요.”

아하.

결국 아버지 자랑하러 나한테 말 걸었다 이건가?

‘그래도 관심이 생기네. 결국 쟤 아버지는 내가 목표로 하던 걸 이루신 분이니.’

김민준은 흥미가 생겨, 그녀의 아버지에 대해 질문했다.

“그 전에, 승급 시험 민첩 부문. 거기서 어떻게 했는지 알려 주세요.”

“고무탄 피한 거요?”

“네. 다른 건 납득하겠는데, 고무탄은 도저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요.”

“그게 다 그쪽 때문이에요.”

“예?”

손은서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쪽이 힘 부문부터 저에게 도발하니까, 괜히 힘이 들어갔잖아요.”

“아니, 그게 왜 제 탓이에요! 그냥 김민준 씨한테 경쟁심을 느낀 것뿐이에요!”

한동안 유치찬란한 대화가 이어진다.

“김민준!”

“상병 김민준!”

그때, 4중대 소대장이 가까이 오라며 손짓했다.

“전화 받아라. 2중대 2소대 소대장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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